숲노래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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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면서 사랑하고 만나는 (2014.2.18.)

― 서울 〈우리 동네 책방〉



저는 여수화학단지에 가 보고 싶지 않습니다. 포항제철이라든지 인천 남동공단에도 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이 둘레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랐기에 인천 남동공단 둘레로 늘 지나다녔고 주안공단이나 월미도공단도 언제나 쳐다보며 살았어요. 텃마을 동무는 만석동 공단 곁에서 언제나 공장바람을 마시며 살았고, 숭의동 철길 옆에서 탄가루와 엄청난 소리를 먹으며 살았어요.


모두들 만만하지 않은 삶터에서 하루를 여밉니다. 모두들 고단하기도 하고 고달프기도 한 삶을 잇습니다. 그런데 고단하거나 고달프더라도 조그마한 마당에 나무를 심어요. 손바닥만 한 텃밭을 일구어요. 꽃씨를 심고 풀씨를 심습니다. 배추 한 포기를 얻고 고추 몇 줌 얻습니다. 큰길에서 보면 초라하거나 어두컴컴한 모습이라 할 테지만, 골목에 들어서면 환하면서 아기자기합니다. 큰길에서는 자동차 소리로 시끄러우며 공장 굴뚝이 무시무시해 보이지만, 골목에 깃들면 조용하면서 도란도란 오붓한 밥내음과 꽃내음이 퍼집니다.


마을책집은 먼발치서 보면 눈에 안 띄일 수 있어요. 그러나 이 마을책집은 책 한 자락에 마음을 살찌우는 씨앗을 품고서 우리를 기다립니다. 누구라도 언제나 마음꽃씨를 나누어 받는 마을책집입니다.


자꾸 자리를 옮기는 〈우리 동네 책방〉을 찾아듭니다. 아기자기한 책이 쏠쏠한 이곳을 아낄 이웃님이 조금 더 늘어난다면, 책마다 흐르는 마음꽃씨를 나누어 받을 이웃님이 눈을 밝히면 이곳은 든든히 뿌리를 내리겠지요.


작은 마을책집에는 다문 만 자락이나 이만 자락 책만 있어도 넉넉합니다. 작은 헌책집에 삼만 자락이나 사만 자락 책만 있어도 푸집니다. 아니 즈믄 자락 책이어도 좋아요. 더 많은 책보다 아름다운 책이면 됩니다. 더 큰 책집보다 사랑스러우면서 따사로운 책터이면 됩니다.


책집이란 책터요 책쉼터이면서 책사랑터이고 책만남터입니다. 책으로 쉬고 책으로 사랑하며 책으로 만납니다. 책으로 꿈꾸고 책으로 노래하며 책으로 일해요. 책으로 웃고 춤추며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스러운 마을책집은 그냥그냥 두어도 사람들이 즐겁게 알아보면서 활짝 웃으며 찾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요. 꾸미기보다는, 가꾸면 됩니다.


민들레 곁에 냉이가 있고, 냉이 곁에 꽃다지가 있고, 꽃다지 곁에 코딱지나물이 있고, 코딱지나물 곁에 잣나물이 있고, 잣나물 곁에 봄까지꽃이 있고, 봄까지꽃 옆에 갈퀴덩굴이 있고, 갈퀴덩굴 곁에 달걀꽃이 있고, 달걀꽃 곁에 쑥이 있고, 쑥 곁에 달래가 있고, 달래 곁에 돌나물이 있고, 돌나물 곁에 도깨비바늘이 있고, 도깨비바늘 곁에 소리쟁이가 있고 …… 다 다른 들꽃이 어우러지듯 다 다른 마을가게가 어우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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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ブ-タン》(太田 大八, こぐま社, 1995)

《ガンバレ!! まけるな!! ナメクジくん》(三輪一雄, 偕成社,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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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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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찾아간 지 여섯 해. 아니, 다시 찾아가기를 여섯 해를 기다린다고 해야겠지. 잘 계시지요, 책집지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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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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