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78) 즉卽


 사 년 전, 즉 1946년 봄 평남 진남포에서

→ 네 해 앞서, 그러니까 1946년 봄 평남 진남포에서

→ 네 해 앞서, 곧 1946년 봄 평남 진남포에서

 힘은 즉 옳음이었다. 약함은 즉 죄였다

→ 힘은 바로 옳음이었다. 약함은 곧 죄였다


  ‘즉(卽)’은 “1. 다시 말하여 2.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다시 말하여”나 “바로”로 고쳐서 쓰면 되는 셈입니다. 아니, 예전부터 이러한 한국말을 널리 썼으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그러니까” 같은 말도 함께 썼을 테고요.


  ‘卽’이라는 한자는 “곧 즉”으로 풀이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말은 ‘곧’이고, 이를 한자말로는 ‘卽’으로 적는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so’를 쓸 텐데, 글흐름을 살피면 ‘곧·그러니까·바로’를 비롯해서 ‘그래서’나 ‘이리하여’나 ‘늘·언제나’를 넣을 만합니다. “약함은 즉 죄였다”는 “약함은 곧 죄였다”나 “약함은 늘 죄였다”처럼 고쳐쓰면 잘 어울려요. 4348.8.2.해.ㅅㄴㄹ




우리는 어떤 대상을 바라보더라도 마음속으로는 이전에 보았던 다른 대상을 바라본다. 즉 우리는 새로운 꽃을 바라보더라도

→ 우리는 어떤 것을 바라보더라도 마음속으로는 예전에 본 다른 것을 바라본다. 곧 우리는 새로운 꽃을 바라보더라도

《데즈먼드 모리스/김동광 옮김-맨워칭》(까치,1994) 463쪽


개인 무역상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시스템, 즉 선박무역을 신봉했다

→ 개인 무역상들은 으레 다른 틀, 그러니까 배 무역을 믿었다

《존 아일리프/이한규·강인황 옮김-아프리카의 역사》(이산,2002) 242쪽


즉 앞서 경찰의 대사에서 언급되듯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  앞서 경찰이 한 말에서 나오듯 유대인이라는 까닭으로

→ 그러니까 앞서 경찰이 한 말에서 나오듯 유대인이기 때문에

《노시내-스위스 방명록》(마티,2015) 136쪽


1776년의 독립,  혁명에 의해 탄생한 신흥국가 미국에서는

→ 1776년 독립,  혁명으로 태어난 새 나라 미국에서는

→ 1776년 독립, 이리하여 혁명으로 생겨난 새 나라 미국에서는

《나카마사 마사키/김경원 옮김-왜 지금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가?》(갈라파고스,2015) 175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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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716) 유전적


 유전적인 질병

→ 유전되는 질병

→ 대물림하는 질병

→ 물려받는 질병

 유전적으로 마른 체질이다

→ 집안이 다 마른 몸이다

→ 마른 몸을 물려받았다


  ‘유전적(遺傳的)’은 “유전성을 가지는”을 뜻하고, ‘유전성’은 “유전하는 성질”을 뜻하며, ‘유전(遺傳)’은 “1. 물려받아 내려옴 2. 어버이의 성격, 체질, 형상 따위의 형질이 자손에게 전해짐”을 뜻합니다. “유전적 요인”이나 “유전적 특징” 같은 말마디는 “유전 요인”이나 “유전 특징”처럼 ‘-적’만 덜어도 됩니다. 때로는 “대물림하는 요인”이나 “물려받는 특징”처럼 손질할 수 있어요.


  “유전적인 영향을 받는다”라든지 “유전적인 체질이다”처럼 쓸 적에는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았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니, 말 그대로 “어버이한테서 물려받다”나 “물려받다”처럼 손질하면 돼요. ‘유전’이나 ‘유전자’ 같은 말을 써야 할 자리에서는 이러한 말을 알맞게 쓰고, 다른 자리에서는 ‘물려받다·이어받다·대물림하다’ 같은 말을 알맞게 씁니다. “온 집안이 그러하다”라든지 “집안이 다 그러하다”처럼 풀어서 말할 수도 있어요. 4348.8.2.해.ㅅㄴㄹ




장점과 약점이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일지는 모르나 그것들은 후천적 영향에 의해 크게 변경될 수 있다

→ 장점과 약점이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아 타고날는지 모르나 이는 나중에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오세필 옮김-감독의 길》(민음사,1994) 76쪽


수백만 년 동안 인류는 아주 독특한 유전적 성질을 지닌 포유류로 진화했다

→ 수백만 년 동안 사람들은 아주 남다른 유전 성질이 있는 젖먹이짐승으로 거듭났다

《크리스 하먼/천경록 옮김-민중의 세계사》(책갈피,2004) 31쪽


부모 형제 가운데 골다공증이 없으니 유전적 요인도 아닐 테고

→ 부모 형제 가운데 골다공증이 없으니 유전 때문도 아닐 테고

→ 부모 형제 가운데 골다공증이 없으니 물려받지도 않았을 테고

《서정홍-못난 꿈이 한데 모여》(나라말,2015) 98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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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70 숲에서 살리는 말



  내가 쓰는 말을 손수 지을 때에, 나는 늘 가없는 곳으로 새롭게 나아갑니다. 내가 쓰는 말을 손수 짓지 못할 때에, 나는 늘 똑같은 곳에서 쳇바퀴를 돌듯이 제자리걸음을 합니다.


  나는 남이 만든 말만 쓰면서 살 수 있습니다. 나는 남이 만든 울타리에서 아무 걱정이 없이 살 수 있습니다. 나는 남이 만든 쳇바퀴를 타면서 밥을 안 굶을 수 있습니다. 나는 남이 만든 이야기에 폭 사로잡혀서 내 이야기는 하나도 안 지으면서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쓸 말을 손수 짓는 사람은, 내가 먹을 밥을 손수 짓는 사람입니다. 내가 이웃과 주고받을 말을 손수 짓는 사람은, 내가 입을 옷을 손수 짓는 사람입니다. 내가 곁님과 아이하고 나눌 말을 손수 짓는 사람은, 내가 머물 집을 손수 짓는 사람입니다. 내가 꿈꾸려는 말을 손수 짓는 사람은, 내가 걸어갈 이 길을 손수 열어서 내 삶을 손수 짓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숲에서 삽니다. 사람이 숲을 지었을 수 있고, 숲이 사람을 지었을 수 있으며, 숲과 사람은 서로 한꺼번에 스스로 지어서 태어났을 수 있습니다.


  숲은 지구별 모든 목숨이 깃드는 터전입니다. 지구별이 통째로 숲입니다. 겉으로 보자면, “나무가 우거진 곳”을 일컬어 ‘숲’이라 하는데, 숲은 그저 “나무가 우거진 곳”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온 목숨이 깃들어 사는 터”가 바로 ‘숲’입니다. 지구별이 통째로 새로운 숲이요, 지구별처럼 다른 별도 오롯이 새로운 숲입니다. 별과 별이 어우러진 별누리(은하)도 옹글게 새로운 숲입니다. 별누리와 별누리가 어우러진 온누리(우주)도 하나로 새로운 숲입니다. 이리하여, 사람은 숲에서 말을 짓습니다. 사람은 숲을 살리면서 말을 살립니다. 사람은 스스로 제 목숨을 살리면서 제 숨결을 터뜨리는 말을 터뜨립니다.


  숲사람은 숲말을 짓습니다. 숲사람이 지은 숲말에는 숲결이 드러나고, 숲내음이 묻어나며, 숲노래가 흐릅니다. 숲에서 바람이 붑니다. 숲바람입니다. 숲바람은 지구별을 골고루 돌면서 어느 곳에서나 새로운 숨으로 깃듭니다. 벌레도, 풀과 꽃도, 나무도, 짐승과 새도, 물고기와 사람도, 다 함께 ‘바람이 숲에서 일으킨 숨’을 마시면서 목숨을 잇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숲에서 지은 말은 바로 사람 스스로 살리는 말입니다. 숲에서 지은 말은 바로 사람 스스로 생각을 드러내는 숨결입니다. 숲에서 지은 말은 바로 사람 스스로 ‘머리에서 생각을 짓고 마음에 씨앗을 심어 몸으로 삶을 이루는 하루’로 나아가도록 이끕니다.


  숲사람은 스스로 ‘숲’이라는 낱말을 짓고, ‘사람’이라는 낱말을 지으며, ‘흙·해·바람·물·꽃·나무’ 같은 낱말을 짓습니다. ‘님·곁·우리·너·나’ 같은 낱말과 ‘밥·옷·집’ 같은 낱말을 짓습니다. 이윽고 ‘사랑·꿈·따스함·봄·겨울·추위’ 같은 낱말을 지으면서, 새롭게 한 걸음씩 내딛습니다. 숲사람은 새로운 말을 스스로 끝없이 짓습니다. 숲사람은 새로운 말을 손수 가없이 지으면서, 그치지 않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사람은 스스로 숲을 등돌리거나 등집니다. ‘숲에서 살리는 말’이 아닌 ‘문명과 권력과 종교로 만드는 말’을 세워서 ‘너와 나 사이’에 ‘종(노예)’을 둡니다. 네가 나를 종으로 삼고, 내가 너를 종으로 부립니다. 새로운 말이 태어나지 않으면서, 쳇바퀴 삶이 됩니다. 새로운 말이 막히면서, 톱니바퀴처럼 구를 뿐입니다. 새로운 말을 잊으면서, 문명과 권력과 종교는 커집니다. 새로운 말을 잃으면서, 사람다운 사랑과 꿈을 함께 잃습니다.


  오늘날 지구별에서는 ‘새말’이 태어나지 못합니다. 한국에서도 다른 나라에서도 ‘숲말’이 태어나지 못합니다. ‘유행말’이 떠돌고 ‘영어 권력’이 자랍니다. 홀가분한 넋이 숨을 쉬지 못하고, 아름다운 숨결이 퍼지지 못합니다. 스스로 숲을 저버리기에 스스로 숲말을 저버리는 셈입니다. 스스로 숲을 가꾸지 못하기에 스스로 숲말을 못 가꾸는 셈입니다.


  틀에 박힌 말은 우리 생각이 못 자라도록 막습니다. 제도권과 사회제도는 우리가 스스로 못 자라도록 찍어 누릅니다. 씨앗 한 톨이 너른 숲이 되고 온누리로 퍼지듯이, 말씨 하나를 마음에 심어서 너른 사랑이 되고 온누리에서 눈부시게 깨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숲과 내가 한몸이면서 한마음인 줄 바라볼 때에 비로소 숲말을 손수 짓는 아름다운 삶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4348.3.6.쇠.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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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41] 풀그늘



  무화과잎이 빚은 그늘에 풀개구리가 앉았습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기 앞서까지 이 개구리를 바라보면서 그냥 ‘청개구리’라 했으나, 시골에서 살고 보니, ‘청개구리’는 풀밭을 좋아하고 언제나 풀빛인 몸이더군요. ‘파란 빛깔’을 나타내는 한자 ‘靑’으로 가리킬 수 없습니다. 먼 옛날부터 한겨레 시골내기는 이 개구리를 보며 그냥 ‘풀개구리’라 했으리라 느낍니다. 푸른 잎이 드리우는 그늘을 놓고 ‘녹음(綠陰)’ 같은 한자말을 쓰는 분이 꽤 많지만, 나무가 드리우는 푸른 그늘이라면 ‘나무그늘’이고, 풀잎이 드리우는 푸른 그늘이라면 ‘풀그늘’입니다. 풀개구리는 조그마한 풀그늘이라도 시원하게 땡볕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한여름에 누리는 짙푸른 그늘은, 말 그대로 ‘푸른그늘’이나 ‘풀그늘’이나 ‘나무그늘’이나 ‘잎그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잎사귀가 빚는 그늘을 보면, 이 그늘도 여느 그늘이나 그림자처럼 ‘까만 빛깔’이라 할 만하지만, 싱그러운 풀내음과 풀바람이 흐르는 그늘이니 ‘푸른그늘·풀그늘’ 같은 이름을 쓰면 재미있으리라 느껴요. 4348.8.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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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40] 살림밥



  요사이는 어디에서나 ‘가정주부’나 ‘주부’ 같은 말을 쓰지만, 고작 쉰 해나 백 해 앞서를 떠올리면 이런 말은 어디에서도 안 썼어요. 예전에는 어디에서나 누구나 ‘살림꾼’을 말했어요. 살림을 야무지게 한대서 살림꾼이기도 하지만, 살림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살림꾼입니다. 집에서 집살림을 건사하는 사람이라면 가시내도 사내도 모두 살림꾼이에요. 나는 어버이로서 살림꾼이 되자고 생각하고, 우리 아이들도 앞으로 씩씩하고 슬기로운 살림꾼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생각해 봅니다. ‘살림지기’가 되고 ‘살림벗’이 되며 ‘살림님’이 되기를 바라요. 숲지기처럼 집살림을 지킬 수 있는 살림지기요, 이웃이나 벗처럼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살림벗이며, 하느님이나 곁님처럼 아름다운 살림님입니다. ‘살림’은 “살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살리는 밥을 짓는 살림꾼이라면 ‘살림밥’을 짓습니다. 서로서로 고운 숨결을 살리거나 북돋우는 말을 들려준다면 ‘살림말’을 나누어요. 이웃을 아끼면서 착한 마음을 살리려 한다면 ‘살림넋’이 곱다고 할 만합니다. 예부터 살림을 건사하던 살림지기·살림님이 부르던 노래는 ‘살림노래’입니다. 노동요도 민요도 아닌 살림노래라고 할 수 있어요. 4348.8.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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