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38] 버스집



  다섯 살 아이가 문득 한 마디를 합니다. “아버지, 저기 ‘버스집’이야?” “응? 버스집?”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고 두리번거리니, 시외버스가 ‘버스터미널’로 들어갑니다. 두 아이하고 시외버스로 나들이를 다니는데, 어느 버스터미널에 살짝 들를 무렵, 작은아이는 그곳에 버스가 가득 있으니 “버스가 사는 집”으로 여긴 듯합니다. 차를 마시는 곳은 찻집이라 하고, 떡을 파는 곳은 떡집이라 합니다. 책을 다루는 곳인 책방을 책집이라 하기도 합니다. ‘버스집’이라는 말처럼 ‘택시집’이나 ‘기차집’이나 ‘비행기집’ 같은 말을 재미나게 쓸 수 있겠네 하고 생각합니다. ‘나루’는 냇물을 배를 타고 건너다니는 곳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이 이름을 빌어 ‘버스나루’처럼 쓸 수 있다고도 합니다. ‘쉼터·삶터·놀이터’처럼 ‘버스터·기차터·비행기터’처럼 써도 잘 어울립니다. ‘버스누리·기차누리·비행기누리’ 같은 말을 써 볼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터미널(terminal)’이나 ‘역(驛)’이라는 낱말만 써야 하지 않아요. 생각을 짓다 보면 새로운 말이 태어날 수 있어요. 다섯 살 어린이가 쉽게 알아들을 만한 이름을 다섯 살 어린이하고 함께 지어 볼 수도 있습니다. 4348.7.2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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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37] 마음을 읽는 벗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든다고 해도 아름다운 책은 꾸준하게 태어나고, 책을 즐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옛날에는 책을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으나, 이제는 조금만 틈을 내고 돈을 들이면 어떤 책이든 손쉽게 읽을 수 있어요. 영어를 몰라도 한국말로 옮긴 책을 읽을 만하고, 한문을 몰라도 요샛말로 옮긴 옛글을 읽을 만합니다. 어린이도 책을 읽고, 할아버지도 책을 읽습니다. 누구나 ‘책읽기’를 합니다. 요즈음은 인터넷으로 온갖 글을 읽기도 해요. 글을 좋아하는 분들이 누리집에 올리는 글이라든지, 누리사랑방이나 누리모임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이 있어서, 기쁘게 ‘글읽기’를 하지요. 책으로 묶은 글을 읽으니 책읽기이고, 책으로 따로 묶지 않으면서 쓴 글을 읽으니 글읽기예요. 마음이 맞는 살가운 동무가 어떤 느낌일까 하고 헤아리면 ‘마음읽기’입니다. 이웃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어떤 생각이 깃들었을까 하고 돌아보면 ‘생각읽기’이고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꿈읽기나 노래읽기나 영화읽기를 합니다. 문화읽기나 역사읽기나 인문읽기를 해요. 마을 한 곳이 걸어온 길을 짚으면서 마을읽기를 할 수 있고, 별읽기나 우주읽기를 해도 재미있습니다. 4348.7.2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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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36] 길삯



  아이들을 이끌고 닷새에 걸쳐서 나들이를 다녔습니다. 전남 고흥에서는 어디로 가든 길이 먼데, 닷새 동안 시외버스에서 열여덟 시간 즈음 보냈더군요. 고흥에서 인천으로, 인천에서 영월로, 영월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진주와 순천을 거쳐서 고흥으로 돌아오는 동안 시외버스는 온갖 고속도로와 국도를 가로지릅니다. ‘인터체인지’라든지 ‘요금소’를 수없이 지납니다. 이제 ‘인터체인지’는 ‘나들목’이라는 낱말로도 고쳐서 쓰는 사람이 많고, 교통방송에서는 으레 나들목을 말합니다. ‘톨게이트(tollgate)’는 ‘요금소(料金所)’로 고쳐서 쓰기도 한다지만 이 낱말은 어쩐지 어설프구나 싶어요. 그냥 영어로 쓰든지 새로우면서 알맞춤한 한국말을 지을 노릇이리라 생각합니다. 차가 길을 달리면서 ‘돈’을 내야 한다면, “길에서 삯을 치르는” 셈입니다. 그래서, 고속도로 같은 곳에서는 ‘길삯’을 내는 셈이에요. 자동차는 길에서 길삯을 치르고, 마실꾼은 마실을 다니려고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면서 길삯을 치릅니다. 자동차가 길삯을 치르는 곳을 가리키는 요금소이니, 나들목이나 길목이나 건널목을 헤아린다면 ‘길삯목’ 같은 낱말을 떠올릴 만합니다. 4348.7.2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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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35] 셋이 함께



  너랑 나랑 있으니 ‘둘이 함께’입니다. 너랑 나에다가 그 사람이 있으니 ‘셋이 함께’입니다. 우리는 ‘넷이 함께’ 있기도 하고, ‘다섯이 함께’나 ‘여럿이 함께’ 있기도 해요. 셋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일컬어 ‘삼위일체’라고도 하는데, 세 사람이나 세 가지가 어울리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마주하는 그대로 “셋이 함께”라 할 만하고, ‘셋이함께’처럼 적을 수 있어요. 또는 “셋이 한몸”이라든지 “셋이 하나”처럼 말할 만합니다. 세 사람은 어떤 삶일까요? “셋이 한삶”을 이루거나 “셋이 온삶”을 이룰 수 있어요. 세 가지는 어떤 숨결일까요? “셋이 한노래”이거나 “셋이 한줄기”로 흐를 수 있습니다. 4348.7.27.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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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68 마루, ‘밀다·미루다’



  ‘갓머리’나 ‘멧마루’나 ‘산마루’ 같은 말이 있습니다. ‘물결마루’나 ‘마루터기’나 ‘고갯마루’나 ‘등마루’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루’는 맨 위쪽 자리를 가리킵니다. 한창 고비에 이른 흐름이나 결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집에서는 방과 방을 잇는 한복판이면서, 집과 마당을 잇는 자리가 ‘마루’입니다.


  가만히 보면, 고갯마루나 물결마루는 ‘가장 높은 곳’이면서, 이곳과 저곳을 잇는 구실을 합니다. 집에서 마루도 이곳과 저곳을 잇는 노릇을 합니다. 이곳과 저곳을 잇되 가장 높이 있는 자리가 마루인 셈입니다.


  마루에 서면 어디나 돌아볼 수 있습니다. 마루에 있기에 모든 일을 환하게 꿰뚫어볼 수 있습니다. 마루에 서지 않으면 내가 있는 자리를 헤아리지 못하고, 마루에 있지 않으면 내 할 일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내 일을 너한테 밉니다. 네 일을 나한테 밉니다. 서로 밀고 당깁니다. 반갑지 않으니 밀어 줍니다. 달갑지 않기에 자꾸 밀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기쁘거나 반갑거나 고마운 선물을 서로서로 밀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밀’지 않고 ‘미루’기도 합니다. 오늘 누릴 삶을 오늘 누리지 않고 다음날로 미루기도 합니다. 내가 할 몫을 스스로 하지 않고, 남한테 미루기도 합니다.


  마루에 서는 사람은 어떤 일이든 남한테 밀거나 미루지 않습니다. 마루에 있는 사람은 모든 일을 스스로 맞아들여 건사합니다. 마루에 서지 않으니 으레 이쪽으로 저쪽으로 자꾸 밀고 맙니다. 마루에 있지 않은 탓에 지레 발목을 잡아서 남한테 미루거나 다른 날로 미룹니다.


  내 몸을 지키려면 내가 손수 밥을 떠서 먹어야 합니다. ‘밥술 뜨기’를 남한테 미루면 어떻게 될까요. 내 밥을 내가 안 먹고 미루면, 내 몸은 어떻게 될까요. 나는 바람을 마셔야 목숨을 잇습니다. 그런데 내가 ‘바람 마시기(숨쉬기)’를 안 하고 미룬다면, 내 숨을 내가 안 마시고 너더러 마시라고 한다면, 이렇게 미루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미루는 삶은 ‘죽음’으로 갑니다. ‘미루기’는 곧 ‘죽음’입니다. 나한테 오는 것을 너한테 민다고 하면, 이때에는 죽음길로 가지는 않으나 죽음길과 가까이 다가섭니다. 왜 남한테 밀까요. 남한테 밀 까닭이 없고, 남을 밀어서 어느 쪽으로 보낼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받을 것은 기쁨이든 슬픔이든 내가 받으면 됩니다. 내가 누릴 것은 선물이든 가시밭길이든 스스럼없이 누리면 됩니다. 나는 모든 삶을 누리면서 온사랑을 나눕니다.


  마루에 서야 합니다.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마루를 보아야 합니다. 미루려는 생각을 지워야 합니다. 마루에 깃들어 아름다운 사랑으로 삶을 지어야 합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그만 내 삶을 스스로 놓치면서 죽음길로 가는 어리석은 짓은 그쳐야 합니다.


  아직 때가 아니라고 여겨 미룰 수 있겠지요. 그러면, 언제 때가 올까요. 잘 하든 잘 못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잘 하면 잘 하는 대로 하면 되고, 잘 못하면 잘 못하는 대로 하면 됩니다. 굳이 미루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겪거나 치르지 않는다면, 무엇을 잘 하거나 무엇을 잘 못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언제나 스스로 온몸과 온마음으로 마주하면서 겪거나 치를 때에 ‘내가 나를 제대로 바라보’아서 ‘내가 나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제대로 못 보고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나는 내 삶을 제대로 가꾸지 못합니다.


  마루에 서는 사람만이 사람다운 삶으로 사랑을 짓습니다. 마루에 깃들면서 삶을 지으려는 사람일 때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사랑을 나누면서 하루를 새롭게 엽니다. 4348.3.5.나무.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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