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41] 풀그늘



  무화과잎이 빚은 그늘에 풀개구리가 앉았습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기 앞서까지 이 개구리를 바라보면서 그냥 ‘청개구리’라 했으나, 시골에서 살고 보니, ‘청개구리’는 풀밭을 좋아하고 언제나 풀빛인 몸이더군요. ‘파란 빛깔’을 나타내는 한자 ‘靑’으로 가리킬 수 없습니다. 먼 옛날부터 한겨레 시골내기는 이 개구리를 보며 그냥 ‘풀개구리’라 했으리라 느낍니다. 푸른 잎이 드리우는 그늘을 놓고 ‘녹음(綠陰)’ 같은 한자말을 쓰는 분이 꽤 많지만, 나무가 드리우는 푸른 그늘이라면 ‘나무그늘’이고, 풀잎이 드리우는 푸른 그늘이라면 ‘풀그늘’입니다. 풀개구리는 조그마한 풀그늘이라도 시원하게 땡볕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한여름에 누리는 짙푸른 그늘은, 말 그대로 ‘푸른그늘’이나 ‘풀그늘’이나 ‘나무그늘’이나 ‘잎그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잎사귀가 빚는 그늘을 보면, 이 그늘도 여느 그늘이나 그림자처럼 ‘까만 빛깔’이라 할 만하지만, 싱그러운 풀내음과 풀바람이 흐르는 그늘이니 ‘푸른그늘·풀그늘’ 같은 이름을 쓰면 재미있으리라 느껴요. 4348.8.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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