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363) 별도의


 방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 방이 따로 마련되었습니다

→ 방을 따로 마련했습니다

 이 문제는 별도의 기구에서 다룰 예정

→ 이 일은 다른 곳에서 다루려 함

→ 이 일은 다른 자리에서 다룰 생각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별도의 적금을 들어 두었다

→ 입학금을 마련하려고 따로 적금을 들어 두었다

 별도의 잣대

→ 새로운 잣대 / 다른 잣대 / 또 다른 잣대

 별도로 생각해 볼 문제

→ 새롭게 생각해 볼 일 / 따로 생각해 볼 일 / 더 생각해 볼 일


  한자말 ‘별도(別途)’는 “1. 원래의 것에 덧붙여서 추가한 것 2. 딴 방면”을 뜻한다고 하는데, ‘추가(追加)’는 “나중에 더 보탬”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사전 말풀이는 겹말입니다. “더 붙이거나 넣을” 적에 ‘별도’를 쓰는 셈입니다. 이러한 뜻을 헤아리면 ‘별도’는 ‘더’나 ‘딴’이나 ‘다른’을 가리키는 셈입니다. ‘더 보태는’이나 ‘덧붙이는’을 가리킨다고도 할 만합니다.


  곰곰이 따지면, ‘별도’는 ‘다를 別 + 길 途’입니다. “다른 길”을 한자로 옮겼을 뿐입니다. 한국말로는 처음부터 ‘다른(다르다)’인 셈이고, 이 같은 얼거리를 찬찬히 읽는다면 ‘별도 + 의’처럼 쓸 일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다른 말이 있을 때까지

→ 더 말이 있을 때까지

→ 따로 얘기가 있을 때까지

《류춘도-벙어리새》(당대,2005) 66쪽


40%의 별도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

→ 40%는 다른 넋이다

→ 40%만큼 다른 숨결이 있다

→ 40%는 따로 움직이는 넋이다

→ 40%는 딴 마음이 있다

→ 40%는 또 다른 넋이 있다

《권윤주-to Cats》(바다출판사,2005) 41쪽


 별도의 책을 만들지

→ 책을 따로 만들지

 책을 새롭게 만들지

→ 책을 더 만들지

《레몽 드파르동/정진국 옮김-방랑》(포토넷,2015) 116쪽


서로 겹쳐 있는 것임에도 종종 별도의 것으로 느껴집니다

→ 서로 겹쳐서 있지만 가끔 다른 것으로 느낍니다

→ 서로 겹치지만 더러 다르다고 느낍니다

→ 서로 겹치는데도 때때로 다르다고 느낍니다

《쓰지 신이치·가와구치 요시카즈/임경택 옮김》(눌민,2015) 166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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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405) 족하다足 / 족히足


 한 달 용돈으로 족하다 → 한 달 쓸 돈으로 넉넉하다 / 한 달 쓸 돈으로 많다

 식사는 이것으로 족합니다 → 밥은 이쯤으로 넉넉합니다 / 밥은 이쯤이면 됩니다


  외마디 한자말 ‘족하다(足-)’는 “수량이나 정도 따위가 넉넉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은 ‘넉넉하다’입니다. 때에 따라서 ‘많다’나 ‘푸지다’나 ‘푸짐하다’나 ‘좋다’를 넣어 볼 수 있습니다.


 서너 권 분량은 족히 될 것입니다

→ 서너 권은 넉넉히 됩니다

→ 서너 권쯤 넉넉히 됩니다

→ 서너 권 부피는 넉넉히 됩니다

 열흘은 족히

→ 열흘은 넉넉히

→ 열흘은 거뜬히

→ 열흘은 훨씬


  ‘족하다’ 꼴 말고도 ‘족히’ 꼴로도 쓰는 분이 꽤 있습니다. 이때에는 ‘넉넉히’나 ‘너끈히’나 ‘좋이’를 넣을 만하고, 곳에 따라 ‘거의’나 ‘얼추’나 ‘훨씬’을 넣을 수 있어요. 4348.9.26.흙.ㅅㄴㄹ



처음이었으니 그 정도면 족해

→ 처음이었으니 그만큼이면 됐어

→ 처음이었으니 그만큼 했으면 됐잖아

→ 처음이었으니 그렇게 했으니 넉넉해

→ 처음이었으니 그쯤이면 좋아

→ 처음이었으니 그쯤이면 돼

《하이데마리 슈베르머/장혜경 옮김-소유와의 이별》(여성신문사,2002) 24쪽


족함을 모르고 필요 이상으로 다른 생명을 죽이고

→ 넉넉함을 모르고 쓸데없이 다른 목숨을 죽이고

→ 배부른 줄 모르고 부질없이 다른 목숨을 죽이고

《쓰지 신이치·가와구치 요시카즈/임경택 옮김》(눌민,2015) 123쪽


족히 15년 만에

→ 넉넉히 열다섯 해 만에

→ 넉넉잡아 열다섯 해 만에

→ 자그마치 열다섯 해 만에

→ 거의 열다섯 해 만에

〈김규항 블로그〉 2004.7.14


사십 명은 족히 되었을 것입니다

→ 마흔 사람은 넉넉히 되었습니다

→ 거의 마흔 사람이 되었습니다

→ 거의 마흔 사람이 되지 싶었습니다

→ 마흔 사람 되었습니다

→ 얼추 마흔 사람 되었습니다

《사티쉬 쿠마르/서계인 옮김-사티쉬 쿠마르》(한민사,1997) 16쪽


족히 큰 거실 넓이는 됐다

→ 넉넉히 큰 마루 넓이는 됐다

 아마도 큰 마루 넓이는 됐다

 거의 큰 마루 넓이는 됐다

→ 얼추 큰 마루 넓이는 됐다

《야마오 산세이/이반 옮김-여기에 사는 즐거움》(도솔,2002) 178쪽


여든은 족히 되어 보이는

→ 여든은 넉넉히 되어 보이는

→ 여든은 너끈히 되어 보이는

→ 여든은 좋이 되어 보이는

→ 여든은 훌쩍 넘어 보이는

→ 여든은 훨씬 넘어 보이는

→ 여든 안팎 되어 보이는

《시모무라 고진/김욱 옮김-지로 이야기 2》(양철북,2009) 23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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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747) 비인간적


 비인간적 행위 → 사람답지 못한 짓 / 말도 안 되는 짓 / 끔찍한 짓

 비인간적인 고난 →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 / 모진 가시밭

 비인간적인 제도 → 사람을 억누르는 제도 / 사람을 짓누르는 제도


  ‘비인간적(非人間的)’은 “사람답지 아니하거나 사람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누군가 “비인간적 행위를 한다”면 “사람답지 못한 짓을 한다”는 말이고, “모질거나 끔찍한 짓을 한다”는 말이며, “말도 안 되는 짓을 한다”거나 “터무니없는 짓을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답지 않은’ 모습이라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아무래도 모질거나 끔찍할 테고, 사납거나 나쁘거나 짓궂다고 할 만합니다. 때로는 무시무시하거나 무서운 모습일 수 있고, 못되거나 못난 모습이기도 합니다. 사람답지 않은 모습이기에 사람을 저버린다든지 사람을 억누르거나 괴롭히기도 할 테고요. 4348.9.25.쇠.ㅅㄴㄹ



비인간적 상황을 효과적으로 극복하도록 해 주는 활동이란

→ 사람 대접 못 받는 상황을 잘 이겨내도록 해 주는 일이란

 짐승만도 못한 상황을 훌륭히 이겨내도록 해 주는 일이란

→ 사람답게 살 수 없는 나날을 슬기롭게 이겨내도록 해 주는 일이란

→ 끔찍한 삶을 씩씩하게 이겨내도록 해 주는 일이란

→ 괴로운 삶을 꿋꿋하게 이겨내도록 해 주는 일이란

→ 고달픈 삶을 다부지게 이겨내도록 해 주는 일이란

→ 힘겨운 삶을 새로 힘내어 이겨내도록 해 주는 일이란

《레오나르도 보프/김수복 옮김-해방신학 입문》(한마당,1987) 17쪽


내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말해 주는

→ 내가 얼마나 나빴는지 말해 주는

→ 내가 얼마나 짓궂었는지 말해 주는

→ 내가 얼마나 모질었는지 말해 주는

→ 내가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말해 주는

→ 내가 얼마나 못난 짓을 했는지 말해 주는

→ 내가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말해 주는

《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내가 만난 아이들》(양철북,2004) 36쪽


그렇게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짓

→ 그렇게 못되고 끔찍한 짓

→ 그렇게 모질고 무시무시한 짓

→ 그렇게 미치고 소름돋는 짓

→ 그렇게 어처구니없고 모진 짓

→ 그렇게 터무니없고 사나운 짓

→ 그렇게 어이없고 무서운 짓

《벤슨 뎅,알폰시온 뎅,벤자민 아작/조유진 옮김-잃어버린 소년들》(현암사,2008) 163쪽


그 반대라면 과학은 전적으로 비인간적인 활동이 될 테니까

→ 그 반대라면 과학은 모두 사람을 저버리는 짓이 될 테니까

→ 그렇지 않으면 과학은 몽땅 무시무시한 짓이 될 테니까

→ 그렇지 않다면 과학은 언제나 끔찍한 짓이 될 테니까

《장마르크 레비르블롱/문박엘리 옮김-프랑스 아이의 과학 공부》(휴머니스트,2015) 65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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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77 왜



  어떻게 그리 되었는지 모르기에 궁금합니다. 어떻게 그처럼 돌아가는지 모르니 궁금합니다. 까닭을 몰라 알고 싶으며, 영문을 몰라 알려 합니다. 궁금함을 풀려는 마음이고, 까닭을 알아내려는 마음이며, 영문을 찾으려는 마음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한 마디 말을 터뜨립니다. “왜?”


  아이들은 늘 묻습니다. 아이들은 아주 짧게 묻습니다. “왜?” 아이들은 그야말로 궁금합니다. 옳거나 그른 것을 안 따지면서 그저 궁금합니다. 어른들이 어느 것이 옳다고 하면 왜 옳은지 궁금하고, 어른들이 어느 것이 그르다고 하면 왜 그른지 궁금합니다. 옳음과 그름을 구태여 왜 나누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옳거나 그르다고 따지기 앞서 즐겁거나 기쁜 삶을 생각하면 될 텐데 하고 궁금합니다.


  새롭게 알려는 마음이기에 “왜?” 하고 묻습니다. 아직 듣지도 보지도 겪지도 않았으니 “왜?” 하고 묻습니다. 스스럼없습니다. 거침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마음으로 묻습니다. 사회의식이나 고정관념이나 편견으로 묻지 않고, 티없이 열리고 가없이 넓으며 끝없이 깊은 마음으로 묻지요, 꼭 한 마디를, 바로 “왜?”라고 하면서.


  어른들이 “왜?”라는 말을 쓸 적에는 아이들과 사뭇 다릅니다. 아이들은 티없고 가없으며 끝없이 묻지만, 어른들은 으레 ‘두려움’과 ‘무서움’과 ‘걱정’과 ‘근심’을 부여잡고서 묻습니다. 어른들은 스스로 틀에 갇히고 굴레에 사로잡힌 채 묻습니다. 어른들은 ‘왜’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어른들은 ‘왜’ 알아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어른들은 ‘왜’ 따라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른들은 하기 싫고 알기 싫으며 따르기 싫습니다. 어른들은 마음을 조금도 안 열면서 묻는데, 마음을 안 연 채 읊는 ‘왜’는 궁금함이 아닙니다. 거스르고 싶은 마음입니다. 어른들은 손사래치면서 눈을 감고 싶기에 ‘왜’라는 말마디로 고개를 홱 돌립니다.


  아이들은 “왜?” 하고 물으면서 하나도 안 두렵습니다. 새로운 것을 바라보거나 듣거나 겪으니 즐겁게 묻습니다. 아이들은 “왜?” 하고 물으면서 새로운 마음이 되기에 기쁩니다. 앞으로 새로운 숨결로 새로운 이야기를 누릴 만하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똑같이 쓰는 ‘왜’입니다. 이곳에서든 저곳에서든 같은 말로 쓰는 ‘왜’인데, 막상 다른 마음으로 쓰고 마는 ‘왜’입니다. 이리하여, ‘여는 마음’으로 묻는 “왜?”는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되고, ‘갇힌 마음’으로 대꾸하는 “왜?”는 두려움으로 치닫는 제자리걸음이 됩니다.


  왜 그러할까요? 왜 우리는 새로움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두려움에 스스로 갇히려 할까요? 왜 우리는 스스로 사회의식을 붙잡은 채 종으로 얽매인 수렁에 빠지고 말까요? 왜 우리는 스스로 하느님인지 안 알아보려 할까요? 왜 우리는 스스로 웃음과 노래를 길어올려 스스로 사랑스러운 삶을 지으려는 몸짓을 잃을까요?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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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47] 과자굽기



  이 나라에 빵이나 과자 같은 먹을거리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됩니다. ‘빵’이나 ‘과자’라는 낱말을 쓴 지도 얼마 안 돼요. 빵이나 과자를 마련할 적에 쓰는 낱말도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그러나 빵이나 과자를 놓고 예전에 쓴 말을 헤아리면 ‘빵굽기·과자굽기’입니다.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빵굽기·과자굽기’라 했고, 일본을 거쳐서 전문 지식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제빵·제과’라 했어요. 전문으로 빵이나 과자를 굽는 사람은 예전에는 한자를 빌어서 ‘製’를 썼는데, ‘製’는 “지을 제”입니다. 그러니 이 한자를 쓴 ‘제빵·제과’는 ‘빵짓기·과자짓기’처럼 옮겨야 올발랐다고 할 만합니다. ‘밥짓기’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제빵·제과 전문가나 국어학자는 ‘밥짓기·밥하기’를 한국말사전에 올림말로 싣지 않았고, ‘빵짓기·과자짓기’ 같은 낱말도 따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빵이나 과자는 밥과 달리 굽습니다. 그래서 ‘빵굽기·과자굽기’ 같은 낱말을 새로 지어서 한국말사전에 실어야 맞지만 ‘제빵·제과’만 한국말사전에 싣고 말아요. 게다가 ‘밥짓기·밥하기’는 한국말사전에 없고 ‘요리(料理)’만 싣는데, 요리라는 한자말을 “음식을 만듦”으로 풀이하고 맙니다. 한국말사전부터 이러다 보니 “요리 만들기·밥 만들기·빵 만들기·과자 만들기” 같은 엉터리 말이 퍼져요. ‘밥짓기·빵짓기·과자짓기’하고 ‘밥하기·요리하기’하고 ‘빵굽기·과자굽기’를 써야 알맞습니다. 4348.9.2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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