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도덕적


 도덕적 관점 → 도덕 관점

 도덕적 관습 → 도덕 관습

 도덕적인 측면 → 도덕 측면 / 도덕으로 보기 / 바른 몸짓으로 보기

 도덕적 행위 → 도덕 행위 / 착한 일 / 착한 짓

 도덕적 가치가 있는지 → 도덕으로 값어치가 있는지 / 올바른지

 도덕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 바른 줄거리를 많이 담는다

 그들의 행위는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었다 → 그들이 한 일은 마땅하고 옳았다


  ‘도덕적(道德的)’은 “1. 도덕에 관한 2. 도덕의 규범에 맞는”을 뜻하고, ‘도덕(道德)’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추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의 총체”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한자말은 알맞게 잘 쓰면 됩니다. 다만, “도덕적 관점”이나 “도덕적 관습”처럼 쓸 일은 없습니다. ‘-적’을 붙이지 말고 “도덕 관점”이나 “도덕 관습”처럼 쓰면 되지요. 더 헤아린다면, 이야기 흐름을 살펴서 ‘착하다’나 ‘바르다’나 ‘올바르다’나 ‘아름답다’나 ‘깨끗하다’나 ‘마땅하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도덕’은 ‘바른길’이나 ‘참길’이라고 할 만해요. 4348.11.13.쇠.ㅅㄴㄹ



그의 도덕적 천성은 전혀 바뀌지 않았던 것입니다

→ 그는 도덕이나 천성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던 셈입니다

→ 그는 마음바탕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시몬 비젠탈/박중서 옮김-해바라기》(뜨인돌,2005) 197쪽


도덕적으로 병들어 가는 이 사회

→ 도덕이 병들어 가는 이 사회

→ 몸도 마음도 병들어 가는 이 사회

→ 착한 마음이 시들어 가는 이 사회

《지율-초록의 공명》(삼인,2005) 121쪽


도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다

→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

→ 올바른 사람이 되고 싶다

→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하종강-길에서 만난 사람들》(후마니타스,2007) 162쪽


고대를 비판하면서 현대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오만한 견해를 내놓기도

→ 고대를 비판하면서 현대가 도덕으로 한결 낫다는 건방진 생각을 내놓기도

→ 옛날을 비판하면서 오늘날이 더 아름답거나 착하다며 잘난 체하기도

《토머스 R.마틴/이종인 옮김-고대 그리스사》(책과함께,2015) 16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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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별반 別般


 별반 조치 → 다른 조치 / 새로운 조치

 별반 다르지 않다 → 거의 다르지 않다 / 썩 다르지 않다

 별반 더운 줄 몰랐다 → 그리 더운 줄 몰랐다

 별반 할 일이 없었다 → 그다지 할 일이 없었다

 별반 내세울 게 없지만 → 따로 내세울 게 없지만

 별반 신경을 쓰지 않다 → 딱히 마음을 쓰지 않다


  ‘별반(別般)’은 “보통과 다름. 따로 별다르게”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름’이나 ‘따로’ 같은 한국말을 쓰면 될 노릇입니다. 때에 따라서 ‘거의’나 ‘그리’나 ‘그다지’나 ‘썩’이나 ‘딱히’를 알맞게 넣을 수 있고, ‘새로운’이나 ‘대단한’ 같은 말을 넣을 수 있습니다. 4348.11.13.쇠.ㅅㄴㄹ



3개월째부터는 어미와 별반 차이가 없으리만큼 자라게 됩니다

→ 석 달째부터는 어미와 거의 다르지 않으리만큼 자랍니다

→ 석 달째부터는 어미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만큼 자랍니다

《미승우-동물의 세계》(교학사,1977) 20쪽


농민과 농업 노동자들의 삶은 시간이 지나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 농민과 농업 노동자들 삶은 시간이 지나도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 농민과 농업 노동자들은 시간이 지나도 삶이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토머스 R.마틴/이종인 옮김-고대 그리스사》(책과함께,2015) 423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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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89 ‘두레’와 ‘공동체’



  조선 무렵에 한때 몇몇 곳에서 ‘향약(鄕約)’이 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향약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향약’은 중국에서 중국사람이 하던 ‘여씨향약’을 그대로 따랐으니까요. 중국 것을 따랐기에 오래 못 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삶을 짓는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한마당을 이루려 한다면, 마땅히 ‘이 땅에서 삶을 짓는 사람들이 쓰는 말’로 ‘이 땅에서 삶을 짓는 사람들이 나눌 생각’을 담아야 제대로 갑니다.


  지식인이나 학자나 임금 같은 사람이 중국 제도나 문물을 받아들이든 말든, 이 땅에서 흙과 풀과 나무를 만지면서 숲과 들과 보금자리를 가꾸던 사람들은, 가장 수수하고 투박한 말로 조촐하게 한마당을 이룹니다. 바로 ‘두레’이고, ‘품앗이’이며 ‘울력’입니다. ‘두레·품앗이·울력’은 남이 시켜서 이루는 한마당이 아닙니다. 두레와 품앗이와 울력은 모두 여느 시골사람 스스로 이루는 한마당입니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살피지 않거나 찬찬히 느끼지 않던 지식인이나 학자나 임금이었으니, 애써 중국 것을 받아들여서 퍼뜨리려 하지요.


  더군다나, 해방 언저리에는 ‘공동체(共同體)’라는 이론이나 철학이나 사상을 다른 나라에서 끌어들이려 합니다. 영어를 앞세운 미국 문화와 사회와 역사를 배운 이들은 ‘커뮤니티(community)’를 말하기도 합니다.


  ‘공동체’에서 ‘共同’이란 무엇일까요? “함께 하나됨”입니다. “함께 하나되는 몸”을 ‘공동체’라 하는데, 시골에서는 늘 두레와 품앗이와 울력으로 함께 하나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 ‘공동체’라는 이름을 쓰는 이들은 처음부터 시골사람 말과 넋과 삶을 쳐다보지도 않고 들여다보지도 않으며 생각조차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굳이 ‘공동체 정신’을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두레 넋’이나 ‘두레 얼’이나 ‘두레 마음’을 말할 수 있으면 됩니다. 우리는 애써 ‘공동체 문화’를 일으켜야 하지 않습니다. ‘두레마을’을 이루고 ‘두레살림’을 가꾸며 ‘두레살이’를 돌보면 돼요. 그리고, ‘두레’라는 낱말도 꼭 앞세우지 않아도 됩니다. ‘마을살림’과 ‘마을살이’를 지으면 됩니다.


  저마다 사랑스러운 보금자리가 있기에, 여러 보금자리가 모여서 마을을 이룹니다. 마을을 이룬 여러 보금자리에서는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서로 아끼고 보살피려는 마음이니, 저절로 두레가 태어나고 품앗이가 깨어나며 울력이 자랍니다. 나라에서 구태여 ‘협동조합’을 북돋운다고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게다가, 마을마다 있던 두레나 품앗이나 울력은 바로 정치권력이 새마을운동을 앞세워 몽땅 짓밟거나 깨부셨습니다. 시골사람이 도시로 몰려들어 공장 일꾼이 되도록 몰아세우면서 마을살림도 마을살이도 와장창 깨져야 했습니다. 이렇게 갈기갈기 쪼개진 사람들 삶인데, ‘협동조합 지원’을 한다고 해서 마을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을살림은 나랏돈이 아닌 ‘보금자리 사랑’으로만 살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두고두고 사랑하면서 살다가 아이한테 물려주면서 두고두고 가꿀 만한 보금자리요 마을이라면, 사람들은 스스로 이 보금자리와 마을을 가꿉니다. 지원금이나 보조금이 있어야 지키는 마을이 아닙니다. ‘경제발전·재개발’ 따위를 함부로 들먹이지 않아야 하고, 정치권력이 없어야 하며, 지방자치조차 아닌 ‘마을사람 스스로 법과 제도가 하나도 없이 스스로 삶을 짓는 하루’가 될 때에, 비로소 참다운 두레이고 품앗이요 울력입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두레가 없는 까닭은 도시나 시골 모두 ‘보금자리’로 삼을 집이 없기 때문입니다. 툭하면 개발이고, 툭하면 고속도로이며, 툭하면 시멘트질인데다가, 툭하면 깨부수니, 보금자리도 마을도 남아날 수 없어요.


  사람이 많이 모여 산다고 해서 ‘마을(동네)’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보조금을 받아서 꾸리기에 두레(협동조합, 공동체)가 서지 않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꿈을 키울 수 있는 곳이라야 비로소 사람들 스스로 마음을 일으켜 새롭게 나아갑니다. 4348.3.13.쇠.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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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벽촌/벽지 僻村/僻地


 전깃불도 없는 벽촌 → 전깃불도 없는 외딴마을

 벽지 주민 → 외딴곳 주민 / 외딴마을 주민



  ‘벽촌(僻村)’은 “외따로 떨어져 있는 궁벽한 마을”이라 하고, ‘벽지(僻地)’는 “외따로 뚝 떨어져 있는 궁벽한 땅.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교통이 불편하고 문화의 혜택이 적은 곳을 이른다”고 합니다. 한국말사전에는 ‘벽읍(僻邑)’이라는 한자말도 나오고, “외지고 먼 곳에 있는 고을”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한국말로는 ‘외딴곳·외딴집·외딴섬·외딴길’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외딴곳’은 한자말 ‘벽지’하고 뜻이나 쓰임새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곳’하고 뜻이나 쓰임새가 아주 비슷한 ‘데’를 붙이는 ‘외딴데’는 한국말사전에 없어요. ‘외딴마을’이나 ‘외딴고을’도 한국말사전에 없군요. 이러면서 ‘외딴고을’을 가리키는 한자말 ‘벽읍’은 한국말사전에 있습니다. 앞으로는 ‘외딴-’을 앞가지로 삼아서 ‘외딴자리’나 ‘외딴방’이나 ‘외딴마을’쯤은 한국말사전에 실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4348.11.10.불.ㅅㄴㄹ



20세대 정도의 벽촌이었다

→ 스무 세대쯤 되는 외딴 마을이었다

→ 스무 세대 남짓인 외진 마을이었다

《이로카와 다이키치/박진우 옮김-메이지의 문화》(삼천리,2015) 58쪽


이런 산골 벽지까지

→ 이런 산골 외딴곳까지

→ 이런 멧골 외딴마을까지

《이로카와 다이키치/박진우 옮김-메이지의 문화》(삼천리,2015) 59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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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다음의


 다음의 장점이 있다 → 다음 장점이 있다 / 다음처럼 장점이 있다

 다음의 세대 → 다음 세대

 다음의 문제에서 → 다음 문제에서


  한국말 ‘다음’ 뒤에 ‘-의’를 붙이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만, 한국말에서는 ‘다음의’처럼 쓰지 않습니다. ‘-의’ 없이 ‘다음’만 씁니다. “다음 차례”처럼 쓸 뿐, “다음의 차례”처럼 쓰지 않아요. “다음 책”이나 “다음 같은 책”이나 “다음에 읽을 책”이나 “다음에 다룰 책”처럼 말해야 올바를 뿐, “다음의 책”처럼 말하면 올바르지 않습니다. 4348.11.10.불.ㅅㄴㄹ



다음의 옛말을 생각하는

→ 다음 옛말을 생각하는

→ 다음 같은 옛말을 생각하는

→ 다음에 드는 옛말을 생각하는

→ 다음에 나오는 옛말을 생각하는

《로맹 롤랑/장만영 옮김-톨스토이》(신구문화사,1974) 151쪽


다음의 세 가지

→ 다음 세 가지

→ 다음에 드는 세 가지

《호리 신이치로/김은산 옮김-키노쿠니 어린이 마을》(민들레,2001) 30쪽


다음의 글은 … 도올이 쓴 글이다

→ 다음 글은 … 도올이 썼다

→ 다음은 … 도올이 쓴 글이다

《김용옥-도올의 청계천 이야기》(통나무,2003) 109쪽


다음의 문헌을 탐독하여 이용하고 있다

→ 다음 문헌을 찬찬히 읽어서 쓴다

→ 다음 같은 책을 즐겨 읽고서 쓴다

《이로카와 다이키치/박진우 옮김-메이지의 문화》(삼천리,2015) 122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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