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일꾼



  집에서 살림을 하기에 ‘살림꾼’입니다. 살림꾼은 집일만 하는 사람을 일컫지 않습니다. 집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집일꾼’이에요. 살림을 하기에 살림꾼이라고 따로 일컫습니다. 흙을 만지면서 일을 한다면 ‘흙일꾼’입니다. 글을 쓰면서 일을 한다면 ‘글일꾼’이 되고, 책을 펴내거나 짓는 일을 한다면 ‘책일꾼’이 되어요. 노래를 부르는 일을 한다면 ‘노래일꾼’이라 할 수 있어요. 일꾼은 일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살림꾼은 살림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이고요. 그런데, ‘살림꾼’은 살림하는 사람 가운데에서도 살림을 알뜰살뜰 가꿀 줄 아는 사람한테 붙이는 이름이기도 해요. 집안일을 이렁저렁 맡아서 한다면 그냥 ‘집일꾼’이지만, 집살림을 요모조모 아기자기하거나 알차게 건사할 줄 알면 이때에는 ‘살림꾼’이나 ‘집살림꾼’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지요. ‘주부·가정주부’는 으레 여자 어른인 어머니만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살림은 여자 어른만 하지 않고 남자 어른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여자 어른하고 남자 어른이 사이좋게 함께 할 때에 한결 빛나요. 그러니 우리는 저마다 새로우면서 어여쁜 ‘살림꾼’으로 될 수 있다면 아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리라 생각해요. 4349.1.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빈 그릇


  학교마다 급식실이 있어요. 급식실은 밥을 먹는 곳이에요. 그런데 밥을 먹는 곳이라면 ‘밥 먹는 곳’처럼 이름을 붙일 만하지 않을까요? 이를 줄여서 ‘밥터’처럼 쓸 수 있을 테고요. ‘급식’이라는 한자말은 “식사를 공급함”을 뜻해요. ‘식사’라는 한자말은 “밥”을 뜻하고, ‘공급’이라는 한자말은 “주다”를 뜻해요. 그러니 말뜻으로 치자면 급식실은 “밥 주는 곳”인 셈이에요. 급식실을 두는 학교를 보면 ‘퇴식구(退食口)’ 같은 푯말을 붙이는 데가 있어요. “빈 그릇을 내놓는 구멍”을 뜻한다는 ‘퇴식구’인데, 밥을 다 먹고서 ‘빈 그릇’을 갖다 두는 곳이라면 ‘빈 그릇’이라 적은 푯말을 붙일 적에 알아보기가 한결 나아요. 집에서 밥을 먹을 적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빈 그릇은 개수대에 놓으렴” 하고 말하지요. “퇴식하게 개수대에 놓으렴”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학교에서 ‘밥 먹는 곳’을 두고 ‘밥터’ 같은 이름을 쓰지 않으니 ‘빈 그릇’ 같은 이름도 쓸 줄 모르는구나 싶어요. 집에서 빈 그릇을 두면서 설거지를 하는 자리는 ‘개수대’라 하고, ‘싱크대(sink臺)’라고 하는 말은 일본에서 건너왔습니다. 4349.1.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얀눈이



  한국에서는 ‘백설공주’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동화와 만화영화가 있어요. 이야기책에서도 만화영화에서도 으레 ‘백설공주’라는 이름만 쓰니 우리 입에는 ‘백설 + 공주’라는 말마디가 익숙해요. 그러면 백설공주는 왜 ‘백설’이라는 공주인지 생각해 본 일이 있을까요? ‘백설’은 ‘흰눈’이나 ‘하얀눈’을 가리키는 한자말이에요. 겨울에 내리는 눈이라면 모두 하얗겠지요. 굳이 ‘흰눈’이나 ‘하얀눈’처럼 쓰지 않아도 돼요. 그렇지만 눈이 내릴 적에 모두들 “흰 눈이 내리네”라든지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네”처럼 말해요. 한국말사전을 보면 한자말 ‘백설’은 나오고 ‘흰눈’이나 ‘하얀눈’은 없어요. 한국말이 없는 한국말사전이니 알쏭달쏭하지만, 아무튼 백설공주는 한국말로 하자면 ‘흰눈공주’나 ‘하얀눈공주’인 셈이지요. 그래서 살갗이 눈처럼 하얗다고 하는 아이를 가리키면서 ‘흰눈이’나 ‘하얀눈이’ 같은 이름을 써 볼 만해요. ‘하얀이’라고 해 볼 수도 있어요. 살갗이 까맣다면 ‘까만이’가 될 텐데, 숲에 있는 고운 흙은 까무잡잡한 빛이랍니다. 숲흙은 밭흙하고 달라 빛깔이 까매요. 그래서 ‘까만흙이’ 같은 이름도 써 볼 수 있고, ‘까만밤이’ 같은 이름도 쓸 수 있습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알량한 말 바로잡기

 무려 無慮


 물가가 무려 갑절이나 올랐다 → 물건값이 자그마치 갑절이나 올랐다

 무려 열두 살 위인 사람 → 자그마치 열두 살 위인 사람

 사상자가 무려 백만 명 → 죽거나 다친 사람이 자그마치 백만 명


  ‘무려(無慮)’는 “그 수가 예상보다 상당히 많음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합니다. 한자를 뜯으면 “헤아리다(慮) + 없다(無)”입니다. 이 얼거리를 살핀다면 “헤아리지 못하”도록 어떠하다는 뜻이니, 헤아리지 못하도록 많다고 하는 자리에서 쓴다고 할 만합니다. 이러한 뜻을 한자말로는 ‘무려’로 가리킨다면, 한국말로는 ‘자그마치’로 가리킵니다. 때에 따라서는 ‘게다가’나 ‘더구나·더군다나’를 쓸 만합니다. ‘거의’나 ‘얼추’가 어울리는 자리도 있습니다. 4349.1.5.불.ㅅㄴㄹ



무려 81세거든

→ 자그마치 81세거든

→ 게다가 여든한 살이거든

→ 더군다나 여든한 살이거든

《최석조-조선시대 초상화에 숨은 비밀 찾기》(책과함께어린이,2013) 48쪽


무려 2억 5천만 달러 이상을 소비했다고

→ 자그마치 2억 5천만 달러 넘게 썼다고

→ 더구나 2억 5천만 달러 넘게 썼다고

《에릭 번스/박중서 옮김-신들의 연기, 담배》(책세상,2015) 351쪽


무려 100년 전에

→ 자그마치 100년 전에

→ 거의 100년 전에

《시오미 나오키/노경아 옮김-반농반X의 삶》(더숲,2015) 151쪽


무려 3년 동안 칼럼을 썼다

→ 자그마치 세 해 동안 칼럼을 썼다

→ 얼추 세 해 동안 글을 썼다

《룽잉타이·안드레아/강영희 옮김-사랑하는 안드레아》(양철북,2015) 11쪽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한없다 限


 부모님의 한없는 사랑 → 가없는 어버이 사랑

 한없는 찬사를 보내다 → 끝없이 찬사를 보내다

 한없이 넓은 사막 → 끝없이 넓은 모래벌판

 눈물이 한없이 흐르다 → 눈물이 그지없이 흐르다

 그가 한없이 미워졌다 → 그가 그지없이 미워졌다


  ‘한(限)없다’는 “끝이 없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은 ‘끝없다’인 셈입니다. ‘끝없다’하고 비슷하게 쓰는 ‘가없다’가 있고, ‘그지없다’가 있습니다. “끝도 없다”나 “끝이 없다”나 “끝 간 데 없다”처럼 쓸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더없이’나 ‘무척’이나 ‘그저’ 같은 말을 쓸 수 있습니다. 어버이 사랑이 ‘가없다’고 할 적에는 ‘드넓다’를 넣어도 잘 어울립니다. 4349.1.5.불.ㅅㄴㄹ



끝없이 자라고 싶던 그 한없는 마음을

→ 끝없이 자라고 싶던 그 끝없는 마음을

→ 끝없이 자라고 싶던 그 가없는 마음을

→ 끝없이 자라고 싶던 그 그지없는 마음을

→ 끝없이 자라고 싶던 그 드넓은 마음을

《김종상-어머니 무명치마》(창작과비평사,1985) 45쪽


한없이 눈물만 고여서는

→ 끝없이 눈물만 고여서는

→ 그지없이 눈물만 고여서는

→ 끝도 없이 눈물만 고여서는

→ 그저 눈물만 고여서는

《김진-밀라노…11월 2》(허브,2004) 156쪽


한없이 바보 같은 느낌

→ 그지없이 바보 같은 느낌

→ 더없이 바보 같은 느낌

→ 끝 간 데 없이 바보 같은 느낌

→ 참으로 바보 같은 느낌

→ 너무도 바보 같은 느낌

《김옥-청소녀 백과사전》(낮은산,2006) 86쪽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