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그릇


  학교마다 급식실이 있어요. 급식실은 밥을 먹는 곳이에요. 그런데 밥을 먹는 곳이라면 ‘밥 먹는 곳’처럼 이름을 붙일 만하지 않을까요? 이를 줄여서 ‘밥터’처럼 쓸 수 있을 테고요. ‘급식’이라는 한자말은 “식사를 공급함”을 뜻해요. ‘식사’라는 한자말은 “밥”을 뜻하고, ‘공급’이라는 한자말은 “주다”를 뜻해요. 그러니 말뜻으로 치자면 급식실은 “밥 주는 곳”인 셈이에요. 급식실을 두는 학교를 보면 ‘퇴식구(退食口)’ 같은 푯말을 붙이는 데가 있어요. “빈 그릇을 내놓는 구멍”을 뜻한다는 ‘퇴식구’인데, 밥을 다 먹고서 ‘빈 그릇’을 갖다 두는 곳이라면 ‘빈 그릇’이라 적은 푯말을 붙일 적에 알아보기가 한결 나아요. 집에서 밥을 먹을 적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빈 그릇은 개수대에 놓으렴” 하고 말하지요. “퇴식하게 개수대에 놓으렴”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학교에서 ‘밥 먹는 곳’을 두고 ‘밥터’ 같은 이름을 쓰지 않으니 ‘빈 그릇’ 같은 이름도 쓸 줄 모르는구나 싶어요. 집에서 빈 그릇을 두면서 설거지를 하는 자리는 ‘개수대’라 하고, ‘싱크대(sink臺)’라고 하는 말은 일본에서 건너왔습니다. 4349.1.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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