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꽃

나는 말꽃이다 72 칸종이



  예전에는 글책이건 낱말책이건 찍는틀(인쇄기)에 맞추었기에 칸종이(원고지)에 글을 적었습니다. 칸에 맞추어 글씨를 하나씩 틀에 새겼어요. 이제는 따로 찍는틀을 안 쓰기에 칸종이를 쓸 일이 없습니다. 굳이 칸을 맞추지 않아요. 온통 하얀 판을 알맞게 가누어서 글을 여밉니다. 아직 글살림집(문방구)에서 칸종이를 살 수 있습니다만, 머잖아 사라지겠지요. 글씨를 손으로 옮겨쓰는 분이 늘기는 하더라도 칸종이 쓰임새는 확 줄었습니다. 아니, 칸종이에 맞추어 적은 글로 책을 내기란 외려 더 어렵습니다. 칸종이는 지난날 책찍기(인쇄)를 할 적에 빈틈이 없도록 하려고 마련했으나, 요즈음 책찍기 얼개에서는 애먼 종이를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고 여길 수 있어요. 그래도 아직 한 가지 쓰임새는 있더군요. 칸종이에 글을 적으려면 빨리 못 씁니다. 천천히 또박또박 칸에 넣어야 해요. 칸종이에 적은 글을 읽는 사람도 빨리 못 읽습니다. 글씨를 하나하나 따박따박 짚으며 읽어야 하더군요. 빠르게 치닫는 오늘날 물결을 조금은 늦추려는 칸종이일 만합니다. 아니, 빨리 써서 빨리 읽어치우기보다는, 알맞게 써서 알맞게 읽고 나누며 돌아보는 마음을 알려주는 칸종이라고 해야 어울릴 테지요. 한 칸을 채우듯 하루를 느긋이 알맞게 헤아립니다.


ㅅㄴㄹ


(곳 : 마을책집, 전주 잘익은언어들 2021.9.20.)

(곁 :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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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나는 말꽃이다 71 몸



  견디기 힘들다고 느낀 그때 그곳에서 어떻게 견디었는가 하고 이따금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둘레에서 나이 있는 사람들이 어린(여덟∼열세 살) 저한테 엉큼짓(성폭력)을 일삼던 때에 어떻게 견디었는지, 사내라면 끌려갈밖에 없는 싸움판(군대)에서 높이(계급)를 밀어붙이면서 똑같이 엉큼짓(성폭력)을 해대는 판에 어떻게 견디었는지 돌아보면, 마음속으로 “난 여기에 없어. 이 몸은 내가 아니야. 나는 빛나는 넋으로 저 너머(우주)에 있어.” 하고 생각했더군요. 제 몸을 갖고 노는 사람들(성폭력 가해자)은 탈(인형)을 붙잡을 뿐이라고 여겼어요. 싫어하는 일이나 꺼리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떤 일을 겪으며 살아낸 사람일까요. 비록 엉큼짓을 견디어야 했어도 이 짓을 모두 녹여서 앞으로 다시 안 일어나도록, 아니 사라지거나 멈추도록 조그맣게 씨앗을 심는 일을 그 어린 날과 젊은 날에 한 셈이려나 하고 생각합니다. 내키지 않거나 못마땅하더라도 억지로 해내야 하던 일이 아닌, 그들(가해자)이 하는 짓이 온누리에서 싹 사라지기를 꿈꾸면서 마음속으로 새빛을 지으려고 했던 작은 몸놀림이었나 하고도 생각해요. 몸에 매인다면 겉모습에 매입니다. 마음을 본다면 마음을 사랑합니다. 말글은 늘 마음에 생각을 심으며 태어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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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나는 말꽃이다 70 노래꽃



  빗물 머금은 꽃은 언제나 아름다워요. 새벽에 부추꽃을 톡 따서 살살 씹으면 부추내음에 이슬내음하고 비내음이 어우러지면서 알싸하게 스며듭니다. 어른이 쓰는 ‘시(詩)’는 ‘노래’요, 어린이랑 어른이 쓰는 ‘동시(童詩)’는 ‘노래꽃’이라고 느껴요. 여느 글이라면 삶을 그리듯 ‘삶글쓰기’이면 되고, 어른으로서는 삶을 사랑하듯 ‘삶노래쓰기’이면 되고, 어린이랑 어른은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삶노래꽃쓰기’이면 된다고 느껴요. 글쓰기가 어렵다면 억지가 끼어든 셈이지 싶습니다. 노래쓰기·노래꽃쓰기가 힘들다면 어거지를 부린 셈이지 싶습니다. 흘러나오는 숨결대로 쓰고, 바라보는 눈빛대로 쓰고, 마주하는 사랑대로 쓰고, 스스로 짓는 살림대로 쓰고, 오늘을 누리는 삶대로 쓰고, 서로 만나는 이웃이랑 동무 마음을 고스란히 쓰고, 해바람비를 푸르게 옮기고, 숲을 싱그러이 노래하면, 이 푸른별에서 즐겁게 나눌 노래가 태어나고 노래꽃이 피어납니다. 겉모습이나 옷차림을 꾸미는 삶이라면 글도 겉치레로 흘러요. 마음빛이며 사랑길을 살피는 오늘이라면 글도 속으로 알차면서 저절로 빛나요. ‘남이 아닌 나를 바라보며 그리는 꿈을 씨앗으로 심기에 문득 깨어나는 글’입니다. 글꽃, 노래꽃, 살림꽃, 사랑꽃으로 함께 가 봐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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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나는 말꽃이다 69 부정적



  언뜻 보면 어느 낱말은 좀 안 좋아(부정적) 보인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모든 낱말은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모든 낱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모습·몸짓·생각·마음·느낌·소리·하루를 고스란히 담아서 알려줄 뿐입니다. 어느 낱말이 좀 안 좋다고(부정적) 느낀다면, 우리가 스스로 어떤 낱말을 바탕으로 가리킬 삶을 안 좋게(부정적) 굴리거나 다루거나 억누르거나 짓밟거나 따돌리거나 괴롭힌다는 뜻입니다. 이를테면 ‘절름발이’는 “다리를 저는 사람”을 가리킬 뿐인데, 사람들은 ‘절름발이인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리거나 놀리거나 괴롭힐’ 뿐 아니라, 생각이 외곬인 사람을 빗댈 적에 써요. ‘외눈’은 그저 “눈이 하나(외)인 사람”을 가리킬 뿐이지만, 이 낱말도 사람들이 얄궂게 빗대는 자리에 씁니다. 모든 낱말은 우리 삶을 꾸밈없이(있는 그대로) 담습니다. 꾸밈없이(있는 그대로) 담는 말이기에 속내나 민낯이 들키면서 그만 ‘얄궂은 삶’이 아닌 ‘애먼 낱말’한테 화살을 돌리는 일이 잦습니다. 다만, 애먼 낱말한테 화살을 돌렸기에 뜻밖에 한결 새롭게 삶을 바라보며 새말을 곱게 짓기도 하지요. 말로 보자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닌, 늘 새롭게 스스로 생각을 키우며 나아가는 삶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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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나는 말꽃이다 68 사랑으로



  글을 술술 쓰는 길은 언제나 하나. 스스로 사랑이 되려는 생각을 마음에 심으면, 오늘까지 살아온 나날에 듣고 보고 겪고 한 숱한 이야기가 노래처럼 쏟아집니다. 우리는 이 가운데 하나쯤 살며시 골라서 신나게 웃고 춤추면서 옮기면 되지요. 스스로 사랑해 보셔요. 그러면 글쓰기가 매우 쉬워요. 스스로 사랑하시나요? 그러면 빨래하기·밥하기·걸레질·비질이 참말 쉬워요. 스스로 사랑하기로 해요. 그러면 우리가 붙잡는 모든 일은 “새롭게 일어나는 바람”처럼 푸르고 싱그럽더군요. 바로 이곳부터 스스로 사랑이 되어 눈을 새로 떠요. 그러면 우리가 읽는 모든 책에 깃든 “민낯과 허울과 껍데기와 속살과 속빛과 숨결”을 남김없이 알아채고 느낀답니다. 한결같이 스스로 사랑빛으로 살기로 해요. 그러면 온누리 어떠한 미움도 시샘도 응어리도 멍울도 포근하게 달래고 녹여서 나비 날갯짓마냥 눈부신 꽃춤으로 바꾸어 내는 글 한 줄이 문득 태어나요. 우리말꽃을 쓰는 길은 여느 글쓰기하고 같습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말을 바라보고 읽고 느끼고 생각해서 다루”면 됩니다. 틀(이론)에 맞추면 말빛이 죽습니다. 굴레(규칙)에 가두면 말씨앗이 마릅니다. 사랑이라는 살림길로 말을 돌보고 품을 적에 비로소 낱말책을 여미어 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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