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네이버 캠페인’으로 뭘 하던데

더없이 낯부끄럽다.

네이버 일꾼이 볼는지 모르겠으나

그네들 누리집에 글을 가볍게 남겼다.

‘훈민정음’하고 ‘한글’을 가를 줄 모른다면

‘한글’하고 ‘우리말’을 가를 줄도 모르겠지?

참말로 창피하다.


세종은 ‘우리말을 지키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세종 무렵에는 ‘한문만 썼는’데?

우리말을 지키려고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바로 일제강점기 ‘주시경과 이녁 제자들’이다.



+ + +



세종 임금은 '훈민정음'을 엮었습니다.

'한글'이란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주시경 님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지었습니다.


1443-1446년에는 '한글'이란 이름은 아예 없었고

조선 500년에 걸쳐 '훈민정음'을 '암클'이란 이름으로

깎아내렸습니다.


조선 500년은 오직 한문(중국글)만 나라글로 삼았고,

개화기에 '국한문혼용'을 하던 이들은 

한문을 안 쓴다고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틀림없이 우리글이지만, 정작 제대로 쓰이지 못한 채 묻힌 훈민정음을

주시경 님이 처음으로 우리말틀(국어문법)을 세우고 가다듬고서

그 뒤로는 주시경 님 제자들이 조선어학회 일꾼으로 애쓰면서

가갸날을 거쳐 한글날이란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렀고

해방 뒤에도 1990년대까지도 '한자를 안 쓰고 한글로만 글을 쓰는 사람'은

무식하다고 놀림을 받았습니다.


한글날이 한글날인 까닭은

훈민정음과 세종을 기리는 뜻도 틀림없이 있으나

<독립신문> 편집장이기도 했던 주시경 님이

'한글'이란 이름을 처음 지어서

이 나라 사람들이 '우리말을 우리글로 담는 틀'을 비로소 세우고 알리고 가르치고 나누어

오늘날에 이른 발자취를 잊고서

함부로 글을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종 임금은 '훈민정음 창제'이지 '한글 창제'가 아닙니다.

훈민정음하고 한글이 어떻게 다른지,

또 우리말은 무엇인지를 가를 줄 모른다면

더구나 제대로 셋을 가를 줄 모르는 채

한글날 네이버 '캠페인'을 하니

참으로 창피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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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날’이 아닌 ‘한글날’인 까닭

말꽃삶 1 한글·훈민정음·우리말



  어릴 적에는 그냥그냥 떠오르는 대로 말을 하고, 둘레 어른이나 언니한테서 들은 말을 외워 놓았다가 말을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틀리거나 엉뚱하거나 잘못된 말을 꽤 자주 읊으며 손가락질이나 놀림을 받았어요. “야, 그런 말이 어디 있니?”라든지 “내 말을 흉내내지 마!”라든지 “무슨 소리야? 다시 말해 봐.” 같은 말을 숱하게 들었습니다.


  어린이는 아직 ‘말(우리말)’하고 ‘글(한글)’을 또렷하게 가르지 못 합니다. 입으로 하니까 말이요, 손으로 적으니까 글이라고 알려준들, 적잖은 어린이가 ‘왼쪽·오른쪽’을 오래도록 헷갈려 하듯 ‘말(우리말)·글(한글)’도 헷갈려 하지요.


  어른 자리에 선 사람이라면, 아이가 ‘왼쪽·오른쪽’을 찬찬히 가릴 수 있을 때까지 상냥하고 부드러이 짚고 알려주고 보여줄 노릇입니다. ‘말·글’을 또렷하게 가르지 못하는 줄 상냥하고 부드러이 헤아리면서 느긋이 짚고 알려줄 줄 알아야 할 테고요.


  그런데 우리 배움터를 보면, 예나 이제나 배움터 구실보다는 배움수렁(입시지옥) 모습입니다. 배움수렁에서는 ‘왼쪽·오른쪽’이나 ‘말·글’이 헷갈리는, 또 ‘가르치다·가리키다’를 또렷이 갈라서 쓰지 못하는 어린이를 지켜보지 않아요. 셈겨룸(시험문제)을 한복판에 놓습니다.


  이러다 보니 어린이일 때뿐 아니라 푸름이일 때에도, 또 스무 살을 넘기고 마흔 살을 지나더라도 ‘우리말·한글’을 옳게 가르지 못 하는 어른이 꽤 많아요. 10월 9일 ‘한글날’은 한글을 기리는 날입니다. 우리말을 기리는 날이 아니에요. 일본이 총칼을 앞세워 쳐들어오면서 우리나라 숨통을 죄고 짓밟을 무렵, 그들(일본 제국주의)은 ‘우리말(조선말)’을 없애려 했습니다. 이즈음 우리나라에서는 주시경 님이 ‘훈민정음’이라는 우리 옛글을 ‘한글’이란 이름으로 바꾸면서, “우리말을 우리글로 담는 얼거리”를 비로소 처음으로 제대로 새롭게 세웁니다.


  진작부터 우리말을 버리고서 일본말을 쓰는 조선사람이 수두룩했지만, 우리가 쓰는 말(우리말)을 담는 글(우리글)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누구나 쉽게 익히고 삶으로 품으면, 우리나라는 일본 제국주의한테 안 잡아먹히리라 여긴 주시경 님입니다.


  주시경 님이 ‘우리말 얼거리(국어문법)’를 비로소 세우면서 가다듬고 추슬러서 내놓을 적에는, 조선사람뿐 아니라 일본사람도 주시경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고, 조선총독부조차 주시경 님이 들려주는 “우리말 이야기(강좌·강의)”를 귀담아들을 뿐, 함부로 막거나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조선총독부)은 오히려 조선사람 스스로 아직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손수 엮어낼 엄두를 못 낼 1920년에 《朝鮮語辭典》을 떡하니 내놓았습니다.


  깊이 본다면, 주시경 님은 ‘자주독립운동’이라는 큰뜻을 품고서 ‘훈민정음’을 ‘한글’로 바꾸어, 참말로 모든 한겨레가 말살림을 글살림으로 옮기면서 우리 넋과 얼을 지키는 데에 온마음하고 온힘을 바쳤습니다. 이런 엄청난 일을 꾀하고 벌일 적에 조선총독부가 왜 섣불리 주시경 님을 건드리지 못 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들 조선총독부는 조선을 사로잡고 억누르고 ‘한겨레넋(조선사람다운 넋)’을 없애려면, 저들 일본사람과 앞잡이(친일부역자)부터 우리말(조선말)을 제대로 알고서 배운 다음에, ‘글을 모르고 말만 아는 조선사람’을 휘어잡는 길을 펴야 했더군요.


  그러니까, 주시경 님은 일제강점기에 첫손으로 꼽을 만큼 검은이름(블랙리스트)에 들었으나, 오히려 ‘조선총독부로서도 배워야 할 사람’이었기에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고 하겠습니다. 조선총독부로서는 주시경 한 사람 목을 쳐서 없애기는 쉽지만, 이런 짓을 했다가는 ‘조선총독부로서도 조선말을 제대로 익혀서 앞잡이(친일부역자)를 부린다거나, 조선을 거머쥐는(식민 지배) 길’이 외려 어려울 만했습니다.


  주시경 님이 남긴 글을 살피면, 주시경 님 스스로도 이 대목을 잘 알았다고 느낍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한겨레옷만 입으려 했고, ‘가방’이 아닌 ‘보따리’만 챙겼어요. 주시경 님을 가리키는 덧이름 하나는 ‘주보따리’입니다. 둘레에서는 차림옷(양복)에 구두에 한껏 멋을 부릴 뿐 아니라, 한겨레스러운 모습을 버리지만, 주시경 님은 끝까지 ‘한겨레로서 한겨레다운 살림’을 지키고 돌보았습니다.


  저는 1982∼87년 사이에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다니면서 이런 이야기를 배움터에서 듣고 익혔어요. 그무렵에는 세종대왕보다도 주시경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고, 우리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크나큰 힘 가운데 하나는 ‘우리 말글’을 지킨 일이었고, 우리 말글은 바로 주시경 님이 ‘훈민정음’을 ‘한글’로 바꾼 때부터라고 가르쳐 주었어요.


  요즈막 어린배움터나 푸름배움터에서는 주시경 이야기를 거의 안 짚거나 안 가르친다고 느낍니다. 요새는 세종대왕 이야기만 넘칩니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한글’이 아닌 ‘훈민정음’을 엮었고, 훈민정음이란 ‘소리(소릿값·바른소리)’입니다. 훈민정음은 조선 무렵에 ‘조선팔도 글바치가 저마다 팔도 사투리로 중국말을 하기’ 때문에 ‘서울 및 임금터(궁궐)에서 이야기(의사소통)를 제대로 하려’면 ‘중국말을 읊는 소리(소릿값)부터 하나(통일)로 맞추어야 한다고 여기’면서 내놓았어요. ‘훈민정음 = 소리(발음기호)’입니다. 더구나 훈민정음은, 조선사람 누구나 한문을 똑같이 읽도록 맞춘 소릿값(발음기호)이지요.


  세종대왕이 편 훈민정음이란, 조선팔도 사람들이 마음껏 쓰던 ‘사투리’를 오직 ‘서울말’로만 맞추라고 하는 틀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팔도 글바치(양반·사대부·지식인)는 세종대왕한테 맞서는 글(상소)을 끝없이 올렸는데,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은 한문을 바르게 읽는 소릿값’이라는 뜻을 알렸으며, ‘훈민정음 = 자주독립’이 아닌 ‘훈민정음 = 중국 사대주의’라는 대목을 깨달은 글바치는 더는 세종대왕한테 안 맞섰습니다.


  조선 무렵에 훈민정음이라는 소릿값이 태어나고서 나온 여러 책을 살피면 훈민정음은 ‘우리글’이 아니라 ‘한문을 읽는 소릿값(발음기호)’일 뿐인 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다만, 세종대왕은 중국 사대주의를 더 깊이 다지고, 봉건주의를 한결 단단히 세우려는 틀로 훈민정음을 엮었지만, 사람들은 이 ‘소릿값(발음기호)’을 쉽게 다루면서 ‘우리 마음을 우리글로 옮기는 실마리’로 삼았습니다. 아주 드문 몇몇 글바치는 훈민정음으로 책을 남겼거든요.


  그리고 낡은틀(남성 가부장 권력)이 드센 조선 500해에 걸쳐 몹시 억눌리고 밟힌 순이(여성)는 한문으로도 글을 남겼으나, 이 훈민정음으로도 글을 남겨 주었습니다. ‘암클’이란 소리를 들은 훈민정음이되, 오히려 ‘순이가 살려주고 돌봐주었기에 살아남은 우리 글씨인 훈민정음’이라고 하겠습니다. 돌이(남성)로서는 정철·김만중·홍대용 님도 훈민정음으로 글을 남겨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한글’은 주시경 님이 일제강점기에 새롭게 바꾸어 낸, 아니 처음으로 빛을 보도록 촛불을 켠 우리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말을 하면 아주 틀립니다. 세종대왕은 중국 사대주의를 단단히 펴려는 뜻으로 ‘발음기호인 훈민정음을 엮었다’고 해야 올바릅니다. 주시경 님도 우리글을 새롭게 짓지는 않았어요. ‘발음기호였던 훈민정음’을 ‘누구나 말을 글로 옮기기 쉽도록 틀을 짜고 세우는 길을 처음으로 연’ 주시경 님입니다.


  한글날이란, 우리말을 우리글로 옮기는 첫발을 비로소 내딛은 새길을 기리는 하루입니다. 한글날은 ‘훈민정음을 기리는 날’이 아닙니다. 한글날은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을 우리 나름대로 ‘글로 옮기는 길’을 처음으로 세운 그날(일제강점기에 자주독립으로 깨어나려던 땀방울)을 기리는 잔치입니다.


  예전에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만 말했으나, 요새는 갈수록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글이나 책이 쏟아집니다. 속내를 숨기면서 ‘우리말이 우리글로 피어난 길’을 사람들이 못 알아채도록 가로막는 슬픈 수렁이라고 느낍니다.


  세종대왕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세종대왕은 그저 ‘새로 선 나라’인 조선을 더욱 단단히 봉건사회로 다스리려는 뜻이었기에, ‘조선팔도 사투리로 읊던 중국말’을 ‘서울말로 중국말을 읊는 틀’로 고쳐서 가다듬으려고, ‘훈민정음’이란 소릿값(발음기호)을 세웠을 뿐입니다.


  조선 오백 해는 중국을 섬긴 나날입니다. 중국 사대주의이지요. 일제강점기는 일본을 우러른 나날입니다. 슬픈 제국주의입니다. 사대주의하고 제국주의가 서슬퍼렇던 때에는 어떤 사람도 마음껏 생각하지 못했고, 말도 글도 홀가분히 펴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한복판이지만, 목숨을 바쳐 우리글을 갈고닦은 사람이 있어요. 일본 제국주의가 물러난 뒤에도 오래도록 군사독재가 이었는데, 이동안에도 우리말하고 우리글을 가다듬은 사람이 있습니다.


  한글은 주시경 님이 일구었습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엮었습니다. 우리말은 다 다른 우리나라 사람들이 저마다 제 삶자리·보금자리에서 스스로 살림을 짓고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면서 수수하게 지었습니다. ‘한글·훈민정음·우리말’ 세 가지를 이제부터 우리 스스로 찬찬히 바라보고 아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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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우리말 길잡이

3 노독 여독


 노독을 풀 겸 → 길앓이도 풀고

 노독을 해소하지 못하고 → 지쳤는데 풀지 못하고

 여독도 풀지 않은 채 → 길앓이도 풀지 않은 채

 추위와 여독으로 → 춥고 힘들어 / 춥고 고단해

 산후 여독으로 고생하다 → 아기 낳고서 애먹다

 과거에 고문을 당한 여독으로 → 예전에 두들겨맞은 탓에


노독(路毒) : 먼 길에 지치고 시달려서 생긴 피로나 병 ≒ 길독·노곤

여독(旅毒) : 여행으로 말미암아 생긴 피로나 병

여독(餘毒) : 1. 채 풀리지 않고 남아 있는 독기 ≒ 후독 2. 뒤에까지 남아 있는 해로운 요소 ≒ 여열·후독



  집을 떠나 바깥에서 오래 돌아다니거나 머물면 지치거나 힘들다고 합니다. 이럴 적에 한자말 ‘노독·여독’을 쓴다더군요. 그런데 낱말책을 보면 한자말 ‘여독’이 둘입니다. 두 가지를 헤아린다면, 우리 나름대로 새롭게 옮기거나 손질하거나 풀어낼 만합니다.


  먼저 ‘餘毒’을 살펴볼게요. 이 한자말은 “남다 + 찌끄레기”입니다. 수수하게 ‘남다·있다’로 풀어낼 만합니다. 찌끄레기가 남는다고 할 적에는 뒤(뒷날)까지 찌끄레기가 잇는다는 뜻이요, 이러할 때에 ‘뒤끝·뒤앓이·뒷멀미’로 나타내지요.


  또는 ‘앙금·앓다·피나다·생채기’라 나타낼 만해요. 단출히 ‘찌꺼기·찌끄레기·찌끼’로 고쳐써도 어울립니다. 남아서 뒷날에도 이어가는 찌끄레기라면‘티끌·고름·멍·멍울’ 같은 낱말로 나타내도 돼요. ‘탓·때문’으로 고쳐써도 됩니다.


길앓이(길앓다) ← 노곤, 노독(路毒), 여독(旅毒), 녹다운, 피로(疲勞), 피곤, 피곤증, 방전(放電), 케이오(K·O), 무력(無力), 무력화(無力化), 무기력, 기진맥진, 맥빠지다, 탈진,  번아웃(burnout), 전의상실, 녹록하지 않다, 과부하


  다른 한자말 ‘路毒·旅毒’은 처음부터 새말을 지어 보고 싶어요. ‘길앓이’입니다. ‘길앓이’란 낱말을 지어 놓고 보니, 이 낱말은 ‘노독·여독’뿐 아니라 다른 한자말이나 영어를 담아내는 자리에도 쓸 만하겠어요.


  새로 지은 낱말을 굳이 한 자리에만 써야 하지 않습니다. 여러 곳에 어울리면 여러 곳에 즐겁게 쓰면 돼요.


 지치다·시달리다·고단하다·고달프다·졸리다

 기운없다·힘없다·힘겹다·힘들다

 느른하다·나른하다·녹초


  그리고 수수하게 쓸 말씨를 하나하나 헤아립니다. 지치니까 ‘지치다’라 하면 되어요. 기운이 없으니 ‘기운없다’라 합니다. 녹초가 되니까 ‘녹초’라 하지요. 우리를 둘러싼 수수한 말씨를 하나씩 떠올리면서 실마리를 풉니다. 여태 수수하게 쓰던 낱말을 가만히 떠올리면 새롭게 쓰임새를 찾아낼 만합니다. ㅅㄴㄹ



한 달내 쌓인 노독은 한 번 깊이 온 잠을 붙들고

→ 한 달내 쌓인 찌끼는

→ 한 달내 지쳐서

→ 한 달내 길앓이는

《맑은 하늘을 보면》(정세훈, 창작과비평사, 1990) 32쪽


게다가 노독마저 겹쳐 초췌한 모습이었다

→ 게다가 느른해서 깡마른 모습이다

→ 게다가 고단해서 여위었다

《야사로 보는 삼국의 역사》(최범서, 가람기획, 2006) 94쪽


여독에 지쳐버린 여행자들의 안식처로 제격인

→ 지쳐버린 나그네가 쉴 만한

→ 느른한 길손이 머물기 좋은

《한국의 아름다운 마을》(이영관, 상상출판, 2011) 85쪽


조선에 문맹자 많은 것은 일제통치가 남긴 여독 중의 가장 큰 것의 하나니까

→ 조선은 일본이 총칼로 억눌렀기 때문에 글못보기가 아주 많으니까

→ 조선은 일본이 총칼로 짓밟은 멍울로 글모르는 이가 무척 많으니까

《월북작가에 대한 재인식》(채훈·이미림·이명희·이선옥·이은자, 깊은샘, 1995)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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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2021.11.22.

우리말 길잡이 2 코스모스



 코스모스가 만발한 정원에서 → 살살이꽃이 가득한 꽃밭에서

 코스모스 향기를 → 산들꽃내를

 어머니랑 코스모스를 심었어요 → 어머니랑 한들꽃을 심었어요.


코스모스(cosmos) : [식물]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코스모스(cosmos) : [철학] 질서와 조화를 지니고 있는 우주 또는 세계

コスモス(cosmos) : 1. 코스모스 2. 우주. 질서와 조화 있는 세계 3. 국화과의 1년초



  이름을 새로 짓는 길은 어렵지도 쉽지도 않습니다. 꽃이나 풀이나 나무한테 이름을 새로 붙이는 일은 쉽지도 어렵지도 않습니다. 누구나 할 만합니다.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가만히 마주하면서 사랑이라는 숨빛을 밝혀서 생각을 지으면 어느새 이름 하나가 사르르 풀려나오기 마련입니다.


  이웃나라 꽃이름을 우리말로 옮기기는 어려울까요? 어렵다고 생각하면 어려울 만합니다. 그러면 이웃나라에서 이 꽃이름 하나를 어떻게 누가 지었는가를 그려 보기로 해요. 이웃사람은 꽃이름을 어떻게 지었을까요?


  우리가 가리키는 꽃이름은 모두 먼먼 옛날부터 수수하게 살림을 짓고 흙을 만지며 아이를 낳아 돌보던 어버이가 지었어요. 때로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나는 아이들이 문득 지었지요. 오늘날에는 꾼(전문가)이 이름을 지어야 하는 줄 잘못 여깁니다. 때로는 꾼이 지어도 되어요. 그러나 모름지기 모든 이름은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며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짓습니다. 이러한 이름을 달리 가리키자면 ‘사투리’요 ‘마을말·고을말·고장말’입니다.


  나라지기나 나라일꾼이 지어 주는 이름을 외울 때도 있겠지요. 우리가 즐겁게 지은 이름을 나라에서 받아들여 널리 쓸 때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밝히는 눈빛이면 넉넉합니다.


 살살이꽃


  이 땅에서는 ‘코스모스’를 두고 일찍부터 ‘살살이꽃’이라 했습니다. 살살 춤추듯, 살몃살몃 춤사위를 펴듯, 잔바람에도 가벼이 흔들리면서 가느다란 줄기가 의젓한 꽃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바리데기 옛이야기에도 ‘살살이꽃’이 나옵니다. 옛이야기에서는 “살을 살리는 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나름대로 옛이야기하고 맞물려 ‘코스모스’에 새 숨결을 불어넣을 만해요. 바리데기 옛이야기에 나오는 ‘살살이꽃’은 오늘날 ‘코스모스’하고 다를 만하지만, 이름은 나란히 써도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을 더 돌아보면, ‘살살’ 춤추듯 잔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산들꽃·산들산들꽃’처럼 담아낼 만해요. 가볍고 싱그러우면서 시원한 바람을 가리키는 ‘산들’을 꽃이름으로 옮겨 봅니다. ‘산들’하고 맞물리는 ‘한들’을 넣어서 ‘한들꽃·한들한들꽃’처럼 새롭게 이름을 지어도 어울려요.


 산들꽃·한들꽃

 산들산들꽃·한들한들꽃


  이름짓기를 대단하게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마음에 사랑이라는 숨결을 얹으면 누구나 이름을 즐거이 짓기 마련이에요. 누구는 ‘흔들꽃’이나 ‘춤꽃’이란 이름을 붙일 만해요. 누구는 ‘설렘꽃’이나 ‘두근꽃’이란 이름을 붙이겠지요. 설레거나 두근거릴 적에 몸을 흔들기 마련이잖아요? 춤을 추는 듯한 꽃이니 ‘춤꽃’이라 해도 어울려요.


ㅅㄴㄹ


나는 바람으로 당신은 코스모스로 우리의 들판길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 나는 바람으로 그대는 살살이꽃으로 우리 들판길 사랑을 열었습니다

→ 나는 바람으로 너는 한들꽃으로 우리 들판길 사랑이 피었습니다

《맑은 하늘을 보면》(정세훈, 창작과비평사, 1990) 8쪽


이토록 일본에서 사랑받고 상륙하자마자 전국에 퍼진 코스모스가

→ 이토록 일본에서 사랑받고 들어오자마자 널리 퍼진 살살이꽃이

→ 이토록 일본에서 사랑받고 스며들자마자 두루 퍼진 산들꽃이

《플로라 플로라, 꽃 사이를 거닐다》(시부사와 다쓰히코/정수윤 옮김, 늦여름, 2019) 185쪽


.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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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2021.11.14.


우리말 길잡이

1 국민학교·초등학교



 국민학교 이상의 학력이라면 → 어린배움터를 나왔다면

 국민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 씨앗배움터를 마치고서

 당시의 국민학교를 회상하면 → 그무렵 첫배움터를 떠올리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셋 → 어린배움터에 다니는 아이가 셋

 인근 초등학교에 배정받았다 → 둘레 씨앗배움터로 간다

 초등학교 생활은 공부도 중요하지만 → 첫배움터에서는 배우기도 해야 하지만


국민학교(國民學校) : [교육] ‘초등학교’의 전 용어

초등학교(初等學校) : [교육] 아동들에게 기본적인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학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만 6세의 어린이를 입학시켜서 6년 동안 의무적으로 교육한다. 1995년부터 ‘국민학교’ 대신 쓰이게 되었다



  우리는 1996년에 이르러서야 어린이가 다니는 배움터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다만, 나라(정부)에서 앞장서지 않았어요. 나라는 그때까지 팔짱을 끼었습니다. 아무리 ‘국민학교’란 이름이 일본이 총칼로 우리나라를 짓밟던 무렵에 ‘국민학교령’으로 ‘황국신민학교’란 이름을 내세웠다 하더라도, 1941년부터 1995년까지 자그마치 쉰네 해나 쓰지 않았느냐고 콧방귀였습니다. 어린이가 다니는 배움터 이름을 고치자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은 자그마치 쉰네 해 동안 나라가 팔짱만 끼고서 아이들을 모르쇠하지 않았느냐고 외쳤어요.


  자, 이 두 가지를 생각해 볼까요? 나라는 ‘자그마치 쉰네 해를 쓴 이름을 바꿀 수 없다’요, 사람들은 ‘자그마치 쉰네 해나 팽개친 엉터리 이름을 이제부터 바꾸자’라 했어요.


  쉰 해 넘게 쓴 이름이기에 바꾸면 안 될까요? 쉰 해 넘게 얄궂은 찌끄레기를 퍼뜨렸기에 이제부터 바로잡고서 새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요? 익숙한 이름을 버리기란 어려울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더 생각해 봐요. 누구한테 익숙할까요? 어린이한테 익숙할까요, 어른한테 익숙할까요? 쉰네 해를 썼다는 ‘국민학교’는 바로 어른한테 익숙합니다. 배움터에 다닐 어린이나 배움터를 다니는 어린이는 이름에 어떠한 뜻이 서렸는가를 알면 “뭐야? 그런 이름이라구? 그럼 바꿔요!” 하고 목소리를 내지 않을는지요?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살며 모레를 살아가는 길이라면, 이 자취를 살펴야지 싶습니다.


  그러면 이름을 어떻게 고치느냐인데, 어린이가 다니는 곳이니 ‘어린이’란 이름을 넣을 적에 가장 어울려요. 그렇지요? ‘학교 = 배우는 곳·터’입니다. 이 얼거리를 살피면 ‘배움곳·배움터’처럼 이름을 고칠 만합니다. ‘학교’란 이름이 익숙한 어른한테 맞추지 말고, 이제 새롭게 배우는 길에 접어들 어린이 자리에서 헤아리며 맞출 노릇입니다. 배우는 곳이기에 ‘배움곳’이라 하면 되고, 배우는 터이기에 ‘배움터’라 하면 됩니다. 더 줄여서 ‘배곳·배터’라 하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린이가 배우는 곳 : 어린이 + 배우다 + 곳 = 어린이배움터·어린배움터


  말짓기는 가장 쉽게 생각하면 됩니다. 말짓기는 어린이 눈높이로 어깨동무하면서 바라보면 됩니다. 어린이가 배우는 곳이기에 ‘어린이배움터’란 이름을 얻어요. 이 이름을 줄여 ‘어린배움터’나 ‘어린배곳’처럼 쓸 만합니다.


 어린이터·어린터

 씨앗배움터·씨앗터

 첫배움터·첫터


  이밖에 이름은 더 생각할 만해요. ‘배움’이란 말을 굳이 안 넣어도 돼요. ‘어린이터’나 ‘어린터’라 지어도 되고, 어린이는 앞으로 푸르게 우거질 숲으로 무럭무럭 자랄 밑바탕이라는 뜻으로 ‘씨앗 + 배움터’라 할 만합니다. 처음 배운다는 뜻으로 ‘첫 + 배움터’라 해도 어울려요.


  이렇게 차근차근 이름을 짓노라면 ‘어린터·어린배곳’이나 ‘씨앗터·첫터’처럼 길이까지 퍽 짧게 새말을 얻습니다. 한자말을 쓰기에 더 짧지 않아요. 스스로 슬기롭게 생각을 기울이면 우리말로도 넉넉히 짧게 지을 뿐 아니라, 한자말보다 훨씬 짧으면서 쉽게 살필 만한 낱말을 엮기도 합니다.



여덟살박이 올해 국민학교 이학년 사내아이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 여덟살박이 올해 어린이터 두걸음 사내아이 이제 무얼 할까

→ 여덟살박이 올해 첫배움터 두발짝 사내아이 이제 무얼 할까

《맑은 하늘을 보면》(정세훈, 창작과비평사, 1990) 16쪽


초등학교는 등수를 매기지 않기 때문에

→ 어린배움터는 줄을 매기지 않기 때문에

→ 씨앗배움터는 줄을 세우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 더불어 살려면 어떻게 해요?》(정주진, 철수와영희, 2020) 70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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