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 : ‘안구정화’나 ‘안구습기’는?



[물어봅니다] 

  이런 말을 물어봐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요새 ‘안구정화’나 ‘안습’ 같은 말을 다들 꽤 쓰잖아요? 저도 그냥 썼는데, 문득 이런 말도 더 좋은 말로 바꿀 수 있는지 궁금해요.


[이야기합니다] 

  어느 말을 쓰든지 우리 마음을 잘 나타내도록 찬찬히 골라서 쓰면 된다고 생각해요. ‘더 좋은’ 말을 찾기보다는 우리 마음을 잘 나타내면서, 이웃이나 동무하고 생각을 즐겁고 넓고 깊으면서 포근하고 상냥히 나눌 만한 말을 헤아리면 어떠할까 싶어요.


  저는 ‘안구정화’나 ‘안습(안구에 습기가 차다)’ 같은 말을 처음 들을 적에 “무슨 이런 말이 다 있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뜻이나 느낌을 바로 알았어요. 저는 이런 말씨는 안 쓰니, 이런 말씨를 둘레에서 쓰더라도 따라하지 않아요. 이른바 휩쓸리거나 휘말리지 않습니다. 둘레에서는 이런 말씨가 이웃님이나 동무 마음에 들 수 있겠지만, 저로서는 다른 말씨로 제 마음이나 느낌이나 생각을 나타내요.


 눈씻이·눈을 씻다 ← 안구정화


  먼저 ‘안구정화’를 살필게요. 이 말씨는 ‘안구 + 정화’일 테고, “눈을 + 깨끗이 한다”를 가리키는구나 싶어요. 말 그대로 “눈을 씻다”라 하면 되고, 단출히 ‘눈씻이’란 말을 새로 지어서 쓸 만해요.


  가만히 생각하면 “눈을 씻어 주네” 같은 말씨를 꽤 많은 분이 씁니다. 이 말씨 못지않게 오래오래 쓰던 말씨가 있으니 ‘호강’이에요. “호강을 시켜 주다” 같은 꼴로 으레 쓰는데요, 이때에는 ‘효도’나 ‘호위호식’ 같은 한자말 쓰임새를 담아내기도 하지요.


  눈호강·눈을 틔우다·눈이 트이다·눈이 맑아지다 ← 안구정화


  매우 보기 좋은 모습을 볼 적에 ‘눈호강’을 했다고들 합니다. 다만 ‘눈호강’은 아직 사전에 안 실렸더군요. 참으로 오랜 옛날부터 쓰던 말씨인데 말이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눈호강’을 바탕으로 새로운 말을 하나하나 헤아릴 수 있어요. 이를테면 맛난 밥을 먹기에 ‘입호강’을 하고, 아름다운 노래나 목소리를 듣기에 ‘귀호강’을 합니다. 즐거운 길을 걸으면 ‘발호강’을 하고, 신나는 일이나 놀이라면 ‘손호강’을 할 테지요.


 슬프다·구슬프다·눈물겹다·눈물나다·눈물을 흘리다 ← 안습·안구에 습기가 차다


  다음으로 ‘안습’을 생각할게요. 눈이 물로 젖는다면 어떤 모습이나 일일까요? 바로 ‘눈물’이겠지요. ‘눈물겹다’나 ‘눈물나다’라 하면 됩니다. “눈물을 흘리다”나 “눈물이 흐르다”라 해도 되고요. 우리 눈에는 언제 눈물이 날까요? 우리는 언제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를까요?


  바로 ‘슬플’ 때입니다. 그러니 ‘슬프다·슬픔’이라 하면 되고, 비슷하면서 다른 ‘구슬프다·구슬픔’이라 할 수 있어요. 다만 ‘슬프다’나 ‘구슬프다’라는 낱말로만 이야기하기에는 아쉽구나 싶으면,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다”나 “눈에서 비가 내린다”라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눈물꽃’ 같은 말을 쓸 만해요. ‘눈물바람’이나 ‘눈물구름’이라 해도 어울려요. “눈물이 소나기처럼 흐르다”라든지 ‘함박눈물’ 같은 말도 쓸 수 있겠지요.


  자, 우리는 또 어떤 말을 새로 엮어서 쓸 만할까요? 우리는 눈물이 나거나 흐르는 모습을 어떤 이야기로 꾸며 볼 만할까요? 슬픈 모습을 얼마나 새로운 마음으로 조곤조곤 짜거나 꾸려서 나타낼 만할까요? 같이 생각해 보면 좋겠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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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 그녀



[물어봅니다]

  ‘그녀’는 일본 말씨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왜 이런 말씨가 안 사라질까요? 좀 구체적인 보기를 들면서 ‘그녀’를 안 쓸 수 있는 길을 더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야기합니다]

  그래요, 물으신 말씀처럼 좀 낱낱이 짚어야 알아볼 만하지 싶어요. 요새는 어린이책에까지 ‘그녀’를 쓰는 분이 많은데요, 여러 가지 책에서 뽑은 보기를 죽 들면서, 어떻게 풀어내거나 담아내거나 녹여낼 만한가를 밝히겠습니다.


하지만 평화에 대한 그녀의 간절한 외침은 이뤄지지 못했어요

→ 그러나 평화를 그토록 바란 그 외침은 이뤄지지 못했어요

→ 그런데 평화를 애타게 바란 그분 외침은 이뤄지지 못했어요


  수수하게 “그 외침”이나 “그분 외침”처럼 쓸 수 있어요. 또는 그분 이름을 들면서 다듬어도 좋아요. 이 대목에서는 더 생각해 보면 좋겠는데요, 남자 어른한테는 으레 ‘그분’이란 말을 쓰는데 여자 어른한테는 뜻밖에 ‘그분’이란 말을 잘 안 쓰고 ‘그녀’라 하는 분이 많더군요. 일본 말씨를 가다듬는 길 못지않게 남녀평등이란 대목도 살피면 좋겠어요.


그녀가 입고 있던 하얀 가운

→ 간호사가 입던 하얀 옷

→ 그 사람이 입은 하얀 옷

→ 그분이 입은 하얀 옷

→ 그님이 입은 하얀 옷


  여기에서는 ‘간호사’가 어울려요. 또는 “그 사람”이라 하면 되고, 이름을 밝혀도 되지요. 그리고 ‘그분’을 쓸 수 있는데, ‘그님’이라 해도 어울려요.


그녀들을 다스리는 일에

→ 암탉을 다스리는 일에

그들에게 날 도와 달라고

→ 암탉한테 날 도와 달라고


  암탉을 가리키는 자리에서 ‘그녀’를 쓴 분이 있더군요. 암탉은 그냥 ‘암탉’이라 하면 되지요.


그곳에서 그녀를 보고

→ 그곳에서 시앵을 보고

→ 그곳에서 아기 엄마를 보고


  여기에서는 “아기 엄마”라 하면 된답니다. 아기 엄마이니 “아기 엄마”라 하면 되어요.


그녀의 이마에

→ 할머니 이마에

→ 그분 이마에


  할머니는 할머니랍니다. ‘할머니’라 하면 되어요. 또는 ‘그분’이라 하면 되지요.


세상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그녀

→ 온누리 아픔을 어루만지는 동생

→ 온누리 아픔을 어루만지는 아이


  동생을, 또는 아이를 가리킬 자리에 ‘동생’이나 ‘아이’라 하지 않고 ‘그녀’라 한 대목이에요. 자, 우리 곁에 있는 그대로 ‘동생’이나 ‘아이’라 하면 될 테지요?


  한국말에서는 ‘그’를 수수하게 쓰면 됩니다. 다음으로 ‘그이·그분·그님’이나 “그 사람”을 알맞게 살펴서 쓰면 되어요. 또는 이름을 밝히면 되고, 암탉인지 암소인지 암고양이인가를 헤아려서 쓰면 됩니다.


  ‘그녀’는 ‘피녀(彼女)’라는 일본 말씨입니다. ‘피녀’란 일본 말씨는 일본이 서양 제국주의 군홧발에 깜짝 놀란 뒤에 서양 제국주의를 뒤쫓으려 하면서 서양 말씨 흉내를 내다가 지은 말씨예요. 일본에도 예전에는 ‘she’를 가리키는 말씨는 딱히 없었지만, 서양 흉내를 낸 말씨랍니다. 우리는 남 흉내를 낼 까닭이 없어요. 이웃한테서 배우며 우리 나름대로 새 말씨를 가꾸면 좋아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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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 ‘로하스’를 우리말로



[물어봅니다]

  저는 친환경이나 생태적인 활동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로하스 모임도 하는데요, ‘로하스’라는 영어를 우리말로 풀어낼 수 있을까요?


[이야기합니다]

  어른도 우리 삶터를 아름답게 가꾸어 즐겁게 살아가는 길을 가면 좋아요. 어린이하고 푸름이도 스스로 푸른들이며 파란하늘 같은 마음으로 우리 터전을 한결 아름답고 사랑스레 가꾸면서 활짝 웃는 길을 가면 좋고요. 이러한 길에 마음이 있다고 하니 반갑습니다.


  저는 몇 해 앞서 ‘로하스(LOHAS)’란 말을 처음 들었어요. 이 낱말은‘로하스’는 2000년에 태어난 영어이고, “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를 줄인 이름이라 합니다.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하는 다짐을 찬찬히 풀어서 적은 뒤, 이 다짐을 손쉽게 말할 만하도록 ‘L.O.H.A.S.’, 이렇게 앞머리를 따서 이름을 엮었구나 싶어요.


  저한테 물어보셨듯이, 이 ‘로하스’는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영어를 알맞게 줄여서 엮은 이름입니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스스럼없이 쓸 테고, 뜻도 쉽게 와닿을 만해요. 그러나 한국에서라면 한국말로 먼저 다짐을 찬찬히 적어 보고서, 이를 알맞게 줄여서 새롭게 이름을 엮으면 되리라 느껴요. 이를테면 다음처럼 생각해 볼 만해요. “튼튼하게 오래오래 나아가는 삶”처럼 다짐을 한다면 ‘튼오나삶’이 되어요. “한결같이 즐겁게 가꾸는 삶”처럼 다짐을 한다면 ‘한즐가삶’이 되고요.


  줄여서 말할 적에 한결 듣기에 좋겠구나 싶도록 낱말을 엮어 보면 좋겠어요. 그러면 우리는 저마다 다르면서 저마다 새롭고 재미난 이름을 줄줄이 얻을 수 있습니다.


  또는 단출하게 새이름을 지을 수 있어요. 저는 ‘로하스’란 이름을 놓고서 ‘참살림·참짓기’나 ‘푸른길·푸른삶·푸른살림·푸른짓기’ 같은 이름을 지어 보겠습니다. 낱말에 뜻이 드러나는 그대로, 참답게 살림을 가꾼다면 ‘참살림’이라 하면 되어요. 푸르게 오래도록 삶을 짓는 길이라면 ‘푸른길’이라 하면 되지요. 참다이 짓거나 푸르게 짓는다는 다짐으로 ‘참짓기·푸른짓기’라 할 수 있어요.


  푸른 벗님이 몸을 담은 모임에서는 그 모임에서 쓸 이름 하나를 즐겁게 지으면 됩니다. 다른 분들은 다른 모임에서 다른 이름을 즐겁게 지으면 되어요. 로하스 모임을 한다고 해서, 모든 로하스 모임에서 똑같은 이름을 쓸 까닭은 없어요. 이곳에서는 “푸른길 모임”이라 하고, 저곳에서는 “푸른꽃 모임”이라 하고, 이쪽에서는 “참살길 모임”이라 하고, 저쪽에서는 “푸른삶 모임”이라 할 수 있어요.


  푸르며 아름답고 즐거운 살림길을 바라는 모임이라면, 모임에 붙이는 이름도 푸르도록 수수한, 아름답도록 수수한, 즐겁도록 수수한, 이러면서 말 한 마디도 푸르고 곱게 피어나도록 생각을 여밀 만합니다.


  꼭 어느 한 가지 이름만 써야 하지 않기에 여러모로 이름짓기를 이야기해 봅니다. 어느 모임이든, 여러 이름을 즐겁게 두루 쓸 수 있어요. 길게 붙인 이름 하나에, 앞머리를 딴 이름 둘에, 단출히 간추린 이름 셋에, 또 저마다 귀엽거나 상냥하게 가리키는 이름 넷에, 마음껏 이름짓기를 펼쳐 보셔요.


  이름이란, 우리가 사랑으로 부르고 싶은 말입니다. 이름이란, 우리가 아름답게 꿈꾸고 싶은 말입니다. 이름이란, 나를 비롯한 이웃이 새롭게 바라보고 느껴서 즐겁게 어우러지는 길을 찾고 싶은 말입니다. 이름이란, 작은 말 몇 마디를 씨앗으로 삼아서 온누리에 푸르게 피어나는 꽃이 흐드러지기를 바라는 사랑입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한국말이라고 하는 씨앗 한 톨을 마음에, 혀에, 귀에, 눈에, 글씨로나 소리로나 상냥히 가다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튼튼하게 오래오래, 즐겁게 한결같이, 알뜰살뜰 아름답게, 오순도순 두고두고, 사랑으로 살림짓기, 살림짓는 사랑손길, 노래하는 살림길, 웃음짓는 살림꽃길, 푸른꽃길, 푸른꽃살림, 푸른꽃모임, 푸른꽃노래, 푸른꽃밭, 푸른꽃마을, 푸른꽃누리, 푸른꽃나라, 푸른꽃바다, 푸른꽃바람, 푸른꽃나무, 푸른꽃구름, 푸른꽃하늘 ……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름은 줄줄이 태어날 만합니다. 어떤 이름을 살펴서 쓰든, 푸르게 반짝이는 별빛을 가슴에 담아서 환하게 노래하시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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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 촉각, 안테나, 더듬이



[물어봅니다]

  선생님은 ‘안테나’란 말을 안 쓰시고 ‘더듬이’라고 쓰시던데, 안테나하고 더듬이는 좀 다르지 않을까요? 안테나는 그냥 ‘안테나’라고 쓰는 쪽이 더 나을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궁금한 생각이 들 적에는 사전을 먼저 펴 보셔요. 저도 사전에 나온 뜻풀이부터 옮길게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입니다.


더듬이 : [동물] 절지동물의 머리 부분에 있는 감각 기관. 후각, 촉각 따위를 맡아보고 먹이를 찾고 적을 막는 역할을 한다 ≒ 안테나·촉각

촉각(觸角) : 1. [동물] 절지동물의 머리 부분에 있는 감각 기관. 후각, 촉각 따위를 맡아보고 먹이를 찾고 적을 막는 역할을 한다 = 더듬이 2. [생명] 주위에서 일어나는 각종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안테나(antenna) : 1. [동물] 절지동물의 머리 부분에 있는 감각 기관. 후각, 촉각 따위를 맡아보고 먹이를 찾고 적을 막는 역할을 한다 = 더듬이 2. [물리] 공중에 세워서 다른 곳에 전파를 내보내거나 다른 곳의 전파를 받아들이는, 도선(導線)으로 된 장치. 무선 전신, 무선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따위에 쓴다 ≒ 공중선


  ‘더듬이·촉각·안테나’ 세 낱말을 찾아봤어요. 자, ‘동물’이란 앞머리를 붙인 뜻풀이는 모두 같아요. 다시 말해 한국에서는 먼먼 옛날부터 ‘더듬이’라 했고, 한자를 쓰는 이웃나라에서는 한자말 ‘촉각’이라 했고, 영어를 쓰는 이웃나라에서는 영어 ‘안테나’를 썼다는 뜻이에요. 나라마다 쓰는 말이 다르니, 똑같은 무엇을 바라보며 나타내는 말씨도 이처럼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를 눈여겨보면 좋겠어요. 한국말 ‘더듬이’는 한 가지로만 뜻풀이를 하고 그칩니다. 한자말 ‘촉각’은 “감지 능력”을 나타내는 자리로 쓰임새를 넓히고, 영어 ‘안테나’는 “전파 송수신 장치”를 나타내는 자리로 쓰임새를 넓히네요.


  생각해 봐요. “무엇을 느끼는 힘”을 가리킬 자리에 한국말 ‘더듬이’를 얼마든지 쓸 수 있어요. “전파를 보내거나 받는 틀”을 가리킬 자리에 한국말 ‘더듬이’도 즐겁게 쓸 만해요. 한자를 쓰는 이웃나라는 그 나라 수수한 말에 새 쓰임새를 보태었고, 영어를 쓰는 이웃나라도 그 나라 수수한 말에 새롭게 쓰임새를 덧붙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왜 오랜 한국말을 오랜 쓰임새 하나로 그치게 하고, 새로운 쓰임새를 보태거나 덧붙이지 않을까요? 한국사람은 왜 한국말을 새롭게 살려서 쓰는 길을 생각하지 않을까요? 영어 ‘안테나’는 처음부터 “전파 송수신 장치”를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는 대목을 읽으면 좋겠어요. 수수하게 쓰던 영어에 새롭게 쓸 길을 밝힌 마음을 잘 읽으면 좋겠습니다.


  생물학이나 물리학 같은 자리에서 쓰는 이름이라면 어린이나 푸름이가 아닌 어른이 짓거나 붙입니다. 그렇지요? 푸른 벗님도 생각해 보셔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푸른 벗님이 “감지 능력”이나 “전파 송수신 장치”를 가리킬 새로운 이름을 오래된 수수한 말에서 찾으려 한다면 한국말에서 찾겠지요. 그러나 학문을 하는 어른들은 그만 외국말로 학문을 하던 버릇에서 못 벗어나면서, 어른한테 익숙한 외국말을 그냥 쓰고 말아요. 누구보다 어른이 앞장서서 한국말로 새말을 짓거나 새로운 쓰임새를 넓혀 줄 노릇이지만, 막상 한국에서는 어른이 수수한 한국말을 싱그러이 가꾸는 일을 잘 해내지 않았어요.


  익숙한 말씨를 그냥 쓰는 모습이란, 길든 버릇을 그대로 잇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더 좋은 말 쓰기’가 아닌 ‘마치 쇠사슬처럼 길든 버릇을 풀어내어 홀가분하면서 새롭게 생각을 살리기’를 할 줄 아는 마음이 되기를 바라요.


  비슷한 얼거리로 ‘길잡이·안내인·가이드’가 있어요. 한국말하고 한자말하고 영어입니다. 셋은 모두 같은 사람을 나타내지만, 정작 한국말로 일자리를 나타내지 않고 으레 한자말이나 영어를 앞장세우곤 해요. ‘채식’을 하거나 ‘비건’이라고 밝히는 사람이 늘지만, 정작 ‘풀사랑’이나 ‘풀밥먹기’처럼 한국말로 수수하게 살림길을 밝히는 사람은 잘 안 보여요.


  삶을 새롭게 가꾸는 길에 생각부터 새롭게 추스르기를 바라요. 우리 곁에 있는 수수한 말이 새롭게 빛나도록 슬기롭게 마음을 기울일 줄 안다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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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 좋은 말이 따로 있을까



[물어봅니다]

  선생님 ‘우리말 바로쓰기’를 말씀하시잖아요, 그렇다면 ‘이런 말을 쓰면 나쁘’니까, 이 나쁜 말을 쓰지 말고 좋은 우리말을 찾아서 쓰자고 하는 뜻인가요?


[이야기합니다]

  제가 2011년에 낸 이야기책에 붙은 이름이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입니다. 아무래도 이 책에 붙은 이름도 있으니, 제가 푸른 벗님한테 ‘우리말을 바르게 쓰자(우리말 바로쓰기)’를 이야기한다고 여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푸른 벗님뿐 아니라 여러 어른 이웃한테도 ‘우리말을 바르게 쓰자’고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살짝 엉뚱할 만하지만, 왜 이렇게 할까요? 먼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뒷얘기를 듣기 앞서, 함께 눈을 감고서 1분쯤 생각에 잠겨 볼까요?


  자, 천천히 짚을게요. ‘바르다’를 먼저 생각합시다. 무엇이 바를까요? 바른말이나 바른길이나 바른삶이란 무엇일까요? 말보다 우리가 걸어갈 삶길이 바르지 않으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우리 살림이나 사랑이 바르지 않다면? 정치나 행정이 바르지 않다면? 사회나 문화나 복지나 평화나 평등이 바르지 않다면?


  여러분, 바르지 않은 나라에서 살고 싶은가요? 이렇게 따지면 아마 모든 분들이 ‘바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리라 생각해요. 그러면 이제 말을 살펴요. 바르지 않아서 민주도 평등도 평화도 없는 나라가 아름답지 않다면, 바르지 않은 말도 안 아름답겠지요?


  다음을 짚을게요. 아름다이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갈 길을 살폈다면, 아름다운 삶길이나 나라나 마을이나 평등이나 민주나 평화를 즐겁게 가꾸거나 돌보는 길을 찾을 만합니다. 아름답기만 해서는 빡빡하거나 심심해요. 어렵거나 딱딱하지요.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도록 우리가 마음을 써서 할 일이란 ‘즐거움’이지 싶어요. 즐겁게 손잡는 평등, 즐겁게 이루는 평화, 즐겁게 싹틔워 돌보는 민주, 즐겁게 나누는 마을, 즐겁게 함께하는 나라, 이러한 결처럼 즐겁게 주고받는 말이랍니다.


  다음을 볼게요. 아름다움하고 즐거움이 있으면, 이제 무엇을 헤아릴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아름답고 즐거우니, 이 숨결을 사랑으로 보듬거나 펼 만해요. 모든 놀이도 배움도 일도 살림도 사랑으로 할 적에 웃음이 피어나요. 차분하거나 조용하게 즐거움을 맛보며 말을 폈다면, 이제 다같이 기쁘게 웃음꽃에 춤마당에 잔치판이 벌어지도록 사랑을 담아서 삶길이며 마을이며 나라이며 지구별이며 북돋울 빛을 그려 봅니다. 이러한 결을 말에도 고스란히 담지요. 사랑으로 쓸 말입니다. 사랑으로 쓸 글이지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까지 맞추면 더 좋습니다만,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좀 틀리더라도, 더 낫거나 좋은 말은 아직 모르더라도, 사랑으로 말하고 글쓰면 그야말로 눈부시게 빛나는구나 싶어요.


  ‘이런 말을 이렇게 쓰니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이런 말이어서 나쁘다’기보다는 ‘이런 말을 쓸 적에는 이러한 기운이 우리 마음으로 스며든다’고 이야기하겠어요. 이를테면, 거친 말을 떠올려요. 깎아내리거나 얕보거나 괴롭히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말을 혀에 얹거나 귀로 스미면 어때요? 소름이 돋거나 싫거나 짜증스럽지 않습니까? ‘어느 말이 나쁘다’가 아닌, ‘어느 말에 깃든 기운이 우리를 괴롭히거나 갉아먹을 수 있다’고 느껴요. 좋은 말 나쁜 말이 따로 있기보다는,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다 달라지는 말이에요.


  예부터 나이든 어른들은 “아이구 내 새끼!” 하면서 진득한 사랑을 나타냈습니다만 ‘새끼’란 낱말 앞에 아무 말이나 붙이면 끔찍한 막말도 되어요. 같은 말이어도 담는 기운이 확 바뀝니다.


  더 좋은 말을 찾지 않아도 되어요. 하루하루 즐겁게 삶을 가꾸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즐겁게 말을 가꾸는 눈빛하고 입하고 손이 되면 반갑습니다. 처음부터 가장 멋지거나 빛날 만한 말을 찾지는 말아요. 우리 느낌이나 생각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서로 어깨동무를 할 만한 말을 살펴서 차근차근 풀어내는 이야기를 하면 반갑습니다. 일본 한자말을 안 써야 하거나, 번역 말씨를 걷어내야 하는 일이 아니에요. 우리가 스스로 이루거나 일구고 싶은 길을 즐겁게 담아낼 만한 말글을 바로 우리가 스스로 찾고 가꾸면서 사랑으로 펼 적에 저절로 빛나는 말글이에요.


  노래할 만한 삶으로 말을 해요. 웃고 춤출 만한 몸짓으로 글을 써요. 푸른 벗님 입이며 손에서 노래가 되는 꽃 같은 말글이 흐른다면, 모두 아름답고 즐거우며 사랑스럽습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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