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


우리말 길잡이

3 노독 여독


 노독을 풀 겸 → 길앓이도 풀고

 노독을 해소하지 못하고 → 지쳤는데 풀지 못하고

 여독도 풀지 않은 채 → 길앓이도 풀지 않은 채

 추위와 여독으로 → 춥고 힘들어 / 춥고 고단해

 산후 여독으로 고생하다 → 아기 낳고서 애먹다

 과거에 고문을 당한 여독으로 → 예전에 두들겨맞은 탓에


노독(路毒) : 먼 길에 지치고 시달려서 생긴 피로나 병 ≒ 길독·노곤

여독(旅毒) : 여행으로 말미암아 생긴 피로나 병

여독(餘毒) : 1. 채 풀리지 않고 남아 있는 독기 ≒ 후독 2. 뒤에까지 남아 있는 해로운 요소 ≒ 여열·후독



  집을 떠나 바깥에서 오래 돌아다니거나 머물면 지치거나 힘들다고 합니다. 이럴 적에 한자말 ‘노독·여독’을 쓴다더군요. 그런데 낱말책을 보면 한자말 ‘여독’이 둘입니다. 두 가지를 헤아린다면, 우리 나름대로 새롭게 옮기거나 손질하거나 풀어낼 만합니다.


  먼저 ‘餘毒’을 살펴볼게요. 이 한자말은 “남다 + 찌끄레기”입니다. 수수하게 ‘남다·있다’로 풀어낼 만합니다. 찌끄레기가 남는다고 할 적에는 뒤(뒷날)까지 찌끄레기가 잇는다는 뜻이요, 이러할 때에 ‘뒤끝·뒤앓이·뒷멀미’로 나타내지요.


  또는 ‘앙금·앓다·피나다·생채기’라 나타낼 만해요. 단출히 ‘찌꺼기·찌끄레기·찌끼’로 고쳐써도 어울립니다. 남아서 뒷날에도 이어가는 찌끄레기라면‘티끌·고름·멍·멍울’ 같은 낱말로 나타내도 돼요. ‘탓·때문’으로 고쳐써도 됩니다.


길앓이(길앓다) ← 노곤, 노독(路毒), 여독(旅毒), 녹다운, 피로(疲勞), 피곤, 피곤증, 방전(放電), 케이오(K·O), 무력(無力), 무력화(無力化), 무기력, 기진맥진, 맥빠지다, 탈진,  번아웃(burnout), 전의상실, 녹록하지 않다, 과부하


  다른 한자말 ‘路毒·旅毒’은 처음부터 새말을 지어 보고 싶어요. ‘길앓이’입니다. ‘길앓이’란 낱말을 지어 놓고 보니, 이 낱말은 ‘노독·여독’뿐 아니라 다른 한자말이나 영어를 담아내는 자리에도 쓸 만하겠어요.


  새로 지은 낱말을 굳이 한 자리에만 써야 하지 않습니다. 여러 곳에 어울리면 여러 곳에 즐겁게 쓰면 돼요.


 지치다·시달리다·고단하다·고달프다·졸리다

 기운없다·힘없다·힘겹다·힘들다

 느른하다·나른하다·녹초


  그리고 수수하게 쓸 말씨를 하나하나 헤아립니다. 지치니까 ‘지치다’라 하면 되어요. 기운이 없으니 ‘기운없다’라 합니다. 녹초가 되니까 ‘녹초’라 하지요. 우리를 둘러싼 수수한 말씨를 하나씩 떠올리면서 실마리를 풉니다. 여태 수수하게 쓰던 낱말을 가만히 떠올리면 새롭게 쓰임새를 찾아낼 만합니다. ㅅㄴㄹ



한 달내 쌓인 노독은 한 번 깊이 온 잠을 붙들고

→ 한 달내 쌓인 찌끼는

→ 한 달내 지쳐서

→ 한 달내 길앓이는

《맑은 하늘을 보면》(정세훈, 창작과비평사, 1990) 32쪽


게다가 노독마저 겹쳐 초췌한 모습이었다

→ 게다가 느른해서 깡마른 모습이다

→ 게다가 고단해서 여위었다

《야사로 보는 삼국의 역사》(최범서, 가람기획, 2006) 94쪽


여독에 지쳐버린 여행자들의 안식처로 제격인

→ 지쳐버린 나그네가 쉴 만한

→ 느른한 길손이 머물기 좋은

《한국의 아름다운 마을》(이영관, 상상출판, 2011) 85쪽


조선에 문맹자 많은 것은 일제통치가 남긴 여독 중의 가장 큰 것의 하나니까

→ 조선은 일본이 총칼로 억눌렀기 때문에 글못보기가 아주 많으니까

→ 조선은 일본이 총칼로 짓밟은 멍울로 글모르는 이가 무척 많으니까

《월북작가에 대한 재인식》(채훈·이미림·이명희·이선옥·이은자, 깊은샘, 1995)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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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2021.11.22.

우리말 길잡이 2 코스모스



 코스모스가 만발한 정원에서 → 살살이꽃이 가득한 꽃밭에서

 코스모스 향기를 → 산들꽃내를

 어머니랑 코스모스를 심었어요 → 어머니랑 한들꽃을 심었어요.


코스모스(cosmos) : [식물]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코스모스(cosmos) : [철학] 질서와 조화를 지니고 있는 우주 또는 세계

コスモス(cosmos) : 1. 코스모스 2. 우주. 질서와 조화 있는 세계 3. 국화과의 1년초



  이름을 새로 짓는 길은 어렵지도 쉽지도 않습니다. 꽃이나 풀이나 나무한테 이름을 새로 붙이는 일은 쉽지도 어렵지도 않습니다. 누구나 할 만합니다.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가만히 마주하면서 사랑이라는 숨빛을 밝혀서 생각을 지으면 어느새 이름 하나가 사르르 풀려나오기 마련입니다.


  이웃나라 꽃이름을 우리말로 옮기기는 어려울까요? 어렵다고 생각하면 어려울 만합니다. 그러면 이웃나라에서 이 꽃이름 하나를 어떻게 누가 지었는가를 그려 보기로 해요. 이웃사람은 꽃이름을 어떻게 지었을까요?


  우리가 가리키는 꽃이름은 모두 먼먼 옛날부터 수수하게 살림을 짓고 흙을 만지며 아이를 낳아 돌보던 어버이가 지었어요. 때로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나는 아이들이 문득 지었지요. 오늘날에는 꾼(전문가)이 이름을 지어야 하는 줄 잘못 여깁니다. 때로는 꾼이 지어도 되어요. 그러나 모름지기 모든 이름은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며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짓습니다. 이러한 이름을 달리 가리키자면 ‘사투리’요 ‘마을말·고을말·고장말’입니다.


  나라지기나 나라일꾼이 지어 주는 이름을 외울 때도 있겠지요. 우리가 즐겁게 지은 이름을 나라에서 받아들여 널리 쓸 때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밝히는 눈빛이면 넉넉합니다.


 살살이꽃


  이 땅에서는 ‘코스모스’를 두고 일찍부터 ‘살살이꽃’이라 했습니다. 살살 춤추듯, 살몃살몃 춤사위를 펴듯, 잔바람에도 가벼이 흔들리면서 가느다란 줄기가 의젓한 꽃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바리데기 옛이야기에도 ‘살살이꽃’이 나옵니다. 옛이야기에서는 “살을 살리는 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나름대로 옛이야기하고 맞물려 ‘코스모스’에 새 숨결을 불어넣을 만해요. 바리데기 옛이야기에 나오는 ‘살살이꽃’은 오늘날 ‘코스모스’하고 다를 만하지만, 이름은 나란히 써도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을 더 돌아보면, ‘살살’ 춤추듯 잔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산들꽃·산들산들꽃’처럼 담아낼 만해요. 가볍고 싱그러우면서 시원한 바람을 가리키는 ‘산들’을 꽃이름으로 옮겨 봅니다. ‘산들’하고 맞물리는 ‘한들’을 넣어서 ‘한들꽃·한들한들꽃’처럼 새롭게 이름을 지어도 어울려요.


 산들꽃·한들꽃

 산들산들꽃·한들한들꽃


  이름짓기를 대단하게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마음에 사랑이라는 숨결을 얹으면 누구나 이름을 즐거이 짓기 마련이에요. 누구는 ‘흔들꽃’이나 ‘춤꽃’이란 이름을 붙일 만해요. 누구는 ‘설렘꽃’이나 ‘두근꽃’이란 이름을 붙이겠지요. 설레거나 두근거릴 적에 몸을 흔들기 마련이잖아요? 춤을 추는 듯한 꽃이니 ‘춤꽃’이라 해도 어울려요.


ㅅㄴㄹ


나는 바람으로 당신은 코스모스로 우리의 들판길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 나는 바람으로 그대는 살살이꽃으로 우리 들판길 사랑을 열었습니다

→ 나는 바람으로 너는 한들꽃으로 우리 들판길 사랑이 피었습니다

《맑은 하늘을 보면》(정세훈, 창작과비평사, 1990) 8쪽


이토록 일본에서 사랑받고 상륙하자마자 전국에 퍼진 코스모스가

→ 이토록 일본에서 사랑받고 들어오자마자 널리 퍼진 살살이꽃이

→ 이토록 일본에서 사랑받고 스며들자마자 두루 퍼진 산들꽃이

《플로라 플로라, 꽃 사이를 거닐다》(시부사와 다쓰히코/정수윤 옮김, 늦여름, 2019) 185쪽


.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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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2021.11.14.


우리말 길잡이

1 국민학교·초등학교



 국민학교 이상의 학력이라면 → 어린배움터를 나왔다면

 국민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 씨앗배움터를 마치고서

 당시의 국민학교를 회상하면 → 그무렵 첫배움터를 떠올리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셋 → 어린배움터에 다니는 아이가 셋

 인근 초등학교에 배정받았다 → 둘레 씨앗배움터로 간다

 초등학교 생활은 공부도 중요하지만 → 첫배움터에서는 배우기도 해야 하지만


국민학교(國民學校) : [교육] ‘초등학교’의 전 용어

초등학교(初等學校) : [교육] 아동들에게 기본적인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학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만 6세의 어린이를 입학시켜서 6년 동안 의무적으로 교육한다. 1995년부터 ‘국민학교’ 대신 쓰이게 되었다



  우리는 1996년에 이르러서야 어린이가 다니는 배움터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다만, 나라(정부)에서 앞장서지 않았어요. 나라는 그때까지 팔짱을 끼었습니다. 아무리 ‘국민학교’란 이름이 일본이 총칼로 우리나라를 짓밟던 무렵에 ‘국민학교령’으로 ‘황국신민학교’란 이름을 내세웠다 하더라도, 1941년부터 1995년까지 자그마치 쉰네 해나 쓰지 않았느냐고 콧방귀였습니다. 어린이가 다니는 배움터 이름을 고치자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은 자그마치 쉰네 해 동안 나라가 팔짱만 끼고서 아이들을 모르쇠하지 않았느냐고 외쳤어요.


  자, 이 두 가지를 생각해 볼까요? 나라는 ‘자그마치 쉰네 해를 쓴 이름을 바꿀 수 없다’요, 사람들은 ‘자그마치 쉰네 해나 팽개친 엉터리 이름을 이제부터 바꾸자’라 했어요.


  쉰 해 넘게 쓴 이름이기에 바꾸면 안 될까요? 쉰 해 넘게 얄궂은 찌끄레기를 퍼뜨렸기에 이제부터 바로잡고서 새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요? 익숙한 이름을 버리기란 어려울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더 생각해 봐요. 누구한테 익숙할까요? 어린이한테 익숙할까요, 어른한테 익숙할까요? 쉰네 해를 썼다는 ‘국민학교’는 바로 어른한테 익숙합니다. 배움터에 다닐 어린이나 배움터를 다니는 어린이는 이름에 어떠한 뜻이 서렸는가를 알면 “뭐야? 그런 이름이라구? 그럼 바꿔요!” 하고 목소리를 내지 않을는지요?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살며 모레를 살아가는 길이라면, 이 자취를 살펴야지 싶습니다.


  그러면 이름을 어떻게 고치느냐인데, 어린이가 다니는 곳이니 ‘어린이’란 이름을 넣을 적에 가장 어울려요. 그렇지요? ‘학교 = 배우는 곳·터’입니다. 이 얼거리를 살피면 ‘배움곳·배움터’처럼 이름을 고칠 만합니다. ‘학교’란 이름이 익숙한 어른한테 맞추지 말고, 이제 새롭게 배우는 길에 접어들 어린이 자리에서 헤아리며 맞출 노릇입니다. 배우는 곳이기에 ‘배움곳’이라 하면 되고, 배우는 터이기에 ‘배움터’라 하면 됩니다. 더 줄여서 ‘배곳·배터’라 하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린이가 배우는 곳 : 어린이 + 배우다 + 곳 = 어린이배움터·어린배움터


  말짓기는 가장 쉽게 생각하면 됩니다. 말짓기는 어린이 눈높이로 어깨동무하면서 바라보면 됩니다. 어린이가 배우는 곳이기에 ‘어린이배움터’란 이름을 얻어요. 이 이름을 줄여 ‘어린배움터’나 ‘어린배곳’처럼 쓸 만합니다.


 어린이터·어린터

 씨앗배움터·씨앗터

 첫배움터·첫터


  이밖에 이름은 더 생각할 만해요. ‘배움’이란 말을 굳이 안 넣어도 돼요. ‘어린이터’나 ‘어린터’라 지어도 되고, 어린이는 앞으로 푸르게 우거질 숲으로 무럭무럭 자랄 밑바탕이라는 뜻으로 ‘씨앗 + 배움터’라 할 만합니다. 처음 배운다는 뜻으로 ‘첫 + 배움터’라 해도 어울려요.


  이렇게 차근차근 이름을 짓노라면 ‘어린터·어린배곳’이나 ‘씨앗터·첫터’처럼 길이까지 퍽 짧게 새말을 얻습니다. 한자말을 쓰기에 더 짧지 않아요. 스스로 슬기롭게 생각을 기울이면 우리말로도 넉넉히 짧게 지을 뿐 아니라, 한자말보다 훨씬 짧으면서 쉽게 살필 만한 낱말을 엮기도 합니다.



여덟살박이 올해 국민학교 이학년 사내아이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 여덟살박이 올해 어린이터 두걸음 사내아이 이제 무얼 할까

→ 여덟살박이 올해 첫배움터 두발짝 사내아이 이제 무얼 할까

《맑은 하늘을 보면》(정세훈, 창작과비평사, 1990) 16쪽


초등학교는 등수를 매기지 않기 때문에

→ 어린배움터는 줄을 매기지 않기 때문에

→ 씨앗배움터는 줄을 세우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 더불어 살려면 어떻게 해요?》(정주진, 철수와영희, 2020) 70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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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살려쓰기

숲노래 우리말꽃 : ‘자연’을 가리킬 우리말



[물어봅니다]

  ‘자연보호·환경보호’처럼 말하는데요, ‘자연’이란 한자말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요? 우리말에도 ‘자연’을 가리키는 말이 있을까요?



[이야기합니다]

  영어 ‘내츄럴’을 일본사람은 한자말 ‘자연’으로 풀었습니다. 총칼을 앞세운 일본이 우리나라를 짓누르면서 우리 삶터에 일본말하고 일본 한자말이 두루 퍼지기 앞서까지 이 나라에서는 ‘자연’이란 한자말을 거의 안 쓰거나 아예 안 썼습니다. 바깥에서 새물결이 밀려들면서 우리 나름대로 새말을 지어야 했는데, 예전에는 바깥나라에서 쓰던 말씨를 그냥 받아들이곤 했어요. 그래서 ‘내츄럴·자연’이 우리나라에 스미기 앞서 어떤 말로 그러한 결을 나타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제가 찾아낸 낱말은 ‘숲’입니다. 1900년으로 접어들 즈음까지 우리나라에서 우리말로 수수하게 살림을 지으며 살던 사람들이 널리 쓴 말은 ‘숲’이더군요. ‘숲’하고 맞물려 ‘메(산)’도 꽤 썼어요. 아무래도 옛날에는 ‘숲’이랑 ‘메’는 거의 같은 결로 썼구나 싶은데요, 오늘날 우리가 ‘자연보호·환경보호’처럼 말하는 자리에서는 ‘숲’ 하나가 가장 어울리겠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왜 ‘숲’인가를 얘기해 볼게요. 먼저 ‘숲’을 넣은 낱말을 하나둘 엮어 보겠습니다.


숲 ← 자연, 자연환경, 자연주의

숲터 ← 자연환경

숲사랑·숲돌봄·숲지킴 ← 자연보호, 환경보호

숲살림 ← 자연농, 자연농법, 자연유산, 자연친화

숲짓기 ← 자연농, 자연농법

숲책 ← 환경책, 생태환경책, 자연도감, 생태도감


  낱말 하나를 찾아내면서 끝나지 않아요. 그 낱말 하나를 바탕으로 새살림을 새말로 그려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한자말 ‘자연’을 놓고서 숱한 새말이 태어났어요. 우리말 ‘숲’을 놓고도 숱한 새말을 엮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숲이란 터이니 ‘숲터’이고, 숲을 돌보자는 뜻은 ‘숲돌봄’이되 ‘숲사랑’으로 담으면 한결 낫지 싶습니다. 숲은 사람 손길이 닿지 않으면서 푸른 터예요. 숲처럼 흙을 가꾸자는 뜻인 ‘자연농’이니 ‘숲살림·숲짓기’ 같은 낱말을 엮을 만하고, ‘자연·생태·환경’을 다루는 책을 ‘숲책’이라 할 만합니다.


숲정이 ← 인공림, 공용림, 근린공원

숲사람·숲님 ← 자연인, 자연보호 운동가

숲지기 ← 자연보호 운동가

숲빚·숲막짓·숲죽이기 ← 자연오염, 자연파괴

숲너울 ← 자연재해

숲적이 ← 자연도감


  왜 ‘숲’일까요? 숲에는 나무가 우거지지요. 나무가 우거진 곳에는 들풀이며 들꽃도 우거집니다. 들풀·들꽃·나무가 우거진 곳에는 새·들짐승을 비롯해 풀벌레랑 벌나비가 넉넉히 어우러집니다. 나무에 새에 풀꽃이 얼크러진 곳은 으레 냇물이 흘러 적시기 마련이요, 물에서 사는 목숨도 많을 테니 더더욱 푸른 터전입니다. 숲으로 깊이 들어가면 첫 물줄기인 샘이 있기 마련이에요.


  숲이란 사람뿐 아니라 모든 목숨붙이가 ‘그 목숨결대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바탕이 되는 터전’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는 한자말 ‘자연’이 나타내는 뜻하고 매한가지예요.


숲빛 ← 자연친화, 자연적

숲보람 ← 자연 혜택

숲마실·숲맞이·숲하루 ← 자연체험, 자연학습

숲말 ← 자연어, 자연 언어

숲눈 ← 자연적 관점

숲넋 ← 자연관, 자연사상, 자연철학


  글을 모르더라도 손수 흙을 짓고 살림을 가꾸고 아이를 낳아 돌보던 수수한 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말을 물려주었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시골 흙지기는 살림짓기·삶짓기·사랑짓기란 하루를 누리면서 아이한테 ‘이야기’로 말을 가르치고 들려주었습니다. 더없이 숲다운(자연스러운) 모습이에요. 오랜 숲말이란 시골말이면서 사투리이자 고장말이기도 합니다.


  요새는 ‘자연체험’이란 한자말보다 영어 ‘에코티어링’을 더 쓰는구나 싶은데요, ‘숲’을 넣어 부드럽게 ‘숲마실·숲맞이·숲하루’라 하면 어떨까요? “자연이 주는 혜택”이란 말을 곧잘 듣는데, 숲이 우리한테 베푸는 빛이란 ‘보람’일 테니 ‘숲보람’ 같은 낱말을 엮을 만합니다. “자연적 관점”이라고 해야만 전문말이 되지 않아요. 숲처럼 보는 눈길이니 ‘숲눈’처럼 단출히 나타내는 전문말을 지어도 어울려요.


숲뜰 ← 수목원

숲딸기 ← 자연종 딸기

숲내음 ← 자연향, 자연의 향기, 자연의 향, 아로마, 피톤치드

숲것 ← 자연자원

숲가꿈터 ← 자연보호구역

숲바구니 ← 에코백

숲씻이 ← 자연치유


  ‘자연’을 넣은 낱말은 아닌 ‘수목원’이지만, 사람들이 푸른바람을 마시면서 몸을 달래는 곳을 ‘숲뜰’ 같은 이름으로 나타내면 어떨까요? 숲을 뜰처럼 삼는 곳이라는 뜻으로 그 터전을 나타낸다면, 숲뜰을 찾아가는 마음도 한결 푸르리라 생각합니다. 요새는 딸기를 늦봄이나 첫여름 아닌 한겨울부터 가게에서 사다 먹는 사람이 많지만, 워낙 딸기란 들열매는 삼사월에 흰꽃을 피우고 오뉴월에 빨간알을 맺습니다. 사람이 따로 밭을 가꾸어 거두는 딸기가 아닌, 저절로 철에 따라 돋는 딸기인 “자연종 딸기”는 ‘숲딸기’라 할 만해요.


  우리 몸에 이바지하는 풀꽃나무한테서 얻은 ‘아로마’를 쓰는 분이 꽤 늘었어요. 풀꽃나무는 바로 숲을 이루는 바탕이니, ‘숲내음’이나 ‘숲물’ 같은 낱말을 지어서 담아내어도 어울립니다. ‘에코백’은 숲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짓는 바구니란 뜻으로 ‘숲바구니’라 해볼 만해요.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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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숲노래 우리말꽃 : 다문화



[물어봅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데요, 다문화 사회에서 우리말은 어떻게 나아가야 좋을까요?


[이야기합니다]

  물어보신 대목을 이야기하기 앞서 ‘다문화’가 무엇인지 짚어 보겠습니다. 먼저 국립국어원 낱말책을 들출게요. ‘다문화(多文化)’처럼 한자를 붙이고, “한 사회 안에 여러 민족이나 여러 국가의 문화가 혼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합니다.


  말뜻을 살피니 “여러 문화”를 가리키는군요. ‘문화’라는 한자말은 이웃나라 일본이 바깥물결을 받아들이면서 영어 ‘culture’를 옮긴 말씨입니다. 우리는 이 일본스러운 한자말을 그대로 따라서 쓰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다문화’란 낱말뿐 아니라 ‘문화’라는 낱말을 넣어 가리키는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까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느끼나요?


 여러 삶·온갖 삶·숱한 삶

 여러 살림·온갖 살림·숱한 살림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한겨레만 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여러 이웃나라로 퍼져서 살아갑니다. 곰곰이 보면 이 푸른별에 있는 모든 나라에는 ‘그 터전에서 처음 나고 자란 사람만 있지 않’습니다.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아니 어쩌면 맨 처음부터 모든 터전에서는 모든 사람이 울타리 없이 홀가분히 넘나들었지 싶어요. 이웃일꾼(이주노동자)이 많이 들어오기 앞서도 늘 어느 나라 어느 고장에서든 사람들은 가벼이 넘나들면서 이웃이 되고, 일을 함께했습니다.


  요즈막에 들어서 ‘다문화’ 같은 낱말을 지어서 쓴다면, 그만큼 이웃일꾼을 비롯해 이웃나라를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안 좋게 본다는 뜻이로구나 싶어요. 우리가 슬기롭고 아름다이 나아가는 몸짓이라면 굳이 ‘다 + 문화’가 아닌 ‘문화’란 이름으로 넉넉하면서 포근히 품는 매무새여야지 싶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이라면 어깨동무라고 생각합니다. 동무란 자리를 헤아려 봐요. 동무는 가까이 사귀는 사이입니다. 동무는 우리 집에서 살지 않아요. 동무는 이웃집이나 옆집이나 이웃마을이나 옆마을에 살지요. 때로는 이웃나라나 옆나라에서 살 테지요. 동무를 만나고 사귀고 어울린다면, 이러한 하루야말로 ‘다문화’입니다. 우리는 옛날부터 늘 ‘다문화’로 살았어요. 굳이 이런 이름은 없어도 됩니다.


 다문화 가정 → 온살림집 / 무지개집 / 다살림집

 다문화 시대 → 온살림 나날 / 무지개 나날 / 다살림 나날


  한자말을 그냥 쓴다면 ‘문화’라는 이름 하나로 되고, 따로 새말을 지으면 좋겠다고 여긴다면 ‘이웃살림’이나 ‘다살림·온살림’이나 ‘무지개’를 그리면 좋으리라 봅니다. ‘다살림’에서 ‘다’는 한자가 아닌 우리말입니다. ‘모두’를 가리키는 ‘다’예요. “모두 살리는 길”이라는 ‘다살림’입니다.


  세글씨로 맞추어 말한다면 ‘다살림’이 무척 어울리지 싶고, ‘온살림’도 퍽 어울립니다. 온누리·온마음 같은 낱말에서 쓰는 ‘온’도 크게 아우르는 모든 숨결을 나타내요. 온마음으로 이웃으로 어울리는 길을 나누고 싶다면 ‘온-’을 붙인 새말도 좋습니다.


다문화가 만나는

→ 여러 삶이 만나는

→ 온삶이 만나는

→ 다살림이 만나는


특히 다문화 다인종이 살고 있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 더욱이 온갖 삶겨레가 어우러진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 게다가 숱한 삶겨레가 어우러진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출생하는 아이 100명 가운데 4명이 다문화 가정 출신이야

→ 태어나는 아이 100 가운데 넷이 이웃살림 집안이야

→ 태어나는 아이 100 가운데 넷이 다살림 집안이야

→ 태어나는 아이 100 가운데 넷이 무지개 집안이야


  몇 가지 보기글에 맞추어 “여러 삶”도 ‘다살림·온살림’도 ‘무지개’도 ‘온삶’도 넣어 봅니다. 꼭 낱말 하나만 써야 하지 않아요. 바탕으로 한 가지 낱말을 놓되, 자리나 흐름이나 때를 헤아려 이모저모 조금씩 달리 이야기를 펴면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이러면서 제 나름대로 새말에 새 뜻풀이를 붙여 볼게요. 새로우면서 아름답게 가꾸면 좋겠다고 여기는 길이라면, 이러한 길에 걸맞게 뜻풀이를 나란히 추슬러서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마음하고 눈빛으로 거듭나기를 빕니다.


[숲노래 말꽃]

다살림 : 다 있는 살림. 다 어우러진 살림. 다 만나는 살림. 어떠한 길·결·모습·삶·살림·넋·빛깔이든 함께 있거나 어우러지거나 만나는 살림. ‘다문화’를 가리킨다


온살림 : 무엇이든 고르게 있는 살림. 무엇이든 어우러진 살림. 무엇이든 고르게 만나는 살림. 모든 길·결·모습·삶·살림·넋·빛깔이 고르게 있어서 알차게 어우러진 살림. ‘다문화’를 가리킨다


무지개 : 1. 빛을 받아 나타나는 일곱 가지 결로 이룬 띠나 무늬. 하늘에서 물방울이 길게 모여서 햇빛을 받아 나타나기도 하고, 촛불이나 유리창에 어리기도 한다. 빨강·귤빛·노랑·풀빛·파랑·쪽빛·보라 같은 빛깔로 나타나곤 한다 2. 저마다 다른 길·결·모습·삶·살림·넋·빛깔은 저마다 다르기에 곱거나 뜻있거나 값있거나 넉넉하다는 이야기를 빗대는 말. ‘다양성·다양한 가치’를 나타낸다


다살림집 : 어떠한 길·결·모습·삶·살림·넋·빛깔이든 함께 있거나 어우러지거나 만나는 살림으로 가꾸는 집. “다문화 가정”을 나타낸다


온살림집 : 모든 길·결·모습·삶·살림·넋·빛깔이 고르게 있어서 알차게 어우러진 살림으로 가꾸는 집. “다문화 가정”을 나타낸다


무지개집 : 저마다 다른 빛깔이 곱게 어우러지는 무지개처럼, 저마다 다른 살림이 곱게 어우러지는 집. “다문화 가정”을 나타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책숲마실 파는곳]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683120

[숲노래 사전] https://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C%88%B2%EB%85%B8%EB%9E%98&frameFilterType=1&frameFilterValue=359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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