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꽃

숲노래 우리말꽃 : 전문용어를 다루는 눈



[물어봅니다]

  전문용어를 우리말로 바꿀 수 있을까요?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우리말로 바꾸기 어려울 듯해요. 전문용어는 일본 말씨이든 영어이든 한자말이든 다 그대로 쓰는 쪽이 낫지 않을까요?


[이야기합니다]

  모든 전문용어는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오래오래 쌓거나 다스린 말입니다. 또는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처음에 문득 얼핏 쓰다가 어느새 자리를 잡아서 굳어진 말입니다. 또는 다른 사람한테서 배우면서 받아들인 말,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일본 한자말이나 일본 말씨나 일본 영어일 숱한 전문말이 이와 같은데요, 다른 사람한테서 배우며 그 전문가라는 길을 왔기에, 그 전문가로서는 처음 배우면서 받아들인 말을 그대로 쓰곤 합니다. 또는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깊이 알지 못하거나 넓게 알아내지 못한 탓에 그냥 쓰는 전문말도 수두룩합니다.


  수학 전문가라면 수학 전문말을 쓰겠지요. 살림 전문가라면 살림 전문말을 쓸 테고요. 자, 생각해 봐요. 수학 전문가 사이에서 쓰는 수학 전문말은 누가 알아들을 만할까요? 어쩌면 수학 전문가 사이에서도 알아듣지 못하거나 속뜻이나 참뜻이 아리송한 말이 있지 않을까요?


  살림 전문가 사이에서 쓰는 살림 전문말은 누가 못 알아들을 만할까요? 어쩌면 살림 전문가 사이에서 쓰는 살림 전문말은 ‘살림 전문가를 비롯해서 살림 전문가 아닌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고, 어린이도 쉽게 알아들으며 받아들일 뿐 아니라, 새롭게 가꿀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요?


  대학교에서 수학이나 과학이나 철학이나 문학을 배우면서 깊거나 넓은 길을 파고든다고 해서 그 갈래에 있는 사람만 ‘전문가’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말은 말에서 끝나지 않아요. 모든 말은 삶에서 태어나고 삶에서 자라며 삶으로 가꾸고 삶으로 나눕니다. 논문으로만 쓰고, 학회지에만 선보이고, 방정식 풀이에만 애쓴다면, 이러한 수학말은 굳이 가다듬거나 손질하거나 새롭게 지을 까닭이 없을 만합니다. 이때에는 그저 ‘끼리말(끼리끼리 쓰는 말)’에 머물거든요.


  그런데 알아두어야 합니다. 끼리말이라고 해서 나쁘지 않습니다. 그저 끼리끼리로 갇힌 채 오랫동안 맴도느라, 끼리말을 배우면서 학문을 가다듬으려고 하는 분들은 그 끼리말이 아니고서는 그 학문을 할 수 없네 하고 느끼기 쉬울 뿐이에요. 그리고 그곳 바깥에 있는 이들은 먼저 끼리말 때문에 걸려넘어져서 그곳으로 들어오기 어렵고, 이러면서 그 학문자리는 끼리말이 더욱 단단해질 뿐 아니라, 그렇게 단단해진 끼리말이야말로 ‘좋은 전문말’로 여기면서 굳어지곤 합니다. 새로운 싹이 틀 틈이 없는 셈입니다.


  어린이는 ‘구구단’이란 이름부터 낯섭니다. 아니, ‘덧셈·빨셈’도 낯섭니다. ‘더하다·빼다’는 어린이도 알고 삶으로 누리지만, 여기에 ‘-셈’이란 이름을 붙이면 어쩐지 하나도 모르는 자리라고 여기고 말아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덧셈·뺄셈’처럼 삶말로 수학말 한 가지를 가다듬었습니다만, 이를 아직도 한자말로 쓰는 어른(전문가)이 있고, 이를 그냥 영어로 쓰는 어른(전문가)도 있어요.


  학문이 깊이하고 너비를 두루 품자면, 삶이라는 자리로 들어서야 합니다. 우리 삶자리에서 수학이나 과학이나 철학이나 문학이지 않은 세간은 한 가지조차 없습니다. 모든 곳에는 모든 학문이나 전문성이 골고루 깃듭니다. 책 한 자락을 찍고 엮는 인쇄소나 제본소나 출판사에도 수학이 있습니다. 관리하고 회계에도 수학이 있지만, 옷을 마름하고 바느질하고 뜨개질하는 데에도 수학이 있습니다. 논밭을 일구는 연장인 쟁기나 가래나 호미에도 수학이 있습니다. 쟁기날이나 삽날이나 호미날에 수학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별자리에는 수학이 없을까요? 또, 별자리에 문학이나 철학이나 과학이 없을까요?


  벼꽃에도 과학이며 철학이 흐르고, 벼알인 나락을 훑어서 햇볕하고 바람에 말린 뒤에 절구질로 빻아서 키로 까부르고 조리로 골라서 물을 맞추어 솥에 앉혀 밥을 짓는 이 흐름에도 과학이며 수학이며 철학이며 문학이 고스란히 흐릅니다. 그저 이를 수학 방정식이나 과학 실험이나 문학 작품이나 철학 이념으로 풀어낸 전문가란 어른이 매우 드물 뿐입니다.


  살림 전문가 곁에 선 수학 전문가라면 이런 수학 문제를 풀 수도 있습니다. “맛있는 밥이 되도록 하려면 물 부피하고 쌀알 숫자를 어느 만큼으로 맞추어야 하는가?”라든지 “더 맛있는 밥이 되도록 하려면 쌀을 어떠한 결로 씻고, 쌀알이 솥에 어떤 결로 켜켜이 앉아야 하는가?”를 방정식을 지어서 풀도록 할 수 있어요. 우주선이 대기권을 벗어나서 달을 한 바퀴 돈 다음에 지구로 돌아오는 길만 수학 방정식을 지어서 풀어야 하지 않습니다. 마룻바닥을 가장 쉽고 빠르며 꼼꼼하게 걸레질을 하는 ‘함수’를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시골 할머니가 등허리가 아프지 않도록 호미질을 할 수 있는 길을 사차원이나 오차원 방정식으로 풀이해 볼 수도 있겠지요.


  우리네 학교나 사회에서 전문가 자리에 있는 분들이 쓰는 말은 아직 너무 단단한 울타리에 갇히곤 합니다. 바로 학문이란 자리에 있으려면 대학교 바깥이나 연구소 언저리로 나아가면서 깊고 너른 품이 되어야 할 텐데, 좀처럼 삶자리나 살림자리나 사랑자리로는 안 나아가거든요.


  그러나 꼭 짚을 대목이 있어요. 사람들 사이로 스미지 못하는 전문말을 아직 붙잡는 전문가 어른이 많다고 해서 ‘잘못’이 아니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전문가인 분이 전문말을 붙잡는다고 해서 이 말씨를 잘못이라거나 나쁘다고 바라보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요. 그저 그런 말을 그대로 붙잡을 뿐이에요.


  우리는 앞으로 새롭게 나아갈 즐거운 말씨를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노래하듯이 나누면 되어요. 더 좋은 말이나 더 나은 말이란 없어요.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울 말을 생각하면 되어요. 손을 잡으면서 기쁘고 사랑스레 춤추는 말을 헤아리면 됩니다.


  전문용어를 우리말로 하나씩 바꾸기보다는, ‘살림하는 자리에서 한결 즐겁게 쓸 새로운 말을 하나씩 생각해 보기’로 나아가면 어떨까요? 바꾸어도 나쁘지는 않아요. 때로는 바꾸는 쪽이 한결 수월하거나 나을 수 있습니다. 바꿀 만한 말은 바꾸기로 해요. 그대로 두는 쪽이 낫다 싶으면 한동안 그대로 두되, 앞으로 우리 생각이 새롭게 자란다면 그때에 더 살펴서 손질해도 되고, 새말을 지어서 써도 되겠지요.


  살림하는 전문가는 밥을 하면서 물 부피가 몇 씨씨인가 하고 살피거나 재지 않아요. 밥알이 몇 톨인가를 세지 않아요. 이 눈썰미하고 마음에 흐르는 사랑 어린 손길을 헤아린다면, 전문말을 풀어내는 상냥하면서 알뜰한 눈빛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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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전쟁’하고 ‘평화’는 무엇일까요



[물어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도, 또 우리가 사는 나라에서도 전쟁이 끊이지 않아요. 그래서 늘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끊이지 않는 전쟁하고, 바라고 싶은 평화를 생각하다가, ‘전쟁’하고 ‘평화’를 사전에서 풀이한다면 어떻게 다루시려는지 궁금해요. 새 뜻풀이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이야기합니다]

  말은 언제나 우리 삶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고스란히 말로 나타나요. 우리가 서로 사이좋게 지낸다면 말 그대로 ‘사이좋다’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다투거나 싸운다면 이 말처럼 ‘다투다’나 ‘싸우다’로 나타나겠지요. 스스로 하지 않는 일이라면 스스로 말하지 못해요. 이웃을 돕지 않는 사람한테는 ‘이웃돕기’나 ‘이웃사랑’이란 말이 마음이나 머리에 남거나 맴돌 수 없습니다. 이웃을 미워하지 않고 시샘하지 않으며 따돌리지 않는다면 ‘미움’이나 ‘시샘’이나 ‘따돌림’이란 말을 모르면서 즐겁고 사랑스레 살아가지 싶어요.


  잘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갓 태어난 아기는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저를 쳐다보면서 들려주는 말을 받아들이고서 따라해요. 갓난쟁이에서 두 살이나 네 살을 지나도록 아이 입에서는 거친 말이나 막말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며 거친 말이나 막말을 누가 하겠어요? 그러나 어린이가 거친 말이나 막말을 한다면, 또 푸름이가 거친 말이나 막말을 한다면, 어린이나 푸름이는 누구한테서 거친 말이나 막말을 듣거나 배웠을까요?


  처음부터 거친 말이나 막말을 머리에 담고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열 살이 되니까 갑자기 거친 말을 쓰지 않아요. 열다섯 살이 되었으니 하루아침에 막말을 늘어놓지 않습니다. 우리 삶터, 바로 사회가 거칠기에 어른들이 거친 말을 써요. 우리 삶자락, 바로 사회이며 정치이며 문화에 아름답지 못한 일이 자꾸 불거지니 막말이 흐릅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전쟁(戰爭) : 1. 국가와 국가, 또는 교전(交戰) 단체 사이에 무력을 사용하여 싸움 ≒ 군려·병과 2. 극심한 경쟁이나 혼란 또는 어떤 문제에 대한 아주 적극적인 대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평화(平和) : 1. 평온하고 화목함 2.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국립국어원 사전에서 ‘전쟁·평화’ 두 가지를 찾아봅니다. 뜻풀이를 읽어 보니 좀 모자라지 싶습니다. 어딘가 풀이를 하다 만 느낌 아닌가요? 우리 삶터나 지구라는 별 테두리에서 일어나거나 마주할 만한 ‘전쟁·평화’ 이야기가 두 마디 뜻풀이에 제대로 스몄을까요?


  총칼을 손에 쥐고서 싸울 적에도 전쟁이라 합니다. 사전은 ‘전쟁 = 싸움’으로 풀이합니다. 모질게 겨루어야(경쟁) 하는 일도 전쟁으로 다룹니다. 아무래도 푸름이 누구나 맞닥뜨리는 ‘입시전쟁’이 있고, 대학교를 마친 뒤에도 ‘취업전쟁’이 있다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어른이 되어 사랑하는 짝을 만나서 기쁨이란 열매로 아이를 낳은 뒤에는 ‘육아전쟁’도 있다고 합니다.


  아, 우리는 이렇게 전쟁을 벌여야 할까 궁금합니다.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를 즐겁고 아름답게 다니면 안 되는지 궁금해요. 대학교에서 일자리를 놓고서 겨루거나 다투거나 싸우지 말고, 서로 슬기롭게 새로운 일거리를 지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열면 안 되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는 틀림없이 사랑으로 낳을 텐데, 아이를 돌보는 살림도 전쟁처럼 싸움으로, 치고받으면서, 툭탁거리면서, 아웅다웅 힘들게 해야 할까 궁금해요. 우리는 어쩌면 전쟁이란 낱말을 아무렇게나 쓰면서 우리 삶을 스스로 힘든 수렁으로 내모는 셈 아닌가 싶기도 해요.


  이런 흐름이라면 말만 곱게 바꿀 수 없다고 느껴요. ‘입시싸움·입시겨룸’이나 ‘취업싸움·취업겨룸’이나 ‘육아싸움·육아겨룸’처럼, 낱말을 바꾼들 바탕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숲노래 사전]

전쟁 : → 싸움(싸우다). 서로 알고 싶지 않고, 사귀려는 마음이 없어, 부짖히거나 괴롭히려고 하는 일·길·짓

평화 : → 사이좋다. 어깨동무. 서로 알고 싶고, 사귀려는 마음이 있어, 즐겁거나 따뜻하거나 반갑거나 넉넉하게 만나고 함께하려는 일·길·짓


  제가 쓰는 사전에는 ‘전쟁·평화’를 이렇게 다루려고 생각합니다. 한자말을 한국말로 바꾼다기보다는, 두 마디에 흐르는 기운을 깊이 짚고서 이를 풀어내는 길을 이야기해야겠다고 여깁니다. 생각해 봐요. 서로 알고 싶은 사이인데 싸울 일이 있을까요? 서로 즐겁게 만나면서 어울리는 사이에서 싸울까요? 서로 반가이 만나고 사랑으로 돌보는 길에 어떤 기운이 흐를까요?


  오늘날 나라 곳곳에 워낙 ‘전쟁·평화’라는 말마디가 넓게 흐르거나 퍼지기에 열 살 어린이조차 이 한자말이 익숙합니다. 그렇지만 깊은 속내까지 알거나 짚기는 만만하지 않아요. 두 말마디에 흐르는 속내부터 짚고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디일까를 바로 말로 새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숲노래 사전]

싸우다 : 1. 힘·총칼·주먹·말글·군대 들을 앞세워서 오는 쪽을 받아들이거나 그쪽에 넘어가거나 쓰러지지 않으려고, 똑같이 힘·총칼·주먹·말글·군대 들로 그쪽을 마주하면서 쫓아내거나 없애려고 하다 (서로 알고 싶지 않고, 사귀려는 마음이 없어, 부짖히거나 괴롭히려고 하는 일·길·짓) 2. 어느 자리·판·마당·놀이·경기에서 어느 쪽이 낫거나 모자라는가를 놓고서 마주하다 (솜씨·재주가 누가 낫거나 좋거나 앞서는가를 알아보려고 마주하다) 3. 세거나 크거나 어렵거나 힘들거나 고되거나 아프거나 괴로운 일·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기운·힘을 내다 4. 세거나 크거나 어렵거나 힘들거나 고되거나 아프거나 괴롭더라도 이루거나 누리거나 얻거나 되거나 하려고 기운·힘을 쓰다

사이좋다 : 사이가 좋다. 서로 즐겁거나 따스하게 지내다 (서로 알고 싶고, 사귀려는 마음이 있어, 즐겁거나 따뜻하거나 반갑거나 넉넉하게 만나고 함께하려는 일·길·짓)

어깨동무 : 1. 서로 어깨에 팔을 얹거나 끼면서 나란히 있거나 서거나 걷거나 노는 일 2. 나이·키·마음·뜻이 비슷하거나 같아서 즐겁거나 부드럽게 어울리는 사이 3. 마음·뜻·일·길이 비슷하거나 같다고 여겨서 돕거나 돌보거나 아끼거나 어울리는 사이 (서로 알고 싶고, 사귀려는 마음이 있어, 즐겁거나 따뜻하거나 반갑거나 넉넉하게 만나고 함께하려는 일·길·짓)


  받아들이거나 맞아들이고 싶지 않으니 싸웁니다. 기꺼이 받아들이거나 맞아들이기에 사이좋을 뿐 아니라 어깨동무를 합니다. 한자말 ‘평화’뿐 아니라 ‘연대·연합·협동·협력’ 같은 결을 바로 ‘사이좋다·어깨동무’가 담아냅니다. 어렴풋한 느낌이 아닌,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면서 알 수 있는 말을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듣고서 생각하도록 이끌어야지 싶어요.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인가(싸움 또는 전쟁)를 낱낱이 헤아리면서, 이대로 그냥 갈는지, 아니면 새롭게 가꾸는 길(사이좋다·어깨동무 또는 평화)로 가고 싶은가를 말 한 마디로 나눌 만하지 싶습니다.


  사전 뜻풀이는 뜻을 풀이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풀다’는 “밝혀서 알도록 이끌다”만 가리키지 않아요. 엉킨 실타래를 더는 안 엉킨 환한 모습이 되도록 이끌기에 ‘풀다’라는 낱말을 씁니다. 뜻풀이라면, 사전 뜻풀이라면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겉모습을 밝히는 구실을 한 가지 하면서, 우리가 마음으로 헤아려서 속내를 스스로 깨닫고 가꾸도록 씨앗을 심고 북돋우는 구실을 하나 더 하는 일이라고 여겨요.


  짤막하게 이야기하고 마치지 않는 마음을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삶은 그저 낱말 몇 가지로만 슬쩍 건드린 뒤에 지나갈 수 없다는 뜻을 헤아려 주시면 좋겠어요. 그냥그냥 쓰는 말에는 그냥그냥 스치는 삶이 흘러요. 가만가만 짚고서 생각하는 말에는 어제하고 오늘을 이어서 모레로 나아가려는 새로운 생각이 반짝반짝 빛나면서 살림을 짓는 바탕이 생겨요. 푸름이 여러분 마음으로 스스로 물어봐 주셔요. 여러분은 어떤 말길하고 삶길하고 마음길을 걷고 싶나요? 전쟁이나 싸움인가요? 평화나 사이좋다나 어깨동무인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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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사춘기란 뭘까요?



[물어봅니다]

  선생님, ‘사춘기’란 뭘까요? 아, 그냥 모르겠어요. 사춘기란 말뜻도, 사춘기가 뭔지도 모르겠어요.


[이야기합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푸름이가 사춘기인가요? 아마 그럴는지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사춘기란 참말 무엇이려나요? 사전 뜻풀이를 넘어서, 또 둘레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대목을 넘어서, 푸름이 스스로 “사춘기란 참말 뭘까?”를 먼저 마음으로 물어보면 좋겠어요.


[표준국어대사전]

사춘기(思春期) : 육체적·정신적으로 성인이 되어 가는 시기. 성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여 이차 성징이 나타나며, 생식 기능이 완성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이성(異性)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춘정(春情)을 느끼게 된다. 청년 초기로 보통 15∼20세를 이른다


  여느 사전에서 ‘사춘기’란 한자말을 찾아보았습니다. “어른이 되어 가며 몸이 달라지며 ‘춘정을 느끼’는 때”가 사춘기라 하는데, 이런 뜻풀이가 가슴으로 와닿는지요?


  제가 어른이란 몸이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이 뜻풀이는 사춘기를 제대로 풀이하지 않은 듯합니다. 자, 사춘기란 한자말을 잘 뜯어 볼게요. ‘思(생각/헤아림) + 春(봄) + 期(때/철)’ 얼개요, 이는 ‘봄을 생각하는/헤아리는 때/철’입니다.


  푸름이 여러분, “봄을 생각하는 때”나 “봄을 헤아리는 철”이란 무엇일까요? 봄은 어떤 철일까요?


 봄 : 새싹. 새잎. 새로운 나뭇가지하고 나무줄기 + 이른 꽃

 여름 : 짙은 잎. 굵은 가지하고 줄기 + 무르익는 꽃 + 이른 열매

 가을 : 바래는 잎. 지는 잎. 가랑잎 + 무르익는 열매 + 갈무리

 겨울 : 씨앗. 새봄을 기다리며 꿈꾸는 잎눈하고 꽃눈


  네 철을 이렇게 갈라 볼 수 있습니다. 이 흐름을 본다면 “봄을 생각하는/봄을 헤아리는” 무렵이란, 새로 돋을 잎을 이야기한다고 할 만해요. 사춘기란, 이제 갓 피어나려는 옅고 보드라우면서 푸른 잎사귀를 그리는 철이나 나이라 할 만하지요. 그러나 아직 여름이 아닌 봄인 터라, 잎이 돋고 줄기나 가지가 차근차근 뻗으려 해요. 아마 사춘기라는 나이나 때나 철을 지나면 줄기하고 가지가 굵으면서 꽃이 피는 흐름으로 들어서겠지요.


  푸름이 여러분은 이런 ‘봄나이’나 ‘봄철’을 그려 보았을까요? 흔히들 사춘기라는 때는 “성호르몬 분비에 따른 이차성징으로 몸이 많이 바뀌면서 힘들고 어지럽고 아픈 나날”로 여깁니다. 그렇지만 굳이 이렇게 볼 일은 없지 싶어요. 우리가 새봄에 마주하는 꽃이며 풀이며 나무는 그다지 아프거나 힘들거나 어지러워 보이지 않거든요.


  봄날 매화꽃이나 벚꽃이 아파 보이는 꽃인가요? 봄에 돋는 새싹이 아파 보이나요? 봄꽃이 어지러워 보이나요? 봄꽃이 힘들어 보이나요? 온통 기쁨으로 반짝이고, 언제나 기쁘게 활짝활짝 웃음을 지으면서 눈부시게 우리를 부르지 않나요? 이리하여 저는 ‘사춘기’라는 낱말을 새롭게 풀이하려고 생각합니다.


[숲노래 사전]

사춘기 : → 꽃나이. 봄나이. 꽃철. 봄철

꽃나이 : 1. 꽃을 생각하거나 그리거나 꿈꾸거나 마음에 품는 나이. 씨앗·열매을 맺으려고 피우는 숨결을 품었다 할 나이나 때 2.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거나 눈부신 나날·때·철·삶이라 여기면서 마음에 품는 나이나 때 3. 가장 돋보이거나 대수롭거나 뜻있거나 크거나 사랑스럽거나 뛰어나거나 아름답다고 할 나이나 때


  먼저 ‘사춘기’란 이름보다는 ‘꽃나이’나 ‘봄나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쓰고 싶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꽃철’이나 ‘봄철’을 함께 쓸 수 있어요. 뜻풀이는 ‘꽃나이’를 붙여 봅니다. 꽃을 생각하는 나이라서 꽃나이라 할 만해요. 꽃을 생각한다는 뜻은 꽃다운 숨결을 앞으로 이루려는 뜻이나 꿈으로 간다는 나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푸름이 여러분이 맞이하는 꽃나이·봄나이·꽃철·봄철은 어지럽거나 힘들거나 아픈 때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꼬물꼬물 애벌레가 깊이 잠들고 나서 눈부신 나비로 거듭나듯이, 푸름이 여러분은 바야흐로 ‘꿈꾸는 애벌레’처럼 한창 꿈을 꾸면서 곧 이 꿈에서 일어나 ‘나비로 거듭나는 길’에 들어선다는 뜻입니다.


꽃나이·푸른꽃나이

봄나이·봄

꽃철·봄철·꽃날·봄날

푸름이·푸른날


  저는 여러분을 ‘푸름이’란 이름으로 부릅니다. 한자말 ‘청소년’은 그다지 안 쓰고 싶습니다. ‘청소년’이란 이름을 사회에서 널리 쓰기는 해도 제 입에는 잘 안 붙어요. 푸르게 빛나고 싶은 꿈꾸는 애벌레다운, 또 새봄을 맞이해서 갓 돋은 맑은 풀빛다운 넋이요 숨결이 바로 여러분이라고 느끼기에, ‘푸르다 + 이’ 얼개로 ‘푸름이’라는 이름을 쓰곤 합니다.


  우리는 사춘기를 거쳐야 할 까닭이 없다고 여깁니다. 꽃나이를 즐겁게 맞이하고 누리면서 꽃철로 접어드는 꽃길을 가면 넉넉하다고 여깁니다. 푸름이 여러분은 중2병도 고2병도 고3병도 아닌 언제나 싱그러운 푸름이요 푸른꽃이요 푸른봄이요 푸른나이라고 느낍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곳에서 푸르게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하는 숨결을 바로 저 같은 어른한테 푸른 사랑으로 나누어 준다고 느낍니다.


  자, 봄철 봄나이를 누려 볼까요? 꽃철 꽃나이를 누리면 어때요? 푸른꽃나이를 누리고, 푸른봄나이를 함께해 봐요. 여러분 모두 다 다르게 빛나는 나비가 되어 온누리에 아름다운 사랑을 널리 펴시면 좋겠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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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풀이하기 어려운 낱말이 있나요?



[물어봅니다]

  국어사전을 쓰시면서 기억에 남거나, 뭔가 뜻을 풀이하기 어려운 낱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이야기합니다]

  ㅅ(시옷) 이야기를 해볼까 싶네요. 저는 처음에 ㅅ이라고 하는 닿소리로 여는 낱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시골에서 살고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삶을 물려줄 수 있어야 어버이다운가를 생각하다 보니까 여러모로 ㅅ하고 얽힌 말이 자꾸 들어오더군요. ‘시골’에서도 시옷이 들어가는데요, 시골이 어떤 곳인가를 생각해 보니까, 다른 사전에 나오는 시골 뜻풀이가 아닌 나 스스로 시골이라는 낱말에 새롭게 뜻풀이를 붙이자고 생각해 보니 두 가지가 있어요. 시골이라고 한다면 첫째는 숲이 있어야 돼요. 숲이 없으면 시골이라고 할 수 없어요. 둘째로는 골, 골짜기, 멧골, 멧갓, 봉우리, 그러니까 산이 있어야 하고요. 숲하고 갓(메·산)이 어우러진 곳이 시골이라 할 만하지 싶더군요. 숲이 있으면 저절로 샘물이 솟아서 냇물이 흐를 테니, 시골이라는 곳은 누구나 스스로 땅을 일구어 밥옷집을 얻거나 살림을 가꿀 수 있는 터전인 셈이지요. 이러면서 온갖 짐승하고 푸나무가 함께 살아가는 곳이고요. 예전에는 생각도 못한 뜻풀이요 얼거리였습니다만, 삶터를 바꾸고 살림을 새로 가꾸면서 비로소 눈에 들어오고 마음으로 느낀 뜻풀이예요.


  서울 같은 도시에 너른 공원이나 높은 산이 함께 있어도 이곳은 시골이 되지 못해요. 집하고 길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저마다 제 땅을 못 누리거든요. 마당이든 텃밭이든 말이지요. 그런데 여느 사전을 살피면 ‘시골’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풀이하고 그쳐요. 오늘날 우리는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살잖아요? 시골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시골에 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작 시골이 어떠한 곳인가를 사전 뜻풀이부터 제대로 못 밝히니, 사람들은 시골을 더더구나 알 수 없겠구나 싶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돈이 많든 적든 학교를 오래 다녔든 아니든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누구나 제 땅에서 삶을 가꾸고 살림을 지을 수 있으면서 맑은 물하고 바람을 누리는 곳이 ‘시골’일 텐데,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라는 뜻을 사전에서 못 밝히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에 우리는 무엇을 볼까요?


  저는 사전 뜻풀이가 어렵다고 여긴 적은 없지만, 바로 이 대목을 늘 느껴요. 저처럼 사전을 새로 쓰고 뜻풀이하고 보기글까지 새로 붙이는 몫을 맡은 사람이 낱말 하나를 놓고서 제대로 짚거나 다루거나 풀이하거나 이야기를 붙이지 못한다면, 또 낱말 하나하고 얽힌 보기글을 슬기로우면서 아름답고 뜻있게 달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어느 낱말 하나만 제대로 모를 뿐 아니라, 그 낱말하고 얽힌 삶이며 생각이며 꿈이며 사랑이며 이야기를 모두 모를 수 있어요. 어느 모로 보면 무섭거나 무시무시한 일이 될 만해요. 고작 사전에서 낱말 하나를 엉성하게 다루고 그치는 일이 아니더군요. 바로 그 엉성하게 다룬 낱말풀이를 읽는 분들이 생각이 고이거나 갇혀 버리기 쉬워요.


[표준국어대사전]

어린이문학 : 1. [문학] 어린이를 대상으로 그들의 교육과 정서를 위하여 창작한 문학. 동요, 동시, 동화, 아동극 따위이다 2. [문학] 어린이가 지은 문학 작품

그림책 : 1. 그림을 모아 놓은 책 2. 어린이를 위하여 주로 그림으로 꾸민 책 3. 그림본으로 쓰는 책 4. ‘화투’를 속되게 이르는 말

동시 : 1. [문학] 주로 어린이를 독자로 예상하고 어린이의 정서를 읊은 시 2. [문학] 어린이가 지은 시


  푸름이 여러분은 동시나 동화를 요즈음 읽는가요? 이제는 안 읽고 소설과 어른시만 읽나요? 어때요? 동시나 동화 같은 어린이문학은, 또 그림책은 푸름이 나이에는 멀리하거나 안 읽을 이야기나 책일까요? 어린이만 읽어야 하는 어린이문학이거나 그림책일까요?


  사전 뜻풀이를 보면 어린이문학이든 그림책이든 동시이든 다 ‘어린이만 보는’ 틀로 담습니다. 자, 이 뜻풀이를 그러려니 하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만, 무척 많은 분들이 이 뜻풀이가 알맞지 않다고 여겨요.


  그런데 무척 많은 분들이 이 뜻풀이가 알맞지 않다고 여겨도 정작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는 이런 뜻풀이를 바로잡거나 손질하거나 고치려고 하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아무래도 적잖은 어른들이 어린이문학을 안 읽거나 그림책을 안 들여다보는 탓일 수 있어요. 푸름이 여러분 같은 딸아들을 낳아서 돌보는 어버이 자리에 서서 어린이문학이나 그림책을 가까이한 어른이라면 흔히 이렇게 말한답니다. “와! 이렇게 아름답고 재미난 책이 어린이문학이었네? 어쩜 이렇게 눈물겹고 웃음나며 사랑스러운 그림책이 다 있을까? 그야말로 쉽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화이고 그림책이네!” 이리하여 ‘동화읽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이 있답니다. 동화나 동시나 그림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누리고 즐기고 나누면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사랑을 배운다’는 마음을 주고받으려고 해요.


[숲노래 사전]

어린이문학 : 삶을 사랑하는 슬기롭고 상냥한 이야기를 어린이 눈높이로 담아서 누구나 읽고 누리고 나누고 즐길 수 있는 글. 어른이 쓰기도 하고 어린이가 쓰기도 한다.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만 읽는 글이 아닌 어린이부터 다같이 읽고 누리며 나누는 글이다

그림책 : 1. 그림을 모으거나 엮거나 담은 책 2. 삶을 사랑하는 슬기롭고 상냥한 이야기를 그림을 바탕으로 엮은 책. 그림을 바탕으로 줄거리를 엮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아기나 어린이도 쉽게 알아보거나 느끼도록 엮기 마련이고, 아기나 어린이부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책

동시 (= 노래꽃)

: 삶을 사랑하는 슬기롭고 상냥한 노래. 어린이 스스로 쓰는 동시가 있고, 어른이 써서 어린이하고 함께 읽는 동시가 있다. 동시는 누가 쓰든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시인데, 시란 우리가 나누는 말을 마치 노래처럼 누리는 글이기에, 따로 ‘노래꽃’이라 해볼 수 있다. 동시도 시도 ‘노래꽃’이라 할 만하다


  제가 쓰는 사전은 이렇게 ‘어린이문학·그림책·동시’ 같은 낱말을 아주 새롭게, 또 오늘날 흐름이나 결에 맞추어서 풀이하려고 합니다. 푸름이 여러분을 만나는 이 자리뿐 아니라 여느 어른을 마주하는 자리에서도 이런 새 뜻풀이를 이야기하지요.


  거듭 말씀을 하겠습니다만, 저는 뜻풀이를 붙이면서 어렵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다만 여느 사전이 여태까지 무척 엉성하거나 한켠으로 기울어진 뜻풀이를 참으로 많이 했다고 느껴요. 저로서는 이런 엉성한 여느 사전 뜻풀이나 한켠으로 기울어진 뜻풀이를 가다듬거나 확 뜯어고쳐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 즐겁고 새로운 빛이 될 뜻풀이하고 보기글을 즐겁게 붙이자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렇게도 이야기할 만해요. 제가 어느 낱말 하나에 뜻을 제대로 붙일 수 있다면, 이리하여 제대로 붙인 뜻풀이를 찬찬히 읽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우리는 어느 낱말 하나를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삶과 살림과 사람과 사랑을 모두 새롭게 바라보면서 스스로 씩씩하게 일어서는 힘을 찾아내거나 키울 수 있답니다.


  그나저나 푸름이 여러분이 궁금해 하는 대목은 이런 얘기가 아닐 수 있을 텐데요, 제가 말풀이를 달기 어려웠던 낱말을 굳이 꼽아 보라면 ‘생각’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하다’라든지 ‘있다’처럼, 아주 쉽고 흔한 낱말이에요. ‘보다’나 ‘주다’나 ‘가다’ 같은 낱말도 섣불리 뜻풀이를 마무리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저로서는 어렵지는 않았고 좀 품이 들었을 뿐이에요. 이를테면 ‘생각’이나 ‘사랑’ 같은 낱말은 뜻풀이를 붙여서 마무리하기까지 적어도 여섯 달이 걸렸어요. 여섯 달을 써서 낱말 하나를 풀이했답니다. ‘보다’나 ‘주다’는 석 달쯤 걸렸고요.


  이렇게 말해도 되겠는데요, 우리가 ‘흔히 어렵다고 여기는 낱말’은 오히려 뜻풀이가 쉽습니다. 우리가 ‘으레 쉽다고 여겨서 사전을 거의 안 찾아보는 낱말’이 도리어 뜻풀이가 어렵다고 할 수 있어요. 이 대목이 참 재미있어요. 생각해 봐요. 푸름이 여러분이 한국말사전에서 ‘있다·보다·주다’나 ‘생각’ 같은 낱말을 찾아보나요? ‘시골’ 같은 낱말도 그렇고요. 그런데 오히려 이런 낱말, 사람들이 사전에서 잘 안 찾아볼 듯한 낱말이야말로 뜻풀이를 제대로 붙이기까지 훨씬 긴 나날에 오랜 품을 들여야 한답니다. 전문용어 같은 낱말은 뜻풀이가 대단히 쉬워요. 삶말이나 살림말은 뜻풀이에 오래오래 마음을 써야 하고요.

  ‘시골’이란 이름을 놓고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제가 시골을 풀이할 적에는, 시골은 ‘숲’하고 ‘살림’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느꼈고, 둘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 있으면 안 어울리겠다고 여겼어요. 둘이 같이 있어야 되고 둘을 사람이 만지지요. 사람이 숲하고 살림 사이에서 둘을 만지는 셈이에요. 이러면서 숲하고 살림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슬기로울 수 있어야겠지요. 사람이 있되 그냥 아무 사람이나 있어야 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슬기로운 사람이 있어야겠지요. 그런데 ‘슬기롭다’고 하는 이 말은 ‘똑똑하다’하고도 이어지거든요. 머리가 좋기만 해서는 슬기롭거나 똑똑하지 않아요. 머리가 좋기만 하면 ‘꾀부리는’ 길로 빠질 수 있답니다. ‘꿍꿍이’를 꾸밀 수 있고요. 그러니까 “사람이 슬기롭게 살림을 살펴서 새롭게 살아가는 숲이 사랑스러워서 시골”이라고 할 수 있다고 느껴요. 집이 숲이 되고, 숲이 집이 되는 터전이 시골이라고 해도 좋고요.


  저는 사람들이 머리가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생각이 밝고 마음이 상냥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요. 더 많은 지식을 머리에 쌓기보다는, 한 가지 지식이라도 즐겁고 상냥하면서 밝고 따스하게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쁜 텃말을 더 많이 알지 않아도 되어요. 말 한 마디에 깃든 고운 넋을 삶으로 받아들여서 즐겁게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이란 그렇거든요. 우리 생각을 말에 담는 대로 우리 하루가 달라질 수 있어요.


  우리는 ‘사람’이 되어서 살아야 할 텐데, 이 사람이란 슬기롭기만 해서는 안 되겠고 사랑이 있어야겠더라고요. 좋은 머리를 사랑으로 보듬을 줄 알아야 되겠더라고요. 머리만 좋아서는 망가지는 사람이 되고요. 이 좋은 머리를 사랑이라고 하는 마음으로 추스를 수 있어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줄 느껴서, “시골 = 숲 + 살림”인데 여기에 ‘사람’이 있고 사람마다 ‘슬기’가 더 있으며, 슬기는 다시 사람으로 이어져, 여기에는 이제 삶이 태어날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삶이 태어나는 곳에는 무엇이 있느냐 하면 새로운 생각이 자랄 수 있어요. 새로운 생각은 우리 목숨, 숨을 살리는 결이라고 해서 ‘숨결’이 되고요. 바로 이 숨결은 오늘 내가 이곳에 있는 ‘씨앗’이 되는구나 싶더군요. 이렇게 해서 저는 ㅅ으로 여는 말을 아주 좋아해요. ㅅ을 좋아해서 ㅅ 낱말을 틈틈이 다시 읽어 보기도 하는데요. 뜻풀이를 마무리했어도 ‘삶’이나 ‘사람’이나 ‘생각’이나 ‘슬기’ 같은 낱말에 붙인 풀이를 꾸준히 보태거나 새로 이어 보려고 하기도 합니다.


  뜻풀이 붙이기란 한 벌로 그치지 않거든요. 어느 낱말 하나를 어느 때에 새롭게 쓰기도 하고요. 새로운 쓰임새가 나타나면 이 새로운 쓰임새를 뜻풀이에 더 담을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이 대목을 어렵게 여기면 사전짓기는 끝내 할 수 없는 일이 되지만, 늘 새롭게 쓰임새가 늘어나는 말을 사랑할 수 있다면, “말풀이는 끝날 수 없어서 한결 즐겁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할 수 있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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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나이를 새롭게 읽고 싶어요


[물어봅니다]
  저는 이제 열다섯 살이에요. 국어 시간에 배웠는데 열다섯 살이면 ‘지학(志學)’이라 하고, 논어에 나오는 말이라고 해요. 그런데 ‘지학’이란 말은 중국사람이 지은 말이잖아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다른 이름을 지을 수 있을까요?

[이야기합니다]
  한자를 바탕으로 한문을 쓰는 중국에서는 마땅히 한자로 새말을 엮어서 씁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한글이란 글씨를 씁니다만, 이 글씨가 없었어도 모두 말로 이야기를 엮어서 나누었어요. 다만 한국은 아직 한글이란 글씨를 마음껏 쓴 지 오래지 않아서, 우리가 스스로 우리 입으로 나누는 말로 새 낱말을 짓는 길이 서툴거나 낯설다고 여기곤 합니다.

  중국에서 ‘지학’이란 한자를 엮은 얼개를 보면, 그냥 두 한자 ‘지(志) + 학(學)’으로 썼을 뿐이에요. 열다섯 살이라는 나이라면 제대로 널리 배우는 길을 간다는 뜻일 텐데요, 이때에 배움이란 학교만 다니거나 책만 읽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온누리를 둘러싼 삶이며 살림이며 숨결을 고루 살펴서 배운다는 뜻이랍니다. 이른바 철이 제대로 들면서 머리가 트이고 마음을 열며 온사랑으로 일어선다는 뜻이라고 할 만해요.

  저한테 물어보신 말을 곰곰이 생각하니, ‘지학’뿐 아니라 여러 가지 이름이 있네요.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같은 나이를 두고서 ‘약관,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같은 한자 이름이 있네요. 또 일흔 나이를 두고서 ‘고희’나 ‘종심’이나 ‘희수’란 한자 이름도 있어요.

  한국에서 쓰는 이름을 보면 아직 ‘열다섯,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처럼 숫자를 나타내는 이름만 있네요.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나이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북돋우는 이름’을 지을 만하겠어요.

[숲노래 사전]
열다섯·배움나이·배움길·배움눈길·배움철 ← 십오 세, 지학(志學)
스물·의젓나이·의젓길·의젓눈길·의젓철 ← 이십 세, 약관(弱冠)
서른·똑똑나이·똑똑길·똑똑눈길·똑똑철 ← 삼십 세, 이립(而立)
마흔·홀가분나이·홀가분길·홀가분눈길·홀가분철 ← 사십 세, 불혹(不惑)
쉰·하늘나이·하늘알이·하늘눈길·하늘철 ← 오십 세, 지천명(知天命), 지천(知天)
예순·둥글나이·둥글길·둥근눈길·둥근철 ← 육십 세, 육순(六旬), 이순(耳順)
일흔·바른나이·바른눈길·바른길·바른철 ← 칠십 세, 칠순, 고희(古稀), 종심(從心), 희수(稀壽)
여든·트인나이·트인길·트인눈길·트인철 ← 팔십 세, 팔순
아흔·고운나이·고운길·고운눈길·고운철 ← 구십 세, 구순
아흔아홉 ← 백수(白壽)
온·온나이·온길·온눈길·온철 ← 벡 세

  배우는 나이라면 ‘배움나이’라 하면 되어요. 아주 수수하지요. 그러나 수수한 이름부터 생각하면 좋겠어요. 바로 이 수수한 이름에서 새롭게 생각을 지필 이름이 태어나는 바탕이 서거든요. 배움나이란 ‘배움길’이면서 ‘배움눈길’이 돼요. 그리고 배우면서 철이 든다는 얼거리로 ‘배움철’이라 해도 되겠지요.

  스무 살은 의젓하게 서는 나이라고 느껴요. 이때에는 푸름이 여러분도 어버이 손길을 떠나 스스로 삶터를 부대낀다고 할 만하니 의젓하게 서겠지요? ‘의젓나이’예요.

  서른 살은 그동안 배운 길을 가다듬고 여태 의젓하게 살아온 나날을 되짚을 테니 한결 똑똑하다고 여길 만해요. ‘똑똑나이’라 하면 어떨까요? 마흔이라는 나이에 이르면 둘레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누가 꼬드긴대서 넘어가지 않을 만하고, 남이 무어라 따져도 가볍게 튕길 줄 아는 나이래요. 그래서 ‘홀가분나이’라 해보고 싶어요.

  쉰이라고 하면 하늘이 흐르는 길을 안다고들 하니 ‘하늘나이’라 하면 어울릴까요? 예순이라고 하면 이제 모가 사라지고 둥글둥글 어우러지거나 사귄다고들 합니다. 이런 모습을 고스란히 살려서 ‘둥글나이’라 해도 좋겠어요.

  이다음 일흔부터는 우리 나름대로 생각할 대목이에요. 배웠고, 의젓했고, 똑똑했고, 홀가분했고, 하늘을 읽었고, 둥글둥글했다면, 이제는 언제 어디에서나 바르리라 여겨요. ‘바른나이’라 할 만해요. 여든이라면 바른눈길을 넘어서 활짝 마음을 틔우는 때이지 싶어요. ‘트인나이’라 해보고 싶습니다.

  바야흐로 아흔 줄에 접어들면 이 모든 살림을 곱게 다스리면서 스스로 고운 눈빛이 되는 ‘고운나이’라 할 수 있다고 느껴요. 그리고 백 살에 다다르면, ‘온’이란 낱말을 넣고 싶어요. 한국말 ‘온’은 바로 ‘100(백百)’이라는 한자를 나타낸답니다. 그리고 ‘온’은 숫자 ‘100’뿐 아니라 ‘모두·모든’을 가리켜요. 그래서 ‘온나이’라 하면 모든 것을 아우를 줄 아는 너르면서 깊은 숨결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생각해서 이름을 붙여 본 나이를 갈무리해 볼게요. 배움나이(15), 의젓나이(20), 똑똑나이(30), 홀가분나이(40), 하늘나이(50), 둥글나이(60), 바른나이(70), 트인나이(80), 고운나이(90), 온나이(100)입니다. 저부터 스스로 이러한 나이를 거치는 동안 이러한 숨결이자 몸짓이자 마음이 되고 싶은 뜻을 담아서 이름을 지었어요. 푸름이 여러분은 어떤 이름이 되고 싶나요? 어느 나이에 어떤 마음이자 살림이자 사랑으로 서고 싶나요?

  푸름이 여러분도 스스로 나이에 맞는 이름을 지어서 그 나이를 살아내 보시면 좋겠어요. 우리가 스스로 이름을 지어서 그 나이를 살아낸다면 참말로 우리는 그러한 마음이자 눈빛이자 생각이자 사랑으로 살림을 짓고 살아가는 슬기로운 어른이자 사람이 될 만하다고 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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