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이오덕한테서 : 2003∼2007년에 이오덕 어른 글·책을 갈무리하면서 어른이 남긴 글을 모조리 30벌 넘게 되읽었다. 그때 느낀 한 가지를 추리면 “나(이오덕)는 늘 새롭게 배우는 사람이고, 첫째는 숲(산)에서, 둘째는 어린이(하느님)한테서, 셋째는 스스로(참된 나) 배운다”였지 싶다. ‘이오덕을 따른다’라든지 ‘이오덕한테서 배운다’고 말하고 싶다면 바로 이 대목을 스스로 즐거이 맞아들여서 누리면 될 노릇이라고 본다. 2020.8.3.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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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lives matter : 미국이란 나라에서 흰사람이 검은사람을 따돌리거나 괴롭힌다지만, 검은사람은 아시아사람을 따돌리거나 괴롭힌다. 오늘날 미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를 둘러보아도 “Asian lives matter”라고 외칠 판이다. 흰사람은 검은사람이나 아시아사람을 두루 따돌리거나 괴롭히지. 더구나 한국이란 나라를 보면, 한국도 아시아인데 다른 아시아 나라를 얕보거나 괴롭히거나 따돌리기 일쑤이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도 매한가지이다. ‘그들 모두’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받지만, ‘그들도 다른 곳에서는 우쭐질’을 일삼는다. “black lives matter”는 틀림없이 뜻있는 말이지만, “Asian lives matter”라든지 “poor lives matter”를 함께 생각해야지 싶다. “forest lives matter”하고 “all lives matter”에 “Earth lives matter”를 노래하고 싶다. 2020.8.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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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익 : “사회에 나와서 활동을 하고 아는 사람을 만들어야지, 시골에 그렇게 처박혀서 혼자 살면 아무리 대단한 컨텐츠가 있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 왜 스스로 불이익을 받으려고 그래?” 그러면 시골에 처박히지 않고 서울이나 큰고장에서 살며  ‘무슨무슨 편집장이나 사장이나 시장이나 군수·교수·작가’ 같은 사람들하고 술을 자주 마시고 얼굴도 늘 보면 불이익이 없을까. 그런 불이익이 없으면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삶일까. 나는 이익도 불이익도 바라지 않는다. 오직 스스로 할 일을 하면서 스스로 쉬고 아이들 곁에서 하루를 그릴 뿐. ‘무슨무슨 편집장이나 사장이나 시장이나 군수·교수·작가’가 대단한들 그들하고 아이들을 바꿀 맘은 터럭만큼도 없다. 그들하고 어울릴 겨를을 낼 마음이 조금도 없다. 우리가 사는 이 터전이 참답다면, 내가 시골에 살든 서울에 살든, 또 이런저런 이름값 있는 이들을 만나건 안 만나건, 저마다 다르게 그리는 꿈을 사랑스레 펼치면서 누리고 나누면서 노래가 흐르겠지. 2020.7.2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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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문고 : 나는 군대에서 스물여섯 달을 살아내는 동안에 책을 읽은 적이 없다. 책을 읽을 틈이 없기도 했으나, 강원 양구 ‘완전무장지대’에 있던 작은 중대 작은 내무반에는 텔레비전이 하나 있을 뿐, 종이뭉치란 있지 않았다. 대대쯤 가면 어디에선가 진중문고란 조그만 책꾸러미를 구경할 만했지만, 이 진중문고를 중대 소총수는 건드릴 수 없었지. 이런 군대에서 스물여섯 달을 살아남으려고 하면서 언제나 주먹을 불끈 쥐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벗어나는 날부터 책을 반드시 만나고야 말겠다”고, “군대에서 살아남아 바깥으로 나가는 날부터 책을 두 손에서 안 떨어뜨리겠다”고 굳세게 다짐에 다짐에 다짐에, 하늘을 보고 들꽃을 보고 골짜기를 보면서 이렇게 버티며 살아남았다. 2019.7.23.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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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읽는이 : 글쓴이가 언제나 첫 읽는이인 만큼, 첫 읽는이인 스스로 보기에 가장 마음에 들 때가, 바로 글꾸러미를 출판사에 넘기는 때라고 여긴다. 아무래도 사람마다 다르게 볼 텐데, 나는 ‘욕심 내려놓기’를 할 뜻이 없다. 나는 ‘스스로 어떻게 하루를 살아가면서 오늘을 사랑하는 길을 꿈으로 지어서 글로 담으면 즐거울까’ 하고 생각한다. 욕심을 내려놓느니 버리느니 치우느니 하고 따질 마음이 없다. 나는 욕심이 아닌 꿈만 바라보려고 한다. 나는 스스로 즐겁게 짓고 스스로 기쁘게 펴며 스스로 아름답게 피어나는 날갯짓을 글 한 줄에 담으려고 생각한다. ‘욕심 내려놓기’를 하면 뭐가 달라질까? 글쎄, 뭔가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꿈짓기’랑 ‘사랑짓기’로 하루를 살아내면 글이란 어느새 태어나지 싶다. ‘삶짓기’하고 ‘살림짓기’로 하루를 누리면 글이란 저절로 샘솟지 싶다. 누구나 스스로 아름꿈을 꾸면서 나아가면 누구나 아름글을 일굴 만하다고 여긴다. 2005.6.5.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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