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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진은영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9월
평점 :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다듬읽기 239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진은영
마음산책
2024.9.15.
옷에 몸을 맞춘다면 옷이 찢어지거나 몸이 구겨집니다. 몸에 옷을 맞춰야 옷이 살아나고 몸을 활짝 폅니다. 오늘날 누구나 글을 누릴 만하지만, 막상 “마음을 담는 말”을 “글이라는 그릇으로 얹는” 길을 여는 사람은 드물다고 느낍니다. 마음에 맞추어 말을 살피고서 담는 글이 아닌, 그릇에 글을 맞추면서 말과 마음까지 그릇에 맞추려는 분이 무척 많구나 싶습니다.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은 무엇에 맞거나 맞추려는 줄거리일까요? 바깥(세계)에 나를 맞춰야 할 까닭이 없을 뿐 아니라, 처음부터 바깥을 쳐다볼 까닭이 없기도 합니다. 내가 나로서 나부터 사랑으로 바라보지 않고서야, 안도 바깥도 나답게 마주하지 못 합니다. 언제나 내가 나로서 나부터 사랑으로 바라볼 적에, 나한테 맞는 ‘마음이라는 빛그릇’을 알아볼 수 있고, 저마다 다른 ‘마음그릇이라는 곳’에 ‘말이라는 소리빛’을 담을 수 있으며, 말이라는 소리빛을 가만히 ‘글이라는 그림빛’을 옮길 수 있습니다.
진은영 씨는 “수잔 손택은 소년이 되고 싶은 여자아이들은 많지만 소녀가 되고 싶어 하는 남자아이들은 드물다고 말한다(36쪽)” 하고 말하는데 고개를 갸우뚱할 대목입니다. ‘드물다’는 ‘없다’는 뜻일 수 없습니다. 머스마가 되고픈 가시내가 많을 수 있으나, 굳이 머스마가 안 되려는 가시내도 많습니다. 또한 머스마는 스스로 못 밝힐 뿐, 가시내가 되려는 머스마도 꽤 많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한테는 암수라는 빛씨가 나란히 있어요. 암씨나 수씨만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으로 서려면 왼오른이 나란할 노릇이고, 암수를 살피는 빛줄기가 함께 있을 일입니다. 왼눈과 오른눈을 고르게 맞추기에 앞을 제대로 봅니다. 왼발과 오른발을 고르게 놀리기에 앞으로 제대로 걷습니다.
‘제대로’란, ‘저(나)대로’라는 뜻입니다. 내가 나대로 바라보고 걸어가려면 ‘왼오른’을 나란히 보는 마음그릇일 노릇이에요. 겉몸으로 암이건 수이건 대수롭지 않아요. 누구나 암수가 나란한 몸빛이나 마음빛인 터라, 이 두빛을 한빛으로 녹여낼(맞출) 길을 스스로(나답게) 바라보고 찾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을 일구고 짓습니다.
진은영 씨는 “천황의 무의미한 전쟁놀이로 젊은이들의 삶은 부서져버렸다(106쪽).”고도 적는데, 일본 우두머리는 ‘무의미한 전쟁놀이’가 아니라 ‘바보짓 쌈박노닥질’을 했습니다. 그들은 ‘놀이’가 아닌 ‘노닥질’을 했고, 숱한 순이돌이를 그저 마구잡이로 죽음터로 내몰았어요. “젊은이들의 삶은 부서져버렸다”고 말할 만하지 않습니다. “젊은이와 늙은이와 어린이를 몽땅, 여기에 들숲바다와 푸른별까지 싹쓸이를 하듯, 와장창 짓밟고 짓뭉개고 죽여버렸다”고 말해야 맞습니다.
마음과 말이란 무엇인지 바라보면서 글결을 가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부터 쓰거나 글을 치레하는 길이 아닌, 글이 왜 글인지 가만히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요. 우리는 이 땅에서 “수수한 사람들이 누구나 제 보금자리에서 살림빛으로 일구고 지은 숲말과 사랑말을 글결로 옮기는 길”부터 살필 노릇이라고 봅니다.
ㅍㄹㄴ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진은영, 마음산책, 2024)
책 읽기의 무용함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 책읽기가 덧없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 책읽기가 부질없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7쪽
그의 고백처럼 책 속에서 연명했던 것이다
→ 그이 말처럼 책으로 견뎠다
→ 그가 말하듯 책으로 버텼다
9쪽
그런 삶을 소망하는 사람이 이 세계에 적어도 한 명은 존재하고
→ 그런 삶을 바라는 사람이 이 땅에 적어도 하나는 있고
→ 그렇게 살려는 사람이 이곳에 적어도 하나는 있고
10쪽
여러 사람의 우정과 도움으로 한결 좋아진 것 같다
→ 여러 사람이 따사로이 도와서 한결 낫다
→ 여러 사람이 사근사근 도와서 한결 즐겁다
→ 여러 사람이 동무하며 한결 느긋하다
11쪽
독자를 황당하게 만들면서 소설을 시작하는 것은 카프카의 특기다
→ 카프카는 글머리를 뜬금없이 열곤 한다
→ 카프카는 우리 넋을 빼면서 글머리를 연다
20쪽
이 중 어느 버전도 택하지 않는다
→ 이 가운데 어느 길도 안 고른다
→ 여기서 어느 판도 고르지 않는다
21쪽
《파도》의 집필로 들어가기 전에
→ 《파도》를 쓰기 앞서
→ 《파도》를 쓸 즈음에
28쪽
그녀가 이런 환상적인 소설을 쓴 것은 소년이 되고 싶다는 소망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 사내아이가 되고 싶기에 이런 멋진 글을 썼다고 본다
→ 머스마가 되고 싶기에 이렇게 아름글을 썼으리라
29쪽
실비아 플라스도 똑같은 불만을 토로했다
→ 실비아 플라스도 똑같이 발끈했다
→ 실비아 플라스도 똑같이 투덜댔다
30쪽
행위하기가 기능하기로 대체될 때 대화와 설득의 공간인 공적영역은 사라진다
→ 움직이기가 굴러가기로 바뀔 때 이야기하고 다독이는 너른터는 사라진다
→ 일이 힘으로 바뀌면 얘기하고 달래는 열린터는 사라진다
44쪽
나의 죽음이 내가 아닌 것이 되는 비인칭의 죽음이라면
→ 내가 죽어도 내가 아닌 아무개 죽음이라면
→ 내가 죽지만 나 아닌 살덩이라면
→ 내 죽음이 나 아닌 어느 것이라면
60쪽
후일 영국의 계관시인이 된
→ 뒷날 영국 노래꽃님이 된
→ 나중에 영국 노래별이 된
78쪽
관능적이라고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고
→ 달짝지근할 만큼 후끈하다고
→ 낯뜨거울 만큼 불타오른다고
85쪽
쉽고 명징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시구다
→ 쉽고 깔끔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글이다
→ 쉽고 또렷하지만 마음을 울린다
92쪽
엄마가 아빠는 죽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그녀도 남편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엄마는 아빠가 죽었다고 말하지 못한다. 엄마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 엄마는 아빠가 죽었다고 말하지 못한다. 엄마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다
100쪽
폐허의 거리를 쏘다니지만 결국 자신이 무언가 제대로 판단할 수도 없는 어리바리한 상태임을 깨닫고는 몹시 쓸쓸해진다
→ 휑한 거리를 쏘다니지만 마침내 스스로 무언가 제대로 볼 수도 없는 줄 깨닫고는 몹시 쓸쓸하다
→ 무너진 거리를 쏘다니지만 끝내 스스로 어리바리한 줄 깨닫고는 몹시 쓸쓸하다
106쪽
많은 사람이 원치 않는 드러남으로 인해 타인의 눈요기나 악의의 표적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 숱한 사람이 바라지 않아도 드러나야 해서 구경거리나 놀림감이 되니 말이다
→ 적잖은 사람이 뜻하지 않아도 드러나면서 구경감이나 비웃음감이 되니 말이다
128쪽
독자들은 그녀의 글을 읽고 나면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 사람들은 이 글을 읽고 나면 거북하리라
→ 이런 글을 읽고 나면 누구나 고단하리라
135쪽
또한 사랑은 무차별적이어야 한다
→ 또한 사랑은 대중없어야 한다
→ 또한 사랑은 안 가려야 한다
149쪽
물론 이 시적 정의에 반감이 생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 다만 이 노래풀이가 거슬리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 그리고 이런 노래새김이 싫은 사람도 있을 터이다
156쪽
조개껍질은 가장 약한 연체동물이 사는 가장 단단한 집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무늬를 가졌다
→ 조개껍질은 가장 여린 말랑이가 사는 가장 단단한 집이다. 이 집은 무늬가 아름답다
→ 조개껍질은 가장 여린 말랑몸이 사는 가장 단단한 집이다. 이 집은 아름무늬이다
157쪽
이 세상 다른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저 내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일 뿐이며
→ 이 땅 다른 사람들은 누구이든 그저 내 길을 가로막을 뿐이다
→ 온누리 사람들은 누구이든 그저 내 길을 가로막는다
166쪽
A가 X에게 전하려는 것은 어떤 이미지다
→ ㄱ은 ㅌ한테 어떤 그림을 보여준다
→ ㄱ은 ㅌ한테 어떤 빛을 건넨다
170쪽
누군지도 모르는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했다
→ 누군지도 모르는 가신님을 기렸다
→ 누군지도 모르는 떠남님을 되새겼다
189쪽
다른 존재들을 구하거나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창하게 새로운 인간이 될 필요는 없다
→ 다른 누구를 돕거나 우리가 바라는 터전을 이룰 적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대단하게 새로운 사람이 될 까닭은 없다
→ 다른 님을 살리거나 우리가 바라는 삶터를 일굴 적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대단하게 새사람이 되지 않아도 된다
205쪽
훌륭한 책들은 새로운 친구와 좋은 적이 계속해서 필요하다
→ 책이 훌륭하려면 새동무와 착한놈이 내내 있어야 한다
→ 책이 훌륭하자면 동무하거나 나무라는 이가 늘 있어야 한다
231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