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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책, 예쁜 사람



  온누리에 예쁜 책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온누리에 예쁜 사람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온누리에 안 예쁜 책이나 안 예쁜 사람이 있을까요? 가만히 생각을 기울여 봅니다. 안 예쁜 책이 있다면, 어떤 책이 안 예쁠까요? 우스꽝스럽거나 엉터리 같은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안 예쁠까요? 이웃을 괴롭히거나 깎아내리는 이야기를 싣는 책은 안 예쁠까요? 아무래도 이런 책은 안 예쁘다고 여길 만합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예쁜 책이라고 여기기 어렵습니다. 삶을 밝히지 못하는 책도 예쁘다고 하기 어렵고, 사랑과 등돌리거나 사랑을 가리거나 사랑을 도무지 모르는 책도 예쁘다고 하기 힘듭니다. 다만, 이러한 책도 앞으로는 스스로 어떤 모습인지 깨닫고 예쁜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앞으로 예쁜 모습으로 거듭나는 날까지는 ‘아직 예쁘지 않으나 이제부터 예쁜 길로 갈 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예쁘지 않다 싶은 사람도 이와 같으리라 느껴요. 우리 마음속에 깃든 고운 님을 알아차리거나 바로보지 못한 채 이웃을 괴롭히는 사람은, 이웃뿐 아니라 나 스스로 내가 나를 괴롭히는 셈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쁠 수 없어요. 그러나, 내가 나를 스스로 괴롭히는 사람이 내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앞으로는 예쁜 삶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모두 예쁜 사람이 됩니다. 이리하여 ‘아직 예쁘지는 않으나 이제부터 예쁜 사람으로 살아갈 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예쁜 책을 알아보고 장만해서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예쁜 사람입니다. 예쁜 사람이 손에 쥐는 책은 모두 예쁜 책입니다. 4348.2.2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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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할아버지와 도서상품권



  올해 설날에 음성으로 아이들과 마실을 다녀오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나 듣는다. 내 아버지이자 아이들 할아버지는 퍽 예전부터 동시를 쓰셨고, 내가 국민학교 다닐 무렵 신춘문예에 뽑히기도 했다. 이제는 시골자락에서 조용히 지내는데, 내 아버지가 꽤 예전에 쓴 어느 동시를 2015년 ‘우리은행 책상달력’에 실었다고 한다. 한 해 열두 달이니까 열두 가지 싯말 가운데 하나로 실린 셈인데, 책상달력에 내 아버지 시를 한 줄 실으면서 ‘글삯’으로 10만 원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나마 이 글삯을 맞돈(현금)이 아닌 도서상품권으로 주었단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책상달력에 넣는 ‘글 한 줄’이지만, 한쪽에 통으로 들어가는 글이다. 책상달력 한쪽에 통으로 넣는 사진 한 장이라면 값을 얼마쯤 칠까?


  아무튼 ‘시골에 사는 일흔 넘은 할아버지’한테 도서상품권 열 장을 보내 주면서, ‘시골에 사는 늙은이’가 이런 도서상품권을 어디에서 어떻게 쓰느냐 하고 물으니, 내 아버지더러 이 도서상품권을 ‘인터넷에 등록해서 어찌저찌 하면 된다’고 알려주더란다. 인터넷을 조금 하실 줄 알지만 잘 하실 줄 모르는 아버지는 ‘알았다’ 한 마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는데, 아무리 보아도 도서상품권을 쓸 자리가 없단다.


  시를 쓰는 할아버지한테 글삯으로 준 도서상품권 열 장을 내가 물려받는다. 나는 이 열 장을 들고 고흥 시골집으로 돌아온다. 하룻밤을 푹 쉰 뒤 인터넷을 켜서 등록하는 길을 살핀다. 내 아버지보다 젊은 내가 이 도서상품권을 인터넷으로 등록하는 데에 자그마치 20분이 넘게 걸린다. 등록하는 사이트를 찾느라 몇 분이 걸리고, 사이트를 찾아서 가입을 했더니, 도서상품권과 도서문화상품권이 다르다면서 등록이 안 되어, 다른 사이트를 살피니 예전에 가입한 아이디가 있다 해서 이래저래 다시 비밀번호랑 찾아서 등록을 하려는데, 키보드보안 프로그램이니 무어니 하면서 거푸 인터넷창이 닫히고 다시 열고 되풀이한다. 가만히 보니 ‘크롬’으로는 등록이 안 된다. 한참 뒤에 깨닫고는 ‘익스플로어’를 돌려서 겨우 등록을 하는데, 등록을 한 뒤 인터넷서점에서 책 결재를 하려는데 또 몇 분이 걸린다.


  도시에서라면 도서상품권이든 도서문화상품권이든 문화상품권이든 다 좋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참 힘겹다. 그나저나, ‘우리은행 책상달력’ 글삯은 왜 도서상품권으로 줄까? 은행에 돈이 없기 때문인가? 시를 쓰는 할아버지한테 줄 10만 원이 없는데 책상달력은 무슨 돈으로 찍었을까? 4348.2.2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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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2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5-02-22 04:53   좋아요 0 | URL
책방이 가까운 곳에 있다면... 책방에 가서 쓸 테지만... 이것을 쓰기란 이제는 만만하지 않은 일이 되었어요...

희망찬샘 2015-02-22 09:55   좋아요 0 | URL
저도 인터넷 등록 처음 할 때 애먹었던 기억이 있어 화악 와 닿네요. 시골 할아버지께 현금을 드렸더라면 정말 요긴했을텐데... 상대를 생각해 보는 헤아림이 부족한 세상입니다.

숲노래 2015-02-22 10:20   좋아요 0 | URL
네, 다른 분들도 애먹기는 마찬가지로군요 ^^;;;;

생각해 보면,
돈이 없을 만한 곳도 아닌 `은행`인데
은행 달력을 만들면서
그 달력에 들어갈 `큰 자리`를 차지하는 글을 써 준 사람한테
글삯(원고료)을 도서상품권으로 준다는 생각부터
참으로... `은행스러운`지 모르겠지만...
거석하더라구요 ^^
 

새책



  새책이란 ‘새로 나온 책’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 나온 책을 ‘새책’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책을 너무 좁게 바라본 셈입니다. 새로 나오는 책이라 하지만, 처음 나온 때가 꽤 오래된 책이 있어요. 겉모습만 보면서 새책인지 아닌지 가르면, 책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그러면, 새책을 넓게 바라보는 눈길은 무엇일까요?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야 비로소 새책이라 할 만하다고 봅니다. 새롭게 읽을 책이 아니라면, 새책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우리는 새책방에 가서 헌책만 잔뜩 사들일 수 있습니다. 생김새로는 번드레레하지만, 속에 담은 줄거리나 알맹이는 낡거나 오래될 수 있어요. 새로운 이야기가 하나도 없이 겉만 번드레레하다면 헌책입니다.


  우리는 헌책방에 가서 새책을 잔뜩 장만할 수 있습니다. 생김새로는 낡고 오래되었으나 줄거리와 알맹이는 새로울 수 있어요. 몇 번 다시 읽어도 늘 새로운 이야기라 할 때에 비로소 새책이라 할 만합니다.


  날마다 새로움을 보는 사람은 날마다 새로운 글을 씁니다. 어느 날도 새로움을 못 보는 사람은 언제나 아무 글도 못 씁니다. 스스로 하루를 새롭게 열 때에 새로움을 맞이합니다. 스스로 하루를 새롭게 열지 않는다면, 둘레에서 아무리 부추기거나 북돋아도 새로움은 찾거나 느낄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쳇바퀴 돌듯이 출퇴근을 하기에 새로움이 없다고 할 만할까요? 전철과 버스에서 아침저녁으로 시달리더라도, 스스로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새로운 하루가 되어 새로운 기쁨을 누리면서 나눕니다. 스스로 생각을 새롭게 짓지 않기에 언제나 따분하거나 고단하거나 힘겨운 하루가 되어 ‘새책’을 못 보고 못 읽습니다.


  시끄러운 찻길에서도 책을 펼쳐서 읽는 사람은 두 갈래일 테지요. 하나는 ‘낡은 책’을 억지스레 붙잡으면서 무언가 거머쥐거나 얻으려는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새책’을 홀가분하게 펼치면서 기쁘게 이야기꽃을 피우려는 사람입니다. 4348.2.2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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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안 읽고 ‘좌파 몰아붙이기’ 일삼는 사람들



  며칠 사이에 무척 뜬금없는 일이 터졌다. 그야말로 수수한 청소년 인문책인 《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를 놓고, 마치 이 책이 ‘6·25가 해방전쟁’이고 ‘김일성은 개혁’이라든지 ‘이승만이 6·25 유도’ 따위를 주장했다고 하면서, 책 한 권에 ‘좌파 몰아붙이기’를 일삼는다. 이 짓을 일삼은 곳은 부산시교육청이고, 이 다음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와 뉴데일리와 채널A라는 곳에서 엉터리 받아쓰기 기사를 자꾸 내보낸다.


  이들은 책을 읽지도 않고서 이런 막말을 기사로 내보낸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어 보았다면, 이 책을 쓴 이임하 교수는 이런 주장을 한 마디도 안 하기 때문이다. 이임하 교수는 ‘삐라’와 ‘남·북한 선전물’과 ‘여러 자료’에 나온 이야기를 그러모아서, 남녘은 이렇게 주장하고 북녘은 저렇게 주장하는 ‘한국전쟁’ 이야기를 책 한 권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러니까, 북녘에서 만든 삐라나 선전물에 나온 이야기를 ‘책에 따왔(인용)’대서 그런 ‘따온 말’이 글쓴이 주장이나 출판사 주장이 될까?


  ㅈㅈㄷ이나 종편에서 이런 주장을 한다면, 이들 ㅈㅈㄷ과 종편도 ‘따온 말’을 써서 기사를 썼으니, ㅈㅈㄷ이나 종편이야말로 이런 주장을 똑같이 한다고 말해도 될까?


  비판이든 비난이든, 책을 다 읽고 나서 제대로 할 노릇이다. 책을 제대로 안 읽고 남을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리거나 ‘흑색선전’이나 ‘적색선전’이나 ‘좌파 몰아붙이기’를 하는 사람은 모두 제넋을 되찾을 노릇이다. 부디, 책 좀 읽읍시다. 4348.2.13.쇠.ㅎㄲㅅㄱ


+


바보스러운 일에 휩쓸린 '철수와영희' 출판사 일꾼들 모두 기운을 내시기를 빈다. 참(진실)은 곧 드러나기 마련이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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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려고 읽는 책



  책을 읽는 사람은 달라집니다. 오늘까지 이만큼 알았으면 오늘부터 여기에 하나를 더 얹어서 달라집니다. 그런데 이 모습에서 저 모습으로 갈 적에도 달라진다고 할 만합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모습도 달라진 셈이라고 할 만합니다.


  책을 겉으로만 읽는다면 ‘달라지기’만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속으로 읽는다면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달라지기와 새로워지기는 서로 같은 듯하면서 같지 않습니다. 겉모습이 어제와 같지 않을 적에는 ‘달라지기’요, 속생각이 어제 모습을 내려놓고 고운 꽃처럼 피어날 적에는 ‘새로워지기’입니다.


  책을 읽어 머릿속에 지식을 담는다면 ‘달라지기’입니다. 책을 읽어서 느끼고 배우고 제대로 삶을 바라볼 수 있으면서 스스로 기운을 내어 살림을 하나하나 손수 짓는 길로 나아간다면 비로소 ‘새로워지기’입니다.


  누군가는 그저 ‘달라지’려고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제까지 입은 껍데기를 벗고서 ‘새롭게’ 태어나려는 뜻으로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달라지기만 한대서 나쁘지 않습니다. 달라지고 또 달라지면서 ‘나도 이제 허물을 벗고 나비처럼 새롭게 태어나고 싶구나’ 하는 꿈을 품을 수 있을 테니까요. 작은 허물을 벗고 큰 허물을 벗으면서 그대로 애벌레인 채 있는 ‘달라지기’만으로는 새로운 삶이 안 되는 줄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면, 이제 모든 허물을 벗고 나비로 새롭게 깨어날 때입니다.


  허물벗기는 한 차례만 해도 되고 열 차례나 백 차례를 해도 됩니다. 허물벗기를 적게 하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허물벗기를 많이 하기에 덜떨어지지 않습니다. 허물을 모두 내려놓고 새로운 숨결로 태어나려는 마음이 있으면 됩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늘 새롭게 깨어나고 태어나서 아름답게 노래하는 나비처럼 환하게 빛날 수 있습니다. 4348.2.13.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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