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새책이란 ‘새로 나온 책’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 나온 책을 ‘새책’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책을 너무 좁게 바라본 셈입니다. 새로 나오는 책이라 하지만, 처음 나온 때가 꽤 오래된 책이 있어요. 겉모습만 보면서 새책인지 아닌지 가르면, 책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그러면, 새책을 넓게 바라보는 눈길은 무엇일까요?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야 비로소 새책이라 할 만하다고 봅니다. 새롭게 읽을 책이 아니라면, 새책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우리는 새책방에 가서 헌책만 잔뜩 사들일 수 있습니다. 생김새로는 번드레레하지만, 속에 담은 줄거리나 알맹이는 낡거나 오래될 수 있어요. 새로운 이야기가 하나도 없이 겉만 번드레레하다면 헌책입니다.
우리는 헌책방에 가서 새책을 잔뜩 장만할 수 있습니다. 생김새로는 낡고 오래되었으나 줄거리와 알맹이는 새로울 수 있어요. 몇 번 다시 읽어도 늘 새로운 이야기라 할 때에 비로소 새책이라 할 만합니다.
날마다 새로움을 보는 사람은 날마다 새로운 글을 씁니다. 어느 날도 새로움을 못 보는 사람은 언제나 아무 글도 못 씁니다. 스스로 하루를 새롭게 열 때에 새로움을 맞이합니다. 스스로 하루를 새롭게 열지 않는다면, 둘레에서 아무리 부추기거나 북돋아도 새로움은 찾거나 느낄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쳇바퀴 돌듯이 출퇴근을 하기에 새로움이 없다고 할 만할까요? 전철과 버스에서 아침저녁으로 시달리더라도, 스스로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새로운 하루가 되어 새로운 기쁨을 누리면서 나눕니다. 스스로 생각을 새롭게 짓지 않기에 언제나 따분하거나 고단하거나 힘겨운 하루가 되어 ‘새책’을 못 보고 못 읽습니다.
시끄러운 찻길에서도 책을 펼쳐서 읽는 사람은 두 갈래일 테지요. 하나는 ‘낡은 책’을 억지스레 붙잡으면서 무언가 거머쥐거나 얻으려는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새책’을 홀가분하게 펼치면서 기쁘게 이야기꽃을 피우려는 사람입니다. 4348.2.2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