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터 치우면서 읽는 시집



  마을 어귀 빨래터를 치운다. 아이들은 아버지 둘레에서 신나게 ‘겨울 물놀이’를 한다. 손발이 시리도록 물이끼를 걷어낸 뒤에 손발을 말리려고 빨래터 울타리에 걸터앉는다. 해바라기를 하면서 시집을 펼친다. 손에 묻은 물기가 마른 뒤에 천천히 넘긴다. 겨울바람과 겨울볕을 함께 맞이하면서 읽는 시집이 싱그럽다. 시집에 깃든 이야기도 반갑다. 두 아이는 더 놀고 싶어 하지만, 이 겨울바람을 살짝 쐬고 들어가면 어떠할까? 우리는 우체국에도 나들이를 다녀와야 하지. 아이들을 살살 달래면서 집으로 들어온다. 4349.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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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책 한 권을 아이들하고



  그림책 《꽃밭의 장군》을 아홉 살 큰아이하고 함께 읽는다. 번역이 살짝 아쉬워서 몇 군데는 연필로 고쳐서 함께 읽는다. 마흔 쪽을 살짝 넘는 ‘이야기가 살짝 긴’ 그림책인데, 그림결이나 이야기결이 무척 상냥하면서 곱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는 이만 한 너비와 깊이를 드러내는 그림책이 아직 드물거나 없다고 느끼고, 이처럼 따스하고 부드럽게 평화로운 살림살이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책이 앞으로 한국에서도 태어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이다.


  전쟁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담는 인문책도 재미있고, 전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가를 그리는 사회과학책도 뜻있다. 그런데 어린이도 아주 쉽고 재미나면서 아름답게 배우면서 깨닫도록 북돋우는 그림책은 재미랑 뜻뿐 아니라 사랑에다가 꿈까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어른들이 ‘글만 있는 인문책’도 꾸준히 즐기되, 아이들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함께 즐길 수 있으면 참으로 재미나면서 사랑스러운 삶터가 될 만하리라 하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손길로 아름다운 그림책을 쥐고, 아름다운 아이들을 우리 아름다운 어른들 무릎에 앉혀서 아름다운 눈길로 함께 읽는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책놀이요 책살림이 될까나. 4349.1.3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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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려면



 시골집을 떠나서 홀로 시외버스를 타고 바깥일을 나오며 생각해 본다. 책을 읽으려면 책에 오롯이 마음을 쏟아야 한다고 느낀다. 버스가 덜컹거리든 말든 아랑곳하지 말 노릇이고 전철이 시끄럽다고 여기지 말 일이다. 둘레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소리나 모습이나 빛이나 움직임 따위에 마음을 안 뺏기거나 안 기울일 수 있으면 책을 읽는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책을 그냥 즐겁게 읽으면 된다. 온마음을 내가 손에 쥔 책한테 기울여 주면 된다. 책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책이 보여주는 춤사위를 느끼며 책이 밝히는 길에 온눈을 바칠 적에 책을아름답게 누린다. 4348.12.2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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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마루



  겨울볕이 스민다. 이 겨울볕이 곱고 포근하게 퍼지는 마루는 바느질을 하기에도 좋고, 소꿉놀이를 하기에도 좋으며, 책을 한 권 읽는 자리로 삼기에도 좋다. 여름에는 해가 하늘 높이 솟고, 겨울에는 해가 가만히 드러누워서 온 집안으로 들어온다. 여름에는 높이 더 높이 솟는 해가 얼마나 눈부시며 아름다운가. 겨울에는 낮게 더 낮게 눕는 해가 얼마나 포근하며 사랑스러운가. 이 기운을 받으면서 책 한 권을 마루에서 읽는다. 4348.12.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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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란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이웃은 어떤 마음으로 삶을 누리는가 하는 대목을 헤아린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이웃이 즐겁게 지은 사랑을 곰곰이 되새긴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이웃이 가벼이 내미는 따사로운 손길을 기쁘게 느낀다.


  지식을 다루거나 정보를 들려주는 책이 있고, 꿈을 그리거나 사랑을 노래하는 책이 있다. 정치를 내세운다든지 무엇을 일깨우려는 책도 있는데, 이 모든 책은 언제나 이야기라는 옷을 입는다. 이야기가 있을 때에 책으로 태어나고, 이야기를 다루지 못할 때에는 책이 아닌 종이꾸러미나 냄비받침이고 만다.


  기쁨을 기쁘게 그리기에 책이요,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기쁨을 누린다. 슬픔을 슬프게 그리기에 책이며, 책 한 권을 읽는 내내 슬픔에 젖는다. 기쁨도 슬픔도 삶을 이루는 따사로운 이야기로 흐른다. 손에 책을 쥐어 책을 만나고, 눈을 살며시 감고 마음으로 마주보면서 마음을 만난다. 자, 여기에 바람 같은 숨결이 흐르니, 이 바람결을 고이 읽는다. 4348.11.22.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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