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물맛을 읽는다


  아이들한테 가만히 속삭입니다. 얘들아, 오늘은 어떤 날씨가 될까? 너희는 오늘 어떤 날씨이기를 바라니? 아이들이 잘 모르겠다고 하면 다시 속삭입니다. 자, 우리 하늘을 볼까? 자, 우리 바람맛을 느껴 볼까? 아침 낮 저녁으로 바람맛을 보고 햇볕맛을 보면, 날씨가 어떻게 흐르는가를 몸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렵지 않아요. 그저 몸으로 누구나 알아차릴 만해요. 이러한 날씨는 마당에 설 때뿐 아니라, 마루나 부엌이나 방에서도 느껴요. 모든 바람은 온누리를 골골샅샅 흐르기에, 우리 마을이랑 집을 둘러싼 날씨는 내가 늘 마시는 바람결로 헤아릴 수 있어요.

  시골집에서 살며 마시는 물은 냇물이거나 골짝물입니다. 뒷숲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나 숲물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땅밑으로 흐르는 물이니 땅밑물이기도 해요. 여름에도 겨울에도 늘 흐르는 이 물을 마시면서 새삼스레 아이들한테 묻습니다. 우리 어여쁜 아이들아, 이 냇물맛은 어떠하니? 시원하니? 맑니? 다니? 차갑니? 상큼하니?

  우리 집 아이들이 삶을 읽고 살림을 읽으며 사랑을 읽는 따사롭고 너그러운 숨결로 자라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이러면서 나도 삶이랑 살림이랑 사랑을 읽는 슬기로운 어른으로 아이들 곁에서 무럭무럭 크자고 꿈꾸어요. 밥맛뿐 아니라 풀맛이랑 흙맛을 읽고, 바람맛이랑 비맛을 읽을 수 있는 어른으로 살자고 생각해요. 2016.7.20.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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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님한테서 배우는 살림



  나는 집에서 밥짓고 온갖 일을 하면서 살림을 꾸린다고 하지만, 아직 아장걸음처럼 어설프거나 엉성하다고 느낍니다. 곁님은 몸으로 움직이기 힘들어서 곁님이 집에서 밥을 짓는다거나 여러 가지 일을 하거나 살림을 돌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곁님한테서 여러모로 늘 배웁니다. 얼핏 겉으로 보자면 집일을 안 하거나 못 하는 사람한테서 무엇을 배우겠느냐 싶지만, 문득 들려주는 한두 마디라든지 문득 보이는 한두 몸짓으로도 즐겁게 삶과 살림과 사랑을 배워요.


  오는 7월 5일부터 7월 30일까지 미국 옘(Yelm)에서 하는 배움잔치가 있기에 이 자리에 온식구가 다 같이 가거나 적어도 곁님을 이 배움잔치에 보내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가지 삯이나 값을 헤아리면, 네 사람이 모두 가자면 20000달러, 한 사람이 가는 데에 5000달러쯤 들 텐데, 그쯤은 넉넉히 댈 수 있으리라고, 올 7월 이 배움잔치에 네 식구도 갈 만하리라고 생각하며 올해를 맞이했고 1월부터 6월까지 신나게 일하면서 살림돈을 모으려 했어요.


  오늘 7월 1일에 출판사 한 곳에서 선인세 100만 원을 받았습니다. 올 한글날 언저리에 나올 책을 놓고서 글삯을 먼저 받은 셈인데, 제가 그 출판사로 글삯을 먼저 달라고 여쭙지 않았는데 그냥 먼저 보내 주셨어요. 이리하여 우리 살림돈이 빚이 없이 160만 원이 되었기에 ‘적어도 한 사람은 비행기를 태워서 배움잔치에서 즐거이 배우도록’ 보낼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곁님더러 배움잔치에 가라고 얘기했지요. 곁님은 비행기삯만으로 어찌 가느냐고, 이제는 카드로 긁어서 배움길에 나설 뜻이 없다고 대꾸해요. 나도 곁님처럼 앞으로는 카드를 긁어서 어찌저찌 여러 달에 걸쳐서 갚는 배움바라지를 하지 않겠노라 생각하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잘 풀리리라 생각하는데, 곁님은 딱 끊습니다. 이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여요. 꼭 올 7월 배움잔치에만 가야 하지 않는다고, 다음 가을이든 겨울이든 이듬해이든 얼마든지 새로운 배움길이 있다고 얘기해요. 그러니까 나더러 바쁘게 굴지 말라는 뜻입니다. 서두르지 말라는 뜻이에요.


  낮에 빗길을 가르며 우체국에 다녀왔어요. 곁님은 곁님 스스로 입을 옷을 손뜨개로 이레 즈음 걸쳐서 한 벌 지었는데, 다 짓고 보니 곁님 스스로 입기에 크다면서, 이 뜨개옷을 동생한테 보내야겠다고 얘기합니다. 동생은 곁님보다 키나 몸이 크니 곁님한테는 크다 싶은 옷이 동생한테는 꼭 맞춤하리라 얘기해요.


  여러모로 다른 집일을 못 하는 곁님이지만 뜨개질을 할 적에는 밤샘을 하면서 붙잡습니다. 스스로 몸이며 마음을 살리는 길이라고 느낍니다. 아무튼 얼추 이레 즈음 낮밤을 모두 손뜨개에 바쳐서 곁님 옷을 스스로 지었는데, 이 옷을 한 번도 입지 못한 채 동생한테 선물로 띄운다고 할까요.


  빗길을 자전거로 달려서 우체국에 다녀오며 ‘스스로 입을 옷을 스스로 실을 고르고 스스로 뜨개를 익혀서 스스로 온사랑을 바쳐서 지은’ 뒤에 스스럼없이 선물할 수 있는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라면 이렇게 할 만할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네, 저도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내 온사랑을 들여서 무엇을 지었다면 기꺼이 누구한테든 선물할 수 있고, ‘그냥 누구’보다는 나 스스로 생각하는 ‘가장 사랑스러운 님’한테 스스럼없이 주겠지요.


  우리 집 곁님은 여태 ‘돈을 버는 일’은 거의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돈이 아닌 살림을 짓는 일’은 늘 천천히 한다고 느낍니다. 돈으로 살 수는 없으나 사랑으로 나눌 수 있는 살림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고흥 시골집 네 식구 살림살이에서 곁님이 베푸는 작으면서 더딘 손길에서 묻어나는 이야기가 기쁨이라고 여겨서 늘 즐거이 배웁니다. 이 배움을 우리 아이들이 곱게 물려받을 수 있기를 꿈꿉니다. 2016.7.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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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놓는 자리 곁에



  책을 놓는 자리에는 책을 놓지요. 그런데 책을 놓는 자리 곁에 다른 것을 놓기도 해요. 이를테면 연필이나 수첩을 놓습니다. 그림이나 사진을 붙이기도 합니다. 들꽃을 꺾어서 곱게 꾸미기도 하고, 앞으로 읽으려고 하는 책을 좀 쌓기도 합니다. 시계를 놓을 수 있고, 이것저것 내가 좋아하는 뭔가를 올릴 수 있어요. 책꽂이에는 책을 꽂기 마련이지만, 책꽂이 한쪽에 못을 박아 달력을 걸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재미난 것을 붙일 만하고, 마음에 드는 포스터나 그림이나 엽서도 붙일 만해요. 모두 내 나름대로 내 사랑을 담아서 꾸미는 손길입니다. 2016.6.26.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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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는 힘



  스스로 생각하기에 스스로 무엇을 할 적에 즐겁거나 보람차거나 재미난 줄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스스로 무엇을 배우면서 삶을 노래할 만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밥을 어떻게 지어서 먹을 때에 맛나면서 기쁜가를 알 수 있고, 땅을 어떻게 가꾸어 먹을거리를 얻을 때에 아름다운가를 알 수 있어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사랑스러운 짝님을 만날 수 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이들한테 상냥한 웃음을 지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 손에 ‘좋은 책·고운 책·밝은 책·고요한 책’을 가만히 쥐면서 스스로 알뜰살뜰 읽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스스로 할 일을 스스로 찾지 못합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삶길도 살림길도 사랑길도 깨닫지 못합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스스로 찾아서 읽을 책을 스스로 알아보지 못하고 말아, 남들이 추켜세우거나 많이 읽는 책만 똑같이 따라서 받아들이기만 합니다. 내 생각이 있을 적에 내 삶이 있어서 내 책을 찾고, 내 생각이 없을 적에 내 삶이 없어서 내 책을 찾지 못합니다. 2016.6.1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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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힘이 되는 노래



  고흥집에서 글을 쓸 적에 나는 두 가지를 합니다. 첫째, 아뭇소리를 듣지 않고 오로지 내 글쓰기에 사로잡힙니다. 이때에는 글판 두들기는 소리조차 듣지 않고, 내 손가락이 내 마음에 따라 흐르면서 글판을 누른다는 느낌조차 모조리 느끼지 않습니다. 둘째, 셈틀에 어떤 노래를 틀어놓습니다. RAMTHA 훈련 가운데 하나인 불꽃 같은 숨을 쉴 적에 바탕노래로 삼는 노래를 틀어요. 이 훈련 노래는 훈련을 할 적에 들어도 몸이 새롭게 깨어나도록 이끌지만, 훈련이 아닌 여느 때에도 마음을 튼튼히 다잡도록 북돋우는 숨결이 있다고 느낍니다. 고흥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바깥일을 보며 글을 쓴다고 할 적에도 유에스비 메모리카드에 이 훈련 노래를 담아서 갖고 다녀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유에스비 메모리카드가 먹통이 되었고, 듣고 싶던 훈련 노래를 듣지 못합니다. 괜시리 서운하고 슬프네 하고 여기다가 인터넷을 켜서 유투브에 들어갔고, 유투브에서 영어 노래를 틀어 봅니다. 그동안 아이들하고 즐겁게 듣던 영어 노래입니다. 아이들하고 듣는 영어 노래는 내가 어릴 적에 그냥 한국 동요인 줄 알던 노래였으나 이제 와서 다시 들으니 번안 동요였고 영어 원곡이 따로 있는 줄 깨달은 노래입니다. 영어 노래, 그러니까 영어 동요를 들으면서 영어를 새롭게 배우자는 마음도 있지만, 이보다는 이 영어 동요가 무척 차분하면서 즐겁다고 느낍니다. 한국에서 흔히 듣는 한국 동요는 아이들을 너무 어리게만 여기면서 좀 어설프거나 어수룩한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는 느낌이 짙다면, 훌륭한 영어 동요는 그냥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노랫결이 따사롭곤 합니다. 다시 말해서, 억지로 쥐어짜는 귀여움이 아니라, 수수하게 아이들을 사랑하는 눈길과 목소리로 부르는 훌륭한 영어 동요가 몹시 반가우면서 재미있다고 할 만하다고 느껴요. 이런 노래를 바탕에 깔아 놓으면 나는 어느새 고요하면서 고즈넉한 마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내가 스스로 잊던 내 모습을 다시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는 몸짓으로 글을 쓸 수 있어요. 내가 곁에 두면서 읽고 싶은 책이라면, 바로 이렇게 사랑스러운 노래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쥐어짜는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수수하게 삶을 사랑하고 살림을 짓는 꿈이 깃든 책이 더없이 기쁘다고 생각합니다. 2016.6.1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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