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책, 올라가는 책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내 마음을 넉넉히 어루만지는 책이 있고, 처음에는 무척 아름답다 싶더니 이내 시들해지면서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럭저럭 읽을 만했네 싶은 책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대단해 보이지 않으나, 차츰 빠져드는 책이 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따분한 책이 있고요. 어느 책은 글쓴이나 출판사 이름값으로 번들거리는 겉치레만 흐르기도 해요. 이런 여러 갈래 책을 하나하나 읽다가 곰곰이 돌아봅니다. 아름답지 않은 책을 굳이 읽을 까닭이 있을까요? 안 아름다운 책을 읽는 데에 내 하루를 들일 만한 값어치가 있을까요?


  나는 ‘좋은 책’이나 ‘나쁜 책’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책을 놓고 더 좋다거나 더 나쁘다고 할 만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다만 이와는 다르게 한 가지를 헤아려요. 좋은 책이나 나쁜 책은 없지만, 사람마다 그이 마음에 ‘떨어져 보이는 책’하고 ‘올라가 보이는 책’은 있구나 싶어요.


  ‘떨어져 보이는 책’을 손에 쥐어 읽는 동안, 이처럼 떨어져 보이는 책을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떨어져 보이는 책을 읽기에, ‘나도 자칫하면 이 책처럼 스스로 떨어져 보이는 글을 쓸 수 있다’고 깨닫습니다. 제대로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서 하루를 열면,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덜 떨어지는 글이 되고 말아요.


  ‘올라가 보이는 책’을 손에 쥐어 넘기는 동안, 이렇게 올라가 보이는 책을 좋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올라가 보이는 책을 읽기에,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글길이나 글살림이라면 이렇게 한결같이 마음을 북돋우거나 살찌우는 숨결일 때에 나부터 즐겁고 이웃님한테도 즐겁겠네’ 하고 알아차립니다. 슬기롭게 마음을 바치면서 하루를 지을 적에는, 내가 쓰는 짧거나 수수하거나 투박한 글도 얼마든지 아름답게 올라가 보이는 글이 될 만해요.


  떨어져 보이는 책을 거울로 삼으면서 살림살이를 새로 배웁니다. 올라가 보이는 책을 길벗으로 삼으면서 살림결을 새로 가다듬습니다. 책은 모두 우리한테 상냥하면서 사랑스러운 배움벗이지 싶습니다. 2016.11.13.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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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책방이 작게 있으니



  마을에 책방이 작게 있으니 마을이 환합니다. 작게 있는 책방은 ‘가게’로만 친다면 다른 커다란 가게나 건물에 가려서 거의 안 보인다 싶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 작은 마을책방은 ‘더 많은 사람’이 복작거리며 드나들 수 없는 곳이어도, 홀가분하게 마음을 달래면서 몸을 쉬고 싶은 이들이 찾아가서 고요히 생각에 잠기도록 이끌어 줍니다.


  더 커야 하는 책방이 아닙니다. 마을마다 알맞게 있을 책방입니다. 전철역이나 버스역하고 가까워야 하는 책방이 아닙니다. 마을사람이 찬찬히 걸어서 마실을 하듯 드나들 수 있는 책방이면 됩니다. 더 많은 책을 쟁여 놓아서 보여주어야 하는 책방이 아닙니다. 책방지기 스스로 즐거이 읽은 책을 마을이웃한테 알려줄 수 있는 책방이면 됩니다.


  마을이 있고 사람이 있어 보금자리가 있고 골목이 있으며 쉼터가 있습니다. 마을이 있고 이야기가 있어 책이 태어나고 책방이 곱다라니 자리를 잡으며 도란도란 피어나는 삶꽃이 있습니다. 2016.10.2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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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엄쉬엄 읽다가 빙그레



  쉬엄쉬엄 읽다가 빙그레 웃을 수 있는 만화책 한 권이 아름답습니다. 오랜만에 한국말로 나온 《솔로 이야기》라는 만화책 넷째 권을 읽으면서 조용히 웃음을 짓습니다. 마치 《초원의 집》에 나오는 로라 같은 느낌이 들고, 《미스 럼피우스》를 그린 할머니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우주소년 아톰》에 나오는 우란 같은 마음씨로 삶을 짓는 사람들을 만나고, 《영리한 공주》에 나오는 슬기로운 공주나 아주머니들 같은 사람들이 가꾸는 살림이라면 이처럼 정갈하겠구나 싶은 노래를 듣습니다. 2016.10.16.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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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같은 책을 두 권 세 권 사지?



  《손, 손, 내 손은》이라는 이름으로 옮겨진 그림책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Here are my hands》라는 이름으로 나왔어요. 나는 이 그림책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서 장만했고, 우리 집 큰아이는 네 살 적부터 아버지하고 함께 이 그림책을 보았어요. 나는 이 그림책을 보다가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곤 해요. 그림과 이야기에서 따스한 사랑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어쩜 이리도 예쁜 그림책이 다 있담?


  큰아이가 여러 해 본 그림책은 아주 낡고 찢어지기까지 했기에 새로 한 권 장만했어요. 영어로 된 두꺼운 종이 그림책을 헌책방에서 보고는 얼른 장만했지요. 같은 책을 세 권 갖추었어요. 한 권은 아주 낡고 닳은 책. 다른 한 권은 깨끗한 책. 새로 한 권은 영어로 된 책. 앞으로 우리 집 그림책 세 권이 또 낡고 닳으면 한 권을 더 장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리고 이웃님한테 선뭃려고 가끔 다시 장만하기도 하고요. 2016.10.6.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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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을 남기는 책



  발자국을 남기는 책을 읽습니다. 굳이 역사책이나 인문책이라 하지 않아도 되는 책을 읽습니다. 따로 평전이나 문학이라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책을 읽습니다. 수수하게 살아온 어머니 이야기가 깃드는 책을 읽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곱고 착하며 참다이 살림을 지으려는 숨결이 흐르는 책을 읽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아끼며 동무를 돌보고 한솥밭지기를 살가이 어루만지는 손길이 따사로운 책을 읽습니다. 이 책을 학교에서 역사책으로 읽힐 날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만, 가슴으로 헤아리며 사랑으로 되새길 뭉클한 발자국이란 이렇게 ‘어머니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을 갈무리할 때에 태어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책이름은 《노동자의 어머니》이지만, 노동자한테 어머니인 그분은 노동자한테뿐만이 아니라 뭇사람 누구한테나 어머니가 된 분, 그러니까 “사람을 사랑한 어머니”이지 싶어요. 사람을 낳아 돌보고 가르치고 사랑하는 발자국이 짙게 묻어난 《노동자의 어머니》를 빗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읽습니다. 2016.9.2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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