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쓰려고 하다가

오늘 아침까지도 못 쓴 글을

이제 마무리합니다.


제 나름대로 뽑은 '올해책' 이야기입니다.

아침에 바지런히 글을 마무리짓고

신나게 낮밥을 지어서

온식구가 함께 먹습니다.


즐거이 글을 띄우기 앞서

숨을 살며시 고릅니다.


자! 곧 신나게

글을 띄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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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책



  엊저녁에 국을 끓이는데 두 아이가 밥짓기를 배우겠다면서 들여다보다가 문득 ‘거품’을 물어보았습니다. 거품을 굳이 걷어야 되느냐고 하더군요. 거품을 굳이 걷지 않아도 된다고 대꾸하다가 문득 ‘그래, 예전에 혼자 살 적에는 거품도 알뜰히 먹었는데, 요새는 안 먹네. 나는 왜 이제 거품을 안 먹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국맛을 보면 될 뿐, 거품맛을 보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는 거품이 넘치면 나중에 치우거나 설거지하기에 매우 힘들어요. 저도 어릴 적에 우리 어머니한테 거품을 왜 걷느냐고 여쭈었지 싶습니다. 이제서야 어릴 적 어머니 말씀이 떠오릅니다. 어머니는 어린 저한테 “거품? 안 걷어도 돼. 그런데 거품 안 걷으면 거품이 넘쳐서 설거지하고 치우는데 얼마나 힘든데. 그러니 이렇게 걷어내지.” 이제 책 하나쯤 매우 쉽게 내거나 쓸 수 있는 삶입니다. 참말로 누구나 이야기를 살뜰히 여미면 책을 내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에 매달린 거품책도 쉽게 태어나지 싶어요. 거품책이 나쁜 책은 아니라고 여깁니다만, 우리가 거품맛을 자꾸 보노라면 어느새 국맛을 잊거나 잃지는 않겠느냐 싶어요. 2017.12.28.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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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을 지으면서 배우다



  제가 사전길을 걸을 줄 모르기도 했지만, 알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모으기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좋아하지 않고 사랑했습니다. 저는 무엇이든 모으려고 했습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피우고 남은 담배꽁초에서 이름이나 무늬가 적힌 쪽종이를 뜯어서 모으려 했습니다. 껌종이도 모으려 했습니다. 병마개도 모으려 했습니다. 과자를 감싸던 비닐껍질을 모으려 했습니다. 버스표를 모으려 했습니다. 해마다 새로운 쇠돈을 몇 닢씩 모으려 했습니다. 새해에 절을 하고 받은 절돈마저 모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을 모으려 했고, 저를 둘러싼 이웃이나 동무가 어떤 생각이나 마음인가를 살펴서 모으려 했습니다. 구름을 눈에 담아 모으려 했고, 바람맛을 모으려 했어요. 꽃내음도, 꽃잎결도 모두 모으려 했습니다. 어릴 적에는 그저 모으면서 살았고, 열일곱 살이던가 비로소 책에 눈을 뜬 뒤로는 책을 모으려 했습니다. 열아홉 살이던가 바야흐로 통·번역 배움길에 나서면서 말을 모아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무엇이든 모을 적에는 가릴 수 없습니다. 이것은 좋거나 저것은 나쁘다고 금을 그을 수 없습니다. 마음을 모으는데 네 마음은 좋고 내 마음은 나쁘다고 쪼갤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모으는 동안 무엇보다 한 가지를 배우는구나 싶어요. 모을 수 있는 까닭이라면, 모두 아름답기 때문이에요. 모으는 까닭이라면, 저마다 사랑스럽기 때문이에요. 말을 엮거나 짓거나 그러모으거나 가다듬거나 갈고닦아서 내놓는 사전 한 권이란, 온누리 모든 말에 서린 아름다움을 읽을 뿐 아니라, 사랑스러움을 나누려고 하는 뜻을 담는 책이지 싶습니다. 2017.12.2.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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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책은, 삶을 다룬 그릇입니다.” 하고 한 줄로 적어 봅니다. “책은,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숲을 새롭게 살려서 생각을 슬기롭게 갈무리한 숨결입니다.” 하고 조금 살을 붙여 봅니다. 숲이 고스란히 책이고, 책이 그대로 숲이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짓는 생각이 바로 숲이 되고 책이 됩니다. 우리가 짓는 흙이나 살림이 언제나 책이 되고 숲이 됩니다. 종이가 되어 준 나무를 헤아리면서 책을 읽습니다. 숲으로 살아가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책을 읽습니다. 종이를 만지작거리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책을 읽습니다. 숲에서 까르르 웃으며 뛰노는 아이들하고 살아가며 책을 읽습니다. 나도 숲이고 책입니다. 그대도 숲이며 책입니다. 우리는 서로 싱그러운 숲이자 사랑스러운 책입니다. 2017.12.2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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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다르지



  같은 책방에 들어서도 서로 보는 책이 다릅니다. 같은 갈래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서로 책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참으로 서로 바라보고 집어들어 장만하는 책이 다릅니다. 나고 자라며 살아가는 결이 다르니 서로 다르게 책을 만나서 다르게 읽으며 다르게 삭이겠지요. 어울리는 이웃이 다르고, 돌보는 아이가 다르며, 내다보는 저 먼 앞길이 다르기에 오늘 두 손에 쥐어 읽는 책이 다르겠지요. 다 다른 이웃님이 다 다른 기쁨으로 다 다른 책방을 엽니다. 다 다른 발걸음이 책방에도 닿고 찻집에도 닿고 논밭에도 닿으며 숲길에도 닿다가, 어느새 보금자리 마당에 닿더니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구름이 어디에 있고 별이 얼마나 반짝이는가를 헤아립니다. 2017.12.22.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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