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머리핀일까



  제 머리카락을 여미는 머리핀은 제가 골라서 장만합니다. 큰아이가 골라서 쓰던 머리핀이 아니요, 큰아이가 저한테 빌려주거나 선물한 머리핀도 아닙니다. 둘레에서는 제가 머리카락을 여민 핀이 마치 큰아이 것이 아니냐고 묻는데, 왜 곱거나 예쁜 머리핀은 열한 살 아이가 고를 만하다고 여길까요? 알록달록 무지개처럼 빛나는 고운 옷을 아저씨도 할아버지도 입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만 이러한 것을 써야 할 일이 없고, 저러한 사람만 저러한 것을 다루어야 할 일이 없습니다. 눈을 뜨고 헤아려야 합니다. 마음을 틔우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는 틀에 박힌 눈길이란 고전물리학입니다. 이곳에서는 이것만 태어난다고 여기는 고전물리학은 낡은 눈높이입니다. 외곬로 매인 눈으로는 책을 읽지 못합니다. 밝게 뜬 눈이 아니라면 책을 살피지 못합니다. 환히 튼 마음이 아니라면 책마다 서린 갖가지 이야기를 얻어 가지 못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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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없는



  나한테 없는 것을 남한테서 배웁니다. 우리 스스로 쓰지 못한 이야기를 이웃이 쓴 책으로 읽어서 배웁니다. 나한테 있는 것을 남한테 가르칩니다. 우리 스스로 살아내고 살림한 이야기를 손수 써서 이웃한테 가만히 건네어 읽히니 가르칩니다. 나는 남한테서 배우고, 남은 나한테서 배웁니다. 어느 한쪽만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습니다. 서로 배우면서 가르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누구나 스승이자 벗님입니다. 우리는 다 같이 벗님이면서 스승입니다. 위하고 아래가 없습니다. 그저 곁에서 아름답게 어우러집니다. 나한테 없대서 투덜거릴 까닭이 없습니다. 나한테 없으니 없을 뿐입니다. 그대한테 없다면? 그대한테 없는 것은 그저 그대한테 없는 것입니다. 나한테 없든 그대한테 없든 그저 없을 뿐이니, 그러한 것이 있는 누구한테서 얻거나 받으면 되어요. 내 것을 즐겁게 주고, 네 것을 기쁘게 받습니다. 2018.8.7.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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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하고 책



  수다쟁이 나무는 저한테 갖은 이야기를 끝없이 들려주려 했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를 옮깁니다. “너희한테 ‘내 몸’을 맡겨 ‘책’을 줬는데 무엇을 배웠니? 그 책에 뭘 적고서 ‘믿니’? 도시에서도 ‘숲’이 있도록, 느끼도록 해 주는데 너희는 무엇을 하니?” 책은 나무입니다. 나무는 숲입니다. 책은 나무이면서 숲입니다. 서울이라는 곳은 자동차에 찻길에 건물이 빼곡하지만, 크고작은 책집하고 도서관이 있어 이러한 곳이 ‘쉼숲’이 됩니다. 책읽기란 나무읽기이자 숲읽기이니, 책을 손에 쥐면서 숲바람을 마시고 숲결을 받아들이는 셈입니다. 우리는 책을 두 손에 쥐면서 어떤 숲을 어떻게 얼마나 누리거나 느껴서 삶을 새로 배워 우리 보금자리나 터전을 푸르게 가꾸는 길을 갈까요? 책이 나무요 숲인 줄 모르는 채 숫자만 머릿속에 집어넣느라 사회의식과 종교에 얽매여 ‘배움 아닌 믿음’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리지 싶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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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수다쟁이


  나무가 수다쟁이라고 여기거나 느끼지 않으면서 살아왔습니다. 나무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줄 알았지만, 나무가 얼마나 조잘조잘 수다를 잘 떠는지는 여태 몰랐습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수다를 마음으로 듣고는, 아하 나무란 이렇구나, 나무는 우리 곁에서 수다를 떨고 싶어서 사람을 몹시 기다리는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나무가 저한테 들려준 이야기가 꽤 많습니다. 고작 삼십 분 즈음이었는데, 사람들이 딱딱한 신으로 숲에 마구 들어오느라 뿌리가 밟혀 얼마나 아픈 줄 아느냐고, 제발 사람들이 숲에는 맨발로 들어오기를 바란다고 거듭 말하더군요. 나무 곁에 서거나 풀밭에서 으레 개미가 몸을 타고 오르기 마련인데, 개미는 가려운 곳을 긁어 주려고 오르내리다가 가끔 콕 문대요. 우리 몸에서 씻어 주어야 할 아픈 곳을 물어 주는데,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지켜보다가 슬며시 털어내면 된답니다. 숲에 이는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 느껴 보라고 쏴아쏴아 바람을 불러 주기도 했고, “눈을 감고도 또 보아야 하니? 둘쨋눈(제2의 눈)으로도 보려고 하지 마. 왜 너희 사람은 눈(뜬눈·감은눈)으로만 알려고 하니? ‘없는눈’으로 알려고 해 봐. 훨씬 깊고 커.” 같은 말은 두고두고 가슴에 새기기로 했습니다. 마음으로 보는 눈, 곧 ‘마음눈’으로 나무를 바라보려고 했더니 이 마음눈마저 감으라고, 아무 눈을 뜨지 말고 그저 맞아들여서 느끼고 누리라고 조잘조잘조잘조잘 …… 쉼없이 떠들어대는 나무였어요. 2018.8.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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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 잠기다



  참 오래 한 가지 생각을 하면서 물에 몸을 맡겼어요. ‘나는 헤엄을 못 쳐’ 같은. 이제 이 생각을 더는 안 합니다. 요새는 ‘나는 물하고 사귀면서 놀고 싶어’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물에서 헤엄질을 하지는 않아요. 숨을 크게 들이마시든, 아니면 숨을 다 내뱉은 빈몸으로든, 물속 깊이 잠기며 놀기를 즐깁니다. 헤엄질도 재미있을 텐데, 자맥질도 매우 재미있어요. 더구나 제법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서 얌전히 바닥에 앉아 본다든지, 엎드리거나 눕는 자맥질이 매우 재미나요. 자맥질을 할 적마다 조금씩 길게 해 보는데, 제가 물속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지낼 수 있나 놀라곤 합니다. 그렇다고 아직 10분이나 20분쯤 물속에 잠기지는 못하는데, 우리 살갗이 뭍에서는 바람에 깃든 숨을 걸러서 마시듯이 물에서는 물에 깃든 숨을 걸러서 마시지 않나 하고 문득 느껴 보았어요. 굳이 코나 입으로 숨을 가득 담아서 물속에 잠기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 살갗은 물이 몸속으로 못 들어오게 막는 구실도 하지만, 이러면서 물에 깃든 숨을 알맞게 걸러서 받아들이는 줄 느낀다면, 물속에서 얼마든지 길게 자맥질놀이를 할 만하구나 싶습니다. 이렇게 자맥질을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다 보면, 물고기가 물속에서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함께 느낄 만해요. 뭍에서는 뭍대로 느끼고 보는 눈이요, 물에서는 물대로 느끼고 보는 눈이로군요. 우리가 뭍에서 으레 적외선 테두리로만 바라보는데, 자외선이나 감마선이나 알파선이나 베타선이나 엑스선을 볼 줄 안다면, 이러한 빛줄기를 보는 눈으로 마음을 활짝 열 줄 안다면, 더욱 재미나겠구나 싶습니다. 뭍하고 물을 거쳐 하늘을 날며 볼 수 있다면, 그때에는 새가 온누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배우겠지요? 종이책을 한동안 덮고서 골짝물에 잠기니, 갖가지 새로운 책이 저를 이끌면서 새롭게 가르쳐 줍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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