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 잠기다
참 오래 한 가지 생각을 하면서 물에 몸을 맡겼어요. ‘나는 헤엄을 못 쳐’ 같은. 이제 이 생각을 더는 안 합니다. 요새는 ‘나는 물하고 사귀면서 놀고 싶어’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물에서 헤엄질을 하지는 않아요. 숨을 크게 들이마시든, 아니면 숨을 다 내뱉은 빈몸으로든, 물속 깊이 잠기며 놀기를 즐깁니다. 헤엄질도 재미있을 텐데, 자맥질도 매우 재미있어요. 더구나 제법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서 얌전히 바닥에 앉아 본다든지, 엎드리거나 눕는 자맥질이 매우 재미나요. 자맥질을 할 적마다 조금씩 길게 해 보는데, 제가 물속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지낼 수 있나 놀라곤 합니다. 그렇다고 아직 10분이나 20분쯤 물속에 잠기지는 못하는데, 우리 살갗이 뭍에서는 바람에 깃든 숨을 걸러서 마시듯이 물에서는 물에 깃든 숨을 걸러서 마시지 않나 하고 문득 느껴 보았어요. 굳이 코나 입으로 숨을 가득 담아서 물속에 잠기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 살갗은 물이 몸속으로 못 들어오게 막는 구실도 하지만, 이러면서 물에 깃든 숨을 알맞게 걸러서 받아들이는 줄 느낀다면, 물속에서 얼마든지 길게 자맥질놀이를 할 만하구나 싶습니다. 이렇게 자맥질을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다 보면, 물고기가 물속에서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함께 느낄 만해요. 뭍에서는 뭍대로 느끼고 보는 눈이요, 물에서는 물대로 느끼고 보는 눈이로군요. 우리가 뭍에서 으레 적외선 테두리로만 바라보는데, 자외선이나 감마선이나 알파선이나 베타선이나 엑스선을 볼 줄 안다면, 이러한 빛줄기를 보는 눈으로 마음을 활짝 열 줄 안다면, 더욱 재미나겠구나 싶습니다. 뭍하고 물을 거쳐 하늘을 날며 볼 수 있다면, 그때에는 새가 온누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배우겠지요? 종이책을 한동안 덮고서 골짝물에 잠기니, 갖가지 새로운 책이 저를 이끌면서 새롭게 가르쳐 줍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