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책



  이웃한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란, 참 즐거우면서 예쁜 책이로구나 싶어요. 동무한테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란, 참 기쁘면서 사랑스러운 책이로구나 싶어요.


  예쁜 책은 나 한 권 갖고 이웃한테 한 권 선물합니다. 사랑스러운 책은 나 한 권 읽고 동무한테 한 권 선물합니다. 예쁜 책이기에 내 책을 이웃한테 빌려줍니다. 사랑스러운 책이기에 내 책을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4347.11.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4-11-30 08:22   좋아요 0 | URL
<윤미네 집>을 요즘 다시 보았는데 괜히 반갑네요~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를 보니, 독일에서 동생 결혼식에 딸아기를
데리고 잠시 돌아온 대녀에게 선물하고픈 마음이 마구 듭니다~*^^*

숲노래 2014-11-30 09:57   좋아요 0 | URL
예쁜 책은 오래도록 꾸준하게 사랑받을 테지요?
박정희 할머님이 이제 많이 늙으셨는데
올겨울 따스히 나시기를 마음으로 빕니다
 

‘책읽기’와 ‘책값 읽기’



  도서정가제라는 제도가 모든 것을 이루어 줄 수 없다고 느낀다. 다만, 도서정가제는 적어도 한 가지 일은 할 수 있다. 큰 출판사와 사재기 출판사가 ‘베스트셀러 장난질’을 하려고 ‘책값 장난 치기’를 하려는 짓을 조금은 누그러뜨릴 수 있다.


  나는 예전에 혼자 살면서 출판사 일꾼으로 있을 적에 ‘한 해에 책값 천만 원 쓰기’를 곧잘 했다. 시골에서 네 식구가 살아가는 요즈음은 이렇게 못 한다. 그러나, 예전이나 이제나 똑같이 하는 일은 하나 있다. 책을 장만할 적에는 오직 책만 본다. 책을 장만할 적에는 책값을 보지 않는다.


  책을 보는 사람은 언제나 책을 본다. 책값을 보는 사람은 언제나 책값을 본다.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언제나 책을 읽는다. 베스트셀러를 읽으려는 사람은 언제나 베스트셀러를 읽는다. 이야기를 만나려는 사람은 언제나 이야기를 만난다. 유명 작가를 만나려는 사람은 언제나 유명 작가를 만난다.


  책값을 보거나 베스트셀러를 보거나 유명 작가를 보는 일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저 그럴 뿐이다. 책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책을 만나는 일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다만 그러할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가려는 길을 간다. 이 길은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그저 이러한 길일 뿐이다. 이를테면, 요즘 사회에서 진보로 갈 수 있고 보수로 갈 수 있다. 진보로 가기에 늘 아름답지 않고 보수로 가기에 늘 안 아름답지 않다. 진보로 가지만 검은 꿍꿍이를 품기에 이웃을 등치는 사람이 있다. 보수로 가지만 맑은 마음이 되기에 이웃을 보살피는 사람이 있다. 공무원이 되면서 아름다운 정책을 펴는 사람이 있고 공무원이 되면서 쇠밥그릇을 붙잡는 사람이 있다. 신문기자가 되면서 끔찍한 비틀기를 일삼는 사람이 있고 신문기자가 되면서 곧은 붓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일을 한대서 좋거나 나쁘거나 옳거나 그르지 않다. 어떤 일을 한다면 그예 어떤 일을 할 뿐이다. 어느 곳에 서든, 어떤 일을 하든, 어떤 길을 걷든, 스스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름이 그리 안 알려진 사람이 쓴 알찬 책을 읽는다고 해서 더 훌륭하지 않고, 이름을 팔면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쓴 허울좋은 베스트셀러를 읽는다고 해서 바보스럽지 않다.


  ‘책값 읽기’를 하는 사람은 언제나 책값을 읽기에, ‘읽을 책’을 살피는 눈길보다는 ‘더 값싸다 싶은 책’을 살피는 눈길이 되기 쉽다. ‘즐겁게 읽을 아름다운 책’이라 하더라도 ‘값이 세다’고 여겨 끝끝내 이 책은 손에 쥘 생각을 못 하기 쉽다.


  ‘책읽기’를 하는 사람은 언제나 책을 읽기에, ‘내가 읽을 책’이 값이 높다면 ‘높은 책값을 장만하는 길’을 생각한다. 꾸준히 돈을 벌고 모아서 ‘내가 읽을 책’을 끝끝내 장만하고야 만다.


  값이 싸거나 에누리를 많이 하는 책을 읽기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못 누리지 않는다. 스스로 마음을 살뜰히 가눈다면 어떤 책을 손에 쥐든 아름다운 이야기를 누린다. 그저 ‘값이 싼 책’이나 ‘에누리를 많이 하는 책’을 살피면서 장만한다면. ‘이야기’가 아닌 ‘값’에 휘둘리기 쉬울 뿐이다.


  아름다운 책을 알아보려 하는 사람은 반드시 아름다운 책을 알아보려 한다고 느낀다. ‘책값’이 아니라 ‘책’을 보려는 사람이 틀림없이 많다고 느낀다. 고마운 이웃님이요 책동무는 우리 둘레에 아주 많다고 느낀다. 이들이 있어 책마을이 살아나고, 이들이 있기에 책지기는 새로운 책을 씩씩하게 엮어서 내놓을 수 있다. 4347.11.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책값과 배움삯



  2만 원짜리 책이 한 권 있습니다. 2만 원짜리 책을 한 권 사서 읽으면, 나는 2만 원어치를 배웁니다. 아주 마땅한 일입니다. 100만 원이 드는 강의가 있습니다. 100만 원짜리 강의를 챙기려고 찾아가서 들으면, 나는 100만 원어치를 배웁니다. 참으로 마땅한 일입니다.


  2만 원짜리 책을 사서 읽지만 100만 원어치에 이르는 삶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100만 원짜리 강의를 챙겨 듣지만 2만 원어치에 머무는 삶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가누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책으로 배우려 한다면, 2만 원짜리를 사든 2천 원짜리를 사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새책으로는 2만 원이어도 헌책으로는 2천 원일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웃이나 동무가 책을 선물할 수 있어요. 책값은 0원이 들어도 얼마든지 ‘책으로 배울 수 있는 만큼 책으로 배운다’고 할 만합니다.


  이제 이 땅에 없는 시인 가운데 김남주와 고정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내요 하나는 가시내인데, 두 사람은 모두 전남 해남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전남 해남에서 깊디깊은 두멧시골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이제 이 땅에 없는 시인 가운데 둘인데, 이녁이 쓴 시를 그러모은 책을 사서 읽으면, 두 사람이 ‘우리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전남 해남 고장말로 구수하게 읊는 목소리를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읽을 수는 없습니다.


  책으로 읽는 지식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만큼 얻는 지식’일 뿐입니다. 책으로 얻는 지식은 ‘삶으로 얻는 지식’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나무도감을 백 권쯤 사서 읽는다고 쳐 보지요. 나무도감을 백 권쯤 사서 읽는 이 가운데 ‘나무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무를 안다’고 말하려면,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에 따라 다른 모습뿐 아니라, 열두 달에 따라 다른 모습에다가, 삼백예순닷새에 따라 다른 모습을 비롯해서, 백 해 즈믄 해에 걸쳐 다른 모습까지 알아야 합니다. 이를 알지 못하고서 이름을 익히거나 한살이를 익히거나 꽃이나 열매를 익혔대서 ‘나무를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나무도감도 ‘나무 한 그루’ 이야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합니다. 나무 한 그루 이야기만 다루려 하더라도 100만 쪽이 넘는 두툼한 도감으로 엮어도 다 담아내지 못합니다.


  어떤 배움 한 가지를 놓고, 100만 원을 써야 하는 강의와 2만 원을 들이면 되는 책이 있습니다. 이때에 어떤 길로 가겠습니까? 100만 원을 들여서 강의를 들을까요, 2만 원을 들여서 책을 읽을까요?


  나는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닌 뒤 그만두었습니다. 왜 그만두었느냐 하면, 오늘날 한국에서 대학교 강의는 ‘비싼 등록금과 견주어 가르치는 알맹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대학교 강의는 ‘굳이 비싼 등록금을 물어서 한 주에 한두 시간 겨우 듣는 이야기’일 뿐인데, ‘대학교재를 한 권 사서 한 시간 동안 읽느’니만 못할 만큼 알맹이가 허술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강의는 ‘한 해 천만 원’을 들여서 다닐 만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깊이 배우고 싶다면, ‘백만 원을 들여서 책을 사서 읽’고, 남은 ‘구백만 원으로는 한 해 동안 여행을 다니고 온갖 일을 몸소 겪으면서 배울’ 때에 깊이 배울 수 있다고 느낍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대학 강의는 이와 같습니다만, 삶을 밝히는 길을 여는 슬기로운 강의가 있다면, 이러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자리에 가려고 100만 원을 모을 만하다고, 아니 모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삶을 밝히는 길을 여는 슬기로운 강의라면, 2만 원짜리 책을 사서 읽을 적하고 사뭇 다르면서 넓고 깊게 이끄는 숨결이 흐를 테니까요. 다시 말하자면, 김남주 시인이나 고정희 시인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보며 숨결을 함께 느낄 만한 ‘시 낭송회’에 가는 데에 드는 돈이 100만 원이라면 기꺼이 100만 원을 치를 만하다는 뜻입니다. 시집을 2만 원어치 사서 ‘시인 목소리와 숨결과 얼굴도 모르는 채 읽기’보다 100만 원을 어떻게든 모아서 시인을 몸소 만나서 두 귀로 들을 때에 가슴 깊이 노래가 흐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배우려는 사람은 움직입니다. 배워서 알려고 하는 사람은 움직입니다.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배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하루 내내 쉬지 않으면서 뛰고 구르고 엎어지고 깨지고 부딪히고 웃고 울고 노래하면서 삶과 사랑과 꿈을 배웁니다.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하면서 배운다고 할까요? 책상맡에 앉아서 책을 몇 쪽 읽고 나서 ‘나 좀 안단 말이야!’ 하고 우쭐거리지 않나요? 흙 한 줌 만지지 않고서 나무나 꽃이나 풀을 안다고, 흙 한 줌 만진 적이 없으면서 ‘채식을 한다’고 밝히지 않나요?


  때와 곳에 따라서는 2만 원짜리 책을 사서 읽어도 얼마든지 깊고 넓고 아름답고 사랑스레 배웁니다. 그런데, 눈앞에 아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100만 원짜리 강의가 있는데 ‘오늘 내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못 듣겠어’라든지 ‘무슨 강의가 저렇게 비싸나’ 하고 푸념을 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못 배웁니다.


  예부터 어른들은 아이들이 배운다고 할 적에 땅도 팔고 집까지 팔면서 가르쳤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어른인 우리’들은 참말 땅과 집을 팔아서 배우겠다고 하는 마음이 될 때에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른이니까요. 땅과 집을 팔아서 배운 뒤에는 어떻게 될까요?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게 배운 사람은, 땅과 집을 팔아서 배운 뒤, 한결 너르며 기름진 땅을 장만할 수 있고, 한결 포근하며 아름다운 집을 장만할 수 있습니다.


  배움이란 이와 같고, 삶이란 이와 같습니다. 책값과 배움삯을 아끼려는 사람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4347.11.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알베르 2014-11-27 08:21   좋아요 0 | URL
아침에 이 글을 읽고 다시금 저의 독서에 대해 생각하게 됐네요 ^^

숲노래 2014-11-27 08:28   좋아요 0 | URL
우리가 책을 장만하거나 무엇을 배운다고 할 적에는
그야말로 아낌없이 다가서서 배워야 하는구나 싶어요.

`돈`을 따지면 제대로 못 배우는구나 싶어요.
사람아사람아 님 마음에 즐거운 이야기로 스며들었기를 빌어요.
고맙습니다~
 

도서정가제를 앞두고 '에누리'에 얽매여 책을 잔뜩 사든 

책을 몇 권 사든 한 모든 이웃들한테 주고 싶어서 쓴 글.


..


마음을 이루는 책 한 권



  우리가 먹는 밥이 우리 몸을 이룬다. 어떤 밥을 먹느냐에 따라 우리 몸이 달라진다. 우리가 마시는 물과 바람이 우리 몸을 이룬다. 어떤 물과 바람을 마시느냐에 따라 우리 몸이 달라진다.


  우리가 보는 것이 우리 생각을 이룬다. 어떤 것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 생각이 달라진다. 우리가 읽는 것이 우리 앎을 이룬다. 어떤 것을 읽느냐에 따라 우리 앎이 달라진다.


  그러면, 마음과 사랑과 꿈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마음을 어떻게 가꾸고, 사랑은 어떻게 나누며, 꿈은 어떻게 키울 때에, 우리 스스로 기쁘면서 아름다울 수 있을까.


  ㅈㅈㄷ신문을 읽는 사람은 두 갈래 길로 간다. 하나는 ㅈㅈㄷ이 외치는 대로 멍하니 좇는 길을 간다. 다른 하나는 ㅈㅈㄷ이 외치는 거짓을 알아채면서 ㅈㅈㄷ을 꾸짖거나 손가락질하는 길을 간다. 둘 모두 ㅈㅈㄷ 언저리에서 헤맨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ㅈㅈㄷ을 끊으면 된다.


  들풀을 보거나 들꽃을 보는 사람은 들풀과 들꽃을 차츰차츰 익힌다. 어느 풀을 뜯어서 먹으면 몸에 도움이 되는가를 시나브로 깨닫고, 어느 꽃을 어느 철에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지 찬찬히 알아챈다. 도감을 뒤지거나 인터넷을 살핀다고 해서 들풀이나 들꽃을 알아채거나 배우지 못한다.


  육아책을 만 권쯤 읽기에 아이를 잘 돌보거나 키우지 않는다. 육아책은 한 권만 읽어도 되지만, 한 권조차 안 읽어도 된다. 왜냐하면, 내가 키울 아이는 내 아이인 터라, 내 아이를 제대로 바라보고 살가이 보듬으면서 따스히 보살필 수 있으면 된다.


  인문책을 읽는 사람은 인문책 지식을 머리에 담는다. 베스트셀러를 읽는 사람은 베스트셀러 줄거리를 머리에 담는다. 교과서와 문제집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교과서와 문제집 정보를 머리에 담는다. 스스로 찾거나 보거나 읽는 대로 마음을 이룬다.


  어느 책을 찾거나 보거나 읽든 그리 대수롭지 않다. 이러한 모습이 되기에 훌륭하지 않고, 저러한 모습이 되기에 볼썽사납지 않다. 그저 그뿐이요, 그저 그이 스스로 나아가는 삶일 뿐이다.


  넋이 무엇인지 바라보려고 하는 사람은 넋을 바라볼 수 있다. 하루가 걸릴 수 있고 한 해가 걸릴 수 있으며 백 해나 즈믄 해가 걸릴 수 있다. 바라보려고 하는 사람은 자꾸 바라보면서 꾸준히 생각하기 때문에 마침내 제대로 알아채면서 깨닫는다.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조금도 알아채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도 못 깨닫는다.


  누군가는 야구나 축구를 잘 알 테지만, 누군가는 야구나 축구라는 이름조차 모른다. 바라보는 사람은 차근차근 알면서 깨달을 테지만, 안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도 모를 뿐 아니라 조금도 알 수 없다.


  마음을 이루는 책인 줄 알아차릴 수 있다면, 먼저 내가 어떠한 길을 걷는 삶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야 한다. 내 삶길을 생각하면서 내 삶길에 걸맞구나 싶은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말글을 다루는 사람은 말글을 다룬 책과 온갖 사전을 곁에 두면서 말글을 누구보다 깊이 헤아릴 수 있다. 역사를 다루는 사람은 역사를 다룬 책과 온갖 자료를 옆에 놓으면서 역사를 누구보다 깊이 돌아볼 수 있다. 보고 다시 보며 또 보니, 잘 알고 깊이 알며 넓게 알 수밖에 없다.


  우리는 책을 읽는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을 이루는 책을 읽는다. 좋거나 나쁜 책은 없다. 그저 마음을 이루는 책을 읽을 뿐이다. 어느 책을 고를는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살면서 어떻게 사랑하고 싶은지,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 값싼 책을 살 수도 있고 비싼 책을 살 수도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 ‘내 삶을 씩씩하게 걷는 길에 맞는 책’인지 제대로 살펴서 품에 안아야 한다. 4347.11.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을 읽는 손길



  네 손길을 타면서 책이 빙긋 웃는다. 즐겁게 웃으면서 들여다보니 책이 너를 보며 웃는다. 내 손길을 타면서 책이 싱긋 웃는다. 기쁘게 웃으면서 들여다보니 책이 나를 보며 웃는다.


  아직 손길을 타지 않은 책은 뻣뻣하다. 아직 손길을 못 탄 책은 빳빳하다. 손길을 한 번 탄 책은 부드럽다. 손길을 두 번 탄 책은 보드랍다. 손길을 세 번 탄 책은 살갑다. 손길을 네 번 탄 책은 사랑스럽다.


  내 손길을 탄 책을 아이들이 물려받아 읽는다. 아이들 손길을 탄 책을 나중에 새로운 아이들이 물려받아 읽는다. 책 한 권은 한 사람한테만 읽히지 않는다. 여러 사람한테 두루 읽히려고 빚는 책이다. 기나긴 해에 걸쳐 꾸준하게 읽히려고 빚는 책이다.


  나무 한 그루는 즈믄 해를 너끈히 산다. 책 한 권이 즈믄 해를 가기는 쉽지 않으나, 책에 깃든 이야기는 즈믄 해를 너끈히 흐를 수 있도록 엮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자면, 즈믄 해를 살아낼 만한 이야기일 때에 책에 담아서 나눌 만하다.


  한두 해가 흐른 뒤에는 잊히는 이야기라면, 열 해쯤 지난 뒤에는 찾는 손길이 없는 이야기라면, 백 해쯤 뒤에는 들여다볼 값어치를 못 느끼는 이야기라면, 즈믄 해쯤 뒤에는 아무도 떠올리지 못할 이야기라면, 이러한 이야기는 책으로 찍혀 나와도 우리 가슴에 남지 못한다. 앞으로 즈믄 해를 흐를 이야기를 담은 책이 아니라 한다면, 오늘 이 나라에서 아무리 많이 팔리는 책이라 하더라도 어떤 꿈이나 사랑도 끌어내지 못한다. 이를테면, 교과서나 문제집이 얼마나 많이 팔리는가. 그런데, 이런 교과서나 문제집은 사람들 가슴에 얼마나 남을까. 고작 열 해 뒤만 보더라도 교과서나 문제집이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겠는가. 그런데, 너무 많은 아이와 어른이 교과서와 문제집에 얽매인다. 책다운 책을 손에 쥐지 못한다. 책다운 책을 사귀지 못한다. 입시와 대학교와 학벌과 도시 문명과 돈벌이에 얽매여 그만 교과서와 문제집에 사로잡히고 만다.


  책을 읽는 손길이 삶을 가꾸는 손길로 흐른다. 책을 아끼는 손길이 이웃을 사랑하는 손길로 흐른다. 책을 엮어 아이한테 물려주는 손길이 보금자리와 마을을 아름답게 보듬는 손길로 거듭난다. 오늘 이곳에 책 한 권이 있다. 4347.11.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