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61 읽고 싶은 책



  바깥일을 보려고 이웃고장으로 나들이를 가노라면, 오늘날 숱한 이웃님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을 하는지 한눈에 알아봅니다. 한여름이라면 다들 “아이고 더워. 더워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더군요. 한겨울이라면 누구나 “아이고 추워. 추워 죽겠다.”는 말을 입에서 안 떼어요. 자, 하나씩 짚어 봐요. 스스로 덥다고 여기면서 “더워 죽겠다”고 말하니 더워서 죽겠지요? 우리는 즐거울 적에 뭐라 말하나요? “이야, 즐겁다!” 하고 말할 테지요. 즐거우니 즐겁다고 말할 테지만, 스스로 즐겁다고 말할 줄 알기에 참말로 즐겁습니다. 아무리 불볕이어도 불볕이 아닌 우리 손에 쥔 책을 마음으로 헤아리면서 읽으면 어떤 더위도 안 받아들이기 마련입니다. 사랑을 그려서 마음에 담으니 스스로 사랑이 돼요. 꿈을 그려서 마음에 심기에 스스로 꿈을 이루는 길을 갑니다. 제가 읽고 싶은 책이란, 제가 읽고 싶은 마음입니다. 온갖 책을 하나씩 만나면서, 온갖 삶을 읽는 눈썰미를 하나씩 틔웁니다. 책은 문득 날아오릅니다. 겉보기로는 날개가 없다고 여길 테지만, 책마다 마음으로 펄럭이는 날개가 있어요. 책에 깃든 사랑이라는 숨빛을 읽는 동안 저는 늘 구름밭에서 노는 마음이 됩니다. 스스로 하늘빛이 되어 바람처럼 노닐려고 읽습니다.


읽고 싶은 책이란, 읽고 싶은 마음.

讀みたい本とは、讀みたい心。

하나씩 만나면서, 하나씩 눈을 틔운다.

一つずつ會いながら、一つずつ目を開く。

책은 문득 날아오르고, 마음은 구름밭에서 노네.

本はふと舞い上がり、心は雲の上で遊ぶ。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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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60 다 읽었나요



  저는 책을 좀 많이 산다고 할 만하지만, 저보다 훨씬 많이 사는 이웃을 압니다. 저는 책을 꽤 많이 읽는다고 할 텐데, 저보다 참 많이 읽는 이웃을 알아요. 2021년을 잣대로 치면 제가 거느리는 책은 5톤 짐차로 10대가 넘습니다. 이런 책을 구경하거나 둘러보다가 “이 많은 책을 다 읽었나요?” 하고 묻는 분이 있습니다. 이때에는 빙그레 웃으며 “책을 바로 다 읽으려고 사나요? 앞으로 읽으려고도 사고, 되읽으려고도 사고, 물려주려고도 사요. 똑같은 책을 여러 벌 되사기도 하는데, 제가 읽을 책이랑 아이가 읽을 책이랑 ‘아이가 낳을 아이가 읽을 책’까지 헤아려서 사기도 하지요.” 하고 대꾸합니다. “오늘은 아직 새책집에서 팔지만 머잖아 판이 끊어지겠구나 싶은 책도 미리 사요. 바로 읽을 생각은 아니고 앞으로 읽을 생각이어도, 나중에 읽으려고 찾아볼 적에는 사라질 때가 있거든요. 열 해나 스무 해, 때로는 쉰 해 뒤에 읽을 책을 미리 사기도 합니다.” 하고 보태요. 이제 저는 시골에서 살기에 미리 잔뜩 사 놓기도 합니다. 시골엔 책집이 없으니 큰고장 책집으로 마실을 와서 잔뜩 산 다음, 시골집에서 조용히 머물며 차근차근 읽는답니다. “다 읽었나요?”가 아닌 “책을 읽으며 얼마나 즐겁나요?”를 물으면 좋겠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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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9.30.

책하루, 책과 사귀다 59 북돋운다



  열린배움터(대학교)를 그만두고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는 새파란 사내가 일삯을 푼푼이 모아 그림책을 사읽으니 둘레에서 “미쳤다”는 말을 가장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아이도 없는 주제에”, “아이는커녕 짝도 없는 놈이”, “애들이나 읽는 유치한 책을” 왜 읽느냐고 핀잔이나 손가락질이었습니다. 책집에서는 젊은 사내가 그림책을 읽을 적에 따갑게 노려보는 아줌마가 많았습니다. 그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림책돌이’를 흉보거나 깎아내리거나 핀잔했는지는 안 궁금합니다. 저는 아름다운 그림책을 손에 쥐고서 눈물을 적시다가 웃으면 될 뿐입니다. 책값을 치를 적조차 “허허, 애도 없는 젊은이가 왜 사시나? 조카한테 주려고? 조카가 없다고? 거 참 이상하네. 허허.” 하는 말을 들었어요. 아이 없이 홀로 그림책을 읽은 열 해 뒤에 하늘빛 같은 큰아이가 찾아왔고, 그동안 누린 그림책을 아이하고 새로 읽었습니다. 이윽고 멧숲 같은 작은아이가 찾아와 ‘아버지하고 다른 눈길로 다른 그림책을 찾는 손길’을 느껴요. ‘혼눈길’이 ‘두눈길·석눈길’이 되면서 책·삶·살림을 바라보는 생각을 새삼스레 추스릅니다. 아름책이든 ‘안 아름책’이든, 모든 책은 우리가 스스로 꽃답게 피어나도록 눈길을 북돋우지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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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58 걸어서



  걸어서 다닙니다. 다리가 있어서 걷습니다. 스스로 부릉이(자가용)를 안 거느리기도 합니다만,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사람은 걸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릉거리는(운전) 동안에는 글을 못 쓰고 못 읽기도 합니다만, 다리로 걸으며 길을 느끼고 땅을 헤아리고 마을을 돌고 바람을 쐬고 하늘을 보고 풀꽃나무한테 속삭이고 동무랑 나긋나긋 이야기하고 아이들 손을 잡으며 노래하지 않을 적에는, 우리가 무슨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까요? 걸어서 보는 사이에, 걷다가 겪는 틈에, 걸으면서 생각하는 짬에, 스스로 빛나는 눈길이 샘솟습니다. 걷고서 쉬면, 걷다가 멈추면, 걷던 아이를 안거나 업고서 토닥이며 재우면, 마음 가득 피어오르는 숨결이 어느덧 사랑으로 자랍니다. 서둘러 써야 한다면 글이 아니지 싶습니다. 서둘러 읽어야 한다면 책이 아니구나 싶습니다. 언제나 이곳을 헤아리며 쓸 글이고, 늘 오늘을 살피며 읽을 글이고, 누구나 스스로 사랑하며 쓸 글이고, 서로서로 돌보며 읽을 글입니다. 뚜벅뚜벅 걷습니다. 느긋느긋 걷습니다. 발자국 소리가 없이 걷습니다. 아이처럼 통통 뛰며 걷습니다. 바람을 탄 새처럼 걷습니다. 갓 깨어난 나비처럼 춤추며 걷습니다. 온누리를 걸어서 누리기에 글이 깨어나고, 눈망울을 환희 틉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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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57 서울뜨기 시골내기



  서울사람은 서울사람 눈으로 보니 시골내기다운 눈빛이나 손길이 아니기 마련입니다. 시골사람은 시골사람 눈으로 읽으니 서울내기스런 눈길이나 손빛이 아니기 마련이에요. 참 오래도록 서울사람은 시골사람을 얕보았고 짓밟았고 등골을 뽑았습니다. 이런 삶자취는 ‘시골뜨기’란 낱말에 서려요. 이와 맞물려 ‘서울뜨기’란 말이 더러 나돌지만 낱말책에는 안 실리더군요. 서울만 알 뿐, 서울만 벗어나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숲살림도 흙살림도 들살림도 바다살림도 모르는 이라면 ‘서울뜨기’입니다. 서울살림을 모르기에 ‘시골뜨기’이듯, 뭔가 잘 모르는 ‘뜨기·뜨내기’라는 뜻으로 ‘글뜨기·책뜨기·배움뜨기’라든지 ‘살림뜨기·사랑뜨기·숲뜨기’ 같은 말을 지을 만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익히고 살아가는 나날일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뜨내기가 되고, 어디에서 꾼이 되며, 어디에서 님이 될까요? 서울살림을 잘 알아 ‘서울내기’라면, 시골살림을 잘 알아 ‘시골내기’입니다. 새로 일하는 ‘새내기’처럼, 숲을 맞이하고픈 ‘숲내기’요, 살림을 돌보려는 ‘살림내기’예요. 글이나 책을 아끼려는 분이라면 ‘글내기·책내기’일 테지요. 저는 ‘풀꽃내기’랑 ‘바람내기’가 되려 합니다. ‘마을내기·골목내기’도 되고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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