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바람으로 전주로 가는 길에 몇 마디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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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8.22. 너랑 내가



  아이랑 무엇이든 하면 다 즐거울까? 사랑이라는 마음일 적에는 서로 빛나는 길을 갈 테니 늘 즐거울 테지. 사랑없는 마음이면, 뭘 하거나 먹어도 속으로 얹히며 괴로울 테지.


  따사로이 웃는 마음으로 마주하려니, 아이가 웃고 어버이도 웃는다. 메마르고 매캐하니 서로 찡그리며 아무 말이 없다.


  아이들 옷가지를 열일곱 해째 손빨래를 한다. 곁님 옷가지는 열여덟 해째 손빨래를 한다. 내 옷가지는 서른 해째 손빨래를 한다. 앞으로도 손빨래를 할 테고, 앞으로도 걸어다닌다. 앞으로도 하늘과 바람과 비를 읽을 테고, 물결과 샘물과 빗물을 맞아들이려고 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말을 몹시 더듬었고, 더듬더듬 말소리를 내다 보니, 말결을 늘 자꾸 더 다시 새로 보고 느꼈다. 손빨래를 하고, 걸어다니고, 물맛을 살피고, 들풀과 나무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우리 낱말책은 앎(지식)이 아니라 살림을 담을 노릇이요, 사랑으로 쓸일이다. 문학도 예술도 비평도 창작도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다 매한가지이다. 푸르게 빛나는 사랑이어야 아름답다.


  아니, 푸르게 빛나니 고스란히 사랑이다. 나는 사랑을 읽으려고 책을 쥔다. 나는 사랑을 나누려고 글을 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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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8.12. 늦여름



  이곳에서는 한 해를 네 철로 나눈다. 한 철은 석 달로 나눈다. 한 달은 서른 날로 나눈다. 하루는 밤낮으로 나누고, 다시 석 나절로 나눈다.


  나누는 길을 돌아본다. 알맞게 일하고 쉬고 놀고 자고는 새로 일하고 쉬고 놀고 자라는 뜻이라고 느낀다.


  해가 뜨고 별이 잔다. 별이 돋고 해가 저문다. 하루가 가고, 달이 지고, 철이 저문다. 곰곰이 보면 철은 첫과 한과 늦으로 가른다. 첫여름에 한여름에 늦여름이다.


  첫길에 접어들고, 한바탕 추고, 느즈막이 떠난다. 석걸음을 하나로 헤아리면서 다 다른 숨빛으로 만난다. 늦겨울이면 들풀이 싹트고, 늦봄이면 첫열매가 익고, 늦가을이면 넉넉하고, 늦여름이면 바야흐로 일철이다.


  꾀꼬리 노래를 듣는다. 막바지 제비춤을 본다. 매미도 곧 잠들 테지. 새철이 코앞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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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8.5. 우편엽서



  고흥읍 나래터(우체국)에서 잎글(엽서)을 사려는데, 나래터 일꾼이 못 알아듣는다. 보이하니 여태 우편엽서를 팔아 본 적이 없는 듯싶다. 구경한 적도 없나 보다. 다른 일꾼두 사람이 도와서 겨우 잎글을 찾아낸다.


  34자락이 있다는구나. 다 살까 하다가 30자락을 산다. 이다음에 모면 4이 그대로일까? 아니면 더 살 수 있을까?


  요즈음 같은 때에, 적어도 너덧새에 거쳐 날아가는 잎글을 누가 쓰겠느냐만, 나래터 일꾼부터 쓸 일이라고 본다. 책마을 일꾼이 책을 안 읽으면서 사람들 탓을 할 수 있겄는가? 글을 쓰는 이라면, 으레 손으로 글을 적어서 천천히 띄울 일이기도 하다.


  쓰고 버리는 글이 아니라면, 사고팔기 쉬운 글을 꾸미는 손이 글쓰기이지 않다면,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보름마다 손으로 쪽글을 써서 띄우고 받는 길을 이을 노릇이다.


  쪽글쓰기를 꾸준히 하는 사이에 손힘이 붙고 글결을 익히고 말빚을 새긴다. 어른도 어린이도 느긋이 손글을 쓰는 동안 마음을 다스리는 길과 수수께끼를 열게 마련이다.


  오늘 하루를 내가 스스로 차근차근 쓰기에 이 삶을 살리는 씨앗을 배우고 깨닫는다. 늦여름볕이 조금씩 수그러든다. 그러나 시골 나래터도 버스도 찬바람 겨울이다. 여름에 여름볕을 멀리하니 여름에 열매를 못 알아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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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29. 문단권력이라는 이름



우리나라 글담(문단권력)으로는 창비·문지·문학동네·민음사 같은 우두머리도 있지만, ‘글담 ㄱ’부터 ‘글담 ㄴ’에 ‘글담 ㄷ’에 ‘글담 ㄹ’로 죽죽 있다. 이런 글담이 있는 줄은 예전에는 까맣게 몰랐지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으며 일한 세 해(2001.1.∼2003.8.)에다가,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하던 네 해(2003.9.∼2007.4.)에 아주 뼛속 깊이 느끼고 알고 지켜보아야 했다. ‘파주출판단지 땅임자(지주) 출판사’들도 ‘또다른 글담’이다.


우리나라 글담이 이처럼 곳곳에 수두룩하다 보니, 갈수록 “읽을 만한 한국창작”을 찾기가 버겁다. 글담에 깃들지 않으면서 살림을 짓는 글지기를 찾기란, 광안리 모래밭에 떨어뜨린 10원짜리를 찾기보다 어렵더라.


오늘(2024.7.27.) 고흥군 한켠에서 ‘우리말 노래밭(우리말로 시쓰기) 다섯걸음’을 폈는데, 여기 오신 어느 분이 “오늘 고흥에 구혜선 작가가 온다고 해서 거기 간다”고 말씀한다. 나는 구혜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만, “유명작가님이 고흥에 오신다는데 꼭 가서 만나뵈어야 한다”고 하는 그분 말씀을 곱씹어 보았다.


‘유명작가 구혜선을 만나러 간다’고 하는 분이 여태까지 ‘우리말 노래밭’이라는 모임자리에서 쓴 글(시)을 돌아보면, 모두 꾸밈글이다. 멋을 부리는 글이고, ‘있지 않거나 겪지 않은 일’을 마치 있었거나 겪은 듯이 쓰셨다. 글은 그렇게 멋을 부리고 꾸며야 한다고 여길 뿐 아니라, ‘유명작가들이 들려주는 말’이라면 덥석 받아안지만, ‘유명작가에 이름을 안 올린 사람이 하는 말’은 ‘말이 안 된다’고 여긴다.


고흥군뿐 아니라, 전라남도에서도, 또 광주에서도, 이오덕이나 권정생을 읽자고 말을 못 하다가 이제는 안 한다. 해남내기인 김남주와 고정희인데, 이분들 글을 읽자는 말도 못 하다가 이제는 안 하기로 했다.


정지돈 씨를 놓고서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ㄱ씨랑 책을 함께 낸 자취를 보고는, 또 그동안 언론과 둘레에 남긴 말자국을 보고는, 또 이 말밥이 도마에 오른 지 꽤 되었는데, 입꾹닫으로 흘려보내는 모습을 보고는, 이분은 ‘글담(문단권력) ㅅ’쯤에 있구나 하고 느꼈다.


ㄱ부터 ㅎ 사이는 높낮이(계급·순위)가 아니다. 그냥 갈라서 붙인 닿소리일 뿐이다. 전라북도에서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하는 강준만 씨는 아무런 글담에 없다고 느낀다. 다만, 강준만 씨한테는 이녁 책을 꾸준히 펴낼 ‘개마고원’이라는 ‘한집안 출판사’가 있을 뿐이다. 강준만 씨한테 개마고원 출판사가 없었다면, 이분은 일찌감치 전라도에서 쫓겨나거나 사라져야 했다고 느낀다. 전라도 글담이 꽤나 무시무시하다.


정지돈 씨 같은 글지기가 ‘재야·아웃사이더’로 나아갔어도 나쁘지 않았으리라 느낀다만, 이녁은 이미 새내기 무렵 글부터 ‘글담·인싸’이기를 바란 티가 흐르고, ‘인싸가 아닌 척’으로 글을 엮어서 책으로 묶었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비주류·소장학자’라는 이름으로 어느 글담에도 기웃거리지 않으면서 제자리를 지키는 글지기가 꽤 있었는데, 요사이는 ‘비주류·소장학자’는 가뭇없이 사라졌구나 싶다.


글담(문단권력)에 깃들거나, 글담을 이끌거나, 글담을 새로 세워야 붓힘을 펼까? 붓힘을 펴야 이름을 날리고, 이름을 날려야 돈을 벌며, 돈을 벌어야 새까맣고 커다란 쇳덩이(자가용)를 몰 뿐 아니라, 서울 한강을 내려다보는 잿집(아파트)을 덜컥 살 수 있을까?


나는 꿈꾼다. 광안리 바닷가에서 흘린 10원짜리를 찾아내듯, ‘글담’이 아닌 ‘글밭’을 짓는 이웃과 글지기와 책손을 만나고 싶다. ‘글담(문단권력)’을 기웃거리지 않는 매무새로 ‘글꽃’을 피울 이웃과 글지기와 책손하고 어울리고 싶다.


이리하여 이렇게 말할 만하다. “자숙을 할 만한 마음(양심)이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자숙을 할 만한 짓’을 안 한다”고 할 만하겠지. ‘자숙을 안 할 사람’이 ‘자숙을 하는 시늉을 하’면서 여러모로 말썽을 일으킨다고 하겠지.


이를테면, 아무리 자동차에 급발진 문제가 있었더라도, 여러 사람을 치여죽이는 잘못을 저질렀으면 “애꿎은 분을 치여죽어서 죽을 잘못을 지었습니다!” 하고 무릎을 꿇고서 빌 노릇이요, 이렇게 빌고 나서 나중에 조그맣게 “그런데 자동차가 급발진 같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죽을 잘못을 지었습니다!” 하고 눈물을 흘렸겠지.


지난 2024년 7월 20일 토요일 낮에, 몸부터 푹 쉬고서 저녁에 일하러 가려고, 아마 낮 2시 무렵일 텐데, 부산교대역 기나긴 여러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길손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처음에는 초등학생 일곱 아이가 자전거를 몰면서 건널목을 건넜고, 이다음 건널목에서는 ‘완벽하게 저지(자전거옷)를 갖춰입은 어른 넷이 자전거를 몰면서 건널목을 건넜’다. 나는 이날 두 건널목에서 두 무리, 어린이 일곱과 어른 넷한테 똑같이 큰소리로 “자전거는 건널목에서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면서 건너야 합니다!” 하고 알려주었다. 이때에 어린이 무리 가운데 한 아이만 내렸고, 다른 열 사람은 씽씽 내달리기만 했다.


다른 열 사람은 나중에라도 건널목에서 자전거를 내릴까? 그런데 자전거는 거님길(보행로)에서도 ‘끌바(자전거를 끌면서 걷기)’를 해야 맞다. 도로교통법을 익히고서 자전거를 모는 어린이나 어른은 드물어도 너무 드물다. 다만 한 아이는 바로 몸으로 옮겼기에, 이 한 아이를 바라보면서, 영화 〈the Cove〉(2009)를 본 한국 손님이 3400명이던 모습에서도 작게나마 씨앗(희망)이 있다고 여긴다.


신경숙 씨가 구렁이처럼 다시 고개를 내밀면서 글장사를 하고, 창비는 신나게 책팔이를 한다. 신경숙 씨와 창비 편집부와 대표한테 마음(양심)이 있다면, 여태까지 낸 모든 책을 절판으로 돌리고서 고개를 숙였겠지.


정지돈 씨가 부디 ‘마음’이 있기를 바라는데, 아직도 꿩 구워먹은 모습이라면, 나보다도 여러 ‘정지돈 독자’한테 슬픈 일이라고 느낀다. 정지돈 씨가 앞으로도 글을 쓰고 싶거나 문학을 하고 싶다면, 이제까지 벌인 모든 판을 접고서 제대로 뉘우쳐야 맞고, 얼렁뚱땅 몇 해를 숨죽이다가 다시 책을 내는 짓이 아닌, 15∼20년쯤 알바나 농사를 하고서, 그 뒤에 다시 붓을 쥐고서 새롭게 이녁 삶을 이녁 눈길로만 담아내는 글과 책을 내놓을 일이라고 느낀다.


‘자숙’이란, 모든 사과와 참회와 배상과 ‘죗값 치르기’를 끝낸 뒤로 15∼20년쯤 붓대를 꺾는 일이다. 그런데 사과 같지도 않고 참회라 할 수도 없고, 배상이나 죗값 치르기는 아직 하나도 없는 채 입꾹닫이라면, 이 몸짓은 자숙이 아닌 ‘자숙 코스프레’이구나 싶다. 정지돈 씨 글을 읽어 온 분들을 더 배신하는 셈이라고까지 느낀다.


참회할 줄 모르는 글지기라면 모두 ‘문단권력’이라고 느낀다. “글로 담는 ‘글담’”이 아닌, “글밭에서 꽉 닫아걸어서 끼리끼리 노는 ‘글담’”이란 그지없이 슬픈 수렁일 텐데, 웬만한 글꾼은 ‘글담벼락’을 참으로 좋아하는구나 싶다.


https://blog.naver.com/hbooklove/223491635973

https://blog.naver.com/hbooklove/223527695977


《이거 그리고 죽어》라는 만화책을 놓고서 느낌글을 두 꼭지 썼다. 마음을 달랠 만한 아름다운 만화책인 《이거 그리고 죽어》라고 느낀다. 엄청난 작품이다. 우리 집 17살 큰아이도 이 만화책은 올해에 본 여러 만화책 가운데 가장 잘 나왔다고 손꼽으시더라. 뉘우칠 뜻이 없는 글쟁이는 떠나보낼 수 있기를 빈다. 그리고, 부디 정지돈 씨가 눈물글(참회록)로 새길을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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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30. 케빈 카터 Kevin Carter (1960∼1994)



  ‘퓰리처상’이 있는지조차 모르던 사진기자가 어떻게 ‘퓰리처상’을 받았을까? 케빈 카터 씨는 이녁이 태어나고 자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이 막죽임이라는 무시무시한 발길질과 총칼질로 얼마나 흔하게 퍼졌는가를 어릴 적부터 겪는다. 이러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알리는 길을 어느 날 알았고, 사진으로 ‘미친 싸움나라’를 살짝이라도 멈추거나 바꿀 수 있는 빛을 보았다.


  그렇지만 이름난 사진기자가 아니라서, 불굿(전쟁터) 한복판에 맨몸으로 뛰어들면서 찍는 사진을 알아보는 ‘신문사·방송사·잡지사 편집자’는 적었다. 이러던 어느 해에, ‘수단’이라는 나라에서 ‘콘도르가 지켜보는 아이’를 사진으로 담았고, 이 사진은 케빈 카터 씨가 찍은 숱한 ‘내전 참상’ 사진과 함께 〈뉴욕타임즈〉로 갔다.


  〈뉴욕타임즈〉 편집부는 케빈 카터 씨를 비롯한 여러 ‘무명 사진기자’가 ‘내전 참상’을 담은 사진을 무더기로 보내는 일을 늘 시큰둥히 여겼다. 그런데 ‘콘도르가 지켜보는 아이’ 사진은 “뉴욕타임즈에 실린 사진 가운데 처음으로 퓰리처상에 뽑힐 만하겠다”고 느낀 편집자가 있었고, 이 편집자는 케빈 카터 씨한테서 이 사진을 샀고, 산 사진을 〈뉴욕타임즈〉 1쪽에 큼지막하게 실었고,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사람들은 깜짝 놀라면서 ‘수단 내전이 이렇게 끔찍한’ 줄 새롭게 바라보는 밑동이 되었다. 그런데 〈뉴욕타임즈〉 편집자는 ‘신문 1쪽 싣기’보다는 ‘퓰리처상’을 노렸고, 1994년 퓰리처상은 이 사진한테 돌아갔다.


  케빈 카터 씨는 퓰리처상이라는 이름조차 몰랐다. 그저 아프리카를 비롯한 푸른별 불굿(전쟁터)을 사진기를 쥐고 돌아다니면서 찰칵찰칵 찍을 뿐이다. 부디 이 바보스런 싸움질이 끝나고, 이 불굿이 사그라들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한창 싸움터와 불굿을 헤매며 사진을 찍다가 “퓰리처상을 받아야 하니 미국에 있는 시상식장으로 오라”는 말을 듣는다. 불굿 한복판에서 얼결에 뜬금없는 시상식장으로 ‘끌려가’서 ‘수상 소감’을 말해야 했다.


  케빈 카터 씨를 비롯한, 함께 종군 사진기자로 뛰는 사람들은 “내가 왜 이곳(시상식장)에서 시간을 버려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푸른별 한켠에서는 총알이 춤추고 뭇사람이 죽어서 고꾸라지는데, 더욱이 케빈 카터 씨한테 마음벗인 사진기자가 총에 맞아서 죽는데, ‘퓰리처상 시상식장’이며 〈뉴욕타임즈〉 같은 신문사는 그지없이 ‘평화롭’고 ‘배부르’고 ‘흥청망청 축하술’로 시끄러워서, 머리가 터질 듯하다고 했다지.


  사진 한 자락을 둘러싼 손가락질이 쏟아져 들어왔다. 게다가 이 사진 한 자락을 놓고서 ‘기자윤리’를 들먹이는 비평마저 쏟아진다. 불굿(전쟁터)에 있어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평화롭고 배부르고 흥청망청인 곳’에서 말만 늘어놓는다. 불굿 한복판에서 ‘내전 피해자’인 사람들하고 똑같이 굶고 헐벗고 추레한 차림새로 떠돌면서 아슬아슬하게 목숨만 건지면서 사진을 찍어서 “제발 이 멍청한 전쟁을 끝내자”고 읊던 사진기자는 아무 할 말이 없다. 불굿 한복판에서 만난 숱한 아이들과 어머니와 아버지하고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손가락질하는 비평가는 칼처럼 으르렁댈 뿐이다. 이리하여 케빈 카터 씨는 아주 미치고 말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프고 굶고 외로운 채 죽어간 아프리카 이웃 곁으로 넋이 되어 돌아갔다.


  곰곰이 본다. 사진작가 케빈 카터 씨를 둘러싼 이야기는 너무 잘못 알려졌다. 잘못 알려진 이야기가 똑같이 ‘되풀이(반복 재생산)’로 퍼진다. 영화나 책으로라도 《뱅뱅클럽》을 읽어 보았다면, 제대로 쓰고 밝힌 사진비평을 찬찬히 찾아본다면, 어느 누구도 잘못 말할 일이 아닌데 말이지.


  케빈 카터 씨는 언제나 불굿(전쟁터)에 맨몸으로 사진기만 들고서 찾아다니면서, 어린이와 여성이, 그리고 애꿎은 남성이 어떻게 가볍게 죽거나 짓밟히는지 사진으로 찍어서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신문에 보내는 길을 걸었다. 모르는 사람은 너무 모르는데, 사진기자는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찍을 뿐이다. ‘콘도르가 바라보는 아이’ 사진은, 아이 어머니가 가까이에 있었기에 사진기자는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우리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은 못 하더라도 ‘살펴보’거나 ‘알아보’거나 ‘찾아볼’ 수 있을까? 누가 누구를 죽이는 푸른별인가? 누가 아프리카 내전 한복판에서 이웃으로 일하는가? 누가 ‘키보드 워리어’ 짓을 하는가? 누가 아프리카 내전 한복판에 있는 아이들을 돕는 손과 눈일까?


ㅅㄴㄹ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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