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 숲노래 책읽기

2024.7.29. 문단권력이라는 이름



우리나라 글담(문단권력)으로는 창비·문지·문학동네·민음사 같은 우두머리도 있지만, ‘글담 ㄱ’부터 ‘글담 ㄴ’에 ‘글담 ㄷ’에 ‘글담 ㄹ’로 죽죽 있다. 이런 글담이 있는 줄은 예전에는 까맣게 몰랐지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으며 일한 세 해(2001.1.∼2003.8.)에다가,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하던 네 해(2003.9.∼2007.4.)에 아주 뼛속 깊이 느끼고 알고 지켜보아야 했다. ‘파주출판단지 땅임자(지주) 출판사’들도 ‘또다른 글담’이다.


우리나라 글담이 이처럼 곳곳에 수두룩하다 보니, 갈수록 “읽을 만한 한국창작”을 찾기가 버겁다. 글담에 깃들지 않으면서 살림을 짓는 글지기를 찾기란, 광안리 모래밭에 떨어뜨린 10원짜리를 찾기보다 어렵더라.


오늘(2024.7.27.) 고흥군 한켠에서 ‘우리말 노래밭(우리말로 시쓰기) 다섯걸음’을 폈는데, 여기 오신 어느 분이 “오늘 고흥에 구혜선 작가가 온다고 해서 거기 간다”고 말씀한다. 나는 구혜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만, “유명작가님이 고흥에 오신다는데 꼭 가서 만나뵈어야 한다”고 하는 그분 말씀을 곱씹어 보았다.


‘유명작가 구혜선을 만나러 간다’고 하는 분이 여태까지 ‘우리말 노래밭’이라는 모임자리에서 쓴 글(시)을 돌아보면, 모두 꾸밈글이다. 멋을 부리는 글이고, ‘있지 않거나 겪지 않은 일’을 마치 있었거나 겪은 듯이 쓰셨다. 글은 그렇게 멋을 부리고 꾸며야 한다고 여길 뿐 아니라, ‘유명작가들이 들려주는 말’이라면 덥석 받아안지만, ‘유명작가에 이름을 안 올린 사람이 하는 말’은 ‘말이 안 된다’고 여긴다.


고흥군뿐 아니라, 전라남도에서도, 또 광주에서도, 이오덕이나 권정생을 읽자고 말을 못 하다가 이제는 안 한다. 해남내기인 김남주와 고정희인데, 이분들 글을 읽자는 말도 못 하다가 이제는 안 하기로 했다.


정지돈 씨를 놓고서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ㄱ씨랑 책을 함께 낸 자취를 보고는, 또 그동안 언론과 둘레에 남긴 말자국을 보고는, 또 이 말밥이 도마에 오른 지 꽤 되었는데, 입꾹닫으로 흘려보내는 모습을 보고는, 이분은 ‘글담(문단권력) ㅅ’쯤에 있구나 하고 느꼈다.


ㄱ부터 ㅎ 사이는 높낮이(계급·순위)가 아니다. 그냥 갈라서 붙인 닿소리일 뿐이다. 전라북도에서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하는 강준만 씨는 아무런 글담에 없다고 느낀다. 다만, 강준만 씨한테는 이녁 책을 꾸준히 펴낼 ‘개마고원’이라는 ‘한집안 출판사’가 있을 뿐이다. 강준만 씨한테 개마고원 출판사가 없었다면, 이분은 일찌감치 전라도에서 쫓겨나거나 사라져야 했다고 느낀다. 전라도 글담이 꽤나 무시무시하다.


정지돈 씨 같은 글지기가 ‘재야·아웃사이더’로 나아갔어도 나쁘지 않았으리라 느낀다만, 이녁은 이미 새내기 무렵 글부터 ‘글담·인싸’이기를 바란 티가 흐르고, ‘인싸가 아닌 척’으로 글을 엮어서 책으로 묶었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비주류·소장학자’라는 이름으로 어느 글담에도 기웃거리지 않으면서 제자리를 지키는 글지기가 꽤 있었는데, 요사이는 ‘비주류·소장학자’는 가뭇없이 사라졌구나 싶다.


글담(문단권력)에 깃들거나, 글담을 이끌거나, 글담을 새로 세워야 붓힘을 펼까? 붓힘을 펴야 이름을 날리고, 이름을 날려야 돈을 벌며, 돈을 벌어야 새까맣고 커다란 쇳덩이(자가용)를 몰 뿐 아니라, 서울 한강을 내려다보는 잿집(아파트)을 덜컥 살 수 있을까?


나는 꿈꾼다. 광안리 바닷가에서 흘린 10원짜리를 찾아내듯, ‘글담’이 아닌 ‘글밭’을 짓는 이웃과 글지기와 책손을 만나고 싶다. ‘글담(문단권력)’을 기웃거리지 않는 매무새로 ‘글꽃’을 피울 이웃과 글지기와 책손하고 어울리고 싶다.


이리하여 이렇게 말할 만하다. “자숙을 할 만한 마음(양심)이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자숙을 할 만한 짓’을 안 한다”고 할 만하겠지. ‘자숙을 안 할 사람’이 ‘자숙을 하는 시늉을 하’면서 여러모로 말썽을 일으킨다고 하겠지.


이를테면, 아무리 자동차에 급발진 문제가 있었더라도, 여러 사람을 치여죽이는 잘못을 저질렀으면 “애꿎은 분을 치여죽어서 죽을 잘못을 지었습니다!” 하고 무릎을 꿇고서 빌 노릇이요, 이렇게 빌고 나서 나중에 조그맣게 “그런데 자동차가 급발진 같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죽을 잘못을 지었습니다!” 하고 눈물을 흘렸겠지.


지난 2024년 7월 20일 토요일 낮에, 몸부터 푹 쉬고서 저녁에 일하러 가려고, 아마 낮 2시 무렵일 텐데, 부산교대역 기나긴 여러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길손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처음에는 초등학생 일곱 아이가 자전거를 몰면서 건널목을 건넜고, 이다음 건널목에서는 ‘완벽하게 저지(자전거옷)를 갖춰입은 어른 넷이 자전거를 몰면서 건널목을 건넜’다. 나는 이날 두 건널목에서 두 무리, 어린이 일곱과 어른 넷한테 똑같이 큰소리로 “자전거는 건널목에서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면서 건너야 합니다!” 하고 알려주었다. 이때에 어린이 무리 가운데 한 아이만 내렸고, 다른 열 사람은 씽씽 내달리기만 했다.


다른 열 사람은 나중에라도 건널목에서 자전거를 내릴까? 그런데 자전거는 거님길(보행로)에서도 ‘끌바(자전거를 끌면서 걷기)’를 해야 맞다. 도로교통법을 익히고서 자전거를 모는 어린이나 어른은 드물어도 너무 드물다. 다만 한 아이는 바로 몸으로 옮겼기에, 이 한 아이를 바라보면서, 영화 〈the Cove〉(2009)를 본 한국 손님이 3400명이던 모습에서도 작게나마 씨앗(희망)이 있다고 여긴다.


신경숙 씨가 구렁이처럼 다시 고개를 내밀면서 글장사를 하고, 창비는 신나게 책팔이를 한다. 신경숙 씨와 창비 편집부와 대표한테 마음(양심)이 있다면, 여태까지 낸 모든 책을 절판으로 돌리고서 고개를 숙였겠지.


정지돈 씨가 부디 ‘마음’이 있기를 바라는데, 아직도 꿩 구워먹은 모습이라면, 나보다도 여러 ‘정지돈 독자’한테 슬픈 일이라고 느낀다. 정지돈 씨가 앞으로도 글을 쓰고 싶거나 문학을 하고 싶다면, 이제까지 벌인 모든 판을 접고서 제대로 뉘우쳐야 맞고, 얼렁뚱땅 몇 해를 숨죽이다가 다시 책을 내는 짓이 아닌, 15∼20년쯤 알바나 농사를 하고서, 그 뒤에 다시 붓을 쥐고서 새롭게 이녁 삶을 이녁 눈길로만 담아내는 글과 책을 내놓을 일이라고 느낀다.


‘자숙’이란, 모든 사과와 참회와 배상과 ‘죗값 치르기’를 끝낸 뒤로 15∼20년쯤 붓대를 꺾는 일이다. 그런데 사과 같지도 않고 참회라 할 수도 없고, 배상이나 죗값 치르기는 아직 하나도 없는 채 입꾹닫이라면, 이 몸짓은 자숙이 아닌 ‘자숙 코스프레’이구나 싶다. 정지돈 씨 글을 읽어 온 분들을 더 배신하는 셈이라고까지 느낀다.


참회할 줄 모르는 글지기라면 모두 ‘문단권력’이라고 느낀다. “글로 담는 ‘글담’”이 아닌, “글밭에서 꽉 닫아걸어서 끼리끼리 노는 ‘글담’”이란 그지없이 슬픈 수렁일 텐데, 웬만한 글꾼은 ‘글담벼락’을 참으로 좋아하는구나 싶다.


https://blog.naver.com/hbooklove/223491635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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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그리고 죽어》라는 만화책을 놓고서 느낌글을 두 꼭지 썼다. 마음을 달랠 만한 아름다운 만화책인 《이거 그리고 죽어》라고 느낀다. 엄청난 작품이다. 우리 집 17살 큰아이도 이 만화책은 올해에 본 여러 만화책 가운데 가장 잘 나왔다고 손꼽으시더라. 뉘우칠 뜻이 없는 글쟁이는 떠나보낼 수 있기를 빈다. 그리고, 부디 정지돈 씨가 눈물글(참회록)로 새길을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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