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 숲노래 책읽기
2024.7.30. 케빈 카터 Kevin Carter (1960∼1994)
‘퓰리처상’이 있는지조차 모르던 사진기자가 어떻게 ‘퓰리처상’을 받았을까? 케빈 카터 씨는 이녁이 태어나고 자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이 막죽임이라는 무시무시한 발길질과 총칼질로 얼마나 흔하게 퍼졌는가를 어릴 적부터 겪는다. 이러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알리는 길을 어느 날 알았고, 사진으로 ‘미친 싸움나라’를 살짝이라도 멈추거나 바꿀 수 있는 빛을 보았다.
그렇지만 이름난 사진기자가 아니라서, 불굿(전쟁터) 한복판에 맨몸으로 뛰어들면서 찍는 사진을 알아보는 ‘신문사·방송사·잡지사 편집자’는 적었다. 이러던 어느 해에, ‘수단’이라는 나라에서 ‘콘도르가 지켜보는 아이’를 사진으로 담았고, 이 사진은 케빈 카터 씨가 찍은 숱한 ‘내전 참상’ 사진과 함께 〈뉴욕타임즈〉로 갔다.
〈뉴욕타임즈〉 편집부는 케빈 카터 씨를 비롯한 여러 ‘무명 사진기자’가 ‘내전 참상’을 담은 사진을 무더기로 보내는 일을 늘 시큰둥히 여겼다. 그런데 ‘콘도르가 지켜보는 아이’ 사진은 “뉴욕타임즈에 실린 사진 가운데 처음으로 퓰리처상에 뽑힐 만하겠다”고 느낀 편집자가 있었고, 이 편집자는 케빈 카터 씨한테서 이 사진을 샀고, 산 사진을 〈뉴욕타임즈〉 1쪽에 큼지막하게 실었고,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사람들은 깜짝 놀라면서 ‘수단 내전이 이렇게 끔찍한’ 줄 새롭게 바라보는 밑동이 되었다. 그런데 〈뉴욕타임즈〉 편집자는 ‘신문 1쪽 싣기’보다는 ‘퓰리처상’을 노렸고, 1994년 퓰리처상은 이 사진한테 돌아갔다.
케빈 카터 씨는 퓰리처상이라는 이름조차 몰랐다. 그저 아프리카를 비롯한 푸른별 불굿(전쟁터)을 사진기를 쥐고 돌아다니면서 찰칵찰칵 찍을 뿐이다. 부디 이 바보스런 싸움질이 끝나고, 이 불굿이 사그라들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한창 싸움터와 불굿을 헤매며 사진을 찍다가 “퓰리처상을 받아야 하니 미국에 있는 시상식장으로 오라”는 말을 듣는다. 불굿 한복판에서 얼결에 뜬금없는 시상식장으로 ‘끌려가’서 ‘수상 소감’을 말해야 했다.
케빈 카터 씨를 비롯한, 함께 종군 사진기자로 뛰는 사람들은 “내가 왜 이곳(시상식장)에서 시간을 버려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푸른별 한켠에서는 총알이 춤추고 뭇사람이 죽어서 고꾸라지는데, 더욱이 케빈 카터 씨한테 마음벗인 사진기자가 총에 맞아서 죽는데, ‘퓰리처상 시상식장’이며 〈뉴욕타임즈〉 같은 신문사는 그지없이 ‘평화롭’고 ‘배부르’고 ‘흥청망청 축하술’로 시끄러워서, 머리가 터질 듯하다고 했다지.
사진 한 자락을 둘러싼 손가락질이 쏟아져 들어왔다. 게다가 이 사진 한 자락을 놓고서 ‘기자윤리’를 들먹이는 비평마저 쏟아진다. 불굿(전쟁터)에 있어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평화롭고 배부르고 흥청망청인 곳’에서 말만 늘어놓는다. 불굿 한복판에서 ‘내전 피해자’인 사람들하고 똑같이 굶고 헐벗고 추레한 차림새로 떠돌면서 아슬아슬하게 목숨만 건지면서 사진을 찍어서 “제발 이 멍청한 전쟁을 끝내자”고 읊던 사진기자는 아무 할 말이 없다. 불굿 한복판에서 만난 숱한 아이들과 어머니와 아버지하고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손가락질하는 비평가는 칼처럼 으르렁댈 뿐이다. 이리하여 케빈 카터 씨는 아주 미치고 말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프고 굶고 외로운 채 죽어간 아프리카 이웃 곁으로 넋이 되어 돌아갔다.
곰곰이 본다. 사진작가 케빈 카터 씨를 둘러싼 이야기는 너무 잘못 알려졌다. 잘못 알려진 이야기가 똑같이 ‘되풀이(반복 재생산)’로 퍼진다. 영화나 책으로라도 《뱅뱅클럽》을 읽어 보았다면, 제대로 쓰고 밝힌 사진비평을 찬찬히 찾아본다면, 어느 누구도 잘못 말할 일이 아닌데 말이지.
케빈 카터 씨는 언제나 불굿(전쟁터)에 맨몸으로 사진기만 들고서 찾아다니면서, 어린이와 여성이, 그리고 애꿎은 남성이 어떻게 가볍게 죽거나 짓밟히는지 사진으로 찍어서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신문에 보내는 길을 걸었다. 모르는 사람은 너무 모르는데, 사진기자는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찍을 뿐이다. ‘콘도르가 바라보는 아이’ 사진은, 아이 어머니가 가까이에 있었기에 사진기자는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우리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은 못 하더라도 ‘살펴보’거나 ‘알아보’거나 ‘찾아볼’ 수 있을까? 누가 누구를 죽이는 푸른별인가? 누가 아프리카 내전 한복판에서 이웃으로 일하는가? 누가 ‘키보드 워리어’ 짓을 하는가? 누가 아프리카 내전 한복판에 있는 아이들을 돕는 손과 눈일까?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