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알아본 뒤에는 (사진책도서관 2014.4.15.)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책은 읽으려고 만든다. 도서관은 책을 건사하려는 곳이다. 우리는 책을 쓰고 만들며 사고팔고 읽으며 갈무리한다. 그러면, 책은 왜 쓰고 왜 읽는가. 책을 쓴 뒤에는 어떻게 살아가고, 책을 읽은 뒤에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책을 쓰는 사람은 책을 쓰면서 스스로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책을 건사하는 도서관을 지키는 사람은 책을 건사하고 도서관을 지키면서 스스로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지난날에는 도서관이 공공도서관뿐이었고, 공공도서관을 지키는 이는 공무원이라 할 만하다. 오늘날에는 공공도서관 아닌 사립도서관이 생기고, 개인도서관이 태어난다. 사립도서관과 개인도서관을 꾸리는 이들은 저마다 삶을 어떻게 가꾼다고 할 수 있을까. 공공도서관이 있는데 우리들은 왜 사립도서관이나 개인도서관을 스스로 돈과 품을 잔뜩 들여서 열고 가꾸며 꾸리는가.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공공도서관에도 가지만 사립도서관이나 개인도서관에도 간다. 우리 ‘사진책도서관’ 같은 전문도서관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고, 자그마한 동네도서관으로 나들이를 다니는 사람이 있다. 더 많은 책이 더 가지런하게 놓인 곳을 바라면 공공도서관을 가면 될 일인데, 왜 굳이 작은 개인도서관까지 찾아가서 책을 보려고 할까.


  다른 나라는 어떠한지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를 놓고 말한다면, 한국에서는 공공도서관이 책을 버린다. 공공도서관은 책을 오래오래 품지 못한다. 새로 나오는 책을 꾸준히 사들여 갖추는 일은 반가우면서 고맙지만, 애써 사들여 갖추는 책을 두고두고 건사하지 못한다. 사립도서관이나 개인도서관이 생기는 까닭은 ‘공공도서관에 책이 없’고 ‘공공도서관이 책을 버리’기 때문 아닐까 싶다. 공공도서관에 책이 있을 뿐 아니라, 공공도서관이 책을 알뜰살뜰 건사하면서 지키는 몫을 톡톡히 한다면, 굳이 개인도서관을 열 까닭이 있을까.


  동네나 시골에 조그맣게 도서관을 가꾸면서 책쉼터에다가 책배움터를 일구고 싶으면 따로 개인도서관을 열 만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책이 책답게 자리를 못 잡는다. 아무래도 이런저런 안타깝거나 슬픈 까닭이 뒤엉키기에, 곳곳에서 자그맣게 도서관을 여는 책이웃이 늘어나지 싶다.


  책을 알아본 뒤에는 무엇을 해야 아름다울까? 책을 알아본 뒤에는 책에 깃든 이야기를 마음 깊이 아로새겨서 삶을 새롭게 가꿀 때에 아름답겠지.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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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은 신문 들추기 (사진책도서관 2014.4.5.)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유채꽃 냄새를 맡으며 두 아이와 함께 도서관으로 간다. 도서관 둘레로 피어나는 딸기꽃을 들여다본다. 딸기 익을 철을 기다리며 하얀 꽃잎을 쓰다듬는다. 도서관 창문을 모두 연다. 향긋한 풀내음이 고소하다. 숲에 깃들어 살아가는 사람은 풀내음을 먹고도 배부르겠다고 느낀다. 이 풀내음이 바로 밥이요, 풀내음과 섞이는 봄꽃가루가 맛난 숨이 되리라.


  오늘날에는 시골에서도 숲을 누리기 만만하지 않다. 외딴 멧골로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숲바람이나 숲내음을 알기 어렵다. 마을에서는 농약을 끔찍하도록 많이 쓴다. 면소재지나 읍내는 도시하고 똑같은 얼거리이다. 시골마을조차 나무그늘이 드물고, 풀밭에 드러누워 햇살을 누릴 수 있는 데를 찾을 수 없다. 시골에서는 풀밭마다 농약을 쳐대니 섣불리 풀밭에 앉거나 드러눕지도 못한다.


  살림집과 도서관을 시골로 옮기며 우리 식구가 품은 꿈 가운데 하나는, 우리 도서관에 찾아오는 책손이 ‘풀밭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풀밭에 드러누워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쉬’도록 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나무로 짠 좋은 책걸상에 앉아서 책을 읽어도 좋고, 풀밭이나 나무그늘 맨땅에 앉아서 책을 읽어도 좋다. 책은 내려놓고 풀밭에서 뒹굴며 바람을 쐬어도 좋다. 풀노래를 듣고 풀벌레와 개구리와 멧새 노래를 가만히 들어도 좋다.


  책이란 무엇인가. 지식이나 정보를 담아야 책이겠는가. 삶을 노래할 때에 책이요, 책을 이야기할 적에 책이며, 삶을 사랑하는 사이에 시나브로 책이다.


  이런 책을 반드시 읽을 까닭이 없다. 사진길 걷는 이들이 꼭 이런 사진책을 들추어야 사진을 잘 알 수 있지 않다. 이런 책이 있어야 도서관이 되지 않는다. 종이책을 곁에 두어도 좋은 한편, 종이책에서 홀가분하게 살아가면서 이웃을 사랑하고 풀과 나무와 숲이 얼크러진 보금자리를 가꾸거나 아낄 수 있어도 좋다.


  묵은 신문을 들춘다. 그동안 차곡차곡 모으기만 하고 너른 자리에 펼치지 못한 신문꾸러미이다. 신문을 잔뜩 모으지는 않았다. 신문배달을 하며 살던 1995∼1999년 사이에 오려모으기를 무척 많이 했고, 어느 때에는 신문을 통째로 건사했다. 중·고등학교 다니며 모은 예전 인천 신문이 몇 가지 있다. 대학교 학보에 글을 쓰면서 건사한 대학신문이 제법 있다. 네덜란드말을 배울 적에 그러모은 네덜란드 신문이 조금 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같은 이들이 대통령이 되던 날 나온 신문이 차곡차곡 나온다. 중앙일보가 신문에 ‘한자’를 안 쓰기로 하면서 가로쓰기를 처음 하던 1995년 10월 9일치 신문이 있다. 모든 신문을 건사할 수는 없으나, 이럭저럭 뜻있고 재미난 신문들이 보인다. 우리 도서관에서 한결 너른 자리를 쓸 수 있으면 이 신문들을 알뜰히 펼쳐서 선보일 수 있겠지.


  ‘신문 박물관’이 있을까? 있겠지? 신문박물관에서는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묵은 신문을 손으로 만지면서 볼 수 있을까? 헌책방에서 찾아낸 1970년대 〈기자협회보〉라든지 〈조선일보 노동조합 소식지〉는 앞으로 여러모로 뜻있는 자료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런 신문꾸러미는 그저 들여다보기만 하면서도 온갖 이야기가 쏟아진다.


  도서관 골마루를 이리저리 달리면서 놀던 아이들이 조용하다. 큰아이는 도라에몽 만화책에 빠졌다. 일본책인데 아랑곳하지 않고 들여다본다. 워낙 많이 읽은 만화책이니 그림만 봐도 무슨 줄거리인 줄 알 테지. 하늘은 파랗고 들은 푸른 아름다운 사월이다. 이 사월빛을 가슴에 담는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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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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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계획서’를 쓰다 (사진책도서관 2014.4.9.)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어제 ‘도서관 계획서’를 썼다. 마무리지은 계획서를 여러 차례 되읽은 뒤 신안군청 문화관광과로 보낸다. 이 계획서를 어떻게 받아들일는지 모른다. 아하 이렇구나 이렇게 나아갈 때에 아름다운 도서관이 되겠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고,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기다릴 뿐이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을 쓸고 치우다가 딸기밭으로 간다. 우리 도서관 딸기밭은 씨앗을 뿌려서 돌보는 밭이 아니고, 들딸기 스스로 조금씩 퍼지는 딸기밭이다. 이곳에서 들딸기를 거두어 먹으면서 다 먹지는 않는다. 때를 놓친 녀석이나 조금 작다 싶은 아이는 휙휙 이곳저곳으로 던진다. 씨앗이 되어 흙에 깃든 뒤 이듬해에 새롭게 씩씩하게 자라라는 뜻이다. 그동안 이곳에서 들딸기가 꽤 퍼질 만했을 텐데 좀처럼 퍼지지 못했다고 느낀다. 우리 식구가 이 폐교 자리에 도서관을 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들딸기가 이곳저곳으로 퍼진다.


  이 마을 할매 누군가 이곳 들딸기를 훑기는 하는데, 모조리 훑기만 할 뿐 남기지 않고 다 가져가기만 하니 들딸기가 널리 퍼지지는 않았으리라 느낀다. 훑으면서 좀 남기기도 하고 이곳저곳에 던져 놓기도 해야 비로소 두루 퍼져서 이듬해에 훨씬 알뜰히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시골 어르신이 ‘몰라서’ 이렇게 안 할까. 아니다. 모르지는 않으리라. 어느새 버릇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흙을 보듬으며 아끼는 삶을 꾸린다고 하지만, 가난하며 고된 일에 치인 나날이 있고, 새마을운동 때부터 농약과 비료로 땅을 괴롭히는 농업에 길든 탓이다. 옛날에 어느 누가 씨앗 한 톨 안 남기고 모조리 훑는가. 콩 석 알 이야기가 있듯이, 들딸기를 훑을 적에도 모두 훑지 않는 법이다. 왜냐하면, 사람만 먹지 않으니까. 새도 먹고 쥐도 먹으니까. 개미도 먹고 풀벌레도 먹는다. 들딸기 둘레에는 그야말로 온갖 목숨이 찾아들어 조금씩 배를 채운다. 들판에서 이삭을 조금씩 남겨 새들이 겨울나기 하면서 쪼아먹도록 했듯이, 들딸기도 들짐승이 나누어 먹도록 남기기 마련이다. 까치밥으로 감을 남기잖은가. 그러나, 요새는 까치밥 남기는 시골이 줄어든다. 자꾸 사라진다. 마을에 들고양이한테 밥을 챙겨 주는 분이 있지만, 다 챙겨 주지는 않는다. 들개한테 밥을 주는 분이 있으면, 모르는 척하는 분이 있다.


  하얗게 꽃잔치 이루는 들딸기밭을 바라본다. 딸기꽃을 보니 즐겁다. 우리 도서관이 신안으로 옮긴다면 들딸기알을 한 줌 챙겨서 그곳에도 뿌려야지.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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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오는 날 함께 (사진책도서관 2014.3.29.)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비 오는 날 두 아이와 함께 도서관으로 간다. 천천히 에돌아 걷는다. 빗길을 빗소리 들으면서 걷는다. 비내음을 맡는다. 빗물을 먹는 들풀을 바라본다. 일찍부터 잎이 돋안 유채밭에은 유채꽃이 한창이다. 마을 어른들은 논에서 자라는 유채가 아니면 모조리 꺾는다. 경관사업 유채만 논에서 자라기를 바란다. 유채씨가 날려 논둑이나 밭둑에서 자라면 되게 싫어한다. 유채잎을 뜯어서 나물로 삼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땅한 노릇인데, 유채는 상품이 아니다. 유채는 관리물품이 아니다. 유채는 구경거리가 아니다. 유채잎은 한겨울 매서운 바람에도 잎을 틔운다. 겨우내 잎사귀를 내놓으면서 우리를 먹여살린다. 멧짐승은 유채밭이 된 논으로 내려와서 유채잎을 뜯어서 먹겠지. 사람도 유채잎을 뜯어서 겨우내 푸른 숨결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


  왜 멧짐승이 멧자락에서 마을로 내려와서 먹이를 찾겠나. 사람들이 숲까지 헤집으면서 풀을 밟거나 죽이거나 없애니까. 사람들이 숲 깊은 데까지 밭으로 일구어 숲짐승(멧짐승)이 깃들 자리를 자꾸 파고들면서 숲짐승이 먹을 풀을 사람이 혼자 차지하려고 하니까.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으면 좋을 텐데. 함께 사랑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열어야 아름다울 텐데.


  도서관에 닿아 한국말사전을 펼친다. 1940년에 나온 한국말사전부터 1999년에 나온 한국말사전까지 펼친다. 아쉽지만, 1999년을 끝으로 ‘큰사전’은 더 안 나온다. 아니, 더 못 나온다. 사람들이 한국말사전을 사서 읽거나 곁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말학자 스스로 한국말사전을 아름답게 엮지 못한다. 오늘날 사람뿐 아니라 옛날 사람조차 안 쓰던 일본 한자말을 잔뜩 실은 책이 요즈음 이 나라 ‘국어사전’이다. 중국 문학책이나 역사책에 나오는 한자말까지 가득 실은 책이 바로 이 나라 ‘국어사전’이다. 온갖 영어와 자질구레한 시사상식이 될 만한 대목까지 실어서 부피만 두껍게 하고, 뜻풀이에는 제대로 마음을 못 기울인 책이 대한민국 ‘국어사전’이다.


  제대로 아름답게 엮으면 왜 안 팔리겠는가?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사랑하고 아낄 수 있게끔, 이런 데에 제대로 품과 돈과 땀을 들이는 사회 정책과 문화 정책과 교육 정책이 나란히 있어야 할 텐데. 아무튼, ‘라온(랍다)’이라는 낱말을 한국말사전이 언제부터 다루었는지 살펴본다. 1940년 문세영 사전에는 없다. 1947년 조선어학회 사전부터 있다. 1999년 국립국어연구원 사전에는 ‘랍다’로 나온다.


  안동에 있는 이웃 편해문 님이 지난해에 보내 준 예쁜 달력을 넘긴다. 아시아 예쁜 아이들 웃음이 밝다. 이동안 두 아이는 도서관 골마루에서 논다. 두 아이가 일부러 넘어지면서 논다. 골마루 한쪽 바닥이 미끄러운데, 두 녀석이 미끌미끌놀이를 한다. 자꾸 쿵쿵 소리 내며 이리저리 넘어진다. 골마루바닥을 두 녀석이 저희 옷으로 쓸고닦는다는 느낌까지 든다.


  참 잘 노네. 그렇게 놀아야지. 신나게 논 아이들한테 물을 먹인다. 땀을 훔쳐 준다. 덥지? 이제 집으로 가 볼까? 두 아이가 저마다 우산을 하나씩 쓰고 걷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온통 놀이투성이가 된다. 도서관은 놀이터이자 배움터이다. 도서관과 마을은 삶터이자 쉼터이다. 마을과 집은 보금자리이면서 이야기자리이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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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안군 손님, 도서관 옮길까? (사진책도서관 2014.4.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어제 신안군청에서 전화 한 통 온다. 신안군에 있는 섬(이제 다리가 놓여 섬이 아닌 곳이 되었지만)에 도서관을 하나 꾸리려 하는데, 우리한테 도움말을 듣고 싶다 하신다. 오가는 길이 가깝지 않을 테지만 즐겁게 오시라 이야기한다. 그러고 오늘 아침, 신안군청에서 오신 손님을 도서관에서 만난다. 아이들 먹을 밥을 차리고 나서 일찌감치 도서관에 나와서 창문을 열고 골마루를 쓸고 닦으면서 생각한다. 신안군에서 꾀하는 ‘도서관 만들기’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 도움이 될까?


  도서관은 건물로만 도서관이 될 수 없다. 도서관은 무엇보다 책이 있어야 도서관이다. 그리고, 도서관이 도서관다울 수 있자면, 도서관 건물 둘레로 숲이 있어야 한다. 주차장보다 숲이다. 주차장이 아닌 숲이다. 도서관에 찾아와 책을 살펴 읽을 분들은 숲에서 퍼지는 푸른 숨결을 마시고, 숲에 깃드는 멧새가 지저귀는 노래를 들으면서, ‘나무로 만든 책’을 손에 쥐어 이야기 한 자락을 누릴 때에 마음 가득 사랑스러움과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퍼질 만하리라 느낀다. 우리 도서관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살피면, ‘책을 손에 쥐지 않고 창밖에서 퍼지는 풀내음과 새소리’를 누리면서 좋다고들 한다. 책도 책이지만, 책 못지않게 숲바람과 숲노래가 우리 마음을 포근히 적시거나 어루만지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책은 지식만 담지 않는다. 책에는 지식만 넣을 수 없다. 책은 삶을 가꾸는 슬기를 담는다. 책에는 삶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넣으면서 빛난다.


  우리 사진책도서관이 인천에 있을 적에는 오로지 책만 있었다. 다만, 도서관 손님과 함께 인천 골목마실을 자주 즐겼다. 종이책에 있는 이야기는 도서관에서 맛보고, 종이책에 없는 이야기는 두 다리로 골목을 두 시간 남짓 거닐면서 맛볼 수 있기를 바랐다.


  시골자락에 도서관을 옮겨 뿌리를 내리는 동안 날마다 새삼스레 생각한다. 도서관 한 곳이 설 적에는 도서관 건물 넓이와 견주면 열 곱이나 스무 곱쯤 넓게 숲을 이루어야 한다고. 도서관 건물 넓이와 견주어 백 곱쯤 숲을 이루면 참으로 좋으리라 생각한다.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이 자동차를 댈 자리는? 도서관 바깥, 그러니까 도서관을 이루는 숲 바깥 빈터에 자동차를 세우고 도서관까지 십 분 즈음 천천히 풀바람과 풀노래(숲바람과 숲노래)를 누리면서 걸어와야지. 푸른 숨결을 마시면서 도서관으로 들어오도록 한다. 푸른 내음을 먹으면서 도서관에 첫발을 내딛도록 한다.


  숲으로 이루어진 도서관일 때에는, 숲땅을 두 발로 밟으면서 ‘흙이란 이렇게 보송보송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보송보송한 흙에 ‘풀이 아름답게 돋는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다. 큰나무를 옮겨심는대서 숲이 되지 않는다. 씨앗을 심어 나무가 자라도록 할 때에 가장 아름답다. 씨앗을 심어서 돌보기 조금 빠듯하다면 다섯 살 어린이 키높이로 자란 조그마한 나무를 심어서 돌보면 된다. 나무는 참 빠르게 자란다. 다섯 해쯤 기다리면 된다. 다섯 해쯤 기다리는 동안 나무가 자라고, 나무 둘레 풀밭이 살아난다. 나무가 살아나고 풀밭이 살아난다. 나무가 해마다 내놓는 가랑잎을 먹으면서 흙이 새롭게 깨어난다. 빈터에서 퍼지는 풀이 뿌리를 내리고 널리 퍼지면서 흙이 깨어나도록 북돋운다. 풀과 나무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차근차근 아름다운 숲으로 거듭난다. 다섯 해가 지나고 열 해가 되면, 더할 나위 없이 빛나고 눈부신 숲이 되고, 열다섯 해를 지나 스무 해가 되면, 도서관숲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곳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더라도 마음이 확 트이고 시원할 수 있는 ‘사랑터’로 자리잡는다.


  스무 해는 어떤 시간인가? 갓 태어난 아기가 어른이 되는 나날이다. 그러니까, 도서관숲을 가꾼다고 할 적에는, 아기를 돌보아 스스로 우뚝 서는 씩씩하고 예쁜 젊은이가 되도록 보듬는 땀방울과 손길을 들인다고 할 만하다.


  도서관에 갖출 책을 생각해 본다. 돈이 있으면 만 권 십만 권 백만 권 갖추기가 우습지 않다. 그런데, 돈을 들여 책을 한꺼번에 잔뜩 갖추면 훌륭한 도서관이 될까? 아니다. 돈을 들여 살 수 있는 책은 ‘새책방에 있는 책’뿐이다. 아름답고 훌륭하다지만 판이 끊어진 책이 얼마나 많은가?


  잘 생각해야 한다. 도서관은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대여점이 아니다. 도서관은 공부방이 아니다. 대여점이나 공부방이 할 몫을 도서관이 맡을 일이 아니다.


  도서관이 도서관답게 뿌리를 내리자면, 새로 나오는 책 못지않게 ‘사라진 책을 알뜰살뜰 찾아내어 꾸준히 갖추는 틀’을 마련해야 한다. 지식과 정보를 지키는 도서관이 아니라 ‘삶과 이야기’를 ‘사랑스럽게 돌보는’ 자리가 도서관이 될 때에 아름다운 책터가 된다.


  우리 네 식구는 책은 책대로 알차게 건사하면서 숲은 숲대로 가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남 고흥 시골자락에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옮겼다. 인천을 떠나 고흥으로 들어온 해가 2011년이다. 2014년 올해는 우리 도서관이 스스로 빛날 때가 되겠다고 느낀다. 마침 이러할 때에 신안군에서 ‘우리 도서관을 신안으로 옮기면 어떻겠느냐’고 여쭌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내가 도와줄 일이란, 신안군에서 새로운 도서관을 열도록 도움말을 들려주는 일이 아니라, 우리 도서관이 고흥을 떠나 신안으로 가기를 바라는 꿈을 들어주는 일이었구나.


  신안도 시골이니 좋다. 신안은 군청에서 군수와 공무원이 함께 문화에 눈길을 두고 문화를 삶과 얽혀 예쁘게 보듬는 길을 꾸준히 나아가니 멋있다. 신안군처럼 문화와 삶에 마음을 쏟는 지자체는 얼마나 있을까? 문화를 가꾸는 길이란 삶을 가꾸는 길이고, 삶을 가꾸는 길이 바로 복지이다. 이와 같은 얼거리로 문화와 삶과 복지가 한 줄기로 곱게 흐르도록 하는 일이 정치와 경제도 나란히 살린다. 지역 교육에서도 시골 아이들이 모조리 도시로 떠나지 않도록 새 물결을 낼 수 있다.


  고흥군을 돌아보면, 고흥 아이들은 ‘고흥에 남아서 할 일이 없다’고 말한다. 농사짓기도 고기잡이도 양식장에도 마음을 안 둔다. 신안군도 아직 이런 틀과 거의 비슷하리라 느낀다. 그렇지만, 앞으로 신안에서는 신안 아이들이 ‘우리 고향에 남아서 즐겁게 할 일이 많으리라 생각해’ 하고 마음을 돌릴 만하리라 느낀다.


  다만, 신안군은 영광군과 가깝다. 영광 핵발전소와 가깝다. 영광 핵발전소가 하루 빨리 문을 닫도록 신안군이 함께 힘쓸 노릇이라고 느낀다. 고흥군은 군수와 군청에서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끌어들이려고 엄청나게 힘을 쏟았지만 주민 반대로 물거품이 되었다. 신안군은 행정에서 ‘생각이 열렸’고 고흥군은 행정에서 ‘생각이 닫혔’다. 신안군은 자연 환경이 고흥만 하지 못하다. 고흥은 자연 환경이 참 훌륭하지만, 고흥군 행정은 막개발과 시멘트공사에 치우치기만 한다. 신안군은 자연 환경과 바다와 섬을 알뜰히 어루만지면서 손님(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고흥군은 자연 환경도 바다도 들도 섬도 거의 팽개치다시피 할 뿐 아니라, 막개발로 망가뜨리기만 하니, 손님(관광객)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조용하고 한갓진 고흥인 터라, 조용히 쉬고 싶은 이들이 찾아올 뿐이다.


  우리 도서관은 어디에 있을 때에 아름다울까. 우리 도서관은 지난 세 해에 걸쳐 ‘숲 가꾸기’ 하는 길을 여러모로 찾기도 하고 조금씩 해 보기도 했다. 신안에서는 ‘책 있는 도서관’을 넘어 ‘숲 가꾸는 도서관’이라는 앞길을 어느 만큼 어루만지면서 빛낼 수 있을까.


  4만 권이 넘는 책과 엄청난 책꽂이를 싸서 옮기는 일이란 너무 고달프며 힘겹다. 그렇지만, 이 책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거나 이웃마을에서 끝없이 뿌리는 농약바다에서 숨을 고르기도 만만하지 않으며 갑갑하기까지 하다. 다음주 수요일까지 우리 앞길을 골라야 한다. 그대로 고흥에서 이 도서관을 지키느냐, 신안으로 옮겨 새로운 자리에서 새로운 도서관으로 하느냐. 둘레에서 좋은 말씀을 들려주면 고맙겠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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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4-05 0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이 많으시겠습니다.

숲노래 2014-04-05 06:45   좋아요 0 | URL
마음속으로 결정은 다 되었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찬찬히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