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바람 (사진책도서관 2016.4.7.)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도서관 어귀에서 자라는 아왜나무 둘레로 갓꽃하고 유채꽃이 한껏 돋습니다. 경관사업을 하느라 논에 심은 유채씨가 바람에 날려서 깨어난 유채가 있고, 먼 옛날부터 이 고장에서 돋은 갓이 있습니다. 꽃대가 오르면서 잎이 오그라들 무렵에는 갓꽃인지 유채꽃인지 가늠하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노란 꽃송이가 한껏 흐드러질 적에는 그저 노란 물결입니다.


  갓꽃하고 유채꽃이 남실거리다가 꽃송이가 모두 떨어지고 씨앗을 맺을 무렵에는 잔바람에도 줄기가 꺾이곤 합니다. 꽃대가 설 적에는 줄기가 야무지다면, 씨앗을 맺으면서 어느덧 줄기가 마르거든요. 이러면서 갓이나 유채는 어느새 땅바닥에 쓰러져서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풀이 돋습니다.


  사람이 손을 써서 풀을 밀어내어 땅을 갈아엎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하루아침에 한결 보기 좋게 밭이나 땅을 다스릴 수 있어요. 그런데 사람이 밀어서 갈아엎은 자리에서 풀줄기는 좀처럼 썩지 못합니다. 사람이 밀지 않고 풀이 저 스스로 쓰러진 자리에서는 한 해가 채 가기 앞서 풀줄기가 모두 썩어서 바스러집니다.


  왜 이렇게 되는지 아리송했는데, 땅거죽에 사는 풀벌레와 작은벌레가 풀줄기를 갉아먹으면서 없애 주기 때문이더군요. 먼저 땅거죽 풀벌레하고 작은벌레가 풀줄기를 갉고, 다음에는 땅속에 있는 지렁이를 비롯한 조그마한 목숨들이 ‘땅거죽 풀벌레가 갉은 것’을 다시 삭혀서 흙으로 바꾸어요. 사람이 맨눈으로는 이 흐름을 알아채거나 알아보기 어렵지만,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수많은 목숨붙이가 바지런을 떨면서 흙과 땅과 숲을 지키는 셈이에요.


  삼월에는 삼월 꽃바람이 불고, 사월에는 사월 꽃바람이 붑니다. 《나무수업》하고 《씨앗이 있어야 우리가 살아요》라고 하는 책을 즐거우면서 고맙게 읽습니다. 나무하고 씨앗이 있는 곳에서 싱그러운 살림이 피어납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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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물과 선거 (사진책도서관 2016.4.13.)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국회의원을 뽑는 날입니다. 나와 곁님은 ‘미리 하는 선거날’에 한 표를 찍었습니다. 어제는 뒤꼍에 나무 한 그루를 옮겨심었고, 오늘은 어제 구덩이를 두 차례 깊게 파고 나무를 나르느라 고단한 등허리를 가만히 쉬어 줍니다. 비가 그친 저녁에 곁님 먹을 고기를 사러 면소재지에 다녀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서 빗물을 훔칩니다. 도서관이 깃든 건물은 많이 낡아서 해마다 빗물이 더 많이 샙니다. 빗물이 새는 데에 맞추어 책꽂이 자리를 바꾸거나 옮기기도 했는데, 새로운 자리에서 옴팡지게 빗물이 새니, 책꽂이를 또 옮겨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오늘 선거에 나온 분 가운데에는 우리 도서관 지킴이가 한 분 계십니다. 사진책도서관이라고 하는 책터를 열려고 할 즈음 맨 처음으로 도서관 지킴이가 되어 주신 분인데, 그무렵에 평생지킴이로 해 주셨어요. 갓 사진책도서관을 열 무렵에 목돈이 들 일이 많았는데 큰 힘이 되었지요. 인천에서 처음 도서관을 열면서 책꽂이를 더 들이고, 유리창이나 이런저런 곳을 손보면서 드는 돈을 고맙게 잘 쓸 수 있었어요. 우리 도서관 지킴이 가운데 한 분인 고운 이웃님은 서울 마포 을에 후보로 나오셨고, 씩씩하게 뽑히셨습니다.


  사월비가 지나간 자리는 사월볕이 드리우면서 한결 싱그러우면서 푸릅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심은 씨앗은 하나둘 싹이 틉니다. 우리 집 나무에도, 마을 나무에도, 조롱조롱 새싹이 트고 새잎이 돋습니다. 먼발치에서 도서관 지킴이로 지내 주시는 이웃님들 모두 이녁 보금자리와 살림자리에서 저마다 뜻하는 일을 슬기롭고 즐겁게 이루시리라 생각해요. 종이로 된 책에서도 슬기를 얻고,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으로도 기쁨을 얻으며, 밥짓기나 옷짓기나 아이키우기 같은 손길에서도 노래를 얻으리라 생각해요. 시골마을에 깃든 이 도서관에서 태어나는 따사롭고 너그러운 바람이 골골샅샅 보듬을 수 있기를 빕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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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유채꽃 (사진책도서관 2016.4.5.)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군에서 경관사업을 하며 늦가을에 유채씨를 논에 뿌리도록 합니다. 바람을 타며 논둑이나 길가에서 돋는 유채는 잎도 줄기도 꽃도 모두 크고, 들유채는 한겨울이나 늦겨울에도 피어나는데, 논유채는 사월로 접어들며 꽃물결을 이룹니다. 이제 막 터져서 가볍게 노란 물결을 이루는 유채논을 바라보며 걷습니다. 도서관 어귀에서 자라는 갓꽃을 함께 바라봅니다. 나는 이제 유채꽃하고 갓꽃이 어떻게 다른가를 가릴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두 가지 꽃을 가르지 못합니다. 아마 꽃만 보면 알기 어렵겠지요. 여느 눈으로는 매화꽃하고 벚꽃을 가리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요. 유채인가 갓인가는 잎을 보면 알 만해요. 잎빛이 서로 다르고, 잎결도 서로 달라요. 꽃대하고 꽃은 거의 비슷하지만요. 그리고 유채는 꽃대를 꺾어서 겉껍질을 벗겨서 씹어 보면 갓보다 한결 부드러운 맛이에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매화꽃하고 벚꽃은 냄새가 다릅니다. 매화나무하고 벚나무는 서로 다른 나무이니까요. 유채꽃하고 갓꽃도 냄새로 가를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유채잎은 물맛 같은 부드러움이라면 갓잎은 알싸하게 쏘는 맛이니, 눈을 감고 코를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가만히 살펴서 가릴 수 있으리라 느껴요.


  사뿐사뿐 봄나들이를 하듯이 들길을 걸어서 도서관으로 갔다가, 다시 가볍게 봄노래를 부르고 달리기를 하면서 들길을 돌아 집으로 옵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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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말사전 (사진책도서관 2016.3.31.)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한 권 펴내려고 하면서 삼월 마지막 한 주를 집에서 ‘글손질’로 보냅니다. 원고지로 2800장 남짓 되는 글을 낱낱이 되읽으면서 뜻풀이를 가다듬고 보기글을 새로 붙이기도 합니다. 새롭게 펴내려는 한국말사전은 ‘비슷한말 사전’이기에, 비슷한말을 풀이하거나 다루면서 자칫 돌림풀이가 된 대목이 없는가 하고 살피는데, 자꾸 이곳저곳이 보입니다. 예전에 이 글을 쓰면서 손보고 거듭 손볼 적에는 안 보이던 대목이 새삼스레 보입니다.


  월요일부터 하던 ‘글손질’은 화요일과 수요일을 지나는 사이에도 끝날 낌새가 보이지 않더니, 목요일과 금요일까지 온통 바쳐야 하는구나 싶도록 손질할 데가 드러납니다. 글손질을 하며 생각해 보았지요. 이 글꾸러미가 지난해나 지지난해에 책으로 나왔으면 어떠했을까 하고. 그때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사전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너무 부끄러운 책이 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돌림풀이를 눈치채지 못할 수 있을 텐데,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해도 내가 눈치를 챈다면 부끄럽지요. 이 글꾸러미가 두 해 즈음 묵고서 이제 바야흐로 책으로 나올 수 있으니 이모저모 손질할 곳을 느끼고 찾아내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아무튼 새벽부터 밤까지 글손질에 꼬박 매달리는 동안 도서관에는 거의 한 발짝도 디디지 못하고, 아이들은 저희끼리 잘 놀아 줍니다. 설렁설렁 차리는 밥에도 아이들이 맛나게 먹어 주고, 머리를 식히고 몸을 쉬려고 살짝 바람을 쐬는 길에도 아이들이 잘 뛰어놉니다. 글을 도맡아서 쓰고 손질하기로는 나 한 사람이지만, 이 한국말사전이 오월에 눈부신 햇살을 받고 태어난다면, 이 새로운 한국말사전 한 권은 바로 우리 네 식구 숨결이 고이 깃드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이 사전에는 ‘글쓴이’ 자리에 ‘숲노래’ 이름도 함께 넣습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도서관일기)





* ‘사진책도서관+한국말사전 배움터’에 오실 적에는 먼저 전화해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한국말사전 배움터’에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ㄱ : 한꺼번에 200만 원을 돕거나, 더 크게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ㄴ : 지킴이로 지내며 보탠 돈이 200만 원을 넘으면 된다

* 도서관+배움터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배움터 지킴이가 되신 분은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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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학교 (사진책도서관 2016.3.22.)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우리 도서관으로 삼는 폐교인 흥양초등학교 한쪽에 아왜나무가 한 그루 커다랗게 있습니다. 이만큼 우람하게 자란 아왜나무를 아직 다른 곳에서는 못 보았습니다. 옆으로 넓게 퍼졌던 가지가 많이 잘린 뒤 시름시름 앓는 모습을 가지 끝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늘푸른나무인 아왜나무인데 잎이 자꾸 지기만 하고 좀처럼 새 잎이 돋지 못합니다.


  큰아이가 아왜나무한테 다가가서 가만히 끌어안더니, 바닥에 떨어진 잎을 몇 줍습니다. 아왜나무 곁에서 소근소근 무언가를 말하고, 한손에 아왜나무잎을 쥐고서 또 무언가를 말합니다. 나중에 들으니, 큰아이는 “‘불 끄는 나무’가 튼튼하게 자라라고 말해 줬어.” 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불 끄는 나무’란 아왜나무를 가리킵니다. 아왜나무는 둘레에 불이 나면 줄기랑 가지에 가득 그러모은 물기를 바깥으로 거품처럼 뿜어내면서 불길이 더 퍼지지 못하게 막는다고 해요. 그래서 이 나무는 울타리로 삼는다든지 ‘숲불이 퍼지지 않도록 심는 나무(방화수)’이기도 합니다. 아이한테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아왜나무’라는 이름은 말하기 까다로우니, 어쩌면 ‘불 끄는 나무’라는 이름이 한결 쉬울는지 몰라요. 일본에서는 아예 ‘거품나무(아와부키)’라고 합니다.


  아주 따뜻한 고장에서만 사는 아왜나무이기에, 도서관을 고흥에서 꾸리지 않았으면 아왜나무라는 나무가 있는지도 모르는 채 살았으리라 느낍니다. 이름을 들었어도 사진으로만 보았을 테고요. 도서관을 오가면서 아이들하고 늘 아왜나무를 바라보고, 아이는 ‘불 끄는 나무’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동백나무도 그런데, 아왜나무도 잎사귀가 무척 두툼하고 반짝반짝 빛납니다. 도시에서는 이들 나무가 ‘공기정화’를 훌륭히 한다고 여겨 집안에 조그맣게 키우기도 한다지요.


  모든 책은 나무에서 오는데, 이제껏 나무를 제대로 모르는 채 살았다고 늘 깨닫습니다. 나무가 있기에 책이 태어나고, 나무가 있기에 맑은 바람을 마시며, 나무가 있기에 집을 짓습니다. 봄이 무르익으면서 나무마다 새로운 잎이 반들반들 곱게 돋습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도서관일기)






* ‘사진책도서관+한국말사전 배움터’에 오실 적에는 먼저 전화해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한국말사전 배움터’에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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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ㄴ : 지킴이로 지내며 보탠 돈이 200만 원을 넘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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