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형의 청소년 소비 특강 - 대량 소비가 만든 쓰레기 이야기 10대를 위한 인문학 특강 시리즈 2
최원형 지음 / 철수와영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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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33



서울 쓰레기 160만 톤이 날마다 인천으로?

― 최원형의 청소년 소비 특강

 최원형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7.11.30. 13000원



  우리 집 곁님이 ‘이불’을 손수 뜨개로 마련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어느 이웃님은 뜨악하다는 얼굴을 했습니다. 그분은 왜? 뭣하러?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그냥 돈을 주고 사서 쓰면 되지 않느냐고 여기셨어요.


  저희 식구는 플라스틱 잇솔을 안 쓰려고 여러 해에 걸쳐 생각하고 헤아리다가 드디어 알맞춤한 잇솔을 얻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잇솔을 손수 나무로 깎지 못했으나, 나무 손잡이에 돼지털을 정갈하게 박은 잇솔을 얻었어요. 우리 식구가 ‘돼지털 나무 잇솔’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어느 이웃님도 매우 뜨악하다는 얼굴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 참 거석하다고 여기셨습니다.



오늘날은 왜 고쳐쓰는 일이 사라지고 새로 사는 일이 반복되는 걸까요? 얼마나 많은 자원을 우리가 쓰고 있는지 가늠이 되나요? 모든 물건은 지구에서 나오는 원료로 만들어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자원의 양이 점점 증가한 걸까요? (7쪽)


발전에 대해 생각해 볼게요. 우리는 숲이 우거져 있는 곳을 보고 발전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숲이 있던 자리에 아파트나 빌딩이 들어서고 개발이 되면 많이 발전했다고 합니다. (25쪽)



  어떤 살림이건 우리가 손수 지어서 누릴 수 있을 적에 가장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더디 걸리거나 투박하다 하더라도 아이하고 함께 짓는 살림은 오래 갈 뿐 아니라 마음이 따스하게 흐른다고 느껴요. 손수 지어서 누리는 살림이기에 꾸준히 손질해서 잘 건사할 수 있기도 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있어요. 손수 지어서 누리는 살림은 나중에 다 닳거나 해질 적에 쓰레기가 안 돼요. 왜 그러한가 하면, 손수 살림을 지을 적에는 ‘다 써서 더는 쓸 수 없을 적에 흙으로 곱게 돌아갈 수 있을 만한 것’으로 지을 테니까요.


  우리가 가게에서 돈을 치러서 사다 쓰는 살림을 찬찬히 돌아보면 좋겠어요. 어느 것에나 비닐자루가 깃들기 마련이고, 이래저래 ‘버려야 하는 겉싸개(포장지)’가 있습니다. 흔한 과자 한 자루나 빵 한 조각조차 비닐 껍데기입니다. 커피 한 잔을 커피집에서 마셔도 도자기나 유리나 스텐 같은 잔에 주지 않는다면 쓰레기가 생겨요.



197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부동산 개발 바람과 함께 콘크리트를 이용해서 대규모로 짓는 아파트가 유행이 되었지요. 이때부터 집은 스스로 짓는 게 아니라 돈을 지불하고 사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게 되었어요. 집에다 사람을 맞추기 시작한 거지요. (54쪽)


천연 섬유는 자연에서 거둔 재료로 만들기 때문에 자연스레 다시 자연으로 돌아갑니다만 합성 섬유는 그렇지 못합니다. (100쪽)



  《최원형의 청소년 소비 특강》(철수와영희, 2017)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첫째 ‘살림’을 돌아봅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살림을 지으면서 하루를 누리는지 돌아봅니다. 다음으로 ‘씀씀이(소비)’를 돌아봅니다. 손수 짓지 못하는 살림일 적에는 돈으로 사다가 쓰는데, 무엇을 돈으로 사서 쓰는지, 돈으로 사서 쓸 적에 품이나 겨를을 얼마나 들여야 하는가를 돌아봅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가게 물건 하나마다 달라붙는 자잘한 쓰레기가 무척 많습니다. 그리고 이 물건이 가게로 오기까지 생태발자국도 꽤 길어요.


  《최원형의 청소년 소비 특강》이라는 책에서 지은이가 밝히기도 합니다만, 어쩌면 우리는 ‘살림짓기+씀씀이’를 집이나 학교나 마을에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구나 싶기도 합니다. 집에서는 우리를 학교에 보내기만 했을 뿐, 살림을 배우라고 이야기하는 어버이는 드물어요. 예나 이제나 비슷합니다.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학교에서 공부 잘해서 시험을 잘 치르라고는 말하지요?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밥을 잘 짓는 길’이나 ‘빨래를 슬기롭게 하는 길’이나 ‘청소를 비롯한 집안일을 즐겁게 하는 길’을 이야기하거나 알려주거나 물려주는 어버이는 보기 힘들지요? 그리고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지구를 더럽히지 않으면서 쓰는(소비하는) 살림’을 이야기하거나 가르치는 어버이도 보기 힘들다고 느껴요.



지구 주변을 돌고 있는 우주 쓰레기는 대략 6300톤가량 된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우주로 발사체를 날려 보내고 있어요. 2015년에 지구에서 발사된 위성 수는 263기나 된다고 합니다. 이 위성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121쪽)


서울시의 쓰레기를 인천에 있는 수도권 매립지에 가져다 버리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윤리적인 행위는 아닌 것 같아요 … 서울시의 경우 쓰레기는 인천시에 있는 매립지로 가는데 그 양이 160만 톤이 넘어요. (133, 134쪽)



  시골에서나 서울에서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을 매우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동차를 몰다가 창문 밖으로 쓰레기를 휙 던지기도 합니다. 시골에서는 골짜기나 밭둑에 쓰레기를 몰래 버려 놓고서 달아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길가에 빈 커피잔이나 깡통을 아무렇지 않게 버리고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요.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을 보다가 생각에 잠깁니다. 왜 많은 사람들은 쓰레기를 아무 데나 함부로 버릴까요? 어쩌면 우리는 ‘살림 교육’이나 ‘소비 교육’이나 ‘쓰레기 교육’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지는 않을까요? 우리가 누리거나 쓰는 모든 살림살이를 찬찬히 배우지 못한 나머지, 돈으로 가볍게 사다가 쓰고는 휙휙 버리는 버릇에 젖어들지는 않았을까요? 우리가 쉽게 버리는 쓰레기가 땅하고 바다를 더럽혀 끝내 우리 스스로한테 돌아오고 마는 줄 잊지는 않았을까요?



커피콩에서 우리가 커피로 추출하는 양은 1퍼센트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니 에너지를 들여 키운 커피를 거의 대부분 버리는 셈이지요. (141쪽)


일본 생협의 경우는 80퍼센트의 빈 병이 재사용된다고 합니다. 국내 한 생협에서 실시하고 있는 빈 병 재사용률을 알아봤더니 2017년 6월 현재 25%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155쪽)



  《최원형의 청소년 소비 특강》을 읽다가 몇 대목에서 흠칫 놀랍니다. 지은이는 소비하고 쓰레기를 나란히 이야기하면서 틈틈이 통계 자료를 보여주는데, 서울에서 하루에 나오는 쓰레기 부피가 자그마치 160만 톤이라고 한대요. 게다가 서울 하루 쓰레기 160만 톤은 서울에 파묻을 곳이 없어 이웃인 인천에 갖다가 파묻는다고 해요.


  이 책에서 더 다루지는 않습니다만, 부산이나 대구나 광주 같은 큰도시는 하루에 쓰레기가 얼마나 나올까요? 다른 큰도시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요? 그나저나 인천도 자그마한 도시는 아닐 텐데, 인천에서 하루에 나오는 쓰레기는 또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아니, 무엇보다 왜 이렇게 어마어마한 쓰레기가 날마다 나와야 할까요? 우리는 쓰레기를 줄이거나 없애는 길을 찾을 수 없을까요? 우리는 ‘쓰고 버리는 몸짓’을 좀 멈추고 ‘스스로 지어서 누리는 살림’으로 달라져야 하지는 않을까요?



생태적으로 사는 건 단지 불편한 것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하는 일입니다. (203쪽)



  학교에서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교과목만 배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학교에서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삶을 짓는 슬기로운 손길’을 함께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러면서 ‘살림을 가꾸는 즐거운 마음’도 배울 수 있으면 좋겠고요. 우리 어른들은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이웃을 사랑하는 넉넉한 품’이 되어 주기를 바라요.


  숲을 곱게 돌보는 길이란 ‘자연 보호’만이 아닌 ‘우리를 스스로 아끼는 길’이면서 ‘우리가 스스로 즐거운 길’인 줄 느끼고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알맞게 짓고, 즐겁게 나누면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보금자리와 마을과 나라가 되면 좋겠어요. 좋은 나라, 좋은 마을, 좋은 보금자리, 좋은 숲을 꿈꿉니다. 2017.12.6.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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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친구가 될 순 없나요? 달을 담은 책그릇 1
프랑크 비주 지음, 윤정임 옮김, 이혜진 그림 / 책그릇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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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80


할머니와 아이는 가장 오래된 동무
― 할머니와 친구가 될 순 없나요?
 프랑크 비주 글·이혜진 그림/윤정임 옮김
 책그릇, 2007.4.2.


“머리가 온통 까치집이잖아!” 리즈는 듣지 못해요. 아니 못 들은 척해요. 리즈는 책가방을 등에 메고 걸어갑니다. ‘예쁘지 않아도 상관없어!’라는 표정이에요. (11쪽)


  우리는 모두 할머니가 됩니다. 또는 할아버지가 됩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되는 일은 두렵지 않습니다. 그저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될 뿐입니다. 젊어 보이기에 할머니가 아니라 하지 않습니다. 몸이 튼튼하대서 할아버지라 안 하지 않습니다. 어느 나이에 이르면 모두 할머니나 할아버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아이입니다. 갓 태어나서 뒤집고 기고 서고 하던 아기 때를 지나서, 씩씩하게 걷고 달리며 노는 아이로 살았어요. 그리고 우리를 낳은 어버이가 있으니 나이를 많이 먹어도 우리는 참말 모두 아이입니다.


책들, 이러저런 생각들, 각종 이론과 지리에 대해 얘기하고, 비와 물방울, 끝없이 흘러가는 구름, 영원한 달 그리고 우주에 대해서도 얘기합니다. 그렇게 위대하면서도 친근해 보이는 저 높은 곳의 우주는 고요하기만 해요. 그런 생각을 하노라니 아주 경이로운 느낌이 들어요. 두 사람은 입을 다물어요. 소리 없이. 긴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리즈는 자기 손을 리타의 손으로 가져갑니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아요. 복숭앗빛 손과 검버섯이 난 손을 서로 마주 잡고 둘이서 미소를 지어요. (34쪽)


  프랑스 어린이문학 《할머니와 친구가 될 순 없나요?》(책그릇, 2007)는 아이하고 할머니 사이에 맺은 따사로운 마음을 건드립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프랑스라는 나라도 아이하고 할머니(또는 할아버지) 사이에 금을 죽 긋는 사람이 제법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아이를 쉽게 기숙사에 넣고,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쉽게 양로원에 넣기도 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프랑스라는 나라도 아이가, 더욱이 가시내가 까치집 머리를 하고 다니면 이를 매우 못마땅해 하는 어버이가 있네 하고 느낍니다. 게다가 까치집 머리를 하는 아이를 놀리거나 괴롭히는 또래가 꽤 있구나 하고도 느낍니다.

  일본에서 ‘이지메’라는 말을 쓰기도 하고, 한국말에도 ‘따돌리다·개밥도토리’처럼 이웃이나 동무를 괴롭히는 짓을 가리키는 말이 있어요. 프랑스에서는 어떤 말을 쓸는지 모르지만 썩 아름답지 못한 일이 그 나라에도 똑같이 있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아름답다는 게 뭐야, 엄마?” “으음, 글쎄, 니나 아줌마에게 물어봐야 알겠는걸.” 리즈는 어깨를 으쓱합니다. “리타 할머니에게 물어보면 안 되나?” (39쪽)

그러는 동안 리즈와 리타는 서로의 삶을 이야기했지요. 아직은 아주 조금밖에 살지 않은 리즈의 삶과 아주 오래 살아온 리타의 삶을. (69쪽)

“슬플 때면 할머니 품에 안기고, 그러면 할머니가 ‘괜찮다, 얘야, 나도 그런 적이 있단다……’ 하면서 위로해 주는 꿈도 꾸어요. 할머니는 나랑 제일 친한 친구야. 할머니는 내 가장 오랜 친구야.” (72쪽)


  《할머니와 친구가 될 순 없나요?》를 이끄는 사람은 둘입니다. 하나는 또래보다 키가 매우 작은 가시내입니다. 다른 하나는 또래보다 키가 매우 큰 할머니입니다. 키가 작은 아이는 얼굴이나 몸 가꾸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키가 작은 아이네 어머니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하면 키가 자라도록 하고 얼굴이나 몸을 가꾸도록 이끌까 하고 머리를 싸맵니다.

  키가 큰 할머니네 아들은 어떻게 하면 이녁 어머니인 할머니를 양로원에 보낼 수 있을까 하고 머리를 싸맵니다. 두 아들은 젊은 어머니(이제는 할머니이지만)가 살뜰히 돌보아서 무럭무럭 클 수 있었는데, 다 크고 나서는 할머니를 돌보거나 모시는 일을 꽤 귀찮거나 성가시다고 여긴답니다. 이녁 어머니(할머니)하고 나눌 만한 이야기가 없다고 느끼며, 나이가 많아 ‘언제 쓰러질는지 모르’니 걱정이 없도록 양로원에 가야 한다고만 말한대요.


“바르댕 영감, 군인 일은 이제 끝났어요. 무기를 내려놓고 인생의 마지막은 좀 규칙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보내도록 하세요! 이 아이를 내버려 둬요. 우리랑 아주 잘 지내고 있잖아요.” (93쪽)


  아이하고 할머니가 어느 날 병원에서 처음으로 만납니다. 아이하고 할머니는 어머니랑 아들들이 못마땅합니다. 어머니랑 아들들도 아이하고 할머니가 못마땅하지요. 그런데 아이하고 할머니는 병원 의사가 못마땅하고, 두 사람은 문득 병원에서 마주쳤으며, 살며시 말을 섞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아이하고 할머니는 서로 이렇게 죽이 잘 맞고 마음이 잘 어울리는가 하고 놀랍니다.

  둘은 다른 사람, 그러니까 아이 어머니하고 할머니 아들들은 아랑곳하지 않기로 합니다. 낳은 어머니보다 마음이 맞는 할머니가 좋은 아이입니다. 낳은 아들들보다 죽이 맞는 아이가 좋은 할머니입니다. 두 사람은 나이가 매우 많이 벌어지지만, 나이를 넘어서는 동무가 됩니다. 아이는 궁금한 일을 할머니한테 여쭈고, 할머니는 새로 익히거나 깨달은 이야기를 아이한테 알려줍니다.

  그러나 둘 사이는 오래가지 못한대요. 아이네 어머니하고 할머니네 아들들은 둘이 가까이 지내는 일을 대단히 못마땅히 여겼고, 둘 사이를 가르려고 기숙학교하고 양로원으로 보냅니다.


리즈가 노인들 곁에서 사랑을 받고, 리타도 아이들 곁에서 잘 지내자, 리즈와 리타는 모두를 불러 회의를 열고 말했어요. “우리들이 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떨어져 살아야 되죠?” “그러게 말야, 왜 우리들이 아이들과 떨어져 사랑야 하지?” “그러네. 왜? 어째서? 어! 정말 그러네, 왜? 무슨 이야기로? 정말? 왜? 뭐하러?” “기숙사는…….” “양로원 바로 옆에 있어.” “그러니까 공동 정원을 만들 수 있을 거야.” (94쪽)


  아이는 할머니나 할아버지하고 동무가 될 수 없을까요?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아이하고 동무로 지낼 수 없을까요? 우리는 왜 기숙학교나 고아원 같은 시설을 따로 지어서 또래 아이들만 모아 놓아야 할까요? 그리고 왜 양로원이라는 시설을 외따로 지어서 또래 할머니 할아버지만 모아 놓아야 할까요?

  마을을 이루어 함께 어우러지고, 서로 돌보고, 같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쇠가시울타리로 금을 갈라서 못 넘어오게 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 아이는 할머니랑 할아버지한테서 배우고,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그동안 익힌 아름다운 슬기를 고스란히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그마한 어린이문학 한 권은 프랑스라는 사회에서 쇠가시울타리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립니다. 이 마음은 어느 한 나라에서뿐 아니라, 나라하고 나라 사이에서도 사라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 다른 사람들이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거움을 나누고 기쁨을 주고받으면 좋겠습니다. 돈으로 쳐도 그래요. 쇠가시울타리를 세우거나 다스리는 데에 돈을 쓰기보다는, ‘나눔뜰’을 마련하여 누구나 스스럼없이 드나들며 이야기꽃을 피우도록 북돋우기를 바랍니다.

  할머니하고 아이는 오랜 동무입니다. 아마 가장 오래된 동무일 테지요. 아이하고 할아버지도 오랜 동무입니다. 참말 가장 오래된 동무라고 느낍니다. 2017.11.20.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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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기가 천근만근 울퉁불퉁 어린이 감성 동화 2
다니엘 네스켄스 지음, 에밀리오 우르베루아가 그림, 김영주 옮김 / 분홍고래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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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79


엉뚱한 이야기밥 먹고 무럭무럭 자라네
― 엉뚱하기가 천근만근
 다니엘 네스켄스 글·에밀리오 우르베루아가 그림/김영주 옮김
 분홍고래, 2017.6.14. 13000원


“너, 헤엄을 잘 치는구나. 이름이 뭐야?” 다른 한 마리가 대답했어요. “펭권이야.” “어, 내 이름이랑 똑같네!” 질문을 한 펭귄이 흠뻑 젖은 채 외치고는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그런데 누가 ‘펭귄아’ 하고 부르면 우리 둘 다 뒤돌아봐야 하잖아.” (6쪽)


  아이들은 무슨 밥을 먹으면서 살까요? 이 물음을 듣고 우리는 어떻게 대꾸하려나요. 무슨 밥은 무슨 밥, 그냥 밥을 먹고 살지, 하고 대꾸할까요. 이것저것 골고루 갖춘 밥을 먹고 산다고 대꾸할까요. 씹기 부드럽고 잘 넘억가는 밥을 먹고 산다고 대꾸할까요. 어버이가 사랑으로 차려 주는 밥을 먹고 산다고 대꾸할까요.

  그런데 아이들은 수저를 들어야 하는 밥만 먹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수저를 들지 않아도 되는 밥도 먹어요. 바로 이야기밥입니다.

  하나 더 헤아려 본다면, 수저를 들 적에만 몸을 살리는 밥을 먹지 않아요. 아이들한테 이야기밥을 함께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수저를 놀리면서도 몸이 튼튼하지 못합니다. 아이는 ‘수저밥 + 이야기밥’을 누려야 비로소 몸하고 마음이 나란히 튼튼하게 자랍니다. 그리고 수저밥이나 이야기밥에는 언제나 사랑이 바탕에 있어야 하고요.


내게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르는 조카가 있어요. 그다음에는 이야기를 만든 것처럼 레모네이드도 직접 만들어 달라고 해요. 내가 조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면 조카는 이렇게 말하죠. “나쁘진 않은데 다음번엔 더 잘하면 좋겠어.” (38쪽)


  《엉뚱하기가 천근만근》(분홍고래, 2017)은 이야기밥입니다. 아이들이 수저밥 못지않게 좋아하는, 때로는 수저밥보다 좋아할 수 있는 이야기밥입니다. 그런데 책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냥 이야기밥은 아닙니다. ‘엉뚱이야기밥’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이야기가 엉뚱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헤아리면 이 책에 흐르는 이야기는 그리 엉뚱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엉뚱할 수 있습니다. 숱한 신문이나 방송이 엉뚱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렇지요. 사람이 죽거나 다치거나 누구를 속이거나 괴롭히는 짓만 잔뜩 나오는 신문이나 방송이 엉뚱할 수 있어요. 아름답거나 즐겁거나 사랑스러운 이웃들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신문이나 방송이 엉뚱할 수 있지요.

  왜 우리는 사건이나 사고를 다루어야 ‘사회 기사’라고 여길까요? 제비가 둥지를 짓고 알을 낳아 먹이를 먹이는 모습을 다루는 ‘사회 기사’를 다룰 수 없을까요? 여름을 한국에서 보낸 제비가 가을에 무리를 지어 드넓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뒤쫓는 ‘사회 기사’를 만날 수 없을까요? 제비가 떠나며 빈 둥지를 슬그머니 차지하려는 참새나 박새를 다루는 ‘사회 기사’를 볼 수 없을까요?


가장 마음에 든 선물은 다니엘 삼촌이 준 거였어요. 다니엘 삼촌의 입가에는 늘 미소가 떠나질 않아요. 삼촌은 다리가 부러져도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요. 삼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예요. (45쪽)


  많은 어른들은 아이들이 하는 말이나 몸짓을 보면서 ‘엉뚱해!’ 하고 잘라 말하곤 합니다. 참말로 아이들 말이나 몸짓은 엉뚱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어른들은 얼마나 안 엉뚱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어릴 적에 얼마나 안 엉뚱한 나날을 보냈을까요?

  아이인 터라 아이는 저마다 엉뚱한 하루를 누리면서 차근차근 자라지는 않을까요? ‘엉뚱하다’고 할 적에는 단단히 굳은 사회 틀하고 다르거나 안 맞는 모습이기 일쑤예요. 아이들로서는 어른이 보기에 아주 마땅해 보이는 일이라 하더라도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물어요. “왜 그래요?”라든지 “왜 그렇게 해요?” 하고 묻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왜?” 하고 묻기에 새로운 길을 엽니다.

  자, 생각해 봐요. 아이들이 “왜?” 하고 묻지 않는다면 어찌 될까요? 바퀴걸상을 타는 사람이 계단을 오르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할 적에 “왜 바퀴걸상이 2층이나 10층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하지 못하나요?” 하고 물으면 엉뚱할까요? 네, 처음엔 다들 엉뚱하게 여겼지요. 그러나 이 엉뚱한 물음이 있었기에 승강기나 자동계단이 태어났습니다. “왜 사람은 안 날아요?” 하고 엉뚱하게 물은 아이가 있기에 비행기가 태어났습니다. 어쩌면 어느 아이가 “왜 전화기에는 다 줄이 있어요?” 하고 물었기에 줄 없는 전화, 이른바 손전화가 태어나지 않았을까요?


“토끼는 사냥하는 거야? 아니면 낚는 거야?” 나는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 루카스에게 물었어요. 루카스는 무슨 외계인 쳐다보듯 나를 봤어요. 그러고는 몸을 몰려 오렌지 맛 환타 병을 발로 뻥 걷어찼어요. 내 말은 무시하면서요. (62쪽)


  너무나 마땅한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이와 마찬가지로 그저 엉뚱한 일도 없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엉뚱하다 싶도록 들려주는 말을 귀기울여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러면서 우리 어른들도 엉뚱하다 싶은 말을 자꾸자꾸 해 보아야지 싶어요. 이를테면 이런 엉뚱한 말을 해 볼 수 있어요. “왜 탱크랑 미사일이랑 핵폭탄이랑 잠수함 같은 게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나요? 그런 전쟁무기나 군대 없이 평화를 지킬 수 없나요?”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전쟁무기와 군대를 거느려야 평화를 지킨다고 믿는 어른한테는 아이들이 “왜?” 하고 묻는 말이 터무니없거나 엉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엉뚱한 물음에 귀를 기울여 보면 틀림없이 아름다운 길을 찾을 만하지 싶어요. 아주 작은 실마리에서 수수께끼를 푸는 빛을 얻거든요.

  이야기밥 《엉뚱하기가 천근만근》은 틀에 꽉 짜인 어른 사회를 되짚도록 살며시 이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이야기밥 하나로 아이도 어른도 틀을 가만가만 깨 보면서 새롭게 어우러질 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책 하나가 뜻이 있다면, 수저밥 못지않게 이야기밥이 우리 삶을 넉넉하게 살찌운다면, 바로 이 엉뚱함을 밑바탕에 깔기 때문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017.11.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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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는 왜 다른 나라에 갔을까 배우자 역사 2
서해경 지음, 이선주 그림 / 풀빛미디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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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78


군대·돈을 앞세워 문화재를 빼앗은 프랑스·영국
― 문화재는 왜 다른 나라에 갔을까?
 서해경 글·이선주 그림
 풀빛미디어, 2017.8.11. 14000원


  어린이 인문책 《문화재는 왜 다른 나라에 갔을까?》(풀빛미디어, 2017)를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 책은 지구에서 숱한 나라가 끝없이 전쟁을 일으킨 까닭 가운데 하나를 날카롭게 다룹니다. 숱한 나라가 전쟁을 자꾸 일으킨 까닭은 ‘이웃나라가 우리를 윽박지르거나 괴롭히거나 쳐들어왔’기 때문이 아니라고 해요. 이웃나라가 품은 멋지거나 아름답거나 놀랍거나 훌륭하거나 값진 보물이나 문화재를 거저로 빼앗으려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적잖은 나라나 겨레가 하루아침에 지구에서 사라졌다고 해요. 전쟁을 일으킨 이들은 무기가 없이 평화롭게 살던 나라로 마구 쳐들어가서 사람들을 끔찍하게 죽이고 집하고 마을을 불태울 뿐 아니라, 그곳에 있던 모든 ‘돈 될 만한 것’을 깡그리 빼앗았다고 합니다.


이집트가 세상의 주목을 받은 것은 나폴레용이 이집트를 침략했을 때 함께 간 학자들이 이집트에 관해 연구하고, 책을 내면서부터예요. 유럽에 이집트풍이 유행했지요. 이집트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관광하는 것도 유행했어요. 이집트 문명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이집트를 찾아왔고, 더 많은 이집트 문화재를 도굴하고 훔쳐갔어요.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 속의 보물을 훔치고, 스핑크스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보물을 찾으려고 스핑크스의 등에 구멍을 내어 폭약을 터뜨리기도 했어요. (25쪽)

(1797년 나폴레옹 군대) 군인 중 한 명이 들고 있던 칼로 ‘가나의 혼인 잔치’를 반으로 잘랐어요. 235년 동안 (이탈리아) 성당의 자랑거리였던 ‘가나의 혼인 잔치’가 칼로 잘리는 모습을 보며 수도사들은 슬픔이 북받쳤어요. (92쪽)


  우리는 중세나 현대라고 하는 때에 유럽 여러 나라가 저지른 그악스러운 전쟁판을 세계사로 배울 수 있습니다. 그즈음 유럽은 저마다 새로운 땅을 찾아나선다고 하면서 전쟁무기를 이끌고 돌아다녔어요. 중남미나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을 어마어마하게 죽였고, 그곳에 있던 값진 것을 낱낱이 가로챘어요. 지도로 아프리카를 보면 나라하고 나라 사이가 반듯한 금이에요. 아프리카 나라들이 서로 그처럼 금을 그었기 때문이 아니라, 유럽 나라가 서로 식민지 다툼을 하면서 멋대로 그은 금이기 때문이에요.

  프랑스 나폴레옹은 스핑크스를 보고는 나룻(수염)이 건방져 보인다면서 대포를 쏘아서 부수었다지요. 그런데 나폴레옹은 스핑크스를 망가뜨리기만 하지 않았답니다. 나폴레옹은 군대를 이끌고 ‘정벌’ 이른바 ‘침략전쟁’을 일으킬 적마다 언제나 학자를 잔뜩 데리고 다녔다는군요.
  아니, 전쟁통에 웬 학자를?

  이웃나라에 있는 값진 문화재나 보물을 알아보려면 학자가 있어야 했다는군요. 프랑스 학자는 프랑스 군대를 따라 이곳저곳 함께 움직이면서 이웃나라 문화재를 짓밟거나 망가뜨리거나 빼앗는 짓을 저질렀다고 해요.


조국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강제로 떼어내져서 남의 나라 박물관에 전시된 조각품들을 보고 메르쿠리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슬픔이 북받쳤지요. 메르쿠리는 이 일을 잊지 않았어요. 그 뒤 메르쿠리는 그리스가 독재국가가 되자, 영화배우의 삶을 버리고 그리스를 위해 독재정권과 싸웠어요. 그리스에서 추방당하고 목숨의 위협까지 받았지만, 메르쿠리는 그리스의 자유를 위한 싸움을 폭기하지 않았어요 … 문화부 장관이 된 메르쿠리는 당장 영국으로부터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을 돌려받기 위해 나섰어요 … “영국은 약탈한 아크로폴리스 신전 조각품들을 돌려줘 원형을 복구하도록 해야 한다.” (31, 32쪽)

로제타석은 이집트의 것일까요, 아니면 로제타석을 발견하고 해석한 프랑스의 것일까요, 아니면 지금 로제타석을 가지고 있는 영국의 것일까요? (63쪽)


  군대하고 함께 다닌 학자는 프랑스에만 있지 않았어요. 중남미나 아프리카로 원정 군인을 보낸 유럽 여러 나라도 학자를 꼭 함께 데리고 다녔습니다. 이들 학자는 새로운 땅을 ‘연구’한다는 뜻을 내세웠는데요, 그러나 이들 학자는 전쟁 우두머리가 바라는 ‘값진 보물하고 문화재 빼앗기’를 앞장서서 도와준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는 왜 다른 나라에 갔을까?》는 이 대목을 차근차근 짚습니다. 문화재를 빼앗는 군대와 전쟁을 다루면서 우리가 앞으로 이룰 평화를 가만히 밝힙니다. 멀쩡한 문화재가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까닭은 거의 모두 전쟁 때문이요, 이 전쟁은 돈 때문입니다. 눈먼 돈을 가로채려는 뜻으로 전쟁무기를 키우려고 돈을 쓰지요. 전쟁무기에 돈을 쓴 만큼 더 많은 돈을 거두어들이려고 하지요. 어느 한 나라로 쳐들어가서 그 나라 보물하고 문화재를 훔치거나 빼앗았어도 여기에서 그치지 않아요. 전쟁무기하고 군대는 고스란히 있으니 끝없이 전쟁을 더 일으키고 자꾸 일으켜요. ‘새로운 땅을 찾아나선다’는 이름을 내세워 ‘착하고 아름다우며 평화로운 나라를 짓밟는 짓’을 그치지 않습니다.


열흘 만에 베닌 왕국은 영국군에게 점령당했어요. 1897년 2월 18일이었지요. 수백 년간 평화롭게 살았던 베닌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요. 베닌의 군사와 국민이 얼마나 희생되었는지는 알 수도 없었어요. (111쪽)

베닌 왕국이 있던 나이지리아는 1900년부터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60년 10월 독립했어요. 그 뒤, 나이지리아는 세계에 흩어진 베닌 브론즈를 돌려받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영국은 베닌 왕국이 필립스 일행을 공격한 대가라며 베닌 브론즈를 돌려주지 않고 있어요. 영국 다음으로 베닌 브론즈를 많이 가진 독일과 미국 등은 베닌 브론즈를 영국 정부에 정당하게 돈을 주고 샀으니, 베닌 브론즈를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요. (119쪽)


  한국은 문화재를 많이 빼앗긴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문화재는 왜 다른 나라에 갔을까?》를 쓴 분은 이 책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빼앗긴 문화재를 다루었고, 지난 2015년에는 한국이 빼앗긴 문화재 이야기를 다룬 《빼앗긴 문화재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들 책은 어린이한테 조용히 묻습니다. 앞으로 어른이 될 어린이한테 ‘이웃나라한테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는지를 묻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좋거나 값지구나 싶은 것을 이웃이 건사할 적에, 이를 힘이나 돈을 앞세워서 빼앗거나 가로채도 될는지를 물어요. 우리가 이웃한테서 값진 것을 빼앗거나 가로채려는 마음이 있다면, 이웃도 우리를 얼마든지 괴롭히거나 닦달하면서 우리한테 값진 것을 빼앗거나 가로채도 되는 얼개일 테지요.

  우리 스스로 우리 보물이나 문화재를 지킨다고 할 적에는 이웃도 이웃 보물이나 문화재가 언제까지나 곱게 그곳에 있을 수 있도록 함께 마음을 기울이면서 아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빼앗은 문화재를 돌려주도록, 그러니까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도록 힘쓰기도 해야 할 텐데, 이와 맞물려서 ‘빼앗고 빼앗기는 전쟁과 돈이란 무엇인가?’를 찬찬히 돌아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1914년 스타인은 다시 둔황석굴을 찾아가서, 왕원록에게 돈을 조금 쥐여 주고는 두루마리 600개를 가져갔어요. 스타인은 자신의 행동이 중국의 소중한 문화재를 도둑질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오랫동안 잊힌 보물을 내가 구출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라는 자부심이 넘쳤어요. 영국인들도 스타인을 높게 평가했고, 영국 정부는 그의 신분을 귀족으로 높여 줬어요. (165쪽)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지면서 우리나라에서 쫓겨나자, 그 문화재들은 우리나라에 남겨졌어요. 지금 둔황 막고굴의 문화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요. ‘오타니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구분된 그 문화재는 4500여 점이나 되지요. 중국은 우리나라에 둔황의 문화재들을 돌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176∼177쪽)


  둔황 보물을 빼앗은 영국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이녁은 영국에서 귀족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뿐 아니라 ‘잊혀진 보물이 빛이 나도록 했다’는 말을 내세운다고 하지요. 그런데 둔황 보물을 영국사람이 어떻게 훔칠 수 있었을까요? 이 영국사람은 어느 중국사람한테 돈을 주고서 둔황 보물을 찾아나섰다고 합니다. 중국 보물을 빼앗은 영국사람이 한쪽에 있다면, 이 영국사람한테서 돈을 받고 ‘중국 보물을 영국사람이 빼돌리도록 다리를 놓은 중국사람’이 있다는 뜻이에요.

  지난 일제강점기에 이 비슷한 일을 한 사람을 두고 친일파라고 합니다. 때로는 총칼에 눌리고, 때로는 돈에 눈이 멀어서 바보짓을 한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까 문화재가 문화재로 있을 수 있으려면, 먼저 우리가 우리 스스로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돈 몇 푼에 넘어가서 ‘내 것이 아닌 우리 보물’을 누가 훔쳐가도록 몰래 도와주는 이들은 어리석기도 어리석지만, 삶에서 무엇이 대수로운지를 모르는 셈이에요.

  그런데 한국에도 ‘둔황 문화재’가 있다고 해요. 예전에 일본사람이 훔쳐다 놓은 것들이라는군요. 둔황 문화재를 훔쳐서 건사하던 일본사람은 한국이 해방을 맞이한 자리에서 이를 챙기지 못했대요. 얼결에 한국에 남은 둔황 문화재라는데, 한국은 이 둔황 문화재를 아직 중국한테 안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한국도 다른 여러 나라한테 문화재를 많이 빼앗겼으니, 문화재를 빼앗긴 아픔을 모를 수 없는 나라인데, 한국 것이 아닌 이웃나라 것이 이 땅에 남았다면, 우리부터 이 값진 이웃나라 문화재를 깨끗하게 돌려줄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이웃나라 문화재를 이웃나라한테 안 돌려주면서 다른 나라더러 우리 문화재를 돌려주기를 바랄 수 없는 노릇입니다. 2017.10.1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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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의 유산 VivaVivo (비바비보) 1
시오도어 테일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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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77


흑인 할아버지한테서 배우는 평화
― 티모시의 유산
 시오도어 테일러 글/박중서 옮김
 뜨인돌, 2007.10.1.


나는 겁이 나기는커녕 신이 나서 죽을 것 같았다. 전쟁, 전쟁.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긴 처음이었다. 지금은 전세계가 전쟁 중인데, 이 따뜻하고 새파란 카리브 해에까지 그 여파가 밀려온 것이다. (10쪽)

파나마를 떠난 지 이틀째 되던 1942년 4월 6일 오전 3시경, 우리가 탄 배는 어뢰 공격을 받았다. 나는 위쪽 침대에서 튕겨져 나왔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선실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34쪽)


  아이들이 즐기는 숱한 누리놀이(인터넷 게임)를 살피면 죽이고 죽는 사람이나 목숨이나 기계가 잔뜩 나옵니다. 무기를 아주 쉽게 손에 쥐며, 이 무기로 다른 사람이나 목숨이나 기계를 매우 쉽게 죽입니다.

  누리놀이가 퍼지기 앞서는 오락실에서 죽이고 죽는 놀이를 하던 아이들입니다. 왜 누리놀이를 하나같이 죽이고 죽는 얼거리로 짜는가 알 수 없습니다만, 어쩌면 아이들을 죽음에 무디게 길들이는 셈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른인 군인도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단추를 누르면 미사일이나 총알을 멀리 쏘아서 눈에 안 보이는 자리에서 숱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짓을 해도 가슴에 아무 느낌이 없도록 할 수 있어요.


“나이는 몇 살이야, 티모시?” “그게 참말로 아리송한 건데 말이죠. 아마 육십은 더 됐을 겁니다. 이놈의 다리 근육이 늘 말을 안 듣고 말썽만 피우니까 그건 잘 알죠. 하지만 정확히 몇 살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53쪽)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데?”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이 내 눈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듯했다. 그는 팔꿈치를 받쳐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살아남는 거죠, 도련님. 바로 그걸 해야 되는 겁니다.” (54쪽)


  어린이문학 《티모시의 유산》(뜨인돌, 2007)은 1969년에 처음 나왔다고 해요. 한국말로는 거의 마흔 해 만에 나온 셈인데, 이 책은 1942년 어느 날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전쟁바람이 휘몰아치는 유럽이지만 전쟁바람이 거의 안 불던 한갓진 섬에서 지내는 아이들 모습을 그려요.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날마다 전쟁 이야기가 흐른다지만, 외딴섬이라 할 만한 곳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미사일도 총도 전차도 잠수함도 좀처럼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곳 아이들하고 다르게 평화를 누리는 아이들이지만, 평화보다는 전쟁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 가운데 하나는 바다 한복판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쟁’을 만나요. 더 근심이 없을 만한 곳으로 아이를 보내려던 어른인데, 그만 독일 잠수함이 쏜 어뢰에 맞고 배가 가라앉는다지요. 이러면서 ‘전쟁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는 큰 배에서도 구명 배에서도 어머니 손을 놓칩니다.


“나 티모시하고 친구 하고 싶어.” 내가 티모시에게 말했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련님, 우리야 지금껏 쭉 친구 아니었습니까.” “그럼 이제부터 도련님이라고 하지 말고 필립이라고 부를 거야?” (98쪽)


  겪어 보지 않을 적에는 너무 모르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아이들더러 전쟁을 겪어 보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더러 총알에 맞아 보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아이들더러 미사일이나 폭탄이 마구 터지는 데에서 살아남아 보라 할 수 없어요. 총알이 빗발칠 뿐 아니라 핵폭탄이 떨어져서 한꺼번에 죽어 버리고 마는 끔찍한 삶을 아이들더러 겪어 보라 할 수 없지요.

  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전쟁무기 아닌 따사로운 손길로 우리 삶터하고 마을하고 보금자리를 가꾸자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봅니다. 죽이고 죽는 짓은 멈추고서, 서로 살리고 도우며 보살피는 몸짓으로 거듭날 적에 다 함께 즐거우며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해요.

  전쟁이 아닌 평화일 적에는 웃사람하고 아랫사람을 가르지 않아요. 오로지 평화일 적에는 종을 부리지 않아요. 참말로 평화로 나아갈 적에는 신분도 계급도 인종도 없이 서로 동무가 되어 마음을 나눌 수 있어요.


“왜, 물고기도 색깔은 전부 제각각 아니냐. 꽃도 그렇고 말이야. 안 그래? 물론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지, 필립. 하지만 내 생각에 피부색만 다르지 그 속의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을 거야.” (102쪽)

“알았지, 필립? 이젠 너도 눈이 필요없어졌어. 눈이 없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 수 있단 말이야.” (131쪽)


  어린이문학 《티모시의 유산》은 아이들이 전쟁을 한낱 놀이로 여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이러면서 1960년대에 한창 피어나던 흑인 인권을 함께 건드립니다. 배가 가라앉아 두 사람이 따로 떨어져서 사람이 아무도 없는 작은 섬에 닿았다고 하는데, 이때에 이 두 사람은 백인인 어린이하고 흑인인 할아버지요, 흑인인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노예하고 엇비슷한 신분이었다고 합니다.

  철없는 아이가 철든 할아버지 곁에서 삶을 하나하나 배우고 사람을 새롭게 배운다고 해요. 여기에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살림을 짓는 손길을 나란히 배운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아이가 앞으로 꼭 살아남아서 전쟁 아닌 평화로 사랑스레 나아가는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고 해요. 이 마음,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저마다 따사롭게 가슴에 품을 수 있기를 빕니다. 2017.10.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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