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하기가 천근만근 울퉁불퉁 어린이 감성 동화 2
다니엘 네스켄스 지음, 에밀리오 우르베루아가 그림, 김영주 옮김 / 분홍고래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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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79


엉뚱한 이야기밥 먹고 무럭무럭 자라네
― 엉뚱하기가 천근만근
 다니엘 네스켄스 글·에밀리오 우르베루아가 그림/김영주 옮김
 분홍고래, 2017.6.14. 13000원


“너, 헤엄을 잘 치는구나. 이름이 뭐야?” 다른 한 마리가 대답했어요. “펭권이야.” “어, 내 이름이랑 똑같네!” 질문을 한 펭귄이 흠뻑 젖은 채 외치고는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그런데 누가 ‘펭귄아’ 하고 부르면 우리 둘 다 뒤돌아봐야 하잖아.” (6쪽)


  아이들은 무슨 밥을 먹으면서 살까요? 이 물음을 듣고 우리는 어떻게 대꾸하려나요. 무슨 밥은 무슨 밥, 그냥 밥을 먹고 살지, 하고 대꾸할까요. 이것저것 골고루 갖춘 밥을 먹고 산다고 대꾸할까요. 씹기 부드럽고 잘 넘억가는 밥을 먹고 산다고 대꾸할까요. 어버이가 사랑으로 차려 주는 밥을 먹고 산다고 대꾸할까요.

  그런데 아이들은 수저를 들어야 하는 밥만 먹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수저를 들지 않아도 되는 밥도 먹어요. 바로 이야기밥입니다.

  하나 더 헤아려 본다면, 수저를 들 적에만 몸을 살리는 밥을 먹지 않아요. 아이들한테 이야기밥을 함께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수저를 놀리면서도 몸이 튼튼하지 못합니다. 아이는 ‘수저밥 + 이야기밥’을 누려야 비로소 몸하고 마음이 나란히 튼튼하게 자랍니다. 그리고 수저밥이나 이야기밥에는 언제나 사랑이 바탕에 있어야 하고요.


내게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르는 조카가 있어요. 그다음에는 이야기를 만든 것처럼 레모네이드도 직접 만들어 달라고 해요. 내가 조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면 조카는 이렇게 말하죠. “나쁘진 않은데 다음번엔 더 잘하면 좋겠어.” (38쪽)


  《엉뚱하기가 천근만근》(분홍고래, 2017)은 이야기밥입니다. 아이들이 수저밥 못지않게 좋아하는, 때로는 수저밥보다 좋아할 수 있는 이야기밥입니다. 그런데 책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냥 이야기밥은 아닙니다. ‘엉뚱이야기밥’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이야기가 엉뚱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헤아리면 이 책에 흐르는 이야기는 그리 엉뚱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엉뚱할 수 있습니다. 숱한 신문이나 방송이 엉뚱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렇지요. 사람이 죽거나 다치거나 누구를 속이거나 괴롭히는 짓만 잔뜩 나오는 신문이나 방송이 엉뚱할 수 있어요. 아름답거나 즐겁거나 사랑스러운 이웃들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신문이나 방송이 엉뚱할 수 있지요.

  왜 우리는 사건이나 사고를 다루어야 ‘사회 기사’라고 여길까요? 제비가 둥지를 짓고 알을 낳아 먹이를 먹이는 모습을 다루는 ‘사회 기사’를 다룰 수 없을까요? 여름을 한국에서 보낸 제비가 가을에 무리를 지어 드넓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뒤쫓는 ‘사회 기사’를 만날 수 없을까요? 제비가 떠나며 빈 둥지를 슬그머니 차지하려는 참새나 박새를 다루는 ‘사회 기사’를 볼 수 없을까요?


가장 마음에 든 선물은 다니엘 삼촌이 준 거였어요. 다니엘 삼촌의 입가에는 늘 미소가 떠나질 않아요. 삼촌은 다리가 부러져도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요. 삼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예요. (45쪽)


  많은 어른들은 아이들이 하는 말이나 몸짓을 보면서 ‘엉뚱해!’ 하고 잘라 말하곤 합니다. 참말로 아이들 말이나 몸짓은 엉뚱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어른들은 얼마나 안 엉뚱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어릴 적에 얼마나 안 엉뚱한 나날을 보냈을까요?

  아이인 터라 아이는 저마다 엉뚱한 하루를 누리면서 차근차근 자라지는 않을까요? ‘엉뚱하다’고 할 적에는 단단히 굳은 사회 틀하고 다르거나 안 맞는 모습이기 일쑤예요. 아이들로서는 어른이 보기에 아주 마땅해 보이는 일이라 하더라도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물어요. “왜 그래요?”라든지 “왜 그렇게 해요?” 하고 묻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왜?” 하고 묻기에 새로운 길을 엽니다.

  자, 생각해 봐요. 아이들이 “왜?” 하고 묻지 않는다면 어찌 될까요? 바퀴걸상을 타는 사람이 계단을 오르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할 적에 “왜 바퀴걸상이 2층이나 10층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하지 못하나요?” 하고 물으면 엉뚱할까요? 네, 처음엔 다들 엉뚱하게 여겼지요. 그러나 이 엉뚱한 물음이 있었기에 승강기나 자동계단이 태어났습니다. “왜 사람은 안 날아요?” 하고 엉뚱하게 물은 아이가 있기에 비행기가 태어났습니다. 어쩌면 어느 아이가 “왜 전화기에는 다 줄이 있어요?” 하고 물었기에 줄 없는 전화, 이른바 손전화가 태어나지 않았을까요?


“토끼는 사냥하는 거야? 아니면 낚는 거야?” 나는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 루카스에게 물었어요. 루카스는 무슨 외계인 쳐다보듯 나를 봤어요. 그러고는 몸을 몰려 오렌지 맛 환타 병을 발로 뻥 걷어찼어요. 내 말은 무시하면서요. (62쪽)


  너무나 마땅한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이와 마찬가지로 그저 엉뚱한 일도 없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엉뚱하다 싶도록 들려주는 말을 귀기울여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러면서 우리 어른들도 엉뚱하다 싶은 말을 자꾸자꾸 해 보아야지 싶어요. 이를테면 이런 엉뚱한 말을 해 볼 수 있어요. “왜 탱크랑 미사일이랑 핵폭탄이랑 잠수함 같은 게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나요? 그런 전쟁무기나 군대 없이 평화를 지킬 수 없나요?”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전쟁무기와 군대를 거느려야 평화를 지킨다고 믿는 어른한테는 아이들이 “왜?” 하고 묻는 말이 터무니없거나 엉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엉뚱한 물음에 귀를 기울여 보면 틀림없이 아름다운 길을 찾을 만하지 싶어요. 아주 작은 실마리에서 수수께끼를 푸는 빛을 얻거든요.

  이야기밥 《엉뚱하기가 천근만근》은 틀에 꽉 짜인 어른 사회를 되짚도록 살며시 이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이야기밥 하나로 아이도 어른도 틀을 가만가만 깨 보면서 새롭게 어우러질 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책 하나가 뜻이 있다면, 수저밥 못지않게 이야기밥이 우리 삶을 넉넉하게 살찌운다면, 바로 이 엉뚱함을 밑바탕에 깔기 때문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017.11.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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