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연금술사 완전판 18 - 완결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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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26

 


나와 너는 늘 하나
― 강철의 연금술사 : 완전판 18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11.25.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을 때린 사람은 두 발을 못 뻗고 잔다 했어요. 남한테 얻어맞은 사람은 두 발을 쭉 뻗고 코를 골면서 자더라도, 남을 때리는 사람은 언제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했어요.


  어릴 적부터 몸이 여려 으레 남한테 얻어맞고 살았기에, 이 말을 잊지 못합니다. 아니, 이 말을 들을 적마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왜 맞은 사람이 두 발을 뻗으면서 잘까? 왜 때린 사람은 두 발을 못 뻗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어릴 적에는 잘 모릅니다. 나이가 들면서 차츰 깨닫습니다. 남을 때리는 사람은 언제 앙갚음을 받을는지 걱정합니다. 남을 때린 만큼 언젠가 두들겨맞을 수 있으리라 걱정합니다. 남한테 얻어맞는 사람도 ‘누가 또 때리러 올까’ 걱정하기도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때리면 맞아 주지’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해요. 굳이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 “완전한 존재란 불로불사를 말하는 걸까?” “흐음, 좀더 굉장한 것 아니야?” “굉장한 것?” “예를 들면, 신이라거나?” (3쪽)
- “눈치챘나? 신을 손에 넣은 나는 이제, 손바닥 위에 작은 태양도 만들 수 있다.” (20쪽)

 

 


  전쟁무기는 평화를 부르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는 늘 전쟁을 부릅니다. 이쪽에서 전쟁무기를 갖추면 저쪽에서도 전쟁무기를 갖추려 해요. 이쪽에서 다시 전쟁무기를 더 갖추려 하면 저쪽에서도 전쟁무기를 더 갖추려 합니다. 전쟁무기 놀이는 끝나지 않아요. 그래서, 전쟁무기는 자꾸 전쟁을 부르고, 전쟁을 부르다 보니 즐거움과 사랑하고 동떨어집니다.


  군대가 있어서 평화로운 나라는 없어요. 군대가 있기에 어느 나라이든 무섭거나 두렵습니다. 군대가 있어서 아름다운 나라는 없어요. 군대가 있기에 어느 나라이든 부정과 부패와 독재권력이 판칩니다. 군대가 있으니 사람들은 두 발을 못 뻗습니다. 군대가 있는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괴롭히고 들볶습니다. 군대가 있는 사회에는 신분과 계급과 위계질서가 있는 탓에 사람들이 평등하지 못하고 민주가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참 많은 나라에 군대가 있습니다. 참 많은 나라마다 군대로 평화를 지킨다고 내세웁니다. 참 많은 나라에서 사내들을 군대에 보내어 평화와 동떨어진 길을 걷도록 합니다. 스스로 계급과 신분을 가릅니다. 계급과 신분 때문에 아프거나 힘들더라도, 남을 딛고 더 높은 계급과 신분을 얻으려고 합니다. 계급과 신분을 없애어 함께 즐겁고 평화로운 나라로 가꾸려 하지 않습니다. 계급과 신분으로 콩고물을 누리려 하지, 계급과 신분이 없는 아름다운 길을 걸으려 하지 않습니다.


- “시시한 건 그쪽이야? 자기 머리로 생각하려 들지도 않는 사고정지 바보 주제에! 그리드가 차라리 너희들보다 더 진화한 인간이라고.” (102쪽)
- “호문쿨루스에서는 뭐가 생기지? 뭘 낳을 수 있나? 파괴밖에 가져오지 않는 존재를 신이라고 부를 수 있어?” (126쪽)

 

 


  몇몇 얼간이 때문에 나라가 기우뚱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바로서지 않고 기우뚱하게 흔들리니 나라가 기우뚱합니다. 몇몇 바보 때문에 마을이 어지럽지 않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아름답게 어깨동무하지 않을 때에 마을이 어지럽습니다.


  나라에서 돈을 대주어 협동조합을 만들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즐겁게 삶을 가꾸면서 조그맣게 품앗이와 두레를 누리면 됩니다. 학교를 세워 이것저것 가르쳐야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누리는 슬기로운 길을 깨달아 이녁 보금자리에서 조촐하게 삶을 가꾸면 됩니다. 신문과 방송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지어 아이들과 도란도란 삶을 빛내면 됩니다.


- “타인의 힘을 이용해 ‘신이라는 것’에 달라붙어 있었을 뿐이지. 너 자신이 성장한 것은 아니야.” (237쪽)
- “이 세상 전부를 이해하고 싶어! 그런데 왜 네가 날 방해하는 거지? 넌 대체 뭐냐!” “나는 너희들이 ‘세계’라고 부르는 존재. 또는 ‘우주’. 또는 ‘신’. 또는 ‘진리’. 또는 ‘전체’. 또는 ‘하나’. 그리고, 나는 ‘너’다.” (237∼238쪽)

 

 


  아라카와 히로무 님 만화책 《강철의 연금술사》(학산문화사,2013) 완전판 열여덟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기나긴 만화는 완전판 열여덟째 권에서 마무리를 짓습니다. 연금술을 잘못 쓴 바람에 잃고 만 동생 몸을 되찾으려는 형이 떠난 머나먼 마실이 끝을 맺습니다. 사람들 목숨을 빌미로 하느님이 되려던 실험체가 숨을 거둡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군대는 언제나 평화하고 동떨어집니다. 겉으로는 평화를 지키려 한다는 군대이지만, 막상 군대는 평화를 무너뜨리는 데에 씁니다. 여느 사람들은 평화를 지키려는 뜻에서 군인이 되기도 하지만, 정작 군대에서 하는 일은 평화를 아랑곳하지 않아요.


  사람들 스스로 제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평화를 바라면 평화로 가야지, 전쟁무기로 갈 일이 아닙니다. 평화를 누리려면 평화로 나아가야지, 군대로 갈 일이 아니에요.


  손에 호미를 쥐고 쟁기를 쥘 때에 평화입니다. 손에 부엌칼을 쥐고 주걱을 쥘 때에 평화입니다. 손에 붓을 쥐고 손에 책을 쥘 때에 평화입니다. 손에 사랑을 쥐고 꿈을 쥘 때에 바야흐로 평화입니다.


- “진리의 모든 문은 인간 안에 존재한다. 그건 모든 인간에게 연금술을 쓸 힘이 잠재되어 있다는 뜻이야.” (259쪽)
- “연금술을 쓸 수 있으면, 이 정도는 지붕에 올라오지 않아도 순식간에 고칠 텐데. 하긴. 힘들여서 가는 것도 좋지.” (299∼301쪽)

 

 


  하느님은 하늘에 있어서 하느님이 아닙니다. 내가 바로 하느님입니다. 내가 바로 하느님이기에, 내 이웃은 누구나 하느님입니다. 내 동무도 다 하느님이에요. 작은 딱정벌레도 하느님입니다. 우람한 나무도 하느님입니다. 미나리와 쑥도 하느님입니다. 참새와 박새도 하느님이에요.


  참을 깨닫는다면 언제나 참답게 살아갑니다. 참을 보지 않으면 언제나 거짓되게 살아갑니다. 참을 누리고 아끼면 언제나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나와 너는 늘 하나예요. 나 스스로 나를 아낄 적에 내 이웃과 동무를 아낍니다. 나 스스로 나를 사랑할 적에 내 이웃과 동무를 사랑합니다. 두 손을 가슴에 대고 생각해요. 내 가슴속에서 콩콩 뛰는 놀라운 하느님을 생각해요. 그리고, 이 하느님과 똑같이 우리 둘레에서 살가이 숨쉬는 하느님을 함께 그려요. 4347.3.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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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이야기 3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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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25

 


밥하고 살림하는 즐거움을 함께
― 신부 이야기 3
 모리 카오루 글·그림
 김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1.8.31.

 


  국을 맛있게 끓이려면 맛있게 끓이면 됩니다. 국을 맛없게 끓이려면 맛없게 끓이면 됩니다. 아주 쉽습니다. 맛있게 먹을 국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담아 맛있게 끓이면 국이 맛있습니다. 맛있게 먹을 국을 생각하지 못하거나 마음을 담지 못하면 맛없는 국이 됩니다.


  몸을 씻을 적이나 청소를 할 적에도 이와 같습니다. 몸을 깨끗이 하려는 마음이 되어 즐겁게 몸을 씻으면 깨끗합니다. 집안이나 마을을 깨끗이 하려는 마음이 되어 기쁘게 청소를 하면 깨끗해요.


  글을 잘 쓰려면 글을 잘 쓰면 됩니다. 다른 재주나 솜씨가 있어야 글을 잘 쓰지 않습니다. 글에 담고픈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넋을 담으면 글을 잘 써요.


- “만일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 들르시는 건 어떨까요? 손님이 오시면 어머님도 기뻐하실 테고, 아직 묵을 곳도 정하지 않으신 모양이니.” (19쪽)
- “옛날에는 저 멀리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양이 많았지만, 모두 팔았답니다. 둘이서는 다 돌볼 수도 없고, 사람을 고용하는 것도 힘드니까요. 그래서 당분간 먹고살 돈은 있어요.” (41쪽)

 


  지구별 많은 나라에서 밥하거나 살림하는 몫을 으레 어머니가 맡습니다.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비슷합니다. 아버지가 즐겁게 밥을 하거나 살림을 맡는 일이 몹시 드뭅니다. 아버지는 밥을 안 하고 무엇을 할까요? 아버지는 살림을 안 맡고 무엇을 맡을까요?


  아버지 자리에 선 사람은 으레 집 바깥을 나돌면서 돈을 벌곤 합니다. 아버지 자리에 선 사람은 으레 집 바깥에서 정치를 하거나 문화를 하거나 교육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무언가를 합니다. 아버지 자리에 서면 집안에 머물려 하지 않아요. 돈을 벌어야 아버지 구실을 하는 듯 여깁니다. 아이키우기는 어머니한테 도맡기고는 하루 내내 집 바깥을 맴도는 아버지가 대단히 많습니다. 밥하는 솜씨가 없다면서 아예 부엌에 얼씬하지 않는 아버지가 참 많습니다.


  어머니 자리에 서는 사람은 태어날 적부터 밥하기를 잘 하는 몸으로 태어났을까 궁금합니다. 어머니 자리에 서는 사람이기에 처음부터 집살림을 잘 맡을 만한 몸으로 태어났을는지 궁금합니다.


  아니겠지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어느 한 가지만 하도록 태어난 몸이 아니겠지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서로 삶을 가꾸고 사랑을 돌보는 자리에 서려고 태어났겠지요.


- “어머님의 마음은 기쁘지만, 제 일은 제가 결정해야지요.” (75쪽)
- “생각해 보면 언제나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 아닌가. 그저 살아가는 데만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그런 곳에서, 대대로 살아왔던 사람들.” (78쪽)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은 스스로 자전거를 잘 탄다고 생각합니다. 자전거를 참 잘 타는 사람은 스스로 자전거를 잘 탄다는 생각조차 잊습니다. 자전거를 아름답게 타는 사람은 스스로 자전거와 한몸이 될 뿐 아니라 한마음이 되어 움직입니다.


  성악을 배우니 노래를 잘 부르지 않아요. 가르침을 받거나 학원을 다니기에 노래를 잘 부르지 않아요. 마음속에서 샘솟는 즐거운 웃음빛과 눈물꽃이 있을 적에 비로소 아름다운 가락과 말마디가 깨어나 노래가 됩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듣기에 좋거나 아름다운 까닭은, 아이들이 이런 틀이나 저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 아니에요. 스스로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사랑으로 노래를 즐겁게 부르기에 아이들 목소리에 실린 노래가 좋거나 아름답습니다.


  그러니까, 밥하는 즐거움이란 밥 한 그릇에 사랑을 담는 즐거움입니다. 집살림 꾸리는 즐거움이란 집안을 돌보면서 심는 사랑씨앗과 같은 즐거움입니다.


- “어디 가까운 집으로 가 볼까? 다들 식사할 때잖아.” “음, 하지만 여기 음식도 맛있을 것 같은데요. 여기서 함께 먹고 가죠.” “그럴까? 그것도 좋겠네.” “네? 기, 길에서 군것질을 하자고요?” “아, 그렇구아, 여자들이 있었지.” (145쪽)
- “꿩도 맛있을 것 같네요.” “꿩?” “지금 사도 요리는 못하잖아?” “여기서 구워 달라고 하면 돼요.” (151∼1152쪽)

 


  모리 카오루 님 만화책 《신부 이야기》(대원씨아이,2011) 셋째 권을 읽습니다. 중동아시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새삼스레 들여다봅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중동아시아 사내들은 밥을 하거나 바느질을 하거나 살림을 꾸리지 않습니다. 오직 가시내만 밥을 하고 바느질을 하며 살림을 꾸립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사내들이 밥을 하지만, 길이나 저잣거리에서는 사내들이 밥을 합니다. 저잣거리에서 군것질을 하는데, 밥을 하는 사람도 밥을 사다 먹는 사람도 거의 다 사내입니다.


- “만약 이곳을 떠나는 데 거부감이 없으시다면.” “새로운 곳에는 새로운 행복이 있다고 하지요.” (165쪽)
- “알리 씨는 왜 이 일을 하시죠?” “돈 때문이지 뭐. 수입이 좋으니까.” “아, 돈이요.” “어디 필요한 데라도 있나요?” “아내를 얻으려고 말이야. 예물 말이야. 예물을 구해서 아내를 얻을 거야.” (193∼194쪽)

 


  곰곰이 돌아보면, 요리사로 일하는 사람 가운데 사내가 아주 많습니다. 제빵사 가운데에도 사내가 참 많습니다. 횟집에서건 여느 밥집에서건, 사내들이 참 많이 일합니다. 사내들은 집안에서 집밥을 차리는 일이 드물지만, 집밖에서는 바깥밥을 차리는 일이 아주 흔해요. 게다가, 집밖에서 바깥밥 차리는 사내를 놓고 손가락질을 하거나 나무라거나 놀리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어요.


  호텔이건 레스토랑이건 똑같아요. 요리사도 종업원도 청소부도 사내가 참 많습니다. 사내들이 밥을 차리고 밥상을 꾸미며 비질과 걸레질을 합니다. 그런데, 호텔이나 레스토랑이나 밥집이 아닌 ‘여느 살림집’이나 ‘여느 보금자리’로 가면, 사내들은 으레 손을 놓아요.


  집 바깥에서 일하느라 너무 지쳤기에 집에서는 일을 안 할까요. 집 바깥에서 힘을 다 쏟은 탓에 집에서는 사랑스러운 꿈을 꽃피우도록 힘을 쓰기 어려울까요.


  만화책 《신부 이야기》는 ‘신부’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신부’는 굴레가 되기도 하고 수렁이 되기도 합니다. ‘신부’는 사랑이나 꿈이 되기도 합니다. ‘신부’는 빛이 되기도 하면서 어둠이 되기도 합니다. ‘신부’가 되어 웃는 사람이 있으나 ‘신부’가 되기에 우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삶을 가꾸는 하루일까요. 우리는 서로서로 얼마나 사랑하고 어떻게 아끼는 하루일까요. 삶이 꽃이 되면 사랑도 살림도 꽃이 됩니다. 삶꽃을 가꾼다면, 사랑꽃과 살림꽃을 함께 가꿉니다. 4347.3.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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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3-14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고 싶었던 만화인데 완결이 되면 볼까 말까 생각중이네요.^^
생각을 참 오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숲노래 2014-03-14 22:22   좋아요 0 | URL
그런데, 이런 만화는 으레 여러 해에 걸쳐서 연재를 하기 때문에, 마무리가 된 뒤에는 앞권들, 이를테면 1~3권은 절판이 되기 쉽답니다 ^^;;

모리 카오루 님은 한국에 애독자가 많아 쉬 절판되지 않을 테고, 절판되더라도 애장본으로 두 권씩 묶어 비싼 판으로 다시 나올 만하지만(엠마도 애장본으로 다시 나옵니다 ^^;;), 한창 연재될 적에 함께 즐기셔도 좋으리라 생각해요~
 
설희 10
강경옥 글.그림 / 팝툰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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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23



만만한 삶

― 설희 10

 강경옥 글·그림

 팝툰 펴냄, 2014.1.29.



  비가 내립니다. 빗물은 들을 적시고 숲을 어루만집니다. 비가 내리면서 냇물이 붑니다. 비가 오면서 풀과 나무는 한결 푸르게 자랍니다. 비가 내린 땅은 촉촉히 젖습니다. 빗물은 흙빛이 더 고우면서 싱그럽게 거듭나도록 북돋웁니다. 사람들은 비가 내리는 땅에서 자라는 푸른 잎사귀와 빨간 열매를 맛나게 먹습니다.


  비가 오기에 물이 맑습니다. 비가 오면서 시냇물이 흐릅니다. 빗물과 함께 지구별 모든 목숨이 노래합니다. 구름을 이끌고 하늘을 덮으면서 하얗게 빛나는 빗물은 사람들 가슴마다 해맑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물은 비와 같이 흐릅니다. 바닷물도 시냇물도 도랑물도 못물도 아지랑이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이 되고 빗물로 떨어집니다. 빗물은 시내가 되고 도랑이 되며 못물이 되어 우리 몸으로 들어옵니다. 빗물이 스며든 푸성귀를 먹습니다. 빗물을 먹고 자란 짐승을 고기로 다루어 먹습니다. 빗물이 떨어지는 바다에서 힘차게 헤엄치던 물고기를 낚아서 먹습니다. 우리는 늘 빗물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맑은 빛이 됩니다.



- ‘학교에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 창밖을 보니, 하얀 눈 속에 설희가 서 있었다. 이름 탓일까. 알고 있는 사실 때문일까. 그건 왠지 너무나도 어울려서, 설희가 마치 이 세상 사람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5∼6쪽)

- “하루 차이로 넌 빚이 없어진 거지. 그러니까 그건 네 행운이었던 거야. 받아들여도 돼. 뭐, 삶에는 여러 아이러니가 있잖아. 한끝, 한 걸음 차이로 어떤 결과가 바뀌는 일들이 있지? 사실 사람들은 그런 순간을 동경하기도 하지.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사실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12쪽)

- ‘아니, 아니야. 그건 내 행운이 아니야. 실제 나의 행운은 설희를 만난 거다.’ (13∼14쪽)

 

 



  바람이 붑니다. 샛바람이 불고 마파람이 붑니다. 하늬바람으로 바뀌기도 하고 높바람으로 드세기도 합니다. 바람은 지구별을 가만히 돕니다. 저 먼 곳에서 이곳으로 옵니다. 이곳에서 저 먼 곳으로 갑니다.


  브라질 깊은 숲에서 태어난 바람이 이곳으로 옵니다. 이곳에 있는 공장에서 내뿜은 매캐한 바람이 알래스카 얼음나라로 갑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피어나는 방사능 바람이 이 땅으로 날아옵니다. 서울 한복판 끝없는 자동차 물결이 내뿜는 배기가스 바람이 호주 토박이 시골마을로 날아갑니다.


  서울에서도 시골에서도 누구나 바람을 마십니다. 코와 입을 막은 채 1분만 지나도 사람들은 거의 다 죽습니다. 1분이 아닌 10초만에 숨이 끊어지는 사람이 있을 테고, 1분은 견디더라도 2분이나 3분 뒤에 골로 가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어디에서라도 바람이 없으면 누구나 죽습니다.


  손전화도 고속도로도 부질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드높은 이름으로 대통령이 되거나 군수가 되더라도, 바람을 못 마시면 바로 죽어요. 이름 높은 대학교를 나왔든 은행계좌 숫자가 엄청나든, 바람을 안 마시면 이내 죽습니다.


  맑은 바람이 있을 때에 삶이 삶입니다. 푸른 바람이 흐를 적에 삶이 삶입니다. 싱그러운 바람이 불 적에 삶이 삶입니다. 하얀 바람이 오갈 때에 삶이 삶입니다.



- ‘그래, 인정하기 싫었다. 내 시간을 내 감정을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결론 없이 버려야 한다니, 사랑도 아니고 그 사람은 나를 필요로 하지도 않아. 정말 인정하기 싫은 사실.’ (18∼19쪽)

- “시켜 먹으면 안 돼?” “어른 모실 줄 모르는구나.” “뭐? 어, 어른이라니. 왜 그렇게 얘기해.” “맞잖아. 어쩌면 한 몇 백 년쯤 차이 날지도 모르잖아.” (37∼38쪽)

 

 



  봄볕입니다. 골골샅샅 봄볕입니다. 해바라기만 하더라도 즐겁습니다. 해바라기를 하면서 기쁩니다. 들과 숲은 봄볕을 받으면서 새로운 노래가 태어납니다. 멧새는 더 일찍 뜨는 해와 함께 더 일찍 일어나 하루를 엽니다. 개구리는 하나둘 깨어나 새삼스레 봄노래를 베풉니다. 풀벌레도 차근차근 깨어나 풀잎을 갉으면서 제 짝꿍을 찾습니다.


  달력 숫자로 봄이 아니라, 햇볕에 따라 봄입니다. 버스나 전철이나 기차나 자동차나 비행기로 움직인다면 봄을 봄답게 맞이하기 어려울 텐데, 달력이 없어도 봄은 늘 봄입니다. 삼월이나 사월이라는 숫자가 아닌, 해가 오르는 높이에 따라 봄입니다. 풀과 나무는 봄볕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풀과 나무는 서로서로 잎망울과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풀과 나무는 너른 들에서도 매캐한 도시 한복판 길바닥 틈바구니에서도 고개를 내밉니다.


  아이들은 봄볕과 함께 더 까르르 노래합니다. 아이들은 새 봄볕과 함께 천천히 깜순이 깜돌이 됩니다. 햇살을 먹으며 푸르게 웃습니다. 햇빛을 받으며 밝게 노래합니다. 햇발처럼 온누리에 골고루 예쁜 꿈을 퍼뜨립니다.


  봄은 아이들 마음과 같구나 싶어요. 봄은 아이들을 살찌우는 철이로구나 싶어요. 봄은 아이들이 씩씩하게 우뚝 서서 사랑스레 뛰놀도록 이끄는 손길이로구나 싶어요.



- ‘그래, 네가 오래오래 이곳에 살아 주길 정말로 바라고 있어. 설사 같이 안 살더라도 너와 있는 시간이 계속되길 난 바라고 있어.’ (41쪽)

- “그런데 말 안 해 주고 내가 꿈을 꿔서 기억하길 바라는 거지?” “응.” “왜 그래야 해? 말해 주면 안 돼?” “네가 기억해내 주었으면 해. 안 그럼 전생이 아니잖아.” (92쪽)

 

 



  강경옥 님 만화책 《설희》(팝툰,2014) 열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책 《설희》는 열째 권에 이르러 비로소 설희 입으로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설희라는 아이가 지난 1600년대 첫무렵부터 2000년대 첫무렵까지 고이 삶을 이어온 발자국을 넌지시 밝힙니다.


  설희라는 아이는 오늘 이곳에서 ‘설희’라는 이름을 쓰지만, 처음 태어난 멧골자락 작은 집에서는 ‘눈’이라는 이름이었다고 해요. 글도 한자도 모르던 화전민 어버이는 겨울날 눈송이와 함께 찾아온 아이한테 ‘눈’이라는 이름을 주었다고 해요. ‘설희’라는 이름은 글과 한자를 알던 다른 누군가 이 아이한테 주었겠지요.



- “왜 너는 남에게 상처 주는 말 하면서 다른 사람은 너에게 상처 주면 안 된다는 거니? 나야말로 물어 보자. 왜 그런지 몰라도 넌 내가 만만한 거지. 도대체 지금 같은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있는 이유가 뭐야? 들어나 보자.” (65쪽)

- “아영이 돌아갔어.” “응, 싸웠거든. 이제 안 볼 거야. 끝이야.” “끝?” “응.” “뭐, 끝이라고 해서 정말 끝난다면 그럴 만한 사이겠지.” (69∼70쪽)

 

 


  사백 살쯤 산다면, 삶이 어떠할까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사람이 누구나 사백 살쯤 산다면 오늘날 물질문명 사회처럼 더 빠르게 내달리려 할까 궁금합니다. 사람이 누구나 오백 살이나 천 살쯤 산다면 오늘날 도시문명 사회처럼 시골을 버리거나 짓밟으면서 끝간 데 없이 치달리려 할까 궁금합니다.


  오백 살쯤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사백 해 동안 회사원이 되어 돈을 벌어야 남은 백 해를 느긋하게 살아간다고 여기려나요? 천 살쯤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밝히는 책을 한결 넉넉하게 읽으면서 눈길과 눈썰미와 눈높이를 아름답게 북돋울 만하다고 여기려나요? 만 살쯤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지구별을 끔찍하게 더럽히거나 무너뜨리는 전쟁과 전쟁무기와 군대와 계급질서와 신분 따위를 모두 걷어치울 만하다고 여기려나요?


  고작 백 해 안팎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이기에 자꾸자꾸 툭탁거리며 살아가는가 궁금합니다. 기껏 백 해 언저리에서 맴도는 사람이기에 더 빨리 무언가 거머쥐려고 다른 사람 것을 가로채거나 이웃을 해코지하거나 동무를 따돌리는 짓을 마구 일삼는가 궁금합니다. 그예 백 해쯤이면 권력도 돈도 이름값도 덧없는 종잇조각이 될 테니, 자꾸자꾸 엉터리로 뒤흔들리는 사회가 되는지 궁금합니다.



- “시간이 흐르고, 풍경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사람들은 더는 그때 그 사람들이 아니고, 그때의 그 사람들은 시간 속에 사라져 갔겠지. 그리고 그건 언제까지나 반복되겠지.” (152쪽)

- “나도 내 생일은 정확히 몰라. 첫눈이 왔다는 것만 알지. 부모님은 화전민으로 산에서 살면서 글을 모르는 분들이었거든. 그래서 내 진짜 이름은 그냥 ‘눈’이야. 설희란 이름은 다른 사람이 붙여 준 거야. 그 이름이 더 쓰기 편하기도 하고, 눈 ‘설(雪)’ 자는 넣었지. 그게 사백 년 전의 일이야.” “어떻게.” “오래 살게 된 계기 말이지. 나도 너무 오래 살아서 날짜도 뭐도 알지 못하는데, 세상이 정보로 넘쳐나면서 나도 알게 된 거지만, 1609년 8월 25일의 사건 때문이야.” (183∼185쪽)

 

 



  삶이란 참 만만합니다. 이렇게 해도 흐르고 저렇게 해도 흐르는 삶이란 참 만만합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물을 더럽히면서도 정수기이니 수도물이니 댐이니 먹는샘물이니 하면서 걱정 한 줌 없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바람을 더럽히면서도 더 많은 공산품과 발전소와 물질문명과 아파트와 고속도로와 관광지와 학교를 세우면서 근심 한 자락 없습니다. 사람들은 해를 보지 않으면서도 더 복닥거리고 더 툭탁거리며 더 피를 튀기면서 다투기만 합니다. 스스로 마음속에 해님 같은 포근함을 두지 않는다면, 스스로 가슴속에 별빛 같은 해맑음을 건사하지 않는다면, 그예 시들고 마는 줄 깨닫지 않습니다.


  이웃을 만만하게 보니 이웃을 해코지합니다. 동무를 만만하게 보니 동무를 따돌립니다. 지구별을 만만하게 보니 지구별을 무너뜨립니다.


  이웃을 사랑스레 볼 때에는 이웃을 사랑합니다. 동무를 따사롭게 마주할 때에는 동무와 어깨를 겯습니다. 지구별을 즐겁게 어루만지려 할 적에는 지구별에 푸른 꿈이 깃들도록 숲을 가꿉니다.


  만만한 삶입니까? 사랑스러운 삶입니까? 만만한 돈푼입니까? 사랑스러운 일자리입니까? 만만한 권력이나 명예입니까? 사랑스러운 이웃이요 동무입니까? 만만한 녀석입니까? 사랑스러운 숨결입니까?


  사랑을 노래하지 않으면 즈믄 해를 살더라도 메마릅니다. 사랑을 노래하면 하루를 살더라도 따스합니다. 4347.3.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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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발자취 1 - 시간여행 카스가연구소
요시즈키 쿠미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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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24



무엇을 바라는가

― 너와 나의 발자취 1

 요시즈키 쿠미치 글 ·그림

 정은서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3.8.30.



  시골집에서 아이들은 멧새 노랫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엽니다. 긴 밤 지나고 새벽이 찾아들면 어느새 멧새가 마을로 내려와 부산히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찾습니다. 먹이를 찾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온 마을을 감돌며 저마다 새 하루를 열라고 알립니다. 시골집에서 지내며 시계가 아침을 알리지 않아도 멧새 노랫소리로 아침을 알 수 있습니다. 멧새 노랫소리에 앞서 어슴푸레하게 밝는 빛을 느끼며 아침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겨울에는 아침해가 느즈막히 올라오는 만큼 아침을 느즈막하게 엽니다. 그러나, 봄부터 가을까지 바지런히 살림을 꾸린 사람들은 겨울해가 느즈막하게 올라와도 몸이 새벽 때를 깨닫습니다. 시계를 기대지 않아도 날마다 스스로 알맞게 일어나 아침밥을 차리려고 부엌으로 가요.


  달력에 기대어 날을 알지 않습니다. 햇살을 살피고 바람맛을 느끼며 흙빛과 풀내음을 돌아보면 날을 압니다. 햇살 따라 날이 다르고, 바람 따라 철이 다르며, 흙빛과 풀내음에 따라 때가 다릅니다. 풀줄기 돋고 나뭇잎 나는 흐름을 볼 수 있으면 한 해 삼백예순닷새를 몸으로 깨닫습니다.



- “아빠, 아빠. 이건 뭐 만드는 거예요?” “응? 이건 시간여행 장치란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아키와 미즈키가 어른이 되었을 때쯤이면 완성될 거야.” (3쪽)

 


  예부터 사람들은 달력이나 시계 없이 살았습니다. 멧새가 시계이고 햇살이 달력입니다. 바람이 시계요 풀잎이 달력입니다. 흙을 만지면서 철을 압니다. 손과 발이 흙빛이 되면서 철에 맞추어 몸을 살찌웁니다. 물을 만지며 철을 알지요. 손으로 물을 만지고 발로 물을 밟으면서 철에 걸맞게 몸을 가다듬습니다.


  그릇을 부시고 빨래를 하면서 철을 알아차립니다. 물을 긷고 뜨면서 철을 헤아립니다. 빗물을 얼굴로 받으면서 철을 깨닫습니다. 구름을 살피고 바람결을 살피면서 철을 헤아립니다.


  달력과 시계 없이 살던 사람들은 달력이나 시계에 기대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만나려 하더라도 햇살과 바람을 살펴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들이 놀 적에도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놉니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놀지 않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어버이는 아이한테 책으로 삶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어버이는 몸으로 아이한테 일을 물려주고 놀이를 이어줍니다. 먼먼 옛날부터 아이들은 서로서로 눈빛으로 마음을 읽고 사랑빛으로 소꿉을 하면서 보금자리 가꾸는 어버이 넋을 내려받습니다.


  책이나 교재로 말을 배운 사람은 없습니다. 책이나 영화로 옛이야기 들은 사람은 없습니다. 학교를 다녀야 배우지 않던 사람입니다. 집에서 삶을 배우고 마을에서 사랑을 배웁니다. 보금자리를 돌보며 삶을 깨닫고 마을살이를 어깨동무하면서 사랑을 북돋습니다.



- “이유는 내가 올바른 인생을 살아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요.” “마치 지금의 쇼스케 씨 인생은 잘못되었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10쪽)

- “왜 안 되는 거야?” “나는 삐친 머리에 옷은 늘 꼬질꼬질하고, 여자들에게는 인기가 없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신기한 것을 좇아다니는, 그런 쇼스케를 좋아했어. 변하지 않기를 바랐어.” (28∼29쪽)


 

 


  오늘날 사람들은 달력과 시계에 기댑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달력이 없으면 어느 철이고 어느 달인 줄 모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바람맛이나 햇살결을 살피면서 철이나 달을 읽지 않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아침해를 바라보며 때를 알지 않아요. 시계를 울리고 손전화를 들여다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시계에 따라 몇 시 몇 분에 어디에서 만나 무엇을 하자고 얘기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해가 흐르는 길이를 살피지 않고, 흙빛과 풀내음을 곱씹지 않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책과 교재로 말을 익힙니다. 이제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온갖 지식과 정보를 머릿속에 담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맨발로 흙을 밟지 않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두 손으로 물을 만지면서 씨앗을 심거나 돌보지 않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스스로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거나 옷을 깁거나 집살림을 가꾸지 않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돈으로 일하고 돈으로 물건을 사는 솜씨만 어버이한테서 이어받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돈이 없으면 살지 못하고, 돈이 있어야 사랑을 할 수 있는 줄 여깁니다.


  철을 버리면서 달력을 곁에 두는 오늘날 사람입니다. 달을 팽개치면서 시계를 손목에 차거나 주머니에 넣는 오늘날 사람입니다. 해를 잊으면서 회사원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는 오늘날 사람입니다. 날을 모르면서 돈을 벌거나 만지거나 다루는 오늘날 사람입니다.



- “내기를 해 봤어.” “응?” “대수롭지 않은 약속이지만, 나에겐 소중했으니까. 오빠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어떤지. 같은 마음이었다면 여기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어.” (62쪽)

- “제가 생각해 봤는데요, 병상의 부인은 오른팔을 잃은 당신에게 억지를 부렸습니다. 하지만 그 ‘억지’는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부인이 임종 직전에, ‘현재의 당신에게’ 들어 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닌가요?” (120쪽)


 


  요시즈키 쿠미치 님 만화책 《너와 나의 발자취》(서울문화사,2013) 첫째 권을 읽습니다. ‘시간여행 카스가 연구소’라는 이름이 작게 붙은 만화책 《너와 나의 발자취》는 시간여행을 이야기합니다. 다만, 몸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은 아닙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아로새겨진 이야기에 따라 예전 삶자리로 돌아가서 마음속에서 새로운 빛을 깨닫도록 돕는 시간여행입니다.


  시간여행을 이야기하는 만화책 《너와 나의 발자취》에서 ‘시간여행 카스가 연구소’를 열어서 꾸리는 주인공은 손님들한테 늘 똑같은 말을 들려줍니다. 시간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오늘 이곳 삶을 바꿀 수 없다’고. 예전 어느 자리로 돌아가서 그때 이녁과 마주하던 사람들 마음을 읽도록 도울 뿐, 오늘은 오늘대로 이녁이 스스로 새로운 삶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 “시간여행은 내가 긍지를 가지고 하는 일이야. 그렇게 간단하게 공짜로 이용하게 해 준다면 지금까지 주머니를 털어 찾아온 손님들에게 면목이 없어서 안 돼.” (151쪽)

- ‘힘을 내.’ ‘아아, 그렇구나. 나는 네가 그렇게 말하며, 등을 밀어 주길 바랐던 거야.’ (197쪽)


 


  시간여행을 하기에 역사를 바꾸지 않습니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기에 내 삶을 바꾸지 않습니다. 시간여행이란 무엇일까요? 시간여행이란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 바로 시간여행입니다. 1초와 1분이 흐르는 오늘이 시간여행이지는 않습니다. 초와 분과 시간을 따지는 시간여행이나 삶이 아닙니다. 스스로 사랑을 짓고 꿈을 노래하는 하루가 시간여행입니다.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살아가면, 그동안 살아온 지난날이 새롭게 빛나요. 그동안 살아온 지난날이 있기에 바로 오늘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어요. 지난날 괴롭거나 고단했기에 오늘이 괴롭거나 고단하지 않아요. 지난날 즐겁거나 재미있었기에 오늘이 즐겁거나 재미있지 않아요. 새로운 오늘은 언제나 스스로 빚습니다. 새로운 하루는 늘 스스로 가꿉니다. 어제까지 좋았다가 오늘 나쁠 수 없고, 어제까지 나빴기에 오늘 안 좋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바라는가 생각해요. 나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사랑을 밝히는 어떤 삶을 가꾸고 싶은지 생각해요. 내가 바라는 아름다운 꿈을 생각해요. 내가 꿈꾸는 사랑스러운 하루를 노래해요. 내가 노래하려는 즐거운 이야기를 밝혀요.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바라는 대로 살아갑니다. 4347.3.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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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5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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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22

 


마음을 살리는 밥
― 은빛 숟가락 5
 오자와 마리 글·그림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4.2.20.

 


  밥 한 그릇은 언제나 아늑합니다. 밥 한 그릇을 차려서 이웃한테 건넬 적이든, 이웃이 밥 한 그릇을 차려서 내밀 적이든, 밥 한 그릇은 늘 따사롭습니다. 밥을 차리는 내 손에 아름다움이 감돌고, 밥 한 그릇을 베푸는 이웃 손에 사랑스러움이 깃듭니다.


  라면 한 그릇을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고기 한 점을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집 둘레 풀밭에서 풀잎을 뜯어서 한 점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고구마를 쪄서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감자를 삶아서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안 먹는데 배가 부릅니다. 봄바람에 묻어나는 꽃내음을 마시는데 배가 부릅니다. 여름볕을 식히는 소낙비를 입을 헤 벌려 마시는데 배가 불러요. 무지개를 바라보며 배가 부르고, 밤별잔치를 누리며 배가 부릅니다.

 


- “유코. 우에노 쪽에 최근에 엄청 맛있는 민스 커틀릿 집이 생겼대. 알고 있었어?” “몰라. 정육점이야?” “응. 만일 괜찮다면, 이번 일요일에 같이 가지 않을래?” “가, 갈래.” (12∼14쪽)
- “대체 이 여주(여주인공)는 왜 자신이 먼저 움직이지는 않는 거야? 자신으로 바꿔 놓고 일반적으로 생각해 봐. 3년 가까이 그냥 계속 좋아하기만 하고 마음은 못 전한다니. 현실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죄송해요.’ (42∼43쪽)


  우리 집 곁님은 늘 아픈 사람입니다. 앞으로는 안 아픈 사람으로 지낼 수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곁님이 안 아픈 사람이라면, 안 아프기에 집살림이나 밥하기를 곁님이 도맡았을까 궁금합니다. 아마 안 아픈 사람이라 하더라도 집살림과 밥하기를 한 사람이 도맡도록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집살림은 살림하는 즐거움이 있고, 밥하기는 밥하는 기쁨이 있어요.


  남이 차린 밥을 먹을 때에 더없이 고맙습니다. 밥상맡에 앉아서 수저만 들어도 되는 일이란 큰 선물입니다. 그리고, 내가 차린 밥을 먹일 때에 그지없이 고맙습니다. 밥상맡에 차곡차곡 접시와 그릇을 올리는 일이란 큰 선물이에요. 내가 베푸는 선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가 차린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 눈빛과 낯빛을 보면서 고맙습니다.

 


- ‘그때는 가다랑어포밥 만드는 법도 몰라서 그 애한테 전화를 걸어 물었지. 그로부터 항상 난 그 애가 했던 그 말에 위안을 얻었던 것 같아.’ (24∼25쪽)
- “미안해. 전에도 얘기했지만, 나,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좋아하던 사람이 있어. 네 마음은 기쁘지만 사귈 수는 없어.” (37쪽)


  밥 한 그릇은 언제나 마음을 살립니다. 밥을 먹으면 몸이 배가 부를 테지만, 몸이 배가 부르기 앞서 마음이 먼저 따사롭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그릇을 바라보면서 온몸이 사르르 녹아요. 마음속으로 깊은 사랑이 샘솟습니다. 가슴속으로 너른 꿈이 자랍니다.


  이 밥 한 그릇을 먹으며 얻는 기운으로 어떤 일을 하면 즐거울까요. 이 밥 한 그릇을 받으며 누린 빛으로 어떤 삶을 지으면 아름다울까요.


  통통통 도마질 소리가 곱습니다. 내가 칼을 쥐어 도마질을 하든, 곁님이나 이웃이 칼을 쥐어 도마질을 하든, 도마질 소리가 집안에서 울리면 마당에서 멧새가 까르르 노래합니다.


  아이들은 도마질 소리를 들으면서 재잘재잘 노래합니다. 서로 아끼고 보듬습니다. 아이들은 도마질 소리에 국 끓는 소리를 들으며 침을 꿀꺽 삼킵니다. 군침을 다십니다. 밥이 언제 되는지 자꾸 기웃거립니다. 방과 마루와 부엌 사이를 쉬잖고 오갑니다. 아이들 마음속에는 ‘밥이야!’ 하는 생각이 피어나면서 가벼운 몸짓 가붓한 발걸음이 됩니다.

 


- “유코, 지금 어디야?” “지금? 지금은 고등학교 옥상. 아직 열쇠가 그대로 있더라구.” “지금 갈 테니까 기다려.” (54∼55쪽)
- ‘꿈일까? 줄곧 동경하던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 지금 교정을 가로지르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60∼61쪽)
- “아무렇지도 않아. 오늘 바람이 꽤 부는걸. 나야말로 설마 와 줄지는 몰랐어.” “나도 전철 안에서 왜 전철을 타고 있는지 잠깐 생각했어.” “왜 왔는데?” “오고 싶었으니까. 내일 만난다는 걸 알면서도, 만나고 싶었어.” (96쪽)


  오자와 마리 님 만화책 《은빛 숟가락》(삼양출판사,2014) 다섯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책 《은빛 숟가락》은 ‘밥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머스마’가 주인공입니다. 머스마는 처음부터 밥하기를 즐기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저승사람이 되었고, 어머니와 어린 두 동생하고 함께 살아가는데, 어머니마저 그만 몸이 아파 드러누웠어요. 맏이로서 두 동생을 돌보고 살림을 꾸리자니 하나하나 새로 배웁니다. 고등학생이 되도록 ‘밥하기’와 ‘집살림’을 하나도 살피지 않고 살았구나 하고 깨달아요. 그러고는, 학교에서 동무한테 도움을 바랍니다. 어떻게 밥을 하고 어떻게 찬거리를 마련하는가를 묻습니다.


  다른 거의 모든 동무들은 집에서 집살림이나 밥하기를 안 합니다. 도움이 안 됩니다. 이 가운데 집살림이나 밥하기를 제법 거드는 동무가 있습니다. 만화책 《은빛 숟가락》에 나오는 머스마는 안경잽이 가시내한테서 도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선물을 한 꾸러미 받지요. ‘가다랑어포’를 선물로 받아요.


  머스마는 꽃다발도 돈도 아닌 ‘가다랑어포’ 선물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이제껏 집살림과 밥하기를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손수 해 본 적도 없다가, 비로소 집살림과 밥하기를 처음 치르고 겪는 동안 ‘밥 한 그릇’이 한솥밥 먹는 식구 사이에서 얼마나 빛나는 사랑인가를 깨달았거든요.

 


- ‘엄청 조용한 영화라, 침 넘기는 소리도 들릴 것만 같아 괜히 긴장 돼,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고도 2시간 가까이 옆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무척 기뻤다.’ (109쪽)
- ‘아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는 작은 변화를 알아차렸다.’ (117쪽)


  밥 한 그릇은 언제나 마음밥입니다. 몸을 따뜻하게 살찌우는 밥이란 늘 마음밥입니다. 밥 한 그릇에서 평화가 괜히 찾아오지 않습니다. 밥 한 그릇 나누는 이들이 괜히 ‘평화를 부르는 님’이 아닙니다.


  머리띠를 둘러야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논밭을 가꿀 적에 평화가 옵니다. 글이나 책을 쓰거나 국회의원이 되어 법을 만들어야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서 즐겁게 밥을 지어서 식구들과 도란도란 밥 한 그릇 나눌 적에 평화가 옵니다.


  생각해 봐요. 전쟁무기가 평화를 불러오지 않아요. 전투기와 탱크는 평화하고 동떨어집니다. 군인과 장군과 훈장은 평화를 바라지 않아요. 국방부가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주한미군이나 비무장지대가 평화를 심지 않지요.


  무와 배추를 뽑는 투박한 손길이 평화를 부릅니다. 나락을 베고 말리는 손길이 평화와 사귑니다. 군불을 때고 밥물을 안치느라 물에 젖은 손이 평화를 지킵니다. 기저귀를 빨고 아기를 안으며 자장자장 노래를 부르는 손길이 평화 씨앗을 심어요.

 


- “리츠 오빠는 정말 요리를 좋아하는구나.” “갑자기 왜?” “간 볼 때 표정이 참 좋았거든.” “2프로 정도 부족할 때 뭘 넣으면 좀더 맛있어질지 생각하는 게 참 좋아. 하지만 그보다 좋은 건, 음. OK.” …… “그보다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해 봐. 리츠 오빠가 간 보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게 뭐야?” “아, 응. 모두가 맛있게 먹는 걸 보는 거야.” (144∼145쪽)


  아이들은 꼭 학교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입시공부에만 얽매인다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삶을 배우고 사랑을 나누고자 학교에 갈 뿐입니다. 집과 마을에서도 삶과 사랑과 꿈을 키우는 한편, 학교에서도 삶과 사랑과 꿈을 키우도록 하고자 학교를 세워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뿐입니다.


  영어를 가르친다든지 한자를 가르칠 학교가 아닙니다. 삶을 밝히고 사랑을 보여주면서 꿈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에 학교입니다. 집살림을 꾸리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밥하기를 빛내는 기쁨을 속삭일 때에 학교입니다. 아이들이 서로서로 어린 동생을 어버이와 함께 돌보면서 기저귀도 빨고 말리고 개고 채울 줄 아는 삶을 도란도란 주고받을 적에 바야흐로 학교요 평화이며 마을이자 공동체입니다.


  밥 한 그릇 손수 일구도록 가르치고 보여주는 이가 어른입니다. 밥 한 그릇 손수 지어서 함께 먹도록 이끄는 이가 어른입니다. 밥 한 그릇 즐겁게 먹고 신나게 설거지를 하면서 하루를 꽃노래와 하늘춤으로 빚는 이가 어른입니다. 4347.3.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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