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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희 10
강경옥 글.그림 / 팝툰 / 2014년 1월
평점 :
만화책 즐겨읽기 323
만만한 삶
― 설희 10
강경옥 글·그림
팝툰 펴냄, 2014.1.29.
비가 내립니다. 빗물은 들을 적시고 숲을 어루만집니다. 비가 내리면서 냇물이 붑니다. 비가 오면서 풀과 나무는 한결 푸르게 자랍니다. 비가 내린 땅은 촉촉히 젖습니다. 빗물은 흙빛이 더 고우면서 싱그럽게 거듭나도록 북돋웁니다. 사람들은 비가 내리는 땅에서 자라는 푸른 잎사귀와 빨간 열매를 맛나게 먹습니다.
비가 오기에 물이 맑습니다. 비가 오면서 시냇물이 흐릅니다. 빗물과 함께 지구별 모든 목숨이 노래합니다. 구름을 이끌고 하늘을 덮으면서 하얗게 빛나는 빗물은 사람들 가슴마다 해맑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물은 비와 같이 흐릅니다. 바닷물도 시냇물도 도랑물도 못물도 아지랑이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이 되고 빗물로 떨어집니다. 빗물은 시내가 되고 도랑이 되며 못물이 되어 우리 몸으로 들어옵니다. 빗물이 스며든 푸성귀를 먹습니다. 빗물을 먹고 자란 짐승을 고기로 다루어 먹습니다. 빗물이 떨어지는 바다에서 힘차게 헤엄치던 물고기를 낚아서 먹습니다. 우리는 늘 빗물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맑은 빛이 됩니다.
- ‘학교에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 창밖을 보니, 하얀 눈 속에 설희가 서 있었다. 이름 탓일까. 알고 있는 사실 때문일까. 그건 왠지 너무나도 어울려서, 설희가 마치 이 세상 사람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5∼6쪽)
- “하루 차이로 넌 빚이 없어진 거지. 그러니까 그건 네 행운이었던 거야. 받아들여도 돼. 뭐, 삶에는 여러 아이러니가 있잖아. 한끝, 한 걸음 차이로 어떤 결과가 바뀌는 일들이 있지? 사실 사람들은 그런 순간을 동경하기도 하지.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사실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12쪽)
- ‘아니, 아니야. 그건 내 행운이 아니야. 실제 나의 행운은 설희를 만난 거다.’ (13∼14쪽)
바람이 붑니다. 샛바람이 불고 마파람이 붑니다. 하늬바람으로 바뀌기도 하고 높바람으로 드세기도 합니다. 바람은 지구별을 가만히 돕니다. 저 먼 곳에서 이곳으로 옵니다. 이곳에서 저 먼 곳으로 갑니다.
브라질 깊은 숲에서 태어난 바람이 이곳으로 옵니다. 이곳에 있는 공장에서 내뿜은 매캐한 바람이 알래스카 얼음나라로 갑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피어나는 방사능 바람이 이 땅으로 날아옵니다. 서울 한복판 끝없는 자동차 물결이 내뿜는 배기가스 바람이 호주 토박이 시골마을로 날아갑니다.
서울에서도 시골에서도 누구나 바람을 마십니다. 코와 입을 막은 채 1분만 지나도 사람들은 거의 다 죽습니다. 1분이 아닌 10초만에 숨이 끊어지는 사람이 있을 테고, 1분은 견디더라도 2분이나 3분 뒤에 골로 가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어디에서라도 바람이 없으면 누구나 죽습니다.
손전화도 고속도로도 부질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드높은 이름으로 대통령이 되거나 군수가 되더라도, 바람을 못 마시면 바로 죽어요. 이름 높은 대학교를 나왔든 은행계좌 숫자가 엄청나든, 바람을 안 마시면 이내 죽습니다.
맑은 바람이 있을 때에 삶이 삶입니다. 푸른 바람이 흐를 적에 삶이 삶입니다. 싱그러운 바람이 불 적에 삶이 삶입니다. 하얀 바람이 오갈 때에 삶이 삶입니다.
- ‘그래, 인정하기 싫었다. 내 시간을 내 감정을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결론 없이 버려야 한다니, 사랑도 아니고 그 사람은 나를 필요로 하지도 않아. 정말 인정하기 싫은 사실.’ (18∼19쪽)
- “시켜 먹으면 안 돼?” “어른 모실 줄 모르는구나.” “뭐? 어, 어른이라니. 왜 그렇게 얘기해.” “맞잖아. 어쩌면 한 몇 백 년쯤 차이 날지도 모르잖아.” (37∼38쪽)
봄볕입니다. 골골샅샅 봄볕입니다. 해바라기만 하더라도 즐겁습니다. 해바라기를 하면서 기쁩니다. 들과 숲은 봄볕을 받으면서 새로운 노래가 태어납니다. 멧새는 더 일찍 뜨는 해와 함께 더 일찍 일어나 하루를 엽니다. 개구리는 하나둘 깨어나 새삼스레 봄노래를 베풉니다. 풀벌레도 차근차근 깨어나 풀잎을 갉으면서 제 짝꿍을 찾습니다.
달력 숫자로 봄이 아니라, 햇볕에 따라 봄입니다. 버스나 전철이나 기차나 자동차나 비행기로 움직인다면 봄을 봄답게 맞이하기 어려울 텐데, 달력이 없어도 봄은 늘 봄입니다. 삼월이나 사월이라는 숫자가 아닌, 해가 오르는 높이에 따라 봄입니다. 풀과 나무는 봄볕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풀과 나무는 서로서로 잎망울과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풀과 나무는 너른 들에서도 매캐한 도시 한복판 길바닥 틈바구니에서도 고개를 내밉니다.
아이들은 봄볕과 함께 더 까르르 노래합니다. 아이들은 새 봄볕과 함께 천천히 깜순이 깜돌이 됩니다. 햇살을 먹으며 푸르게 웃습니다. 햇빛을 받으며 밝게 노래합니다. 햇발처럼 온누리에 골고루 예쁜 꿈을 퍼뜨립니다.
봄은 아이들 마음과 같구나 싶어요. 봄은 아이들을 살찌우는 철이로구나 싶어요. 봄은 아이들이 씩씩하게 우뚝 서서 사랑스레 뛰놀도록 이끄는 손길이로구나 싶어요.
- ‘그래, 네가 오래오래 이곳에 살아 주길 정말로 바라고 있어. 설사 같이 안 살더라도 너와 있는 시간이 계속되길 난 바라고 있어.’ (41쪽)
- “그런데 말 안 해 주고 내가 꿈을 꿔서 기억하길 바라는 거지?” “응.” “왜 그래야 해? 말해 주면 안 돼?” “네가 기억해내 주었으면 해. 안 그럼 전생이 아니잖아.” (92쪽)
강경옥 님 만화책 《설희》(팝툰,2014) 열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책 《설희》는 열째 권에 이르러 비로소 설희 입으로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설희라는 아이가 지난 1600년대 첫무렵부터 2000년대 첫무렵까지 고이 삶을 이어온 발자국을 넌지시 밝힙니다.
설희라는 아이는 오늘 이곳에서 ‘설희’라는 이름을 쓰지만, 처음 태어난 멧골자락 작은 집에서는 ‘눈’이라는 이름이었다고 해요. 글도 한자도 모르던 화전민 어버이는 겨울날 눈송이와 함께 찾아온 아이한테 ‘눈’이라는 이름을 주었다고 해요. ‘설희’라는 이름은 글과 한자를 알던 다른 누군가 이 아이한테 주었겠지요.
- “왜 너는 남에게 상처 주는 말 하면서 다른 사람은 너에게 상처 주면 안 된다는 거니? 나야말로 물어 보자. 왜 그런지 몰라도 넌 내가 만만한 거지. 도대체 지금 같은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있는 이유가 뭐야? 들어나 보자.” (65쪽)
- “아영이 돌아갔어.” “응, 싸웠거든. 이제 안 볼 거야. 끝이야.” “끝?” “응.” “뭐, 끝이라고 해서 정말 끝난다면 그럴 만한 사이겠지.” (69∼70쪽)
사백 살쯤 산다면, 삶이 어떠할까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사람이 누구나 사백 살쯤 산다면 오늘날 물질문명 사회처럼 더 빠르게 내달리려 할까 궁금합니다. 사람이 누구나 오백 살이나 천 살쯤 산다면 오늘날 도시문명 사회처럼 시골을 버리거나 짓밟으면서 끝간 데 없이 치달리려 할까 궁금합니다.
오백 살쯤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사백 해 동안 회사원이 되어 돈을 벌어야 남은 백 해를 느긋하게 살아간다고 여기려나요? 천 살쯤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밝히는 책을 한결 넉넉하게 읽으면서 눈길과 눈썰미와 눈높이를 아름답게 북돋울 만하다고 여기려나요? 만 살쯤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지구별을 끔찍하게 더럽히거나 무너뜨리는 전쟁과 전쟁무기와 군대와 계급질서와 신분 따위를 모두 걷어치울 만하다고 여기려나요?
고작 백 해 안팎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이기에 자꾸자꾸 툭탁거리며 살아가는가 궁금합니다. 기껏 백 해 언저리에서 맴도는 사람이기에 더 빨리 무언가 거머쥐려고 다른 사람 것을 가로채거나 이웃을 해코지하거나 동무를 따돌리는 짓을 마구 일삼는가 궁금합니다. 그예 백 해쯤이면 권력도 돈도 이름값도 덧없는 종잇조각이 될 테니, 자꾸자꾸 엉터리로 뒤흔들리는 사회가 되는지 궁금합니다.
- “시간이 흐르고, 풍경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사람들은 더는 그때 그 사람들이 아니고, 그때의 그 사람들은 시간 속에 사라져 갔겠지. 그리고 그건 언제까지나 반복되겠지.” (152쪽)
- “나도 내 생일은 정확히 몰라. 첫눈이 왔다는 것만 알지. 부모님은 화전민으로 산에서 살면서 글을 모르는 분들이었거든. 그래서 내 진짜 이름은 그냥 ‘눈’이야. 설희란 이름은 다른 사람이 붙여 준 거야. 그 이름이 더 쓰기 편하기도 하고, 눈 ‘설(雪)’ 자는 넣었지. 그게 사백 년 전의 일이야.” “어떻게.” “오래 살게 된 계기 말이지. 나도 너무 오래 살아서 날짜도 뭐도 알지 못하는데, 세상이 정보로 넘쳐나면서 나도 알게 된 거지만, 1609년 8월 25일의 사건 때문이야.” (183∼185쪽)
삶이란 참 만만합니다. 이렇게 해도 흐르고 저렇게 해도 흐르는 삶이란 참 만만합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물을 더럽히면서도 정수기이니 수도물이니 댐이니 먹는샘물이니 하면서 걱정 한 줌 없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바람을 더럽히면서도 더 많은 공산품과 발전소와 물질문명과 아파트와 고속도로와 관광지와 학교를 세우면서 근심 한 자락 없습니다. 사람들은 해를 보지 않으면서도 더 복닥거리고 더 툭탁거리며 더 피를 튀기면서 다투기만 합니다. 스스로 마음속에 해님 같은 포근함을 두지 않는다면, 스스로 가슴속에 별빛 같은 해맑음을 건사하지 않는다면, 그예 시들고 마는 줄 깨닫지 않습니다.
이웃을 만만하게 보니 이웃을 해코지합니다. 동무를 만만하게 보니 동무를 따돌립니다. 지구별을 만만하게 보니 지구별을 무너뜨립니다.
이웃을 사랑스레 볼 때에는 이웃을 사랑합니다. 동무를 따사롭게 마주할 때에는 동무와 어깨를 겯습니다. 지구별을 즐겁게 어루만지려 할 적에는 지구별에 푸른 꿈이 깃들도록 숲을 가꿉니다.
만만한 삶입니까? 사랑스러운 삶입니까? 만만한 돈푼입니까? 사랑스러운 일자리입니까? 만만한 권력이나 명예입니까? 사랑스러운 이웃이요 동무입니까? 만만한 녀석입니까? 사랑스러운 숨결입니까?
사랑을 노래하지 않으면 즈믄 해를 살더라도 메마릅니다. 사랑을 노래하면 하루를 살더라도 따스합니다. 4347.3.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