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발자취 1 - 시간여행 카스가연구소
요시즈키 쿠미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24



무엇을 바라는가

― 너와 나의 발자취 1

 요시즈키 쿠미치 글 ·그림

 정은서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3.8.30.



  시골집에서 아이들은 멧새 노랫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엽니다. 긴 밤 지나고 새벽이 찾아들면 어느새 멧새가 마을로 내려와 부산히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찾습니다. 먹이를 찾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온 마을을 감돌며 저마다 새 하루를 열라고 알립니다. 시골집에서 지내며 시계가 아침을 알리지 않아도 멧새 노랫소리로 아침을 알 수 있습니다. 멧새 노랫소리에 앞서 어슴푸레하게 밝는 빛을 느끼며 아침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겨울에는 아침해가 느즈막히 올라오는 만큼 아침을 느즈막하게 엽니다. 그러나, 봄부터 가을까지 바지런히 살림을 꾸린 사람들은 겨울해가 느즈막하게 올라와도 몸이 새벽 때를 깨닫습니다. 시계를 기대지 않아도 날마다 스스로 알맞게 일어나 아침밥을 차리려고 부엌으로 가요.


  달력에 기대어 날을 알지 않습니다. 햇살을 살피고 바람맛을 느끼며 흙빛과 풀내음을 돌아보면 날을 압니다. 햇살 따라 날이 다르고, 바람 따라 철이 다르며, 흙빛과 풀내음에 따라 때가 다릅니다. 풀줄기 돋고 나뭇잎 나는 흐름을 볼 수 있으면 한 해 삼백예순닷새를 몸으로 깨닫습니다.



- “아빠, 아빠. 이건 뭐 만드는 거예요?” “응? 이건 시간여행 장치란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아키와 미즈키가 어른이 되었을 때쯤이면 완성될 거야.” (3쪽)

 


  예부터 사람들은 달력이나 시계 없이 살았습니다. 멧새가 시계이고 햇살이 달력입니다. 바람이 시계요 풀잎이 달력입니다. 흙을 만지면서 철을 압니다. 손과 발이 흙빛이 되면서 철에 맞추어 몸을 살찌웁니다. 물을 만지며 철을 알지요. 손으로 물을 만지고 발로 물을 밟으면서 철에 걸맞게 몸을 가다듬습니다.


  그릇을 부시고 빨래를 하면서 철을 알아차립니다. 물을 긷고 뜨면서 철을 헤아립니다. 빗물을 얼굴로 받으면서 철을 깨닫습니다. 구름을 살피고 바람결을 살피면서 철을 헤아립니다.


  달력과 시계 없이 살던 사람들은 달력이나 시계에 기대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만나려 하더라도 햇살과 바람을 살펴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들이 놀 적에도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놉니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놀지 않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어버이는 아이한테 책으로 삶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어버이는 몸으로 아이한테 일을 물려주고 놀이를 이어줍니다. 먼먼 옛날부터 아이들은 서로서로 눈빛으로 마음을 읽고 사랑빛으로 소꿉을 하면서 보금자리 가꾸는 어버이 넋을 내려받습니다.


  책이나 교재로 말을 배운 사람은 없습니다. 책이나 영화로 옛이야기 들은 사람은 없습니다. 학교를 다녀야 배우지 않던 사람입니다. 집에서 삶을 배우고 마을에서 사랑을 배웁니다. 보금자리를 돌보며 삶을 깨닫고 마을살이를 어깨동무하면서 사랑을 북돋습니다.



- “이유는 내가 올바른 인생을 살아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요.” “마치 지금의 쇼스케 씨 인생은 잘못되었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10쪽)

- “왜 안 되는 거야?” “나는 삐친 머리에 옷은 늘 꼬질꼬질하고, 여자들에게는 인기가 없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신기한 것을 좇아다니는, 그런 쇼스케를 좋아했어. 변하지 않기를 바랐어.” (28∼29쪽)


 

 


  오늘날 사람들은 달력과 시계에 기댑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달력이 없으면 어느 철이고 어느 달인 줄 모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바람맛이나 햇살결을 살피면서 철이나 달을 읽지 않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아침해를 바라보며 때를 알지 않아요. 시계를 울리고 손전화를 들여다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시계에 따라 몇 시 몇 분에 어디에서 만나 무엇을 하자고 얘기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해가 흐르는 길이를 살피지 않고, 흙빛과 풀내음을 곱씹지 않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책과 교재로 말을 익힙니다. 이제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온갖 지식과 정보를 머릿속에 담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맨발로 흙을 밟지 않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두 손으로 물을 만지면서 씨앗을 심거나 돌보지 않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스스로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거나 옷을 깁거나 집살림을 가꾸지 않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돈으로 일하고 돈으로 물건을 사는 솜씨만 어버이한테서 이어받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돈이 없으면 살지 못하고, 돈이 있어야 사랑을 할 수 있는 줄 여깁니다.


  철을 버리면서 달력을 곁에 두는 오늘날 사람입니다. 달을 팽개치면서 시계를 손목에 차거나 주머니에 넣는 오늘날 사람입니다. 해를 잊으면서 회사원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는 오늘날 사람입니다. 날을 모르면서 돈을 벌거나 만지거나 다루는 오늘날 사람입니다.



- “내기를 해 봤어.” “응?” “대수롭지 않은 약속이지만, 나에겐 소중했으니까. 오빠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어떤지. 같은 마음이었다면 여기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어.” (62쪽)

- “제가 생각해 봤는데요, 병상의 부인은 오른팔을 잃은 당신에게 억지를 부렸습니다. 하지만 그 ‘억지’는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부인이 임종 직전에, ‘현재의 당신에게’ 들어 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닌가요?” (120쪽)


 


  요시즈키 쿠미치 님 만화책 《너와 나의 발자취》(서울문화사,2013) 첫째 권을 읽습니다. ‘시간여행 카스가 연구소’라는 이름이 작게 붙은 만화책 《너와 나의 발자취》는 시간여행을 이야기합니다. 다만, 몸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은 아닙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아로새겨진 이야기에 따라 예전 삶자리로 돌아가서 마음속에서 새로운 빛을 깨닫도록 돕는 시간여행입니다.


  시간여행을 이야기하는 만화책 《너와 나의 발자취》에서 ‘시간여행 카스가 연구소’를 열어서 꾸리는 주인공은 손님들한테 늘 똑같은 말을 들려줍니다. 시간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오늘 이곳 삶을 바꿀 수 없다’고. 예전 어느 자리로 돌아가서 그때 이녁과 마주하던 사람들 마음을 읽도록 도울 뿐, 오늘은 오늘대로 이녁이 스스로 새로운 삶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 “시간여행은 내가 긍지를 가지고 하는 일이야. 그렇게 간단하게 공짜로 이용하게 해 준다면 지금까지 주머니를 털어 찾아온 손님들에게 면목이 없어서 안 돼.” (151쪽)

- ‘힘을 내.’ ‘아아, 그렇구나. 나는 네가 그렇게 말하며, 등을 밀어 주길 바랐던 거야.’ (197쪽)


 


  시간여행을 하기에 역사를 바꾸지 않습니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기에 내 삶을 바꾸지 않습니다. 시간여행이란 무엇일까요? 시간여행이란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 바로 시간여행입니다. 1초와 1분이 흐르는 오늘이 시간여행이지는 않습니다. 초와 분과 시간을 따지는 시간여행이나 삶이 아닙니다. 스스로 사랑을 짓고 꿈을 노래하는 하루가 시간여행입니다.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살아가면, 그동안 살아온 지난날이 새롭게 빛나요. 그동안 살아온 지난날이 있기에 바로 오늘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어요. 지난날 괴롭거나 고단했기에 오늘이 괴롭거나 고단하지 않아요. 지난날 즐겁거나 재미있었기에 오늘이 즐겁거나 재미있지 않아요. 새로운 오늘은 언제나 스스로 빚습니다. 새로운 하루는 늘 스스로 가꿉니다. 어제까지 좋았다가 오늘 나쁠 수 없고, 어제까지 나빴기에 오늘 안 좋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바라는가 생각해요. 나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사랑을 밝히는 어떤 삶을 가꾸고 싶은지 생각해요. 내가 바라는 아름다운 꿈을 생각해요. 내가 꿈꾸는 사랑스러운 하루를 노래해요. 내가 노래하려는 즐거운 이야기를 밝혀요.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바라는 대로 살아갑니다. 4347.3.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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