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숟가락 5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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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22

 


마음을 살리는 밥
― 은빛 숟가락 5
 오자와 마리 글·그림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4.2.20.

 


  밥 한 그릇은 언제나 아늑합니다. 밥 한 그릇을 차려서 이웃한테 건넬 적이든, 이웃이 밥 한 그릇을 차려서 내밀 적이든, 밥 한 그릇은 늘 따사롭습니다. 밥을 차리는 내 손에 아름다움이 감돌고, 밥 한 그릇을 베푸는 이웃 손에 사랑스러움이 깃듭니다.


  라면 한 그릇을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고기 한 점을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집 둘레 풀밭에서 풀잎을 뜯어서 한 점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고구마를 쪄서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감자를 삶아서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안 먹는데 배가 부릅니다. 봄바람에 묻어나는 꽃내음을 마시는데 배가 부릅니다. 여름볕을 식히는 소낙비를 입을 헤 벌려 마시는데 배가 불러요. 무지개를 바라보며 배가 부르고, 밤별잔치를 누리며 배가 부릅니다.

 


- “유코. 우에노 쪽에 최근에 엄청 맛있는 민스 커틀릿 집이 생겼대. 알고 있었어?” “몰라. 정육점이야?” “응. 만일 괜찮다면, 이번 일요일에 같이 가지 않을래?” “가, 갈래.” (12∼14쪽)
- “대체 이 여주(여주인공)는 왜 자신이 먼저 움직이지는 않는 거야? 자신으로 바꿔 놓고 일반적으로 생각해 봐. 3년 가까이 그냥 계속 좋아하기만 하고 마음은 못 전한다니. 현실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죄송해요.’ (42∼43쪽)


  우리 집 곁님은 늘 아픈 사람입니다. 앞으로는 안 아픈 사람으로 지낼 수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곁님이 안 아픈 사람이라면, 안 아프기에 집살림이나 밥하기를 곁님이 도맡았을까 궁금합니다. 아마 안 아픈 사람이라 하더라도 집살림과 밥하기를 한 사람이 도맡도록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집살림은 살림하는 즐거움이 있고, 밥하기는 밥하는 기쁨이 있어요.


  남이 차린 밥을 먹을 때에 더없이 고맙습니다. 밥상맡에 앉아서 수저만 들어도 되는 일이란 큰 선물입니다. 그리고, 내가 차린 밥을 먹일 때에 그지없이 고맙습니다. 밥상맡에 차곡차곡 접시와 그릇을 올리는 일이란 큰 선물이에요. 내가 베푸는 선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가 차린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 눈빛과 낯빛을 보면서 고맙습니다.

 


- ‘그때는 가다랑어포밥 만드는 법도 몰라서 그 애한테 전화를 걸어 물었지. 그로부터 항상 난 그 애가 했던 그 말에 위안을 얻었던 것 같아.’ (24∼25쪽)
- “미안해. 전에도 얘기했지만, 나,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좋아하던 사람이 있어. 네 마음은 기쁘지만 사귈 수는 없어.” (37쪽)


  밥 한 그릇은 언제나 마음을 살립니다. 밥을 먹으면 몸이 배가 부를 테지만, 몸이 배가 부르기 앞서 마음이 먼저 따사롭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그릇을 바라보면서 온몸이 사르르 녹아요. 마음속으로 깊은 사랑이 샘솟습니다. 가슴속으로 너른 꿈이 자랍니다.


  이 밥 한 그릇을 먹으며 얻는 기운으로 어떤 일을 하면 즐거울까요. 이 밥 한 그릇을 받으며 누린 빛으로 어떤 삶을 지으면 아름다울까요.


  통통통 도마질 소리가 곱습니다. 내가 칼을 쥐어 도마질을 하든, 곁님이나 이웃이 칼을 쥐어 도마질을 하든, 도마질 소리가 집안에서 울리면 마당에서 멧새가 까르르 노래합니다.


  아이들은 도마질 소리를 들으면서 재잘재잘 노래합니다. 서로 아끼고 보듬습니다. 아이들은 도마질 소리에 국 끓는 소리를 들으며 침을 꿀꺽 삼킵니다. 군침을 다십니다. 밥이 언제 되는지 자꾸 기웃거립니다. 방과 마루와 부엌 사이를 쉬잖고 오갑니다. 아이들 마음속에는 ‘밥이야!’ 하는 생각이 피어나면서 가벼운 몸짓 가붓한 발걸음이 됩니다.

 


- “유코, 지금 어디야?” “지금? 지금은 고등학교 옥상. 아직 열쇠가 그대로 있더라구.” “지금 갈 테니까 기다려.” (54∼55쪽)
- ‘꿈일까? 줄곧 동경하던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 지금 교정을 가로지르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60∼61쪽)
- “아무렇지도 않아. 오늘 바람이 꽤 부는걸. 나야말로 설마 와 줄지는 몰랐어.” “나도 전철 안에서 왜 전철을 타고 있는지 잠깐 생각했어.” “왜 왔는데?” “오고 싶었으니까. 내일 만난다는 걸 알면서도, 만나고 싶었어.” (96쪽)


  오자와 마리 님 만화책 《은빛 숟가락》(삼양출판사,2014) 다섯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책 《은빛 숟가락》은 ‘밥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머스마’가 주인공입니다. 머스마는 처음부터 밥하기를 즐기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저승사람이 되었고, 어머니와 어린 두 동생하고 함께 살아가는데, 어머니마저 그만 몸이 아파 드러누웠어요. 맏이로서 두 동생을 돌보고 살림을 꾸리자니 하나하나 새로 배웁니다. 고등학생이 되도록 ‘밥하기’와 ‘집살림’을 하나도 살피지 않고 살았구나 하고 깨달아요. 그러고는, 학교에서 동무한테 도움을 바랍니다. 어떻게 밥을 하고 어떻게 찬거리를 마련하는가를 묻습니다.


  다른 거의 모든 동무들은 집에서 집살림이나 밥하기를 안 합니다. 도움이 안 됩니다. 이 가운데 집살림이나 밥하기를 제법 거드는 동무가 있습니다. 만화책 《은빛 숟가락》에 나오는 머스마는 안경잽이 가시내한테서 도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선물을 한 꾸러미 받지요. ‘가다랑어포’를 선물로 받아요.


  머스마는 꽃다발도 돈도 아닌 ‘가다랑어포’ 선물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이제껏 집살림과 밥하기를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손수 해 본 적도 없다가, 비로소 집살림과 밥하기를 처음 치르고 겪는 동안 ‘밥 한 그릇’이 한솥밥 먹는 식구 사이에서 얼마나 빛나는 사랑인가를 깨달았거든요.

 


- ‘엄청 조용한 영화라, 침 넘기는 소리도 들릴 것만 같아 괜히 긴장 돼,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고도 2시간 가까이 옆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무척 기뻤다.’ (109쪽)
- ‘아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는 작은 변화를 알아차렸다.’ (117쪽)


  밥 한 그릇은 언제나 마음밥입니다. 몸을 따뜻하게 살찌우는 밥이란 늘 마음밥입니다. 밥 한 그릇에서 평화가 괜히 찾아오지 않습니다. 밥 한 그릇 나누는 이들이 괜히 ‘평화를 부르는 님’이 아닙니다.


  머리띠를 둘러야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논밭을 가꿀 적에 평화가 옵니다. 글이나 책을 쓰거나 국회의원이 되어 법을 만들어야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서 즐겁게 밥을 지어서 식구들과 도란도란 밥 한 그릇 나눌 적에 평화가 옵니다.


  생각해 봐요. 전쟁무기가 평화를 불러오지 않아요. 전투기와 탱크는 평화하고 동떨어집니다. 군인과 장군과 훈장은 평화를 바라지 않아요. 국방부가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주한미군이나 비무장지대가 평화를 심지 않지요.


  무와 배추를 뽑는 투박한 손길이 평화를 부릅니다. 나락을 베고 말리는 손길이 평화와 사귑니다. 군불을 때고 밥물을 안치느라 물에 젖은 손이 평화를 지킵니다. 기저귀를 빨고 아기를 안으며 자장자장 노래를 부르는 손길이 평화 씨앗을 심어요.

 


- “리츠 오빠는 정말 요리를 좋아하는구나.” “갑자기 왜?” “간 볼 때 표정이 참 좋았거든.” “2프로 정도 부족할 때 뭘 넣으면 좀더 맛있어질지 생각하는 게 참 좋아. 하지만 그보다 좋은 건, 음. OK.” …… “그보다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해 봐. 리츠 오빠가 간 보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게 뭐야?” “아, 응. 모두가 맛있게 먹는 걸 보는 거야.” (144∼145쪽)


  아이들은 꼭 학교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입시공부에만 얽매인다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삶을 배우고 사랑을 나누고자 학교에 갈 뿐입니다. 집과 마을에서도 삶과 사랑과 꿈을 키우는 한편, 학교에서도 삶과 사랑과 꿈을 키우도록 하고자 학교를 세워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뿐입니다.


  영어를 가르친다든지 한자를 가르칠 학교가 아닙니다. 삶을 밝히고 사랑을 보여주면서 꿈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에 학교입니다. 집살림을 꾸리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밥하기를 빛내는 기쁨을 속삭일 때에 학교입니다. 아이들이 서로서로 어린 동생을 어버이와 함께 돌보면서 기저귀도 빨고 말리고 개고 채울 줄 아는 삶을 도란도란 주고받을 적에 바야흐로 학교요 평화이며 마을이자 공동체입니다.


  밥 한 그릇 손수 일구도록 가르치고 보여주는 이가 어른입니다. 밥 한 그릇 손수 지어서 함께 먹도록 이끄는 이가 어른입니다. 밥 한 그릇 즐겁게 먹고 신나게 설거지를 하면서 하루를 꽃노래와 하늘춤으로 빚는 이가 어른입니다. 4347.3.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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