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야구선수 자와 씨 1
미시마 에리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42



빛줄기를 바라보는 마음

― 고교야구선수 자와 씨 1

 미시마 에리코 글·그림

 강동욱 옮김

 미우 펴냄, 2010.8.15.



  오월이 저물고 유월로 접어들면서, 우리 집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는 꽃을 모두 떨구고 열매를 맺습니다. 아기 손톱보다 작은 꽃은 바람에 많이 떨어졌으나, 나무에 달린 열매도 많습니다. 새빨간 꽃차례에 달린 검붉고 동그란 열매는 소담스럽습니다. 후박알은 새가 아주 좋아합니다. 후박알이 맺으니 마을에 있는 온갖 새가 찾아들어 노래합니다. 가까운 멧자락에서 지내는 새도 찾아들어 노래합니다. 나무 한 그루가 있고, 나무열매가 맺으니, 마당에 놓은 평상에 앉든 마루에 앉든 부엌에서 밥을 짓든 늘 멧새 노랫소리를 누립니다.


  마당에 나무가 없어도 새는 하늘을 가로지르면서 날아갑니다. 귀를 기울이면 새소리를 누립니다. 집 앞에 논이 없어도 마을 가까이에 논이 있으면 개구리 노랫소리를 누립니다. 그리고, 집 안팎이나 둘레에 풀밭이 우거지면 개구리가 살그마니 깃들어 골골 홀로 노래를 베풉니다.



- “야구부원들은 왜 일부러 배팅센터에 오는 걸까?”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아, 생각해 보니 꽤 많네요. 진짜, 이유가 뭘까요?” “봐! 쟤들 어차피 날마다 원숭이처럼 연습만 할 거 아냐? 나 같으면 일부러 돈까지 써 가면서 이런 데 오지는 않을.” (20쪽)

- “여자인데도 사정없이 태웠구나, 자와 씨.” “당연하지. 야구부에서 선탠 로션 바르는 녀석 거의 없잖아.” “어? 그래도 여자 매니저는 꼬박꼬박 챙겨 바르잖아, 선탠 로션.” (34쪽)





  풀숲에 깃들 때에 풀벌레를 만납니다. 풀벌레는 풀밭이나 풀숲에서 살아요. 풀벌레이니까요. 풀벌레는 도시에서 살지 못하고, 풀벌레는 아파트에서 살지 못합니다. 풀벌레는 청와대나 국회의사당에서도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파트에 꽃밭이 있으면서 흙내음과 풀내음이 감돌면, 이런 곳에도 풀벌레는 살그마니 찾아옵니다. 아파트를 지키는 이들이 농약을 솨솨 뿌려서 풀벌레가 그만 농약을 맞아 죽기도 하지만, 풀벌레는 아파트 꽃밭에서도 살아남고, 도시 한복판에 있는 조그마한 풀섶에서도 살아남습니다.


  귀를 기울여 보셔요. 도시 한복판이라 하더라도 자동차가 똑 끊어진 때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셔요. 건널목에 푸른 빛깔 등불이 켜지면서 자동차가 모두 서야 할 적에 풀밭을 바라보면서 귀를 기울여 보셔요. 어쩌면 아뭇소리가 없을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가늘게 풀벌레 노랫소리가 흐를 수 있습니다. 더 귀를 기울이면 이곳저곳 날면서 먹이를 찾는 참새가 지저귀는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 “똑같은 여자라도 우리 같은 매니저를 얕보는 것 같달까.” “그러게! 분위기만 봐서는 쉽게 다가가지 못할 것 같아.” “실제로는 어떤 사람일까?” (63∼64쪽)

- “저건 미야코자와 리사잖아.” “그게 누군데?” “어? 닛센고교의 유일한 여자 야구부원.” “진짜? 여자가 야구를 왜 하는데?” (91쪽)



  빛은 빛을 느끼려 하는 사람한테 찾아갑니다. 바람은 바람을 맞이하려는 사람한테 다가갑니다. 노래는 노래를 들으려는 사람한테 흘러갑니다.


  햇빛이 비추어도 햇빛을 생각하지 않거나 느끼지 않는 사람은 햇빛을 몰라요. 햇볕이 내리쬐어도 햇볕을 즐기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따순 볕을 몰라요. 햇살이 눈부셔도 햇살을 마주하지 않으려 한다면 언제나 지구별을 환하게 보듬는 햇살을 몰라요.


  미시마 에리코 님 만화책 《고교야구선수 자와 씨》(미우,2010) 첫째 권을 읽습니다. ‘자와 씨’는 고등학교 야구선수입니다. 다만, ‘여자 선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책에는 ‘여자 야구선수’라고 적지 않습니다. 그냥 ‘야구선수’요 그저 ‘고교야구선수’일 뿐입니다.





- ‘자와 씨는 3㎏이나 체중이 주는 바람에 체간, 특히 복근이 빠져버린 걸 신경 쓰는 것 같다’ (140쪽)

- “썰렁하네. 아무리 익숙해도 막 깎고 나면 썰렁하다니까.” “연습도 없는 날 사내자식 둘이 서로 머리나 깎아 주고 있는 게 더 썰렁하다.” “그만 해, 하나무라.” “겨울이다. 여친 있었으면 좋겠다.” “그만 해, 모리구치.” (163쪽)



  ‘자와 씨’는 누구일까요? ‘여자 야구선수’일까요? 글쎄, 이렇게 보고 싶다면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자와 씨’는 ‘미야코자와’일 수 있습니다. 이 아이를 이 아이대로 바라보면 이 이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마주하거나 바라보려는 매무새에 따라 ‘자와 씨’는 우리한테 다 다른 모습이 됩니다. 그리고, 내 이웃이 나를 바라보려 하는 매무새에 따라 ‘내 이웃이 나를 바라보며 느끼는 빛’이 달라요. 내가 바라보는 나는 이런 모습이라 하더라도, 나를 온 모습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내 이웃은 나를 ‘한 가지 모습’으로 못박습니다. 나 또한 내 이웃을 온 모습으로 마주하지 않고 ‘한 가지 모습’으로만 여기면, 내가 내 이웃한테서 받을 빛은 오직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를 본대서 서운하거나 아쉽지 않습니다. 아무튼 ‘한 가지’라 하더라도 우리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한 가지’로라도 바라보았습니다. 잘 살펴보셔요. 우리는 우리 둘레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있고 풀벌레가 있으며 꽃과 풀과 나무가 있지만, 거의 모든 이웃과 풀벌레와 꽃과 풀과 나무를 안 느끼거나 안 알아보면서 살아요. 생각 없이 스치기 일쑤입니다.


  빛줄기를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나 스스로 내 빛줄기를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내가 내 이웃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눈망울로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내가 이 지구별을 오롯이 껴안으면서 가꾸고 싶은 마음입니다. 4347.6.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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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비 6
후루야 미노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164



되는 대로 나아가는 삶이란

― 낮비 6

 후루야 미노루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0.11.15.



  후루야 미노루 님 만화책 《낮비》(대원씨아이,2010) 여섯째 권을 읽습니다. 《낮비》는 여섯째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마지막 권을 덮으며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후루야 미노루 님한테 《낮비》라는 작품은 몹시 벅찼구나 싶습니다. 여섯째 권을 이루는 흐름도, 마지막 이야기도, 이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 모습도, 실마리와 실타래가 없이 뒤섞이다가 톡 끊어집니다.


  어쩌면, 후루야 미노루 님은 실마리와 실타래가 없는 이야기를 뒤섞다가 톡 끊듯이 내려놓을 생각이었을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얼거리도 얼거리일 테니까요.



- ‘죽은 뒤에 정말로 지옥과 같은 세상에 가게 된다면 진짜 싫을 거야.’ (17쪽)

- “뭐,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이 세상에 ‘병’이란 말 자체가 필요없다고 생각해. 솔직히 의미가 없잖아? 걷고 있는 사람한테 ‘걷고 있네요’ 하고 말하는 것 같거든.“ (55쪽)



  ‘계획하지 않은 범행(살인)’이기에 오히려 새로운 범행(살인)으로 자꾸 나아가면서 경찰한테 안 붙들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계획하지 않은 범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짠 범행이라고 해야 옳지 싶어요. 이 만화에 나온 살인자는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죽이거든요. 두려움이 없는 마음일 때에 비로소 ‘가장 빈틈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려는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찾으려 할 적에도 ‘두려움이 없’어야 해요. 쳇바퀴와 굴레를 이제 벗어던지고 새롭게 살아가려 할 적에도 ‘두려움이 없’어야 쳇바퀴를 벗고 굴레를 내려놓습니다. 자꾸 두려움이 치밀면 아름다움으로 가지 못해요. 잇달아 두려움을 스스로 부르는데 사랑스러움으로 가지 못해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며 ‘도시가 싫어!’ 하고 외치지만 정작 시골로 가지는 못합니다. 두려움 때문입니다. 돈을 못 벌면 어쩌나 하고 두렵습니다. 시골에 뿌리를 못 내리면 어쩌나 하고 두렵습니다. 시골은 텃세가 있다고 여기며 두렵습니다. 시골에서 무엇을 하며 먹고살는지 두렵습니다. 온통 두려움입니다. 두려움만 있으니 도시가 싫다고 입으로는 외쳐도 마음과 몸이 따르지 못해요.


  그러면, 생각해 볼 노릇이에요. 도시에 있대서 돈을 잘 벌까요. 도시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요. 도시에는 텃세가 없나요. 회사와 가게와 학교마다 텃세가 있지 않나요. 도시에서 지내며 무엇을 하며 먹고살아야 하느냐를 놓고 날마다 근심과 걱정이 그득하지 않나요.


  도시에 있을 적부터 늘 두려움투성이인 탓에 시골로 갈 엄두를 못 냅니다. 살아갈 길이 있는 줄 알면서, 살아갈 길로 가지 못하고, 두려움을 짙게 드리우면서 스스로를 달랩니다. 어려운 말로는 ‘자기 합리화’입니다.



- “네가 말하는 행복은 뭐지? 구체적으로 말해 봐.” “그, 그건, 매일 건강히,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함께 예쁜 꽃을 보며, 예쁘다고 느낀다거나, 뭐 그런 거지.” (138쪽)

-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범행을 저지르는데도 잡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래서 잡히지 않는 건가?’ (161쪽)



  삶을 이루는 즐거움이란 무엇일까 생각할 노릇입니다. 사랑을 이루는 웃음이란 무엇일까 헤아릴 노릇입니다. 언제 즐거운가요? 언제 사랑이 샘솟는가요?


  핵발전소가 사라지고 전쟁무기가 없어져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들꽃 한 송이를 보아도 아름답습니다. 독재를 휘두르는 대통령이 사라지고 밀양송전탑을 걷어치울 수 있다면 사랑스럽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웃음을 마주하거나 이웃이 건넨 떡 한 접시를 받고도 사랑스럽습니다.


  삶을 이루는 빛은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나는 내 삶이 어떠한 빛으로 샘솟도록 이끄는 하루를 누리는가요. 내 넋은 얼마나 환하게 빛나는가요. 내가 걷는 길은 얼마나 즐겁게 걸어갈 길인가요.


  만화를 그리는 후루야 미노루 님 스스로 삶을 더 깊게 들여다보고 한결 즐겁게 마주하면서 차근차근 삶을 노래할 수 있기를 빌어요. 스스로 삶빛을 키우지 못한다면 ‘삶을 다루는’ 만화를 제대로 그리지 못합니다. 슬쩍 건드리거나 조금 만지작거린다고 해서 ‘삶을 다루는’ 만화가 되지 않습니다. 되는 대로 그린대서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작품이 되지 않습니다. 더 가까이에서 껴안고, 더 따스히 보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6.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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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비 3
후루야 미노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44



삶을 되돌리려면

― 낮비 3

 후루야 미노루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0.7.15.



  삶을 되돌리는 길은 있을까요, 없을까요. 삶을 되돌리는 길이 없다고 느끼기에, 우리는 날마다 쳇바퀴처럼 똑같은 굴레에 스스로 갇히면서 굴러가지는 않을까요. 삶을 되돌리는 길이 있다고 느낄 뿐 아니라, 스스로 이 길을 씩씩하게 걸어간다면, 날마다 갇히던 쳇바퀴를 부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쳇바퀴는 누가 만들까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길은 누가 만들까요. 남이 만들어 줄까요. 내가 스스로 만들까요.


  너무 마땅하게도, 새롭게 나아가는 삶길은 우리 스스로 만듭니다. 그리고, 쳇바퀴에 갇히는 굴레도 우리 스스로 만듭니다.



- “알겠냐, 오카다! 아무리 근육이 있다 해도 인간은 마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동물이야!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말이며 문자야!” (19쪽)

- “너는 도둑이야! 사기꾼이라구! 남자로서 정말 최악의 쓰레기야!” “멍청이. 그건 내 재능이야. 재능과 노력이지. 너 그거 의외로 쉽지 않다?” (27쪽)




  삶을 되돌리려면, 삶을 되돌려야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하고 생각하며 거듭 생각하면서 마음속에 이 이야기를 담아야 합니다. 마음속에 ‘삶을 되돌려야겠어’ 하는 다짐을 튼튼히 다진 뒤, 이 다짐을 이룰 수 있도록 새롭게 하루를 맞이해야 합니다.


  이렇게 다짐을 했는데 삶을 되돌리지 못했다면? 그러면 생각해 보아야 해요. 참말 새롭게 나아갈 삶을 마음속에 품었는지, 아니면 못미덥다 여겨 티끌이나 먼지를 끌어들였는지 제대로 살펴야 해요. 스스로 ‘아무래도 나는 안 돼’ 하고 여기는 마음이 살짝이라도 있었다면, 참말 ‘아무래도 나는 안 돼’와 같은 길로 가요. 스스로 ‘나는 언제나 새롭게 일구는 삶이야’ 하고 여기는 마음일 때에 비로소 언제나 새롭게 일구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 ‘남을 속이는 바보. 속는 바보. 속는 바보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바보. 어라? 그럼, 내가 제일 바보인가?’ (34∼35쪽)

- ‘매일같이 사람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다는 소원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렇게 돼 버린 녀석은 말이다.’ (47쪽)




  후루야 미노루 님 만화책 《낮비》(대원씨아이,2010) 셋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을 합니다. 스스로 가두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스스로 여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품는 생각대로 나아갑니다.


  스스로 가두는 생각으로 나아가면서 웃든 울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다른 생각’을 품지 않기에 참말 다른 길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스스로 ‘나한테는 이 길밖에 없잖아!’ 하고 더 다그치니, 참말 이 길 하나로만 나아가려 해요.


  왜 바꾸지 않을까요. 입으로는 ‘이 길이 참 싫다구!’ 하고 외치면서, 정작 마음과 몸은 왜 새 길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을까요.



- “아직 얘기를 많이 해 보지는 않았지만 이 사람은 열심히 ‘현재’를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부러워요. 어제 점심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함께 있는 게 정말 즐거워요.” (93쪽)

- “나처럼 못난 놈은 1초라도 빨리 죽어 나무의 비료가 되는 게 나아. 내가 공기를 들이마시고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보다, 나무 몇 그루가 튼튼히 자라는 게 백 배 나아.” (152쪽)



  쳇바퀴에 길드는 동안 쳇바퀴가 좋아졌을까요. 굴레에 갇혀 지내던 어느 날부터 굴레가 익숙해졌을까요. 어두운 곳에 지내다가 어느새 어두움에 눈도 마음도 몸도 익숙해지듯이, 쳇바퀴와 굴레도 얼마든지 익숙하게 지내다가 ‘좋아할 만한 터전’으로 삼고 말까요.


  그렇다면,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삶’을 좋아할 수 있고, 새로운 삶에 눈과 마음과 몸을 익숙하게 맞출 수 있습니다. 못미덥고 싫고 달갑지 않으며 고단하다는 삶에도 얼마든지 익숙하게 눈과 마음과 몸을 맞추어서 살아간다면, 새로운 삶에도 얼마든지 익숙하게 모든 힘과 넋을 기울여서 다시 태어날 수 있어요.


  마음을 돌릴 때에 비로소 바꿉니다. 마음을 돌릴 때에 비로소 자유와 평화로 나아갑니다. 마음을 돌릴 때에 비로소 사랑과 꿈으로 갈 수 있습니다. 마음을 돌릴 때에 비로소 삶을 새롭게 열고, 빛을 온몸으로 품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만화책 《낮비》에서는 이 대목까지 건드리거나 짚거나 다루지는 못합니다. 쳇바퀴와 굴레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만 자꾸 되풀이해서 보여주고 맙니다. 4347.6.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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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린네 13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43



어떤 삶을 바라나

― 경계의 린네 13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5.25.



  누구나 스스로 바라는 대로 살아갑니다. 스스로 바라지 않았는데 찾아오는 일은 없습니다. 나한테 찾아오는 모든 일은 스스로 마음속으로 바랐기에 찾아옵니다. 내가 겪는 모든 일은 스스로 마음속으로 빚은 이야기입니다.


  기쁨과 슬픔도 스스로 그립니다. 사랑과 꿈도 스스로 그립니다. 웃음과 눈물도 스스로 그립니다. 노래와 춤도 스스로 그립니다.


  오늘 이곳에서 늘 새롭게 살아가는 내 하루이기에, 내가 하루를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나한테 찾아오는 빛이 바뀝니다. 스스로 삶을 새롭게 그리지 않으면 새로운 이야기가 없습니다. 스스로 삶을 새롭게 그리면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어떨까요. 이런 흐름을 느낄 수 있을까요. 이런 흐름을 느끼지 않은 채 날마다 똑같은 몸짓을 되풀이하면서 쳇바퀴로 살아가기만 할까요.



- ‘나는 로쿠도의 아버지에게 1000엔을 빌려드렸습니다. 분명 돈은 갚지 않겠지. 그런 예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26쪽)

- “괜찮겠어요, 린네 님? 아무리 공짜라지만.” “확실히 사신에게 낫은 생명과 같지. 말하자면 생명을 맡긴 거야. 그 신뢰에 응할 각오는 되어 있겠지?” (39쪽)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에 비가 퍼붓습니다. 비가 퍼붓는 소리를 얼핏설핏 들으면서 잠을 깹니다. 마당에 있는 살림 가운데 비를 맞으면 안 되는 것이 있는지 살핍니다. 섬돌 둘레에 흩어진 신을 추스릅니다. 제비집을 올려다봅니다. 비가 퍼붓지만 바람은 그리 불지 않아 빗물이 들이치지는 않습니다.


  이윽고 날이 새고 마을방송이 퍼집니다. 이장님은 올해부터 우리 마을이 ‘친환경농업단지’에서 풀린 까닭을 밝히지 않으면서 ‘친환경농업단지에 주는 친환경농약 보조금’이 사라졌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지난해와 그러께에 수없이 농약을 논에 뿌려댔으니 ‘친환경 쌀’이라고 내세운 우리 마을 쌀이 모조리 농약검사에 걸렸는데, 이런 이야기를 밝히지 않습니다.


  아마 밝힐 까닭이 없을 수 있어요. 모두 다 알 테니까요. 친환경농약이든 일반농약이든 모두 똑같은 줄 뻔히 알 테니, 굳이 ‘농약 없는 농사’를 지을 생각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시골 할매와 할배는 ‘겉보기로 반들거려서 도시사람이 상품으로 좋아하는 농산물’만 거두면 된다고 여기리라 느껴요.



- “정말 돈 욕심은 없었던 거군요.” “연구에 열중하며 독특한 낫을 만드는 건 좋지만, 중요한 건 이, 평범한 낫인데 말이야.” (61쪽)

- “로쿠도 린네. 미…….” “사과하지 마, 카인. 너답지 않게. 다만, 빙의 스티커 값은 네 보너스에서 받아 간다.” (115∼116쪽)




  동이 트면서 우리 집 처마 밑 제비집이 부산합니다. 새끼 제비는 밥을 달라 노래합니다. 어미 제비는 비가 퍼붓는 하늘을 재빨리 날면서 먹이를 물어다 나릅니다. 이 빗속에서 먹이를 어떻게 찾았을까? 어쩌면 이렇게 비가 퍼붓는 날에는 나비나 벌레가 풀숲에 얌전히 앉아서 쉴 테니 먹이를 찾기 한결 쉬울까?


  어미 제비는 비가 오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빗줄기를 가르며 납니다. 나도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려서 줍니다. 밥을 차리고 마당에서 풀을 뜯을 적에 전화가 오면 전화를 안 받습니다. 밥차림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거나 놀 적에 오는 전화는 못 받습니다. 아이들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재울 적에 오는 전화는 못 듣습니다.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엊저녁에 전화가 온 줄 비로소 압니다.


  하나하나 돌아보면, 나도 스스로 내 삶을 빚습니다. 아이들과 지내는 삶을 스스로 빚습니다. 밥을 차리고 옷을 갈아입히며 손을 잡고 마실을 다니는 삶을 스스로 빚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샘터를 치우면서 물놀이를 하고, 가까운 골짜기나 바다로 나들이를 가고, 둘레 초등학교 놀이터로 찾아가는 나날도 스스로 빚은 삶입니다.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노래 또한 스스로 빚은 삶일 테지요.


  그래요. 그렇습니다. 내가 오늘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노래를 처음 익힐 적에 스스로 생각했어요. ‘나중에 나한테 아이가 오면 이런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하고. 스무 해쯤 앞서 내 마음속에 깃든 이 꿈대로 오늘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리고, 오늘 품은 꿈대로 앞으로 스무 해를 더 살 테고, 스무 해 뒤에는 또 다른 스무 해를 마음속으로 그리겠지요.



- “리, 린네 님. 드디어 사 버렸어요.” “흥분하지 마, 로쿠몬.” “이런 사치를 부리다가 천벌 받진 않을까요?” “천벌은 무슨. 1년에 한 번 오는 크리스마스이브잖아? 촛불을 켜고 호화판 케이크(편의점 케익 한 조각)를 나눠 먹는 거야.” “촛불이야 매일 밤마다 켜고 살지만요, 하하하하.” (156∼157쪽)

- ‘어, 어떡하지? 꺼낼까?’ ‘다섯이 나눠 먹는다고요? 이 작고 앙증맞은 케이크를?’ ‘끝까지 숨길까? 하지만 기다려 봐. 어쩌면.’ (167쪽)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4) 열셋째 권을 읽습니다. 《경계의 린네》 열셋째 권에서는 ‘다음 삶’ 이야기가 흐릅니다. 오늘 이곳에서 누리던 삶을 미련하게 붙잡는 넋은 아직 ‘다음 삶’을 스스로 그리지 못한 숨결입니다. 몸은 죽었으나 몸이 죽기 앞서 다음 삶을 알뜰히 그리지 못했기에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떠돌며 애꿎은 짓만 일삼습니다. 다음 삶을 스스로 그려 새롭게 살아갈 빛을 꿈꾸지 못해요. 다음 삶을 스스로 빚어 사랑스레 살아갈 노래를 부르지 못해요.



- “어떡하면 만족하고 성불하겠어요? 무슨 소원이라도.” “훗. 아무것도 없어. 이 세상에 미련 같은 건.” “어, 그럼.” “얼른 성불해서 다시 태어나는 게 어때요?” “다시 태어나? 그, 그런 무서운 짓을. 지금보다 더 보잘것없고 인기 없고, 지금보다 더더더 한심한 인간으로 태어날지도 모르잖아.” (184∼185쪽)

- “자, 너는 어떤 내세를 원하지? 생각해 봐.” (187쪽)



  오늘 이곳에서 ‘몸이 아직 살아서 움직이’는 우리들은 어떤 삶일까 궁금합니다. 우리들은 ‘오늘 내 삶’을 얼마나 그리는가요. 아침마다 ‘오늘 내 삶’을 얼마나 새로 짓는가요. 저녁에 잠들면서 ‘이튿날 맞이할 내 새로운 하루’를 얼마나 새로우면서 아름답게 가꾸는가요.


  ‘또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잠들기에 참말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쳇바퀴 삶입니다. 언제나 새롭게 길을 찾으면서 빛을 밝히려는 마음이 자라지 않으면, 언제나 쳇바퀴에서 머뭅니다. 아니, 언제나 쳇바퀴를 밟으면서 쳇바퀴를 밟는 줄조차 느끼지 못해요.


  요즈막에 대통령 자리에 있는 어느 분이 ‘국무총리 후보’로 그 나물에 그 밥인 어리보기를 자꾸 고르는 까닭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느껴요. 그분 스스로 그런 삶을 쳇바퀴처럼 굴리는데, 스스로 쳇바퀴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새 삶을 지을 줄 모르고, 스스로 새 빛이 되면서 노래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4347.6.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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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Heureka - 단편
히토시 이와아키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41



과학이란 무엇인가

― 유레카

 이와아키 히토시 글·그림

 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05.3.25.



  과학이란 무엇인지 가만히 헤아려 보곤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으레 과학이면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데, 참말 과학은 믿을 만한지 궁금합니다.


  과학으로 무엇을 밝힐 수 있을까요. 과학은 무엇을 할까요. 사람들 삶을 밝히는 일에 과학은 얼마나 이바지하는가요. 지구별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에서 과학은 어떤 몫을 하는가요.


  과학이라는 이름은 자연과학이나 기술과학뿐 아니라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이라는 데까지 붙습니다. 요즈막에는 생활과학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어느 자리에나 들러붙는 과학이지 싶습니다.


  이러한 과학이 하나도 없다면, 과학스러운 학문이나 생각이나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면, 우리 삶은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과학이 없으면 삶이 무너질까요. 과학이 있기에 삶이 무너지지 않는가요. 과학이 없어도 삶과 숲과 지구별과 우주는 아름답게 흐르지 않나요. 과학이 있기에 삶과 숲과 지구별과 우주까지 망가뜨리는 길을 걷지 않나요.



- 시라쿠사 출신 망명자 에피큐데스는 지척에서 한니발의 지휘를 보며 그 천재성에 완전히 심취해 있었다. (15쪽)

- 한 명을 죽이면 살인범, 세상의 반을 죽이면 영웅, 인간을 전부 죽이면 신이다. (127쪽)




  역사란 무엇인지 가만히 헤아려 보곤 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역사라 할 적에 권력자나 통치자 이름을 들먹이곤 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문화라 할 적에 권력자와 통치자가 누리던 사치를 들먹이곤 합니다.


  정치집단이 서로 맞붙어 싸우며 죽이고 죽은 발자취가 역사일까 궁금합니다. 전쟁무기를 만들어 이웃나라 땅을 빼앗는 짓이 역사일까 궁금합니다. 유럽사람이 전쟁무기를 앞세워 지구별 수많은 나라와 겨레를 죽이고 괴롭히며 식민지로 삼은 짓이 역사일까 궁금합니다. 미국이 전쟁무기를 내세워 멕시코와 중남미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북미 토박이를 죽일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지구 곳곳에서 군사힘으로 작은 나라를 억누르는 짓이 역사일는지 궁금합니다.


  대통령 이름은 역사가 아닙니다. 몇몇 이름난 사람들은 역사가 아닙니다. 그네들은 그저 그네들입니다. 역사란 ‘발자취’요, 발자취란 ‘살아온 나날’입니다. 삶은 다툼과 싸움도 아닙니다. 삶은 사랑과 꿈입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지낸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저마다 꿈꾸고 삶을 가꾼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 “클라우디아는 이곳 시라쿠사시를 사랑하고 있소. 그래서 지금 몹시 슬퍼하고 있단 말이오. 마을 여기저기에 많은 추억이 서려 있고,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 로마와 전쟁이 터졌으니 다소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건 불가항력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어제까지 사이좋게 이야기하고 함께 밥을 먹던 사람들끼리, 어떻게 오늘 갑자기 칼을 들이댈 수가 있소?” (149∼150쪽)

- “그 외에도 많은 걸 만들었지만 난 사실 그런 괴물들 따윈 만들기 싫었다네. 하지만 왕이 하도 간곡하게 부탁해서. 난 그 괴물들의 두목인 셈이지.” (158∼159쪽)





  땅을 일군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집을 짓고 밥을 지으며 옷을 지은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아이들이 뛰놀며, 아이들이 노래하는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나물을 뜯고 나물을 무치며 나물을 먹는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제비와 개구리와 풀벌레가 역사입니다. 바다와 들과 숲이 역사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역사이고, 풀 한 포기가 역사입니다. 꽃 한 송이가 역사요, 열매 한 알이 역사입니다. 씨앗 한 톨을 건사하면서 사랑을 물려주던 기나긴 이야기가 바로 역사예요.


  우리는 오늘날 사회에서 역사를 제대로 못 볼 뿐 아니라, 참답게 가르치지도 못해요. 우리는 오늘날 사회에서 아이들한테 역사를 제대로 못 보여줄 뿐 아니라, 어른 스스로도 역사를 슬기롭게 깨닫지 못해요.



- “다음 두 번째 질문! 전쟁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173쪽)

- “왠지 고향을 배신하는 것 같아.” “고향이 먼저 널 배신했어.” (212쪽)



  이와아키 히토시 님 만화책 《유레카》(서울문화사,2005)를 읽습니다. 유럽 어디메에서 지난 어느 한때 있었던 일을 짤막하게 다룬 만화책입니다. 과학 문명을 앞세워 전쟁무기를 만들도록 시킨 ‘임금(우두머리)’이 나오고, 과학 문명으로 만든 전쟁무기를 내세워 이웃나라를 괴롭힐 뿐 아니라, 이웃을 마구 죽이면서 ‘영웅’이 되려는 바보들을 보여주는 만화책입니다. 258쪽짜리 조촐한 만화책은 “마침내 그 모든 목격자는 스러지고 2천 년이 흘렀다.”와 같은 말마디로 끝맺습니다. 이천 해 앞서, 지구별 어디에선가 서로 죽이고 죽는 피튀기는 싸움이 한창이었다는데, 이제 모두 죽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임금이나 전쟁 지도자는 땅넓히기가 아주 대단하기라도 하듯이 사람들한테 떠벌이고, 사람들은 저마다 창과 칼을 손에 쥐고는 떡고물을 얻으려고 싸움터로 뛰어듭니다.





- “봐! 여기가 특등석이야! 좋지? 바다랑 에트나산. 이걸 그림으로 그려 목욕탕 벽 같은 데 장식하면 얼마나 좋을까.” (26쪽)

- “아르키메데스는 수학자에 발명가에 기술자지만 지도자는 아니오! 전장의 룰 따윌 그대로 적용해서 뭘 어쩌겠단 거요!” “너, 이놈!” “당신은 그 한니발과 호각으로 싸운 장군이고, 과거엔 적군의 왕을 자기 손으로 처치했을 정도로 대단한 용사요! ‘로마의 검’이라고까지 불리던 자가 이제 와서 망령 난 노인 하나의 목이 그리도 탐나시오? 부끄럽지도 않소?” (236∼237쪽)



  바보스러운 권력자가 세운 커다란 궁궐이나 성벽이 유물로 남곤 합니다. 바보스러운 권력자가 쓰던 금관이나 노리개가 유물로 남곤 합니다.


  슬기로운 사람이 살면서 누린 살림살이는 어느 하나 유물로 안 남습니다. 흙집은 유물로 안 남습니다. 가끔 빗살무늬흙그릇이라든지 민무늬흙그릇이라든지 돌칼과 같이 아주 오래된 유물이 나오기도 한다지만, 이런 흙그릇이나 돌칼은 숲으로 돌아가고 흙으로 돌아가는 살림살이입니다. 유물이 될 생각이 없던 유물입니다. 이와 달리 금관이건 노리개이건 권력자나 임금이나 지식인이 건사하던 물건은 ‘남기려고 용을 쓰던 유물’입니다.


  시골사람이 입던 옷은 유물이 아니기에 모두 흙으로 돌아갑니다. 시골사람이 입던 옷은 모두 풀에서 실을 얻어 손으로 지었습니다. 잘 입은 시골옷은 흙한테 돌려주어 새로운 흙이 되고, 시골사람은 풀에서 다시 새로운 실을 얻어 새롭게 옷을 짓습니다. 시골사람이 먹은 밥은 똥이 되어 새롭게 흙으로 돌아갑니다. 시골사람이 마신 물은 오줌이 되어 새롭게 흙으로 깃듭니다.


  숲을 들여다봅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짐승과 새와 벌레가 나고 죽지만, 짐승 주검이나 새 주검이나 벌레 주검 때문에 숲이 지저분하거나 고약한 적이 한 차례도 없어요. 이와 달리, 사람이 오늘날 만든 문명은 온통 쓰레기입니다. 아스팔트 찻길을 새로 깔려고 헌 아스팔트를 걷으면 몽땅 쓰레기입니다. 아파트를 헐고 새로 올리려면 시멘트덩이는 몽땅 쓰레기입니다. 과자봉지도 쓰레기요, 비닐봉지도 쓰레기입니다. 도시나 시골이나 모두 쓰레기투성입니다. 쓰레기가 엄청나게 커다란 멧봉우리를 이룹니다.


  과학이란 무엇입니까? 역사란 무엇입니까? 문명과 문화란 무엇입니까? 교육과 정치와 경제와 사회란 무엇입니까? 종교와 문학과 책은 또 무엇입니까? 모두 쓰레기 아닌지요? 앞으로 이천 해가 흐른 뒤를 생각해 봅니다. 4347.5.2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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