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비 6
후루야 미노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164



되는 대로 나아가는 삶이란

― 낮비 6

 후루야 미노루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0.11.15.



  후루야 미노루 님 만화책 《낮비》(대원씨아이,2010) 여섯째 권을 읽습니다. 《낮비》는 여섯째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마지막 권을 덮으며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후루야 미노루 님한테 《낮비》라는 작품은 몹시 벅찼구나 싶습니다. 여섯째 권을 이루는 흐름도, 마지막 이야기도, 이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 모습도, 실마리와 실타래가 없이 뒤섞이다가 톡 끊어집니다.


  어쩌면, 후루야 미노루 님은 실마리와 실타래가 없는 이야기를 뒤섞다가 톡 끊듯이 내려놓을 생각이었을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얼거리도 얼거리일 테니까요.



- ‘죽은 뒤에 정말로 지옥과 같은 세상에 가게 된다면 진짜 싫을 거야.’ (17쪽)

- “뭐,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이 세상에 ‘병’이란 말 자체가 필요없다고 생각해. 솔직히 의미가 없잖아? 걷고 있는 사람한테 ‘걷고 있네요’ 하고 말하는 것 같거든.“ (55쪽)



  ‘계획하지 않은 범행(살인)’이기에 오히려 새로운 범행(살인)으로 자꾸 나아가면서 경찰한테 안 붙들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계획하지 않은 범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짠 범행이라고 해야 옳지 싶어요. 이 만화에 나온 살인자는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죽이거든요. 두려움이 없는 마음일 때에 비로소 ‘가장 빈틈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려는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찾으려 할 적에도 ‘두려움이 없’어야 해요. 쳇바퀴와 굴레를 이제 벗어던지고 새롭게 살아가려 할 적에도 ‘두려움이 없’어야 쳇바퀴를 벗고 굴레를 내려놓습니다. 자꾸 두려움이 치밀면 아름다움으로 가지 못해요. 잇달아 두려움을 스스로 부르는데 사랑스러움으로 가지 못해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며 ‘도시가 싫어!’ 하고 외치지만 정작 시골로 가지는 못합니다. 두려움 때문입니다. 돈을 못 벌면 어쩌나 하고 두렵습니다. 시골에 뿌리를 못 내리면 어쩌나 하고 두렵습니다. 시골은 텃세가 있다고 여기며 두렵습니다. 시골에서 무엇을 하며 먹고살는지 두렵습니다. 온통 두려움입니다. 두려움만 있으니 도시가 싫다고 입으로는 외쳐도 마음과 몸이 따르지 못해요.


  그러면, 생각해 볼 노릇이에요. 도시에 있대서 돈을 잘 벌까요. 도시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요. 도시에는 텃세가 없나요. 회사와 가게와 학교마다 텃세가 있지 않나요. 도시에서 지내며 무엇을 하며 먹고살아야 하느냐를 놓고 날마다 근심과 걱정이 그득하지 않나요.


  도시에 있을 적부터 늘 두려움투성이인 탓에 시골로 갈 엄두를 못 냅니다. 살아갈 길이 있는 줄 알면서, 살아갈 길로 가지 못하고, 두려움을 짙게 드리우면서 스스로를 달랩니다. 어려운 말로는 ‘자기 합리화’입니다.



- “네가 말하는 행복은 뭐지? 구체적으로 말해 봐.” “그, 그건, 매일 건강히,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함께 예쁜 꽃을 보며, 예쁘다고 느낀다거나, 뭐 그런 거지.” (138쪽)

-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범행을 저지르는데도 잡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래서 잡히지 않는 건가?’ (161쪽)



  삶을 이루는 즐거움이란 무엇일까 생각할 노릇입니다. 사랑을 이루는 웃음이란 무엇일까 헤아릴 노릇입니다. 언제 즐거운가요? 언제 사랑이 샘솟는가요?


  핵발전소가 사라지고 전쟁무기가 없어져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들꽃 한 송이를 보아도 아름답습니다. 독재를 휘두르는 대통령이 사라지고 밀양송전탑을 걷어치울 수 있다면 사랑스럽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웃음을 마주하거나 이웃이 건넨 떡 한 접시를 받고도 사랑스럽습니다.


  삶을 이루는 빛은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나는 내 삶이 어떠한 빛으로 샘솟도록 이끄는 하루를 누리는가요. 내 넋은 얼마나 환하게 빛나는가요. 내가 걷는 길은 얼마나 즐겁게 걸어갈 길인가요.


  만화를 그리는 후루야 미노루 님 스스로 삶을 더 깊게 들여다보고 한결 즐겁게 마주하면서 차근차근 삶을 노래할 수 있기를 빌어요. 스스로 삶빛을 키우지 못한다면 ‘삶을 다루는’ 만화를 제대로 그리지 못합니다. 슬쩍 건드리거나 조금 만지작거린다고 해서 ‘삶을 다루는’ 만화가 되지 않습니다. 되는 대로 그린대서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작품이 되지 않습니다. 더 가까이에서 껴안고, 더 따스히 보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6.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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