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Heureka - 단편
히토시 이와아키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41



과학이란 무엇인가

― 유레카

 이와아키 히토시 글·그림

 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05.3.25.



  과학이란 무엇인지 가만히 헤아려 보곤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으레 과학이면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데, 참말 과학은 믿을 만한지 궁금합니다.


  과학으로 무엇을 밝힐 수 있을까요. 과학은 무엇을 할까요. 사람들 삶을 밝히는 일에 과학은 얼마나 이바지하는가요. 지구별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에서 과학은 어떤 몫을 하는가요.


  과학이라는 이름은 자연과학이나 기술과학뿐 아니라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이라는 데까지 붙습니다. 요즈막에는 생활과학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어느 자리에나 들러붙는 과학이지 싶습니다.


  이러한 과학이 하나도 없다면, 과학스러운 학문이나 생각이나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면, 우리 삶은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과학이 없으면 삶이 무너질까요. 과학이 있기에 삶이 무너지지 않는가요. 과학이 없어도 삶과 숲과 지구별과 우주는 아름답게 흐르지 않나요. 과학이 있기에 삶과 숲과 지구별과 우주까지 망가뜨리는 길을 걷지 않나요.



- 시라쿠사 출신 망명자 에피큐데스는 지척에서 한니발의 지휘를 보며 그 천재성에 완전히 심취해 있었다. (15쪽)

- 한 명을 죽이면 살인범, 세상의 반을 죽이면 영웅, 인간을 전부 죽이면 신이다. (127쪽)




  역사란 무엇인지 가만히 헤아려 보곤 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역사라 할 적에 권력자나 통치자 이름을 들먹이곤 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문화라 할 적에 권력자와 통치자가 누리던 사치를 들먹이곤 합니다.


  정치집단이 서로 맞붙어 싸우며 죽이고 죽은 발자취가 역사일까 궁금합니다. 전쟁무기를 만들어 이웃나라 땅을 빼앗는 짓이 역사일까 궁금합니다. 유럽사람이 전쟁무기를 앞세워 지구별 수많은 나라와 겨레를 죽이고 괴롭히며 식민지로 삼은 짓이 역사일까 궁금합니다. 미국이 전쟁무기를 내세워 멕시코와 중남미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북미 토박이를 죽일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지구 곳곳에서 군사힘으로 작은 나라를 억누르는 짓이 역사일는지 궁금합니다.


  대통령 이름은 역사가 아닙니다. 몇몇 이름난 사람들은 역사가 아닙니다. 그네들은 그저 그네들입니다. 역사란 ‘발자취’요, 발자취란 ‘살아온 나날’입니다. 삶은 다툼과 싸움도 아닙니다. 삶은 사랑과 꿈입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지낸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저마다 꿈꾸고 삶을 가꾼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 “클라우디아는 이곳 시라쿠사시를 사랑하고 있소. 그래서 지금 몹시 슬퍼하고 있단 말이오. 마을 여기저기에 많은 추억이 서려 있고,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 로마와 전쟁이 터졌으니 다소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건 불가항력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어제까지 사이좋게 이야기하고 함께 밥을 먹던 사람들끼리, 어떻게 오늘 갑자기 칼을 들이댈 수가 있소?” (149∼150쪽)

- “그 외에도 많은 걸 만들었지만 난 사실 그런 괴물들 따윈 만들기 싫었다네. 하지만 왕이 하도 간곡하게 부탁해서. 난 그 괴물들의 두목인 셈이지.” (158∼159쪽)





  땅을 일군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집을 짓고 밥을 지으며 옷을 지은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아이들이 뛰놀며, 아이들이 노래하는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나물을 뜯고 나물을 무치며 나물을 먹는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제비와 개구리와 풀벌레가 역사입니다. 바다와 들과 숲이 역사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역사이고, 풀 한 포기가 역사입니다. 꽃 한 송이가 역사요, 열매 한 알이 역사입니다. 씨앗 한 톨을 건사하면서 사랑을 물려주던 기나긴 이야기가 바로 역사예요.


  우리는 오늘날 사회에서 역사를 제대로 못 볼 뿐 아니라, 참답게 가르치지도 못해요. 우리는 오늘날 사회에서 아이들한테 역사를 제대로 못 보여줄 뿐 아니라, 어른 스스로도 역사를 슬기롭게 깨닫지 못해요.



- “다음 두 번째 질문! 전쟁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173쪽)

- “왠지 고향을 배신하는 것 같아.” “고향이 먼저 널 배신했어.” (212쪽)



  이와아키 히토시 님 만화책 《유레카》(서울문화사,2005)를 읽습니다. 유럽 어디메에서 지난 어느 한때 있었던 일을 짤막하게 다룬 만화책입니다. 과학 문명을 앞세워 전쟁무기를 만들도록 시킨 ‘임금(우두머리)’이 나오고, 과학 문명으로 만든 전쟁무기를 내세워 이웃나라를 괴롭힐 뿐 아니라, 이웃을 마구 죽이면서 ‘영웅’이 되려는 바보들을 보여주는 만화책입니다. 258쪽짜리 조촐한 만화책은 “마침내 그 모든 목격자는 스러지고 2천 년이 흘렀다.”와 같은 말마디로 끝맺습니다. 이천 해 앞서, 지구별 어디에선가 서로 죽이고 죽는 피튀기는 싸움이 한창이었다는데, 이제 모두 죽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임금이나 전쟁 지도자는 땅넓히기가 아주 대단하기라도 하듯이 사람들한테 떠벌이고, 사람들은 저마다 창과 칼을 손에 쥐고는 떡고물을 얻으려고 싸움터로 뛰어듭니다.





- “봐! 여기가 특등석이야! 좋지? 바다랑 에트나산. 이걸 그림으로 그려 목욕탕 벽 같은 데 장식하면 얼마나 좋을까.” (26쪽)

- “아르키메데스는 수학자에 발명가에 기술자지만 지도자는 아니오! 전장의 룰 따윌 그대로 적용해서 뭘 어쩌겠단 거요!” “너, 이놈!” “당신은 그 한니발과 호각으로 싸운 장군이고, 과거엔 적군의 왕을 자기 손으로 처치했을 정도로 대단한 용사요! ‘로마의 검’이라고까지 불리던 자가 이제 와서 망령 난 노인 하나의 목이 그리도 탐나시오? 부끄럽지도 않소?” (236∼237쪽)



  바보스러운 권력자가 세운 커다란 궁궐이나 성벽이 유물로 남곤 합니다. 바보스러운 권력자가 쓰던 금관이나 노리개가 유물로 남곤 합니다.


  슬기로운 사람이 살면서 누린 살림살이는 어느 하나 유물로 안 남습니다. 흙집은 유물로 안 남습니다. 가끔 빗살무늬흙그릇이라든지 민무늬흙그릇이라든지 돌칼과 같이 아주 오래된 유물이 나오기도 한다지만, 이런 흙그릇이나 돌칼은 숲으로 돌아가고 흙으로 돌아가는 살림살이입니다. 유물이 될 생각이 없던 유물입니다. 이와 달리 금관이건 노리개이건 권력자나 임금이나 지식인이 건사하던 물건은 ‘남기려고 용을 쓰던 유물’입니다.


  시골사람이 입던 옷은 유물이 아니기에 모두 흙으로 돌아갑니다. 시골사람이 입던 옷은 모두 풀에서 실을 얻어 손으로 지었습니다. 잘 입은 시골옷은 흙한테 돌려주어 새로운 흙이 되고, 시골사람은 풀에서 다시 새로운 실을 얻어 새롭게 옷을 짓습니다. 시골사람이 먹은 밥은 똥이 되어 새롭게 흙으로 돌아갑니다. 시골사람이 마신 물은 오줌이 되어 새롭게 흙으로 깃듭니다.


  숲을 들여다봅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짐승과 새와 벌레가 나고 죽지만, 짐승 주검이나 새 주검이나 벌레 주검 때문에 숲이 지저분하거나 고약한 적이 한 차례도 없어요. 이와 달리, 사람이 오늘날 만든 문명은 온통 쓰레기입니다. 아스팔트 찻길을 새로 깔려고 헌 아스팔트를 걷으면 몽땅 쓰레기입니다. 아파트를 헐고 새로 올리려면 시멘트덩이는 몽땅 쓰레기입니다. 과자봉지도 쓰레기요, 비닐봉지도 쓰레기입니다. 도시나 시골이나 모두 쓰레기투성입니다. 쓰레기가 엄청나게 커다란 멧봉우리를 이룹니다.


  과학이란 무엇입니까? 역사란 무엇입니까? 문명과 문화란 무엇입니까? 교육과 정치와 경제와 사회란 무엇입니까? 종교와 문학과 책은 또 무엇입니까? 모두 쓰레기 아닌지요? 앞으로 이천 해가 흐른 뒤를 생각해 봅니다. 4347.5.2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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