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야구선수 자와 씨 1
미시마 에리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42



빛줄기를 바라보는 마음

― 고교야구선수 자와 씨 1

 미시마 에리코 글·그림

 강동욱 옮김

 미우 펴냄, 2010.8.15.



  오월이 저물고 유월로 접어들면서, 우리 집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는 꽃을 모두 떨구고 열매를 맺습니다. 아기 손톱보다 작은 꽃은 바람에 많이 떨어졌으나, 나무에 달린 열매도 많습니다. 새빨간 꽃차례에 달린 검붉고 동그란 열매는 소담스럽습니다. 후박알은 새가 아주 좋아합니다. 후박알이 맺으니 마을에 있는 온갖 새가 찾아들어 노래합니다. 가까운 멧자락에서 지내는 새도 찾아들어 노래합니다. 나무 한 그루가 있고, 나무열매가 맺으니, 마당에 놓은 평상에 앉든 마루에 앉든 부엌에서 밥을 짓든 늘 멧새 노랫소리를 누립니다.


  마당에 나무가 없어도 새는 하늘을 가로지르면서 날아갑니다. 귀를 기울이면 새소리를 누립니다. 집 앞에 논이 없어도 마을 가까이에 논이 있으면 개구리 노랫소리를 누립니다. 그리고, 집 안팎이나 둘레에 풀밭이 우거지면 개구리가 살그마니 깃들어 골골 홀로 노래를 베풉니다.



- “야구부원들은 왜 일부러 배팅센터에 오는 걸까?”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아, 생각해 보니 꽤 많네요. 진짜, 이유가 뭘까요?” “봐! 쟤들 어차피 날마다 원숭이처럼 연습만 할 거 아냐? 나 같으면 일부러 돈까지 써 가면서 이런 데 오지는 않을.” (20쪽)

- “여자인데도 사정없이 태웠구나, 자와 씨.” “당연하지. 야구부에서 선탠 로션 바르는 녀석 거의 없잖아.” “어? 그래도 여자 매니저는 꼬박꼬박 챙겨 바르잖아, 선탠 로션.” (34쪽)





  풀숲에 깃들 때에 풀벌레를 만납니다. 풀벌레는 풀밭이나 풀숲에서 살아요. 풀벌레이니까요. 풀벌레는 도시에서 살지 못하고, 풀벌레는 아파트에서 살지 못합니다. 풀벌레는 청와대나 국회의사당에서도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파트에 꽃밭이 있으면서 흙내음과 풀내음이 감돌면, 이런 곳에도 풀벌레는 살그마니 찾아옵니다. 아파트를 지키는 이들이 농약을 솨솨 뿌려서 풀벌레가 그만 농약을 맞아 죽기도 하지만, 풀벌레는 아파트 꽃밭에서도 살아남고, 도시 한복판에 있는 조그마한 풀섶에서도 살아남습니다.


  귀를 기울여 보셔요. 도시 한복판이라 하더라도 자동차가 똑 끊어진 때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셔요. 건널목에 푸른 빛깔 등불이 켜지면서 자동차가 모두 서야 할 적에 풀밭을 바라보면서 귀를 기울여 보셔요. 어쩌면 아뭇소리가 없을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가늘게 풀벌레 노랫소리가 흐를 수 있습니다. 더 귀를 기울이면 이곳저곳 날면서 먹이를 찾는 참새가 지저귀는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 “똑같은 여자라도 우리 같은 매니저를 얕보는 것 같달까.” “그러게! 분위기만 봐서는 쉽게 다가가지 못할 것 같아.” “실제로는 어떤 사람일까?” (63∼64쪽)

- “저건 미야코자와 리사잖아.” “그게 누군데?” “어? 닛센고교의 유일한 여자 야구부원.” “진짜? 여자가 야구를 왜 하는데?” (91쪽)



  빛은 빛을 느끼려 하는 사람한테 찾아갑니다. 바람은 바람을 맞이하려는 사람한테 다가갑니다. 노래는 노래를 들으려는 사람한테 흘러갑니다.


  햇빛이 비추어도 햇빛을 생각하지 않거나 느끼지 않는 사람은 햇빛을 몰라요. 햇볕이 내리쬐어도 햇볕을 즐기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따순 볕을 몰라요. 햇살이 눈부셔도 햇살을 마주하지 않으려 한다면 언제나 지구별을 환하게 보듬는 햇살을 몰라요.


  미시마 에리코 님 만화책 《고교야구선수 자와 씨》(미우,2010) 첫째 권을 읽습니다. ‘자와 씨’는 고등학교 야구선수입니다. 다만, ‘여자 선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책에는 ‘여자 야구선수’라고 적지 않습니다. 그냥 ‘야구선수’요 그저 ‘고교야구선수’일 뿐입니다.





- ‘자와 씨는 3㎏이나 체중이 주는 바람에 체간, 특히 복근이 빠져버린 걸 신경 쓰는 것 같다’ (140쪽)

- “썰렁하네. 아무리 익숙해도 막 깎고 나면 썰렁하다니까.” “연습도 없는 날 사내자식 둘이 서로 머리나 깎아 주고 있는 게 더 썰렁하다.” “그만 해, 하나무라.” “겨울이다. 여친 있었으면 좋겠다.” “그만 해, 모리구치.” (163쪽)



  ‘자와 씨’는 누구일까요? ‘여자 야구선수’일까요? 글쎄, 이렇게 보고 싶다면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자와 씨’는 ‘미야코자와’일 수 있습니다. 이 아이를 이 아이대로 바라보면 이 이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마주하거나 바라보려는 매무새에 따라 ‘자와 씨’는 우리한테 다 다른 모습이 됩니다. 그리고, 내 이웃이 나를 바라보려 하는 매무새에 따라 ‘내 이웃이 나를 바라보며 느끼는 빛’이 달라요. 내가 바라보는 나는 이런 모습이라 하더라도, 나를 온 모습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내 이웃은 나를 ‘한 가지 모습’으로 못박습니다. 나 또한 내 이웃을 온 모습으로 마주하지 않고 ‘한 가지 모습’으로만 여기면, 내가 내 이웃한테서 받을 빛은 오직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를 본대서 서운하거나 아쉽지 않습니다. 아무튼 ‘한 가지’라 하더라도 우리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한 가지’로라도 바라보았습니다. 잘 살펴보셔요. 우리는 우리 둘레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있고 풀벌레가 있으며 꽃과 풀과 나무가 있지만, 거의 모든 이웃과 풀벌레와 꽃과 풀과 나무를 안 느끼거나 안 알아보면서 살아요. 생각 없이 스치기 일쑤입니다.


  빛줄기를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나 스스로 내 빛줄기를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내가 내 이웃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눈망울로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내가 이 지구별을 오롯이 껴안으면서 가꾸고 싶은 마음입니다. 4347.6.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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