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비와 세레나데 2 삼양출판사 SC컬렉션
카와치 하루카 지음, 심이슬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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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358



《눈물비와 세레나데 2》

 카와치 하루카

 심이슬 옮김

 삼양출판사

 2018.5.31.


‘스스로도 과연 무엇을 위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통 모르겠지만, 어디에 있는들 무엇을 하든 결국 나는 어디에도 없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닥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 (74∼75쪽)



《눈물비와 세레나데 2》(카와치 하루카/심이슬 옮김, 삼양출판사, 2018)을 읽고서 세걸음은 언제 나오려나 하고 손꼽아 본다. 이야기를 엮는 맛하고 멋이 그윽하다. 어쩌면 이 만화를 연속극이나 영화로도 찍을 수 있겠지. 그만큼 잘 빚었다. 다 읽고서 다시 넘기고 또 들추어 보노라면 딱히 어느 대목 어느 말이 이 만화에서 눈부시다고 뽑을 만하지는 않다. 그저 물이 흐르듯이 줄거리가 잘 흐른다. 다만 세걸음이나 네걸음, 또는 더 뒤로 흐르는 동안 짝짓기놀이에 너무 얽매인다면 재미가 확 떨어지겠지. 오늘하고 어제가 무엇인가를 놓고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는 결이 이 만화책에서 고빗사위라고 할 수 있다. 할머니랑 나랑 나이가 벌어지고 몸도 다르다지만, 할머니가 내 나이만 했을 적에 어떤 눈으로 어떤 삶을 보고 어떤 길을 어떤 몸짓으로 걸었을는지 헤아리기도 하는 숨결이 이 만화책에서 알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세걸음이나 네걸음에서도 부디 잘 잡아채어 주기를 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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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미코 3
요시모토 마스메 지음, 이병건 옮김 / 노엔코믹스(영상노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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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시렁 124


《쿠마미코 3》

 요시모토 마스메

 이병건 옮김

 노블엔진

 2016.5.18.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도시는 불이 안 꺼집니다. 집이든 길이든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도시에서는 소리가 잠들지 않고 빛도 잠들지 못합니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하루를 어떻게 누릴까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도시에서 나고 자란 몸이지만, 도시에 살 적에도 참말 몰랐어요. 어두울 수 없고 고요할 수 없는 도시에서 어떻게 잠드는지, 이런 터전에서 살아가며 쉬거나 일하는 몸이란 무엇인지 하나도 몰랐습니다. 《쿠마미코》 세걸음을 읽습니다. 한걸음 두걸음을 지나니 이 만화책에 나오는 멧마을 무녀로 일하는 아이는 도시바라기가 높은 담에 막혀 축 처지기도 하고, 도무지 도시는 바랄 수 없겠다고, 숲에서 조용히 살아야겠다고 여기기도 하지만, 다시 주먹을 불끈 쥐고서 멧골숲을 벗어나기를 꿈꿉니다. 만화에만 나오는 이야기일는지 참말로 우리 삶이 이와 같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멧골이나 숲이나 시골을 답답하거나 갑갑하게 여기는 버릇이 사람들 마음에 깊이 새겨졌지 싶어요. 우리는 왜 나무가 없고 풀이 없으며 흙도 없고 새나 벌레나 짐승도 없는 도시가 마치 사람한테 좋거나 아름다운 줄 여기고 말까요. 우리한테 어떤 터전이 아름답고 살기에 즐거운 줄 왜 잊거나 잃어버리고 말까요. ㅅㄴㄹ



“나츠?” “마치. 역시, 평생 이 마을에 있는 게 어때?” “싫어.” (54쪽)


“산신님, 저는 마음이 추악한 곰입니다. 말로는 마치에게 현대 사회에 적응해라고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이대로 있어 줬으면 하고, 마을 밖에서 못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바라고 있어요! … 센다이 같은 데 안 가면 좋을 텐데! 신칸센이 멈췄으면! 다리가 무너지면 좋을 텐데!” (140∼141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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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8-10-22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니로 봤는데, 참 웃겼죠,,,ㅎㅎ

숲노래 2018-10-22 14:31   좋아요 0 | URL
저는 애니는 못 봤지만
재미있겠구나 하고 생각해요.
어느덧 5권째를 읽습니다 ^^
 
상해백사정기담 1
키미즈카 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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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시렁 123


《상해백사정기담 1》

 키미즈카 쇼

 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2017.6.15.



  눈을 뜨고서 앞을 볼 적에 무엇을 보았다고 할 만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모습이 참인지, 마음으로 보는 모습이 참인지 헷갈리곤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믿어야 할는지, 속으로 살피는 모습을 받아들여야 할는지 곰곰이 따지기도 합니다. 두 눈을 뜨고 보는 모습이 거짓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만, 마음으로 보는 모습을 옆으로 젖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몸뚱이만 입은 목숨이 아니라, 몸뚱이를 마음으로 움직이는 넋일 테니까요. 《상해백사정기담》 첫걸음을 읽으며 두 가지 눈이랑 마음을 헤아립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숨결은 겉모습만 사람일 수 있고, 겉으로는 사람으로 보이나 사람이 아닌 다른 숨결일 수 있습니다. 숱한 사람들은 그이 스스로 ‘그냥 사람’이라 여기기 일쑤이지만, 정작 그이 스스로 ‘그냥 사람’이 아닌, ‘몸이라는 껍데기만 사람’인데 이런 모습을 하나도 못 느끼거나 도무지 모를 수 있어요. 이리하여, 참말로 우리한테는 몸눈하고 마음눈 둘이 있고, 몸을 움직이는 마음에다가 몸에 따라 바뀌는 마음이 있는가를 곱씹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일까요? 우리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떤 참모습일가요? 우리는 어떤 참삶을 짓는 참넋이자 참마음일까요? ㅅㄴㄹ



“넌 네 엄마가 준 이름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할 수 있어. 요괴들도 똑같아. 애매한 모양새에 사람이 이름을 붙이면서 다시 태어나지.” (95쪽)


“전하고 싶은 마음, 이미지를 지닐 수 있는 건 인간뿐이야. 우리 같은 존재는 인간에게 기술을 주는 일밖에 못 해.” (143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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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와 함께 3
타니카와 후미코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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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시렁 122


《사야와 함께 3》

 타니카와 후미코

 문기업 옮김

 AK comics

 2017.9.25.



  어릴 적에 저는 사랑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인지 참 궁금했어요. 그런데 그때 어른들은 학교에서 성교육만 시키더군요. 더욱이 고작 하루 한 시간뿐이었습니다. 사랑을 가르치거나 이야기하지 않고서 성교육 비디오테이프 한 시간 틀어 주고서 마친 학교라는 곳은 우리한테 무엇을 보여준 셈일까요? 오늘날 우리 학교나 마을이나 집에서는 사랑을 가르치거나 이야기할까요? 오늘날 이 나라 대통령이나 정치일꾼이나 벼슬아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면서 이녁 자리를 건사하거나 지킬까요? 《사야와 함께》 세걸음을 읽으면, 스스로 풋풋할 뿐 아니라 스스로 새롭게 사랑을 꽃피우고 싶은 푸름이가 어떤 걸음으로 하루를 맞이하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이 아이는 첫사랑도 풋사랑도 짝사랑도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나 오롯이 사랑 하나만 헤아릴 뿐입니다. 둘레에서 이 아이한테 사랑을 가르친 어른이 있었을까요? 딱히 사랑이란 이름을 쓰면서 사랑을 가르쳤다기보다, 사랑이라는 마음을 우리가 스스로 마음에서 지어서 길어올리는 삶결이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주고, 이러한 결대로 살아갔지 싶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저는 어릴 적에 둘레에서 ‘몸소 사랑을 짓는 삶길’을 보여준 어른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뜻입니다. ㅅㄴㄹ



‘나란히 벤치에 앉아 바람을 느꼈다.’ (30쪽)


‘선생님은 아주 자연스럽게 내 앞에 앉았다. 나는 심장 소리가 선생님에게 들리지나 않을까 안절부절못했다.’ (61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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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여자회 방황 5
츠바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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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시렁 121


《제7여자회 방황 5》

 츠바나

 이형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7.4.30.



  저는 치마바지란 옷을 입습니다. 그런데 겉보기로는 그냥 치마로 느끼나 봅니다. 교칙에 맞추어 머리카락을 짧게 치고 똑같은 학교옷을 맞춰 입은 고등학교 아이들이, 중학교 아이들이 제 차림새를 보고 “남자가 치마 입었어?” 하는 말을 큰소리로 지껄입니다. ‘떠들다’가 아닌 ‘지껄이다’입니다. 요새도 초등학교 어린이가 제 머리카락을 보면서 “남자가 머리가 길어!” 하며 큰소리로 지껄입니다. ‘말하다’가 아닌 ‘지껄이다’입니다. 왜냐하면 중·고등학생이든 초등학생이든 스스로 삶이 없어서 내뱉는 말이거든요. 틀에 박히고 길들고 만 몸뚱이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에는 사랑도 삶도 살림도 생각도 슬기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제7여자회 방황》 다섯걸음을 읽는데 꽤 재미있습니다. 오늘로 치면 꽤 앞날이 될 즈음, ‘동무’가 아예 사라졌기에 학교에서 억지로 번호에 맞추어 짝을 맺어 ‘동무 되는 놀이’를 시킵니다. 더 먼 앞날에는 아예 ‘동무’란 말조차 없어서 어떤 먼 앞날 아이가 시간을 가로질러 ‘동무놀이’를 시키는 옛날(?)로 슬쩍 찾아와 ‘동무 되기’를 겪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가 서로 동무라면, 이웃이라면, 참말로 어떤 말을 입에 얹을까요? 우리가 서로 ‘사람’이라면 어떤 목소리로 말을 터뜨릴까요?



“처음 눈을 뜨면 이미 어른이고 이미 누군가이고 거기에서 시작하는 거야. 주위 사람들의 기억도 맥락을 맞추게끔 재구성되어 아무도 그가 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물론 본인도 깨닫지 못해. 나도, 실은 어제 갑자기 만들어진 인간 아닐까라고 계속 생각했거든.” (17쪽)


“갖고 싶은 것이라, 만약에 살아 있었다면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101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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