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보이 - 고형렬 장시 최측의농간 시집선 5
고형렬 지음 / 최측의농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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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5


《리틀보이》

 고형렬

 최측의농간

 2018.7.25.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개미가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 나르기에, 개미가 애써 집을 지었기에, 개미가 풀벌레 주검이나 밥찌꺼기를 낱낱이 갉아서 먹어치우기에, 이곳을 고이 지키거나 건사할 수 있을까요? 개미가 집을 지어 사는 터전이기에 섣불리 삽차를 안 밀어붙일 수 있을까요? 《리틀보이》는 일본에 떨어진 핵폭탄을 둘러싸고서, 일본하고 한국(조선)하고 미국하고 중국 사이에 불던 바람을 이야기합니다. 이른바 한국현대사를 시로 풀어내려 합니다. 한국현대사 가운데에도 개화기·일제강점기·해방 언저리에 이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를 살아야 했는가를 싯말로 차곡차곡 짚으려 합니다. 하늘 높이 뜬 폭격기에서 본다면 사람은 아예 안 보입니다. 개미로조차 안 보여요. 총칼을 앞세운 군홧발한테 옆나라는 이웃나라 아닌 식민지일 뿐입니다. 스스로 임금님이 되고 양반이 되는 권력 눈에는 그들 밑에 밟힌 사람이 백성인지 백정인지 안 보입니다. 오늘날에도 시민이든 국민이든 그들 권력 자리에서는 하나도 안 보일 수 있겠지요. ‘작은이’조차 아닌, 개미조차 아닌. 그러나 개미한테도 삶이 웃음눈물이 노래가 있습니다. ㅅㄴㄹ



폭격은 부역자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 미군들에게는 그들도 개미떼와 같이 보이는 / 일본놈들과 똑같이 보였다. (92쪽)


22억 달러나 들여 만드는 무기가 /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 되고 말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들은 이 전쟁 속에 지난 50년간의 / 미국 전 예산보다도 더 많은 어마어마한 돈을 / 몇 년에 걸쳐 투자하고 있었던 것이다. (177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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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의 새 빗방울화석 시선 1
신대철 지음 / 빗방울화석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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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4


《극지의 새》

 신대철

 빗방울화석

 2018.6.12.



  1996년 십이월 한겨울 강원도 양구 어느 멧골짝, 밤 열두 시였는지 한 시였는지, 또는 두 시나 세 시였는지 가물가물하지만, 곧 다른 군부대로 떠날 동무하고 마지막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하다가 별똥잔치를 보았습니다. 하늘을 보면 그냥 이곳저곳 별똥이 쏟아지기에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동무가 하는 말, “별똥 보며 소원 빌면 이루어진다는데, 저 많은 별똥에 대고 날마다 소원을 비는데 안 이뤄지는 듯해서 그만뒀어.” 별똥은 오늘 바로 우리 꿈을 이뤄 줄까요, 아니면 한참 나중에 꿈을 이뤄 줄까요. 《극지의 새》가 왜 “극지 새”인지 아리송하다고 여기면서 한 줄 두 줄 읽는데, 끝자락에 1969년 일기가 흐릅니다. 노래님으로 군인 자리에 있어야 하던 날 겪고 보고 듣고 해야 하던 살림을 고이 적바림했습니다. 지뢰를 밟아 그 자리에서 날아올라 숨을 거둔 사람, 이웃인지 벗인지 놈인지 모를 북녘 군인, 한겨레인지 딴겨레인지 모를 여러 군 간부, 총을 쥐면 사람 아닌 기계나 괴물이 되어야 하는 하루를 시를 쓰며 살아남은 글쓴이. 이들은 서로 어떻게 어우러져서 이 나라 어느 곳을 ‘극지 아닌 극지’로 차갑게 매섭게 쓸쓸하게 밟았을까요. ㅅㄴㄹ



나는 숨 돌릴 새 없이 셔터를 누른다. / 찢어진 구름과 바람 소리 / 빠져나가지 못한 갈댓잎만 잡혀도 / 가슴에 찍히는 사진 한 장. (사진 한 장/17쪽)


장군 순시는 미뤄지고 옆 사단 정보참모와 연대장이 왔다. 전방 지형과 동향을 설명할 때 팔짱 끼고 내려다보던 날카로운 눈길. ‘시 쓴다고? 여기서는 잡념 가지면 안 돼! 포를 쐈을 때 그게 폭탄이 되든 축포가 되든 불팔이 되든 그건 나중 문제야, 중요한 건 조준 당시의 살상 의도야. 적개심이 없는 군인은 군인이 아니야.’ 아무 말 안 해도 속으로 듣고 질문하는 사이 몇 번 바람 드나들고 빗방울 끼어든다. 적이란 무엇인가? (1969년 5월 14일 수요일, 구름/147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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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잠들었을 때 나는 달이 되었다 문학의전당 시인선 176
임경자 지음 / 문학의전당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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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3


《우주가 잠들었을 때 나는 달이 되었다》

 임경자

 문학의전당

 2014.3.17.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크게 이는 바람은 나무를 흔들고 풀꽃을 누였습니다. 이러면서 갖은 쓰레기를 휘휘 몰아서 어디론가 날립니다. 아이들은 비가 쏟아져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비바람에 더 비바람을 맞으면서 놀고 싶습니다. 아이다움이라고 해야겠지요. 드센 비바람이 저희를 다치게 할 수 없는 줄 환히 느끼면서 온몸을 맡기겠지요. 저도 걱정없이 비바람 한복판에 서서 비를 맞고 바람을 마셔 봅니다. 《우주가 잠들었을 때 나는 달이 되었다》를 읽습니다. 비를 맞으면서 비가 되고, 바람을 마시면서 바람이 된다면, 눈을 고이 감고 잠들어 꿈을 꿀 적에는 우주가 될는지 모릅니다. 한밤에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 아버지를 부르면, 아이들을 안고서 “괜찮아. 꿈을 바꾸면 돼. 얼마든지 꿈을 바꿀 수 있어. 다시 잠들 적에 새로운 이야기가 흐르는 꿈으로 바꾸렴.” 하고 다독입니다. 꿈나라에서 저는 별이 되어 어느 별누리를 쏜살같이 납니다. 아득한 저 별누리 한켠은 어쩌면 제 텃별일 수 있습니다. 지구에 살짝 마실을 나왔을는지 모릅니다. 어느새 비바람은 그치고 해가 반짝 납니다. 마당에 흩어진 나뭇잎이 비바람 지나간 줄 알려줍니다.



우주가 잠들었을 때 나는 달이 되었다. 나는 공중에서 내 소녀의 다락방을 내려다보았는데, 창문으로 푸른 빛이 새어나와 별빛처럼 반짝거렸다. 그 후로 날마다 밤을 건너가며 창문에 불이 켜지기를 기다렸다. (다락방을 읽다/34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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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최측의농간 시집선 4
채상우 지음 / 최측의농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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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2


《멜랑콜리》

 채상우

 최측의농간

 2018.6.7.



  물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다툽니다. 플라스틱 물잔을 둘러싸고 네 것이니 내 것이니 끝없이 다툽니다. 어른이 보기에 이 플라스틱 물잔은 쓰레기일 수 있지만, 아이가 보기에 이 플라스틱 물잔은 더없이 재미나며 살가운 놀잇감일 수 있습니다. 한쪽 아이는 이 플라스틱 물잔을 가져와서 놀다가 물가에 살짝 놓았고, 다른 아이는 누가 버렸으리라 여겨 냉큼 집어서 놀았답니다. 두 쪽 모두 물러서지 않고, 이러다가 여러 어른이 끼어들어 다툼질을 끝내려 하는데, 여러 어른은 그만 빽 소리를 지르고, 한쪽 아이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멜랑콜리》를 읽으며 도시 한복판 살림이란 무엇인지, 서울처럼 커다란 도시에서 낯선 아이들이 서로 다투면서 어른이 이 다툼질에 끼어드는 하루란 무엇인지 아슬아슬하게 겹쳐 봅니다. ‘멜랑콜리’란 뭘까요? 알쏭달쏭한 이 바깥말로 어떤 느낌이나 마음을 나타낼 만할까요? 알 듯하면서도 모르는, 제대로 모르지만 어렴풋한, 그저 두루뭉술하게 드러내면서 어정쩡하게 지나가는 모든 이야기는 슬픈지 구슬픈지 애처로운지 딱한지 답답한지 아픈지…….



칭따오에선 맥줏값이 물값보다 싸다 인생을 탕진하는 건 쉬운 일이다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다 그녀와 헤어진 지 1216일이 지났고, 아무와 자지 않겠다고 결심한 지 873일이 지났다 (멜랑콜리/12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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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울던 마을 창비아동문고 64
이오덕 지음, 정승각 그림 / 창비 / 198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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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1


《개구리 울던 마을》

 이오덕

 창작과비평사

 1981.6.15.



  밤에 개구리가 베푸는 노래를 들으면 잠이 잘 옵니다. 아무리 크게 노래하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니, 개구리노래는 크면 클수록 잠을 더 깊이 누릴 수 있어요. 이와 달리 텔레비전이나 자동차나 냉장고나 기계에서 나는 소리는 아무리 작게 나더라도 잠이 들기 어렵습니다. 참으로 재미나지요. 개구리나 풀벌레가 베푸는 소리는 노래이지만, 갖가지 기계가 내는 소리는 시끄럽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몰려서 사는 도시는 어떤 곳일까요? 서울이나 부산에서 개구리 노래를 들으며 잠을 이루나요? 시골은 어떨까요? 농약바람이 부는 시골은 어떤 노래로 밤을 깊고 고요하게 누리는 터전일까요? 1981년에 나온 《개구리 울던 마을》은 “도시여, 안녕!”으로 끝을 밝힙니다. 2021년도 2011년도 아닌 1981년에 이런 노래로 마지막을 빛내지요. 한창 시골을 떠나고 숲을 짓밟으면서도 이런 모습을 개발로 삼던 그즈음, 이오덕 님은 도시를 등지고 시골살이를 하는 기쁨이 얼마나 크냐고 외칩니다. 더욱이 이런 외침을 아이들 눈높이로 들려줍니다. “개구리 울던 마을”을, 또 풀벌레하고 새가 노래하는 숲을, 우리 모두 꿈을 노래하는 길을 그립니다. ㅅㄴㄹ



이 많은 집들 속에 조그만 우리 집 한 채, / 우리 방 한 칸 없음을 슬퍼했지. / 얼마나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던가! / 이제 그 모든 허깨비들 다 물리치고 / 껍데기들 시원스리 훌훌 벗어 던지고 / 나는 떠난다, 가벼운 구름 되어. / 도시여, 안녕! (도시여, 안녕!/283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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