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어떤 소리를 내지? 같이 보는 그림책 16
스베인 니후스 그림, 일비스.크리스티안 레크스퇴르 글, 박하재홍 옮김 / 같이보는책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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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84



여우가 말하고 노래하는 소래를 들어 봤니?

― 여우는 어떤 소리를 내지?

 일비스 글

 스베인 니후스 그림

 박하재홍 옮김

 같이보는책 펴냄, 2016.7.27. 11000원



  노르웨이에서 익살맞은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는 ‘일비스(Ylvis)’ 형제가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퍽 오래 익살꾼 노릇을 했다는데 지난 2013년에 ‘what does the fox say?’라는 노래를 지어서 유투브에 올렸대요. 이 노래는 유럽사람들한테 대단히 크게 사랑을 받았다 하고, 이 노래를 바탕으로 그림책이 나오기도 했답니다. 한국에는 2016년 7월에 《여우는 어떤 소리를 내지?》(같이보는책)라는 이름으로 그림책에 나옵니다.



벙긋벙긋 웃는 걸까 금붕어는 “뻐끔뻐끔” 하루하루 힘차게 수영하는 물개가 소리쳐 “아우아우” 그런데 한 번도 못 들어 본 소리가 있어. 아무도 모를 거야. 여우는 어떤 소리를 내지? (6쪽)



  익살맞게 노래하고 놀며 춤추려는 마음이 담긴 “여우는 무어라 말하지?”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금붕어가 어떻게 말하고 물개가 어떻게 말하는가를 넌지시 물어요. 이러다가 문득 여우 이야기를 묻지요. 우리가 이런 짐승 저런 벌레 그런 새 노랫소리를 알는지 몰라도 정작 ‘여우 말소리’나 ‘여우 노랫소리’는 모르리라 하고요. 그러면서 일비스 형제 나름대로 ‘여우는 이런 소리를 내면서 말하거나 노래를 한다’면서 마치 마법 주문 같은 소리를 잔뜩 늘어놓아요.



하티 하티 하티이 호, 하티 하티 하티이 호, 하티 하티 하티이 호, 얍 얍 얍 얍 쪼흐쪼프쵸, 얍 얍 얍 얍 쪼흐쪼프쵸, 얍 얍 얍 얍 쪼흐쪼프쵸, 여우는 어떻게 웃지? (10쪽)



  사람을 둘러싼 수많은 목숨을 헤아리면서 ‘말’이 무엇이고 ‘노래’는 또 무엇인가를 가만히 묻는 그림책 《여우는 어떤 소리를 내지?》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를 딱딱하게 지식으로 풀어놓지 않아요. 어린이도 어른도 이 그림책에 흐르는 그림을 재미나게 바라보다가 바닥에 가만히 내려놓고는, 마루를 쿵쿵 찧으며 신나는 춤노래를 누려 보자고 이끕니다.


  여우 말소리를 듣고 여우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나무 말소리나 나무 노랫소리도 들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숲에 깃들며 나무랑 사이좋게 말을 섞거나 노래를 부르다가 함께 춤출 수 있을까요?


  개미한테 귀를 기울여서 개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비둘기더러 잘 날지 않는다고 나무라지 말고, 비둘기한테 살몃살몃 다가가서 비둘기는 어떤 마음인가를 묻고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고는 비둘기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하늘을 가르는 구름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을 수 있을까요?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추는 춤을 볼 수 있을까요?



앗, 어디선가 너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데? 넌 숲속의 전사가 아니라, 숲속의 천사 같아. 뭐라고? 우리에게 말하려는 거야? 좀더 크게 이야기해 줘. (22쪽)



  여우도 오소리도 삵도 너구리도 멧토끼도 숲에서 조용히 노래를 합니다. 다만 우리가 이러한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못할 뿐입니다. 도룡뇽도 개구리도 물방개도 사마귀도 뱀도 숲에서 가만히 노래를 해요. 그저 우리가 이러한 노래에 마음을 기울이지 못할 뿐이에요.


  사람이 여우하고 말을 섞을 줄 안다면, 여우가 이 땅에서 사라지거나 쫓기도록 괴롭히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사람이 풀이나 나무하고 말을 섞을 줄 안다면, 오늘날처럼 너무 지나친 개발을 밀어붙이지 않으리라 느껴요.


  그리고 사람이 여우나 나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몸짓이 된다면, 사람을 둘러싼 수많은 다른 사람들 마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기뻐하는 이웃 목소리를 듣고, 슬퍼하는 이웃 목소리를 들어요. 기쁜 이웃한테 다가가서 어깨동무를 하면서 춤을 추고, 슬픈 이웃한테 다가서서 손을 맞잡고 마음을 달래요. 서로서로 따사로운 마음으로 어우러져서 사랑이라는 목소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6.10.2.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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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 반디야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42
가브리엘 알보로조 지음, 김난령 옮김 / 한솔수북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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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80



유리병에 갇힌 반디는 슬퍼요

― 잘 자, 반디야

 가브리엘 알보로조 글·그림

 김난령 옮김

 한솔수북 펴냄, 2015.7.1. 11000원



  도시에서는 저녁이나 밤에 자전거를 달리면서 반드시 등불을 켜야 합니다. 자전거가 달릴 찻길이나 골목길에 자동차가 워낙 많기 때문이고 사람도 많이 오가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저녁에도 밤에도 논둑길에서 자전거를 달리며 등불을 안 켜도 됩니다. 등불을 안 켜면 시골은 너무 깜깜해서 앞을 못 보지 않느냐고 물을 분이 있을 텐데, 아주 깜깜한 시골에서는 등불이 없어도 달빛이나 별빛으로도 넉넉히 밝아요. 더욱이 시골에서 살다 보면 밤눈이 밝아져서 등불 없이 호젓하게 밤 기운을 누릴 수 있어요.



니나는 깜깜한 밤을 무서워해요. 하지만 괜찮아요. 불을 켜면 좀 덜 무섭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만 전기가 나가 버렸어요. (3∼4쪽)



  며칠 앞서 늦은 저녁에 자전거를 달려 면소재지를 다녀왔어요. 뭔가 살 것이 있어서 가볍게 자전거를 달렸지요. 가을이 깊어 가면서 나락은 무르익고, 나락 내음이 차츰 구수하게 퍼지는 논둑길을 등불 없이 자전거로 느긋하게 달렸어요. 이러다가 반딧불이를 꼭 한 마리 만났어요. 더 많이 만나면 더 반가울 텐데, 꼭 한 마리를 만날 수 있어도 매우 반가워요. 요즈음 시골은 농약바람 때문에 다슬기한테도 반딧불이한테도 고단한 터전이 되고, 무엇보다도 도랑이나 냇바닥에 있던 흙을 시멘트로 덮는 개발과 공사가 끊이지 않거든요. 반딧불이는 흙도랑이나 냇물 흙바닥을 파서 알을 낳고 깨어나니까 시멘트도랑이나 시멘트 흙바닥이 되면 반딧불이는 모조리 사라지고 말아요.



창밖에서 은은한 노란색 빛이 깜빡이는 게 보였어요. 온 마당이 아롱아롱 떠다니는 작은 불빛들로 가득했어요. “반딧불이다!” (8∼9쪽)



  가브리엘 알보로조 님이 빚은 그림책 《잘 자, 반디야》(한솔수북,2015)를 저녁에 고요히 읽습니다. 해가 지고 어두운 저녁에 아이들하고 둘러앉아 이 그림책을 읽습니다. 마침 우리는 저녁에 마을 한 바퀴를 서로 손을 잡고 천천히 거닐다가 반딧불이를 만났어요. 해가 갈수록 반딧불이 숫자가 줄어드는구나 싶지만, 그래도 해마다 몇 마리씩 어김없이 만나요.


  아이들도 곁님도 나도 반딧불이 빛깔을 모두 다르게 느껴요. 파랗다고 느끼기도 하고 노랗다고 느끼기도 하고 푸르다고 느끼기도 하며 하얗다고 느끼기도 해요. 네 사람이 네 가지로 다르게 느껴요.

  반딧불이를 밤에 보셨나요? 반딧불이 꽁지에서 어떤 빛깔이 반짝반짝하면서 고요한 밤을 밝히는가요?



“우리 그림자놀이할까?” 니나가 물었어요. 니나는 반딧불 쪽으로 두 손을 올렸어요. 맨 먼저 토끼를 만들었어요. 그다음 오리와 공룡도 만들었어요. 하지만 꼬마 반디는 점점 더 힘없이 깜박였어요. 그림자 동물들은 점점 더 옅어졌고요. (16∼17쪽)



  그림책 《잘 자, 반디야》를 보면 아이가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창밖을 살피다가 마당에서 아롱아롱 떠다니는 반딧불 무리를 보아요. 아이는 반딧불 한 마리를 잡아서 방으로 들어오지요. 반딧불하고 밤새 놀려고 하는데 반딧불이는 그리 즐겁지 않은 눈치라고 해요. 아이가 이렇게도 재주를 부리고 저렇게도 웃기려 하지만 반딧불이는 그저 시무룩한 채 빛을 차츰 잃는다고 해요.



니나가 나무 밑에서 병뚜껑을 열자, 반딧불이들이 빛을 깜박이며 빙빙 돌아다녔어요. 니나의 꼬마 반디가 천천히 위로 오르더니 병 밖으로 빠져나갔어요. 꼬마 반디가 점점 더 높이 날아갈수록 꽁지의 빛이 점점 더 밝아졌어요. (24∼25쪽)



  아이는 반딧불이하고 놀 생각은 하지만, 아직 반딧불이가 어떠한 이웃이거나 목숨인가를 잘 모릅니다. 그러니 반딧불이를 유리병에 가두면서 같이 놀자고 했겠지요. 유리병에 갇힌 반딧불이는 틀림없이 ‘안 재미있’을 뿐 아니라 ‘무서울’밖에 없다고 느껴요. 반딧불이는 ‘병에 갇혀서 두렵고 슬픈’ 마음에 자꾸만 빛을 잃을 테지요.


  저도 예전에 반딧불이를 잡아서 병에 넣은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대단히 밝아요. 그런데 이 꽁지빛이 시나브로 힘을 잃더군요. 뒤늦게 아차 싶어서 얼른 병에서 꺼내 주는데 꽤 오랫동안 힘을 되찾지 못해요. 얕은 생각 때문에, 그러니까 더 가까이에 두고 꽁지불을 바라보고 싶다는 얕은 생각 때문에 반딧불이 여러 마리를 죽일 뻔했습니다.


  그림책 《잘 자, 반디야》는 밤에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아이하고 어떤 밤놀이를 해 보면 재미날까 하는 대목을 넌지시 보여주기도 하고, 반딧불이가 밤에 얼마나 아름답게 춤추는 불빛인가 하는 대목을 찬찬히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곁에 있는 작고 예쁜 이웃을 어떻게 마주하고 아낄 때에 서로 즐거울까 하는 대목을 밝혀 주지요.


  새장에 갇히는 새는 즐겁지 못하고, 유리병에 갇힌 반딧불이는 기쁘지 못해요. 아이들도 어떤 굴레나 틀에 갇혀야 한다면 홀가분하지 못한 나머지 웃음이나 노래를 잃겠지요. 가을이 깊으며 반딧불이 밤빛이 새삼스레 사랑스러운 철에 ‘반딧빛’을 새롭게 돌아봅니다. 2016.9.2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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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넘기 요정 문지아이들
엘리너 파전 지음, 샬럿 보크 그림, 김서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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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85



줄넘기로 마을을 살리고 지킨 할머니 이야기

― 줄넘기 요정

 엘리너 파전 글

 샬럿 보크 그림

 김서정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10.10.19. 1만 원



  시끌시끌하거나 번쩍번쩍거리는 곳에도 요정이 살까요? 고요하면서 아늑한 숲쯤 되어야 요정이 살 수 있을까요? 어쩌면 책이나 옛이야기에서만 만날 만한 요정일 수 있지만, 오늘날 사회는 곳곳이 시끌시끌하거나 번쩍번쩍거리는 모습으로 바뀌기 때문에 요정도 우리 곁을 떠난다고 할 수 있지 싶습니다. 우리 삶자리를 고요하면서 아늑히 가꿀 수 있으면, 우리 삶터를 언제나 차분하면서 푸른 숲으로 돌볼 수 있다면, 사람하고 요정은 서로 사이좋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우러질 만하지 싶어요.



엘시는 세 살이 되자 엄마에게 줄넘기를 달라고 했습니다. “넌 너무 어려.” 엄마가 말했습니다. “조금 더 클 때까지 기다리렴. 그러면 하나 생길 거야.” 엘시는 입을 삐죽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밤중이 되자 엘시의 엄마 아빠는 뭔가가 마루에서 차락 차락! 울리는 소리에 잠을 깨야 했습니다. 엘시가 잠옷 바람으로 아빠의 가죽띠를 가지고 줄넘기를 하는 소리였지요. (4∼5쪽)



  엘리너 파전(1881∼1965) 님이 쓴 글에 샬럿 보크 님이 그림을 그린 《줄넘기 요정》(문학과지성사,2010)이라는 이야기책을 읽습니다. 《줄넘기 요정》이라는 이야기책에는 ‘캐번 산’이라는 곳에서 사는 요정들이 나오고, 캐번 산 둘레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줄넘기를 몹시 하고 싶은 ‘엘시 피더크’라는 아이가 나와요.


  캐번 산 꼭대기에서 ‘줄넘기 요정’은 보름달이 뜰 적마다 나타나서 다 같이 줄넘기를 한대요. 이 산 곁에서 사는 엘시 피더크라는 아이는 아주 어릴 적부터 둘레에서 언니 오빠가 줄넘기를 하며 노는 모습을 본 터라 세 살 적부터 줄넘기를 하고 싶었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버지는 아이가 너무 어려서 줄넘기를 하기에는 이르다며 더 큰 다음에 줄넘기를 하라 했지요. 아이는 몹시 서운했지만 깊은 밤에 혼자 조용히 마루로 나와서 아버지 바지에 꿰는 가죽띠로 혼자서 줄넘기를 했대요.



“엘시 피더크! 엘시 피더크! 캐번 산에서 줄넘기 대회가 있대. 요정 플리 풋이, 자기가 너보다 더 잘한다고 큰소리치더라.” 엘시는 깊이 잠들어 있었지만, 꿈속에서 그 말을 듣고는 눈을 감은 채 침대에서 팔짝 뛰어내려, 줄넘기를 들고는 힐스 오 리드를 따라 캐번 산 꼭대기로 갔습니다. 그곳에서는 앤디 스팬디가 다른 요정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어요. (10쪽)



  《줄넘기 요정》을 이루는 줄거리를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세 살부터 스스로 줄넘기를 익힌 엘시 피더크는 아직 꼬마이던 무렵부터 온 마을에서 줄넘기를 가장 잘 하는 아이가 되었답니다. 이런 얘기는 요정마을로도 퍼져서 어느 날, 그러니까 보름달이 뜬 날 요정들이 엘시 피더크한테 찾아왔대요. 엘시 피더크는 잠든 몸으로 줄넘기를 챙겨서 캐번 산에 요정하고 함께 갔고, 그곳에서 요정들이 시키는 온갖 어렵고도 재미난 줄넘기를 모두 한 번에 해냈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캐번 산 줄넘기 요정들은 이 아이가 ‘요정보다 줄넘기를 훨씬 잘 하는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요정들이 먼먼 옛날부터 익히는 줄넘기 솜씨를 하나씩 배울 수 있도록 돕습니다. 마을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보름달이 뜬 밤마다 꿈을 꾸듯이 잠결에 캐번 산에 줄넘기를 들고 올라서 줄넘기를 익혔대요.


  이러고서 긴 나날이 흘렀고, 어린 엘시 피더크는 어른이 되어요. 어른이 되면서 ‘요정한테서 배운 줄넘기 솜씨’는 조용히 상자에 담았대요. 엘시 피더크는 할머니가 되도록 더는 줄넘기를 하지 않으며 지냈는데, 어느 날 캐번 산을 둘러싼 마을에 영주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커다란 공장을 짓겠다고 했답니다. 마을사람한테 캐번 산을 뺏을 셈속이지요.



“아직 아닌데요.” 부드럽게 바삭거리는 목소리가 말했습니다. “이제 내 차례예요.” 사람들 사이를 뚫고 아주아주 작은 할머니가 나섰어요. 너무너무 늙어서 금세 부서질 것처럼 보였지요. 할머니는 작은 아이보다 더 작아 보였습니다. “당신!” 영주가 외쳤습니다. “당신 누구요?” “내 이름은 엘시 피더크랍니다. 백아홉 살 먹었지요. 지난 칠십구 년 동안 다른 고장에서 살았지만, 글라인드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캐번 산에서 줄넘기를 했어요.” 할머니는 눈을 감은 채 마치 꿈을 꾸는 사람처럼 말했어요. (32쪽)



  마을사람은 영주한테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괭이나 쇠스랑을 들고 일어나면서 공장 짓기를 막을 수 있을까요? 이제껏 조용하고 아늑하며 살갑게 살던 마을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판인데, 마을사람은 어떻게 손을 써야 할까요?


  이때 줄넘기 요정이 ‘마을에서 줄넘기를 가장 잘 한다는 아이’한테 넌지시 속삭였대요. ‘마을사람 모두 캐번 산에서 줄넘기를 하는데, 마을사람이 줄에 걸려서 더는 줄넘기를 못하고 말면, 그때에는 영주가 캐번 산에 공장을 짓는 첫 벽돌을 올리며 공사를 해도 좋다’고 하는 협상을 맺어서 문서로까지 남기라고 말이지요.


  줄넘기가 마을을 살릴 수 있을까요? 줄넘기로 고약한 영주를 쫓아낼 수 있을까요? 어느 모로 보면 고작 줄넘기 한 가지인데, 이 줄넘기로 마을사람은 웃음을 되찾으면서 앞으로도 사랑스러운 마을살림을 가꾸며 아이들이 이 삶터에서 아름답게 살도록 이끌 수 있을까요?



해가 질 무렵, 엘시는 여전히 줄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 늙은 것을 이 산에서 절대로 쫓아낼 수 없는 거야?” 영주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악을 썼습니다. “없지요.” 엘시가 여전히 잠에 빠진 채 대답했어요. “나를 이 산에서 쫓아낼 수는 없어요. 나는 글라인드의 아이들을 위해서 줄넘기를 하는 거예요. 이 산을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영원히 물려주기 위해서요. 나는 또 앤디 스팬디를 위해서 줄넘기를 하고 있어요. 평생 달콤한 사탕을 맛볼 수 있게 해 줬으니까요. 오, 앤디, 당신도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줄넘기를 할 수 있는지는 모를 거예요.” (36∼37쪽)



  엘리너 파전 님은 《줄넘기 요정》 이야기를 아름다우면서 부드럽고 곰살궂게 썼다고 느낍니다. 작은 마을과 작은 사람들과 작은 요정들 모두를 아끼는 따사롭고 너그러운 손길로 이야기를 지었구나 하고 느껴요. 이러한 이야기에 샬럿 보크 님이 살가우며 앙증맞은 그림으로 새로운 맛을 입혔고요.


  백아홉 살에 이른 ‘옛날 옛적 줄넘기 꼬마’ 엘시 피더크는 캐번 산에서 마지막 줄넘기를 했다는데, 늙고 구부정한 할머니는 어느 누구보다 아름답고 멋지며 훌륭히 줄넘기를 보여주었다고 해요. 영주를 쫓아낸 뒤에도 줄넘기를 멈추지 않았대요. 아마 ‘줄넘기 할머니’로 거듭난 이녁은 어느새 ‘새로운 줄넘기 요정’으로 거듭난 몸이 되었구나 싶어요. 살아서는 줄넘기 아이요, 죽어서는 줄넘기 요정이라 할까요.


  어쩌면 우리가 사는 모든 마을에 요정이 우리를 넌지시 지켜볼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마을살림을 잘 꾸리는지, 아니면 우리가 마을을 제대로 못 지키거나 못 살리는지를 지켜볼는지 몰라요. 우리가 아름다운 숨결로 살림을 지으면 조용히 나타나서 방긋방긋 웃을 테지요. 우리가 바보스러운 몸짓으로 살림을 허물면 어느새 우리 마을을 떠날 테고요.


  《줄넘기 요정》이라는 책은 지난 2016년 2월 28일에 국회에서 한 번 읽힌 적이 있어요. 테러방지법을 밀어붙이는 집권당 정책을 나무라려고 하던 권은희 의원이라는 분이 이 책을 읽었다지요. 평화를 사랑하고 아름다운 마을을 노래하는 이야기인 《줄넘기 요정》이에요. 아이들한테는 전쟁무기가 넘치는 나라가 아닌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마을과 보금자리를 물려줄 수 있어야 즐겁고,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을 만한 나라살림과 마을살림을 가꿀 때에 기쁘리라 생각해요. 2016.9.18.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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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음악가 폭스트롯 별둘 그림책 1
헬메 하이네 글 그림, 문성원 옮김 / 달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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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81



아이가 어버이와 다른 길을 가도 걱정하지 말아요

― 어린 음악가 폭스트롯

 헬메 하이네 글·그림

 문성원 옮김

 달리 펴냄, 2003.11.10. 8500원



  헬메 하이네 님이 빚은 그림책 《어린 음악가 폭스트롯》(달리,2003)에는 여우네 집안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익히 알 듯이 여우는 다른 작은 짐승을 사냥합니다. 다른 짐승을 잡아서 먹어요. ‘폭스트롯’이라는 새끼 여우도 ‘여느 여우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그런데 폭스트롯을 낳은 어미 여우는 매우 조용하다고 해요. 집(땅속에 판 굴)에서 두 어미 여우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눈빛으로 서로 마음을 읽는다지요.


  여러모로 생각한다면 여우로서는 ‘말수가 적’거나 ‘말이 없’어야 좋을 수 있어요. 수다쟁이 여우라면 사냥을 하다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어 먹이를 놓칠 테니까요.



엄마 여우랑 아빠 여우는 다른 여우들처럼 말수가 적었어요. 말을 주고받지 않고도 서로 마음이 통했거든요. 마주보고 웃거나, 이빨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답니다. 어느 날 폭스트롯은 유모차에서 기어나왔어요. 그리고 살짝 문 밖을 내다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바깥세상은 정말 시끌벅적했거든요. (4∼6쪽)



  어린 여우 폭스트롯은 어릴 적부터 무척 조용한 집안에서 자랐기에 처음에는 말수가 없고 조용했다고 해요.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어버이가 집살림을 어떻게 꾸리느냐에 따라 아이 모습이 달라질 테니까요.


  이러던 어느 날 폭스트롯은 혼자서 집밖, 그러니까 굴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보았대요. 이제 폭스트롯도 제법 자라서 혼자 바깥구경을 할 만하기에 조용히 바깥을 살펴보았을 테지요. 이때 폭스트롯은 무척 놀랐다고 합니다. 어쩜 온누리에 이렇게 수많은 소리가 있는가 하고 놀랐대요.


  어린 여우 폭스트롯은 어미 여우처럼 ‘먹이를 좇거나 찾거나 잡는’ 데에는 마음을 쓰지 않았대요. 어린 여우 폭스트롯은 ‘소리를 좇거나 찾거나 잡는’ 데에 마음을 썼대요. 이리하여 어미 여우가 사냥을 할 적에도 폭스트롯은 그만 온갖 시끄러운 소리를 냈고, 폭스트롯네 집안은 밥(먹이)이 떨어져서 쫄쫄 굶었다는군요.



지지배배, 짹짹, 까깍, 쫑쫑. 갖가지 소리에 폭스트롯은 푹 빠져들었답니다. 집에 돌아온 폭스트롯은 밖에서 들었던 소리를 흉내내어 보았어요. 갖가지 소리를 한꺼번에 내면서요. (10∼11쪽)



  그림책을 읽다가 이쯤에서 곰곰이 돌아봅니다. 그림책은 여우네 집안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사람네 집안에서도 비슷합니다. 조용한 집안이 있고 시끌벅적한 집안이 있어요. 아이는 어버이 살림을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 있고, 아이는 어버이하고는 동떨어진 새롭거나 다른 살림을 스스로 찾아나설 수 있어요. 어버이는 아이가 어버이하고 다른 길을 걷는다고 할 적에 즐겁게 북돋울 수 있지만, 어버이하고 다른 길을 걷기에 싫거나 밉거나 성날 수 있어요.



그때 폭스트롯의 입에 묶인 줄이 풀어지고 폭스트롯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꾀꼬리처럼 곱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이에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산지기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감동하여 폭스트롯네 식구를 살려 주었어요. (20∼23쪽)



  그림책 《어린 음악가 폭스트롯》은 두 가지를 짚으려 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첫째는 삶을 짚습니다. 집집마다 다른 삶을 짚지요. 그리고 집집마다 다르되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삶을 짚어요.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삶을 짚으면서, 아이가 어버이하고는 다르게 스스로 찾으려 하는 삶을 짚어요.


  그리고 이 그림책은 꿈을 짚습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낳으면서 살림을 가꿀 적에 품는 꿈을 짚지요. 어버이는 아이를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즐겁게’ 보살피고 싶습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어버이로서 이제껏 얻거나 익히거나 건사한 모든 살림과 앎’을 물려주고 싶을 만해요. 이와 달리 아이는 ‘꼭 어버이한테서만 살림과 앎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여길 만하지요. 아이는 혼자서 제 꿈을 찾을 수 있어요. 아이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어요. 아이 꿈은 어버이 꿈하고 다를 수 있어요.



어른이 된 폭스트롯은 슬기로운 여우 청년과 결혼하여 아이들을 많이 낳았어요. 아이들은 하나같이 음악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어요. 단지 막내아들이 걱정될 뿐이었지요. (30∼31쪽)



  직업이 아닌 꿈을 생각해 봅니다. 돈을 잘 벌거나 흔히 ‘안정된 직업’이라고 하는 일자리 말고, 아이가 스스로 가장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고 즐겁게 이을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헤아려 봅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고 할 적에 아이가 무엇을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이 될까요? 아이가 시험성적을 잘 거두기만을 바라는 마음일까요? 아이가 시험성적을 잘 거두지 못해도 아이 나름대로 즐겁게 꿈을 키우기를 바라는 마음일까요? 아이가 받는 시험성적은 바라보지 않고 아이가 짓는 꿈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그림책 《어린 음악가 폭스트롯》에 나오는 어미 여우는 폭스트롯한테 ‘여느 사냥꾼 여우’다운 살림을 물려주지 못합니다. 폭스트롯은 스스로 새로운 길을 걸으면서 새로운 살림을 지어요. 그리고 이러한 삶결이 고스란히 흘러서 폭스트롯이 어느새 어른 여우가 된 뒤에 낳은 ‘폭스트롯네 아이’도 폭스트롯하고 다른 길을 걷는다지요.


  참말로 아이들 앞날은 아직 몰라요. 참말로 아이들 앞날은 어른이나 어버이가 섣불리 붙들어 맬 수 없어요. 참말로 아이들은 즐겁게 꿈을 꾸면서 아름답게 꿈을 빚고 사랑스레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라요. 2016.9.16.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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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들의 노래 비룡소의 그림동화 35
다이안 셀든 글, 개리 블라이드 그림, 고진하 옮김 / 비룡소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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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78



노래하는 풀벌레일까, 울거나 시끄러운 풀벌레일까

― 고래들의 노래

 D.셀든 글

 G.블라이드 그림

 고진하 옮김

 비룡소 펴냄, 1996.9.10.



  새하고 풀벌레하고 매미하고 고래하고 개구리가 노래합니다. 우리는 이들이 들려주는 소릿결이나 소릿가락을 ‘노래’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이 내는 소릿결이나 소릿가락을 ‘울음’으로 느낄 수 있어요. 우리하고 다른 말을 쓰는 다른 나라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가 ‘이 사람이 마치 노래를 하는 듯하네’ 하고 생각할 수 있어요. 우리가 모르는 다른 말을 쓰니까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말결이나 말소리가 노래로구나 하고 느낄 만하지요.


  그런데 누구는 노래로 느끼더라도 누구는 그냥 소리로 느끼고, 또 누구는 시끄러운 소리로 여기며, 또 누구는 울음이나 지저귐으로 여길 수 있어요.



어느 날 할머니는 릴리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아주 오랜 옛날이었단다. 바다에는 고래들이 가득했지. 고래들은 작은 산들만큼 크고, 밤하늘에 떠오른 둥근 달처럼 평화로워 보였단다. 고래들은 네가 마음에 그려 볼 수 있는 동물들 중에 가장 멋지고 놀라운 동물일 거야.” (3쪽)



  D.셀든 님이 글을 쓰고, G.블라이드 님이 그림을 그린 《고래들의 노래》(비룡소,1996)라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노래를 헤아려 봅니다. 이 그림책은 우리 곁님이 이녁 동생을 돌보던 지난날 보던 그림책입니다. 곁님하고 곁님 막냇동생은 나이가 꽤 벌어집니다. 곁님이 고등학생 적에 곁님 막냇동생이 태어났어요. 곁님이 막냇동생을 생각하면서 예전에 읽던 그림책 《고래들의 노래》를 요즈음 새삼스레 꺼내어 읽어 봅니다. 아주 오랜 옛날 옛적부터 이 땅에 흐르던 고래 노래를 떠올리고, 시골이나 도시 어디에서나 흔히 들을 만한 참새 노래나 비둘기 노래를 떠올립니다. 도시에서는 손쉽게 듣는 자동차 노래나 손전화 노래를 떠올립니다. 시골집에서 하루 내내 듣는 멧새 노래하고 풀벌레 노래를 떠올립니다.


  이제 가을이 무르익으니 개구리는 곧 겨울잠을 자려 해요. 잠자리는 짝짓기를 해서 알을 낳느라 부산해요. 여름 내내 온 하늘을 가로지른 제비도 따뜻한 나라로 돌아가려고 떼를 지어서 들판을 누빕니다. 사마귀도 짝짓기를 해서 알을 낳느라 바쁜데, 암사마귀한테 몸을 내어준 숫사마귀를 곳곳에서 만납니다. 이 모든 ‘사람 이웃’은 사람한테 어떤 노래를 들려주는가 하고 곰곰이 돌아봅니다.



“할머니, 고래들은 할머니가 거기에 계신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하고 릴리가 궁금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어요. “어떻게 고래들이 할머니를 찾아냈는지 말씀해 주세요, 네?”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6쪽)



  그림책 《고래들의 노래》에는 세 사람이 나옵니다. 먼저 아이가 나오고, 할머니가 나오며, 할아버지가 나와요. 아이 어머니나 아버지는 이 그림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아이 어머니나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그저 세 사람이 어우러지는 그림책입니다.


  아이 어머니나 아버지는 다른 일로 바쁘기 때문에 아이하고 못 있겠지요.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른 일로 바쁘지 않기 때문에 아이하고 있겠지요. 아이는 제 어머니나 아버지한테서 새로운 삶이나 살림을 배우지 못하지만, 할머니하고 할아버지 곁에서 두 어른이 보여주거나 들려주는 이야기하고 몸짓을 받아들이면서 삶이나 살림을 새롭게 배웁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할머니가 알려주는 ‘고래 노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부풀어요. 이때에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핀잔을 해요. 할아버지한테는 ‘고래 노래’란 어림도 없고 꿈 같지도 않은가 봐요.



릴리는 주머니에서 노란 꽃을 꺼내 바다에 던졌어요. “자, 이 꽃은 너희들 선물이야.” (16쪽)



  아이는 두 어른이 저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를 모두 듣습니다. 이러고 나서 스스로 곰곰이 생각합니다. 아이는 할아버지 이야기보다는 할머니 이야기 쪽으로 마음이 움직입니다. 아이는 할머니가 알려준 이야기대로 바닷가로 가서 ‘저 스스로 멋지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선물을 고래한테 주기’로 합니다. 아이는 고운 꽃 한 송이를 꺾어서 바다에 던져요. 이 꽃 한 송이를 드넓은 바다에서 고래들이 받아서 기쁨을 누리면서 노래를 불러 주기를 바라지요.


  아이 꿈대로 고래들이 꽃을 선물로 받을까요? 고래들은 아이가 내민 꽃을 즐겁게 받아서 기쁘게 부르는 노래로 아이하고 만날까요? 아이가 고래한테 꽃을 선물하려는 몸짓은 그저 터무니없거나 바보스러운 일일까요? 아이는 고래 노래나 고래 이야기 따위는 듣지 말고 얌전히 학교 공부만 잘 하면 될까요?



몇 분이, 아니 몇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릴리는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잠옷을 살랑살랑 흔들고, 차가운 공기가 발가락에 와닿는 것을 느꼈어요. 릴리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부볐어요. 조금 뒤, 바다는 다시 잔잔해지고, 밤은 어둠과 고요에 물들었어요. 릴리는 분명히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24쪽)



  고래는 노래를 할 수 있습니다. 고래는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고래는 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기 나름이에요. 고래는 목이나 몸이나 지느러미나 무엇이든 써서 ‘노래·소리·울음’ 가운데 하나를 내놓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마음과 눈길로 고래를 바라보기 때문에 고래가 내놓는 것을 노래로 듣거나 소리로 흘리거나 울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개구리나 참새나 풀벌레도 그렇지요. 개구리는 노래할 수 있으나 소리를 내거나 울 수 있어요. 참새는 노래할 수 있으나 소리를 내거나 울 수 있어요. 또 새를 놓고는 ‘지저귀다’라는 말도 써요. 풀벌레는 이 가을에 노래를 할까요, 아니면 울까요? 사람들은 저마다 노래를 할까요, 말을 할까요, 소리를 낼까요, 울까요, 이야기를 나눌까요?


  내 말은, 또 우리 말은, 얼마든지 노래이거나 소리이거나 울음이 될 수 있습니다. 네 말은, 또 너희 말은, 언제든지 노래이거나 소리이거나 울음이 될 수 있어요. 너와 나는 서로 어떻게 마주할 적에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어버이(어른)하고 아이는 서로 어떻게 한집살이나 마을살이를 이룰 적에 사랑스러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림책 《고래들의 노래》에는 고래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삶을 기쁨으로 꿈꾸는 할머니와 아이가 나옵니다. 우리는 삶을 기쁨으로 꿈꿀 수 있고, 울음으로 여길 수 있으며, 그냥저냥 스쳐 지나가는 시끄럽거나 흔한 소리로 여길 수 있습니다. 2016.9.13.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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