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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음악가 폭스트롯 ㅣ 별둘 그림책 1
헬메 하이네 글 그림, 문성원 옮김 / 달리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81
아이가 어버이와 다른 길을 가도 걱정하지 말아요
― 어린 음악가 폭스트롯
헬메 하이네 글·그림
문성원 옮김
달리 펴냄, 2003.11.10. 8500원
헬메 하이네 님이 빚은 그림책 《어린 음악가 폭스트롯》(달리,2003)에는 여우네 집안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익히 알 듯이 여우는 다른 작은 짐승을 사냥합니다. 다른 짐승을 잡아서 먹어요. ‘폭스트롯’이라는 새끼 여우도 ‘여느 여우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그런데 폭스트롯을 낳은 어미 여우는 매우 조용하다고 해요. 집(땅속에 판 굴)에서 두 어미 여우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눈빛으로 서로 마음을 읽는다지요.
여러모로 생각한다면 여우로서는 ‘말수가 적’거나 ‘말이 없’어야 좋을 수 있어요. 수다쟁이 여우라면 사냥을 하다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어 먹이를 놓칠 테니까요.
엄마 여우랑 아빠 여우는 다른 여우들처럼 말수가 적었어요. 말을 주고받지 않고도 서로 마음이 통했거든요. 마주보고 웃거나, 이빨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답니다. 어느 날 폭스트롯은 유모차에서 기어나왔어요. 그리고 살짝 문 밖을 내다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바깥세상은 정말 시끌벅적했거든요. (4∼6쪽)
어린 여우 폭스트롯은 어릴 적부터 무척 조용한 집안에서 자랐기에 처음에는 말수가 없고 조용했다고 해요.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어버이가 집살림을 어떻게 꾸리느냐에 따라 아이 모습이 달라질 테니까요.
이러던 어느 날 폭스트롯은 혼자서 집밖, 그러니까 굴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보았대요. 이제 폭스트롯도 제법 자라서 혼자 바깥구경을 할 만하기에 조용히 바깥을 살펴보았을 테지요. 이때 폭스트롯은 무척 놀랐다고 합니다. 어쩜 온누리에 이렇게 수많은 소리가 있는가 하고 놀랐대요.
어린 여우 폭스트롯은 어미 여우처럼 ‘먹이를 좇거나 찾거나 잡는’ 데에는 마음을 쓰지 않았대요. 어린 여우 폭스트롯은 ‘소리를 좇거나 찾거나 잡는’ 데에 마음을 썼대요. 이리하여 어미 여우가 사냥을 할 적에도 폭스트롯은 그만 온갖 시끄러운 소리를 냈고, 폭스트롯네 집안은 밥(먹이)이 떨어져서 쫄쫄 굶었다는군요.
지지배배, 짹짹, 까깍, 쫑쫑. 갖가지 소리에 폭스트롯은 푹 빠져들었답니다. 집에 돌아온 폭스트롯은 밖에서 들었던 소리를 흉내내어 보았어요. 갖가지 소리를 한꺼번에 내면서요. (10∼11쪽)
그림책을 읽다가 이쯤에서 곰곰이 돌아봅니다. 그림책은 여우네 집안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사람네 집안에서도 비슷합니다. 조용한 집안이 있고 시끌벅적한 집안이 있어요. 아이는 어버이 살림을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 있고, 아이는 어버이하고는 동떨어진 새롭거나 다른 살림을 스스로 찾아나설 수 있어요. 어버이는 아이가 어버이하고 다른 길을 걷는다고 할 적에 즐겁게 북돋울 수 있지만, 어버이하고 다른 길을 걷기에 싫거나 밉거나 성날 수 있어요.
그때 폭스트롯의 입에 묶인 줄이 풀어지고 폭스트롯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꾀꼬리처럼 곱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이에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산지기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감동하여 폭스트롯네 식구를 살려 주었어요. (20∼23쪽)
그림책 《어린 음악가 폭스트롯》은 두 가지를 짚으려 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첫째는 삶을 짚습니다. 집집마다 다른 삶을 짚지요. 그리고 집집마다 다르되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삶을 짚어요.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삶을 짚으면서, 아이가 어버이하고는 다르게 스스로 찾으려 하는 삶을 짚어요.
그리고 이 그림책은 꿈을 짚습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낳으면서 살림을 가꿀 적에 품는 꿈을 짚지요. 어버이는 아이를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즐겁게’ 보살피고 싶습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어버이로서 이제껏 얻거나 익히거나 건사한 모든 살림과 앎’을 물려주고 싶을 만해요. 이와 달리 아이는 ‘꼭 어버이한테서만 살림과 앎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여길 만하지요. 아이는 혼자서 제 꿈을 찾을 수 있어요. 아이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어요. 아이 꿈은 어버이 꿈하고 다를 수 있어요.
어른이 된 폭스트롯은 슬기로운 여우 청년과 결혼하여 아이들을 많이 낳았어요. 아이들은 하나같이 음악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어요. 단지 막내아들이 걱정될 뿐이었지요. (30∼31쪽)
직업이 아닌 꿈을 생각해 봅니다. 돈을 잘 벌거나 흔히 ‘안정된 직업’이라고 하는 일자리 말고, 아이가 스스로 가장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고 즐겁게 이을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헤아려 봅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고 할 적에 아이가 무엇을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이 될까요? 아이가 시험성적을 잘 거두기만을 바라는 마음일까요? 아이가 시험성적을 잘 거두지 못해도 아이 나름대로 즐겁게 꿈을 키우기를 바라는 마음일까요? 아이가 받는 시험성적은 바라보지 않고 아이가 짓는 꿈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그림책 《어린 음악가 폭스트롯》에 나오는 어미 여우는 폭스트롯한테 ‘여느 사냥꾼 여우’다운 살림을 물려주지 못합니다. 폭스트롯은 스스로 새로운 길을 걸으면서 새로운 살림을 지어요. 그리고 이러한 삶결이 고스란히 흘러서 폭스트롯이 어느새 어른 여우가 된 뒤에 낳은 ‘폭스트롯네 아이’도 폭스트롯하고 다른 길을 걷는다지요.
참말로 아이들 앞날은 아직 몰라요. 참말로 아이들 앞날은 어른이나 어버이가 섣불리 붙들어 맬 수 없어요. 참말로 아이들은 즐겁게 꿈을 꾸면서 아름답게 꿈을 빚고 사랑스레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라요. 2016.9.16.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