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들의 노래 비룡소의 그림동화 35
다이안 셀든 글, 개리 블라이드 그림, 고진하 옮김 / 비룡소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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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풀벌레일까, 울거나 시끄러운 풀벌레일까

― 고래들의 노래

 D.셀든 글

 G.블라이드 그림

 고진하 옮김

 비룡소 펴냄, 1996.9.10.



  새하고 풀벌레하고 매미하고 고래하고 개구리가 노래합니다. 우리는 이들이 들려주는 소릿결이나 소릿가락을 ‘노래’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이 내는 소릿결이나 소릿가락을 ‘울음’으로 느낄 수 있어요. 우리하고 다른 말을 쓰는 다른 나라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가 ‘이 사람이 마치 노래를 하는 듯하네’ 하고 생각할 수 있어요. 우리가 모르는 다른 말을 쓰니까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말결이나 말소리가 노래로구나 하고 느낄 만하지요.


  그런데 누구는 노래로 느끼더라도 누구는 그냥 소리로 느끼고, 또 누구는 시끄러운 소리로 여기며, 또 누구는 울음이나 지저귐으로 여길 수 있어요.



어느 날 할머니는 릴리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아주 오랜 옛날이었단다. 바다에는 고래들이 가득했지. 고래들은 작은 산들만큼 크고, 밤하늘에 떠오른 둥근 달처럼 평화로워 보였단다. 고래들은 네가 마음에 그려 볼 수 있는 동물들 중에 가장 멋지고 놀라운 동물일 거야.” (3쪽)



  D.셀든 님이 글을 쓰고, G.블라이드 님이 그림을 그린 《고래들의 노래》(비룡소,1996)라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노래를 헤아려 봅니다. 이 그림책은 우리 곁님이 이녁 동생을 돌보던 지난날 보던 그림책입니다. 곁님하고 곁님 막냇동생은 나이가 꽤 벌어집니다. 곁님이 고등학생 적에 곁님 막냇동생이 태어났어요. 곁님이 막냇동생을 생각하면서 예전에 읽던 그림책 《고래들의 노래》를 요즈음 새삼스레 꺼내어 읽어 봅니다. 아주 오랜 옛날 옛적부터 이 땅에 흐르던 고래 노래를 떠올리고, 시골이나 도시 어디에서나 흔히 들을 만한 참새 노래나 비둘기 노래를 떠올립니다. 도시에서는 손쉽게 듣는 자동차 노래나 손전화 노래를 떠올립니다. 시골집에서 하루 내내 듣는 멧새 노래하고 풀벌레 노래를 떠올립니다.


  이제 가을이 무르익으니 개구리는 곧 겨울잠을 자려 해요. 잠자리는 짝짓기를 해서 알을 낳느라 부산해요. 여름 내내 온 하늘을 가로지른 제비도 따뜻한 나라로 돌아가려고 떼를 지어서 들판을 누빕니다. 사마귀도 짝짓기를 해서 알을 낳느라 바쁜데, 암사마귀한테 몸을 내어준 숫사마귀를 곳곳에서 만납니다. 이 모든 ‘사람 이웃’은 사람한테 어떤 노래를 들려주는가 하고 곰곰이 돌아봅니다.



“할머니, 고래들은 할머니가 거기에 계신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하고 릴리가 궁금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어요. “어떻게 고래들이 할머니를 찾아냈는지 말씀해 주세요, 네?”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6쪽)



  그림책 《고래들의 노래》에는 세 사람이 나옵니다. 먼저 아이가 나오고, 할머니가 나오며, 할아버지가 나와요. 아이 어머니나 아버지는 이 그림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아이 어머니나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그저 세 사람이 어우러지는 그림책입니다.


  아이 어머니나 아버지는 다른 일로 바쁘기 때문에 아이하고 못 있겠지요.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른 일로 바쁘지 않기 때문에 아이하고 있겠지요. 아이는 제 어머니나 아버지한테서 새로운 삶이나 살림을 배우지 못하지만, 할머니하고 할아버지 곁에서 두 어른이 보여주거나 들려주는 이야기하고 몸짓을 받아들이면서 삶이나 살림을 새롭게 배웁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할머니가 알려주는 ‘고래 노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부풀어요. 이때에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핀잔을 해요. 할아버지한테는 ‘고래 노래’란 어림도 없고 꿈 같지도 않은가 봐요.



릴리는 주머니에서 노란 꽃을 꺼내 바다에 던졌어요. “자, 이 꽃은 너희들 선물이야.” (16쪽)



  아이는 두 어른이 저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를 모두 듣습니다. 이러고 나서 스스로 곰곰이 생각합니다. 아이는 할아버지 이야기보다는 할머니 이야기 쪽으로 마음이 움직입니다. 아이는 할머니가 알려준 이야기대로 바닷가로 가서 ‘저 스스로 멋지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선물을 고래한테 주기’로 합니다. 아이는 고운 꽃 한 송이를 꺾어서 바다에 던져요. 이 꽃 한 송이를 드넓은 바다에서 고래들이 받아서 기쁨을 누리면서 노래를 불러 주기를 바라지요.


  아이 꿈대로 고래들이 꽃을 선물로 받을까요? 고래들은 아이가 내민 꽃을 즐겁게 받아서 기쁘게 부르는 노래로 아이하고 만날까요? 아이가 고래한테 꽃을 선물하려는 몸짓은 그저 터무니없거나 바보스러운 일일까요? 아이는 고래 노래나 고래 이야기 따위는 듣지 말고 얌전히 학교 공부만 잘 하면 될까요?



몇 분이, 아니 몇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릴리는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잠옷을 살랑살랑 흔들고, 차가운 공기가 발가락에 와닿는 것을 느꼈어요. 릴리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부볐어요. 조금 뒤, 바다는 다시 잔잔해지고, 밤은 어둠과 고요에 물들었어요. 릴리는 분명히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24쪽)



  고래는 노래를 할 수 있습니다. 고래는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고래는 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기 나름이에요. 고래는 목이나 몸이나 지느러미나 무엇이든 써서 ‘노래·소리·울음’ 가운데 하나를 내놓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마음과 눈길로 고래를 바라보기 때문에 고래가 내놓는 것을 노래로 듣거나 소리로 흘리거나 울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개구리나 참새나 풀벌레도 그렇지요. 개구리는 노래할 수 있으나 소리를 내거나 울 수 있어요. 참새는 노래할 수 있으나 소리를 내거나 울 수 있어요. 또 새를 놓고는 ‘지저귀다’라는 말도 써요. 풀벌레는 이 가을에 노래를 할까요, 아니면 울까요? 사람들은 저마다 노래를 할까요, 말을 할까요, 소리를 낼까요, 울까요, 이야기를 나눌까요?


  내 말은, 또 우리 말은, 얼마든지 노래이거나 소리이거나 울음이 될 수 있습니다. 네 말은, 또 너희 말은, 언제든지 노래이거나 소리이거나 울음이 될 수 있어요. 너와 나는 서로 어떻게 마주할 적에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어버이(어른)하고 아이는 서로 어떻게 한집살이나 마을살이를 이룰 적에 사랑스러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림책 《고래들의 노래》에는 고래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삶을 기쁨으로 꿈꾸는 할머니와 아이가 나옵니다. 우리는 삶을 기쁨으로 꿈꿀 수 있고, 울음으로 여길 수 있으며, 그냥저냥 스쳐 지나가는 시끄럽거나 흔한 소리로 여길 수 있습니다. 2016.9.13.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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