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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넘기 요정 ㅣ 문지아이들
엘리너 파전 지음, 샬럿 보크 그림, 김서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평점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85
줄넘기로 마을을 살리고 지킨 할머니 이야기
― 줄넘기 요정
엘리너 파전 글
샬럿 보크 그림
김서정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10.10.19. 1만 원
시끌시끌하거나 번쩍번쩍거리는 곳에도 요정이 살까요? 고요하면서 아늑한 숲쯤 되어야 요정이 살 수 있을까요? 어쩌면 책이나 옛이야기에서만 만날 만한 요정일 수 있지만, 오늘날 사회는 곳곳이 시끌시끌하거나 번쩍번쩍거리는 모습으로 바뀌기 때문에 요정도 우리 곁을 떠난다고 할 수 있지 싶습니다. 우리 삶자리를 고요하면서 아늑히 가꿀 수 있으면, 우리 삶터를 언제나 차분하면서 푸른 숲으로 돌볼 수 있다면, 사람하고 요정은 서로 사이좋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우러질 만하지 싶어요.
엘시는 세 살이 되자 엄마에게 줄넘기를 달라고 했습니다. “넌 너무 어려.” 엄마가 말했습니다. “조금 더 클 때까지 기다리렴. 그러면 하나 생길 거야.” 엘시는 입을 삐죽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밤중이 되자 엘시의 엄마 아빠는 뭔가가 마루에서 차락 차락! 울리는 소리에 잠을 깨야 했습니다. 엘시가 잠옷 바람으로 아빠의 가죽띠를 가지고 줄넘기를 하는 소리였지요. (4∼5쪽)
엘리너 파전(1881∼1965) 님이 쓴 글에 샬럿 보크 님이 그림을 그린 《줄넘기 요정》(문학과지성사,2010)이라는 이야기책을 읽습니다. 《줄넘기 요정》이라는 이야기책에는 ‘캐번 산’이라는 곳에서 사는 요정들이 나오고, 캐번 산 둘레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줄넘기를 몹시 하고 싶은 ‘엘시 피더크’라는 아이가 나와요.
캐번 산 꼭대기에서 ‘줄넘기 요정’은 보름달이 뜰 적마다 나타나서 다 같이 줄넘기를 한대요. 이 산 곁에서 사는 엘시 피더크라는 아이는 아주 어릴 적부터 둘레에서 언니 오빠가 줄넘기를 하며 노는 모습을 본 터라 세 살 적부터 줄넘기를 하고 싶었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버지는 아이가 너무 어려서 줄넘기를 하기에는 이르다며 더 큰 다음에 줄넘기를 하라 했지요. 아이는 몹시 서운했지만 깊은 밤에 혼자 조용히 마루로 나와서 아버지 바지에 꿰는 가죽띠로 혼자서 줄넘기를 했대요.
“엘시 피더크! 엘시 피더크! 캐번 산에서 줄넘기 대회가 있대. 요정 플리 풋이, 자기가 너보다 더 잘한다고 큰소리치더라.” 엘시는 깊이 잠들어 있었지만, 꿈속에서 그 말을 듣고는 눈을 감은 채 침대에서 팔짝 뛰어내려, 줄넘기를 들고는 힐스 오 리드를 따라 캐번 산 꼭대기로 갔습니다. 그곳에서는 앤디 스팬디가 다른 요정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어요. (10쪽)
《줄넘기 요정》을 이루는 줄거리를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세 살부터 스스로 줄넘기를 익힌 엘시 피더크는 아직 꼬마이던 무렵부터 온 마을에서 줄넘기를 가장 잘 하는 아이가 되었답니다. 이런 얘기는 요정마을로도 퍼져서 어느 날, 그러니까 보름달이 뜬 날 요정들이 엘시 피더크한테 찾아왔대요. 엘시 피더크는 잠든 몸으로 줄넘기를 챙겨서 캐번 산에 요정하고 함께 갔고, 그곳에서 요정들이 시키는 온갖 어렵고도 재미난 줄넘기를 모두 한 번에 해냈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캐번 산 줄넘기 요정들은 이 아이가 ‘요정보다 줄넘기를 훨씬 잘 하는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요정들이 먼먼 옛날부터 익히는 줄넘기 솜씨를 하나씩 배울 수 있도록 돕습니다. 마을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보름달이 뜬 밤마다 꿈을 꾸듯이 잠결에 캐번 산에 줄넘기를 들고 올라서 줄넘기를 익혔대요.
이러고서 긴 나날이 흘렀고, 어린 엘시 피더크는 어른이 되어요. 어른이 되면서 ‘요정한테서 배운 줄넘기 솜씨’는 조용히 상자에 담았대요. 엘시 피더크는 할머니가 되도록 더는 줄넘기를 하지 않으며 지냈는데, 어느 날 캐번 산을 둘러싼 마을에 영주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커다란 공장을 짓겠다고 했답니다. 마을사람한테 캐번 산을 뺏을 셈속이지요.
“아직 아닌데요.” 부드럽게 바삭거리는 목소리가 말했습니다. “이제 내 차례예요.” 사람들 사이를 뚫고 아주아주 작은 할머니가 나섰어요. 너무너무 늙어서 금세 부서질 것처럼 보였지요. 할머니는 작은 아이보다 더 작아 보였습니다. “당신!” 영주가 외쳤습니다. “당신 누구요?” “내 이름은 엘시 피더크랍니다. 백아홉 살 먹었지요. 지난 칠십구 년 동안 다른 고장에서 살았지만, 글라인드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캐번 산에서 줄넘기를 했어요.” 할머니는 눈을 감은 채 마치 꿈을 꾸는 사람처럼 말했어요. (32쪽)
마을사람은 영주한테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괭이나 쇠스랑을 들고 일어나면서 공장 짓기를 막을 수 있을까요? 이제껏 조용하고 아늑하며 살갑게 살던 마을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판인데, 마을사람은 어떻게 손을 써야 할까요?
이때 줄넘기 요정이 ‘마을에서 줄넘기를 가장 잘 한다는 아이’한테 넌지시 속삭였대요. ‘마을사람 모두 캐번 산에서 줄넘기를 하는데, 마을사람이 줄에 걸려서 더는 줄넘기를 못하고 말면, 그때에는 영주가 캐번 산에 공장을 짓는 첫 벽돌을 올리며 공사를 해도 좋다’고 하는 협상을 맺어서 문서로까지 남기라고 말이지요.
줄넘기가 마을을 살릴 수 있을까요? 줄넘기로 고약한 영주를 쫓아낼 수 있을까요? 어느 모로 보면 고작 줄넘기 한 가지인데, 이 줄넘기로 마을사람은 웃음을 되찾으면서 앞으로도 사랑스러운 마을살림을 가꾸며 아이들이 이 삶터에서 아름답게 살도록 이끌 수 있을까요?
해가 질 무렵, 엘시는 여전히 줄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 늙은 것을 이 산에서 절대로 쫓아낼 수 없는 거야?” 영주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악을 썼습니다. “없지요.” 엘시가 여전히 잠에 빠진 채 대답했어요. “나를 이 산에서 쫓아낼 수는 없어요. 나는 글라인드의 아이들을 위해서 줄넘기를 하는 거예요. 이 산을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영원히 물려주기 위해서요. 나는 또 앤디 스팬디를 위해서 줄넘기를 하고 있어요. 평생 달콤한 사탕을 맛볼 수 있게 해 줬으니까요. 오, 앤디, 당신도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줄넘기를 할 수 있는지는 모를 거예요.” (36∼37쪽)
엘리너 파전 님은 《줄넘기 요정》 이야기를 아름다우면서 부드럽고 곰살궂게 썼다고 느낍니다. 작은 마을과 작은 사람들과 작은 요정들 모두를 아끼는 따사롭고 너그러운 손길로 이야기를 지었구나 하고 느껴요. 이러한 이야기에 샬럿 보크 님이 살가우며 앙증맞은 그림으로 새로운 맛을 입혔고요.
백아홉 살에 이른 ‘옛날 옛적 줄넘기 꼬마’ 엘시 피더크는 캐번 산에서 마지막 줄넘기를 했다는데, 늙고 구부정한 할머니는 어느 누구보다 아름답고 멋지며 훌륭히 줄넘기를 보여주었다고 해요. 영주를 쫓아낸 뒤에도 줄넘기를 멈추지 않았대요. 아마 ‘줄넘기 할머니’로 거듭난 이녁은 어느새 ‘새로운 줄넘기 요정’으로 거듭난 몸이 되었구나 싶어요. 살아서는 줄넘기 아이요, 죽어서는 줄넘기 요정이라 할까요.
어쩌면 우리가 사는 모든 마을에 요정이 우리를 넌지시 지켜볼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마을살림을 잘 꾸리는지, 아니면 우리가 마을을 제대로 못 지키거나 못 살리는지를 지켜볼는지 몰라요. 우리가 아름다운 숨결로 살림을 지으면 조용히 나타나서 방긋방긋 웃을 테지요. 우리가 바보스러운 몸짓으로 살림을 허물면 어느새 우리 마을을 떠날 테고요.
《줄넘기 요정》이라는 책은 지난 2016년 2월 28일에 국회에서 한 번 읽힌 적이 있어요. 테러방지법을 밀어붙이는 집권당 정책을 나무라려고 하던 권은희 의원이라는 분이 이 책을 읽었다지요. 평화를 사랑하고 아름다운 마을을 노래하는 이야기인 《줄넘기 요정》이에요. 아이들한테는 전쟁무기가 넘치는 나라가 아닌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마을과 보금자리를 물려줄 수 있어야 즐겁고,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을 만한 나라살림과 마을살림을 가꿀 때에 기쁘리라 생각해요. 2016.9.18.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