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도시에서는 아파트 한 평에 천만 원이나 이천만 원쯤 하고, 어느 곳은 삼천만 원까지도 하리라. 시골에서는 땅 한 평에 십만 원이나 오만 원쯤 하고, 어느 곳은 삼만 원도 하리라. 아파트 한 평 천만 원과 시골 땅 한 평 십만 원만 대더라도 100:1이 된다. 도시에서 10평짜리 아파트를 사거나 30평짜리 아파트를 사려 한다면, 이 돈으로 시골에서 2000평 땅을 사서 손수 집을 지으면, 먹을거리를 모두 손수 길러 먹을 수 있으며, 남는 먹을거리는 내다 팔아 벌이를 삼을 수 있다.


  다만, 시골은 도시와 달리 달삯을 은행계좌에 꾸준히 넣어 주는 일자리가 없다 여길 만한데, 이제 돈으로 밥을 사다 먹는 얼거리가 아닌, 스스로 땅에서 밥을 얻는 얼거리로 삶을 바꿀 줄 아는 사람이 하나둘 나타나야 하리라 느낀다. 언제까지 밥을 사다 먹으면서 스스로 몸을 망가뜨려야 할까.


  내 집을 갖고 싶다면, 아파트를 사지 말고 시골에 땅을 마련해서 손수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건설업자한테 휘둘리지 말고, 건설업자가 쏟아내는 쓰레기에 숲을 망가뜨리지 말며, 건설업자 돈벌이 그만 시키면서, 나무와 흙과 짚과 돌로 아름답고 정갈한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도시에서 ‘정치나 경제나 노동이나 사회나 문화나 문학을 갈아엎으려는 다부진 몸짓’을 선보일 수 있고, 이러한 몸짓도 무척 어여쁘다고 느끼는데, 도시에서 몸부림을 친대서 도시가 달라질 일이 있을까 궁금하다. 도시를 떠나야 도시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숲속에 손수 집을 짓고 예쁘게 살아가는 이웃을 만나뵈니, 눈이 트이고 마음이 열리며 즐겁다. 434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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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구니

 


  식구들 먹을거리 장만하려고 읍내에 나가는 길에 장바구니 여럿 챙긴다. 등에 메는 가방에는 가장 무거운 것을 넣고, 가방이 꽉 찬 뒤에는 장바구니를 하나씩 꺼내어 담는다. 그런데 큰아이 손을 잡고 길을 거닐며, 또 다리 아프다는 큰아이를 품에 안고 길을 걷자니, 장바구니 여럿 들고 지고 하자니 퍽 힘들다. 가만히 보면, 저잣거리로 나들이 다니는 살림꾼은 장바구니 여럿 챙긴다 하더라도 너무 힘들겠구나 싶다. 차라리 가방을 하나 더 챙길 때가 나으리라 본다.


  군내버스에 탄다. 장바구니 여럿이니 발밑에 두면서 이 녀석들 건사하느라 애먹는다. 참말 장바구니로 물건 챙겨서 다니기란 수월하지 않다. 할머니들은 가게에서 내주는 비닐봉지를 여럿 손에 쥐고, 보자기로 짐을 묶어 들기도 하는데, 손아귀가 참 아프시겠지. 서른 해 쉰 해 예순 해, 오직 손아귀힘으로 짐을 들어 나르는 나날이었으리라. 하루하루 알이 배기고 굳은살 박혀 딱딱해지는 손바닥은 나무를 닮는다. 군내버스에 탄 할머니 한 분, 오늘 마침 읍내 장날이라 사람 북적북적대니, “오늘은 옴시롱 감시롱 차가 되다.” 하고 한 마디. 4346.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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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순이

 


  아침똥과 낮똥을 지나간 작은아이가 저녁똥을 푸지게 눈다. 워낙 푸지게 누면서 웃도리까지 똥이 묻는다. 밑을 씻기는 김에 작은아이 머리를 감기고 몸도 씻긴다.  그러고 나서 큰아이를 불러 너도 옷 다 갈아입고 씻자고 이야기한다. 큰아이는 그림 그리려 하는데 왜 씻자고 하느냐 말하다가 옷을 한 꺼풀씩 벗는다. 알몸으로 씻는방까지 달린다. 큰아이 머리부터 감기고 몸을 씻긴다. 그러고서 몸 물기부터 훔치고 머리를 말린다. 춥다고 하니 다시 방으로 달린다. 속옷을 입히고 웃도리를 입힌다. 바지를 입힌다. 큰아이는 옷을 다 입더니 치마를 찾는다. 이제, 아버지가 아이들 옷가지 빨래를 하려고 갈 때, 큰아이가 문득 “(다 마른) 빨래 내려서 갤게.” 하고 말한다. 응? 어인 일이지? “그래, 고마워. 잘 개 주셔요.”


  빨래를 다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다. 큰아이는 한복으로 갈아입고 옷을 갠다. 옳거니. 이 녀석, 아침에 해서 다 마른 빨래 가운데 한복 치마 낀 모습을 보았구나. 그러니, 빨래를 개겠다고 했지.


  큰아이는 자그마한 손으로 빨래를 곱게 갠다. 작은아이는 아직 빨래를 개지 못한다. 큰아이는 돌을 지날 무렵부터 빨래를 갠다며 시늉을 하고 빨래놀이를 했으나, 작은아이는 두 돌까지 석 달 남은 오늘까지, 빨래를 개려고 하지 않는다. 빨래를 들고 훌훌 흔들기는 하지만, 누나처럼 얌전히 앉아 곱게 개지는 않는다. 아마, 두 돌 무렵이 되거나 두 돌을 지나면, 누나 곁에 나란히 앉아 빨래를 곱게 갤 테지. 그때에는, 우리 집 큰아이는 심부름순이, 작은아이는 심부름돌이가 되어 함께 살림을 꾸리리라. 4346.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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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아이들

 


  하룻밤 바깥마실 다녀온 아버지가 시골집에 저녁 아홉 시 무렵 돌아온다. 바깥 볼일 보는 사이 집에 전화를 하면, 여섯 살 큰아이가 집전화 받으면서 “아버지 집에 없어서 울었어요.” 하고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잘 지내려나. 하룻밤 사이에 돌아오자니 몹시 벅차지만, 몸이 고단하면 시골집에서 여러 날 쉬면 다 풀리리라 생각한다. 바쁜 걸음으로 시골집 마당으로 들어서며 아이들을 부른다. 두 아이 모두 저녁 아홉 시가 넘고 열 시가 되도록 좀처럼 잠자리에 들려 하지 않는다. 두 눈은 틀림없이 졸린 눈이다. 아니, 졸음이 넘치고 넘쳐 어찌할 바 모르는 눈이다. 여느 날은 작은아이부터 안아서 재우나, 오늘은 큰아이부터 안아서 재운다. 아버지 품에 안긴 큰아이는 말도 투정도 떼도 없이 몸을 맡기고 고개를 파묻는다. 잠자리에 반듯하게 눕히자마자 곯아떨어진다. 하룻밤이라지만, 그끄제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가 그제 늦은 저녁 돌아왔으니, 너희한테는 거의 이틀 동안 아버지 얼굴 못 본 셈일 테지. 기다려 주어 고맙다. 아버지도 너희를 생각하며 한결 씩씩하고 즐겁게 살아갈 다짐을 한다. 4346.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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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똥

 


  자는 아이가 끄응끄응 소리를 내기에 왜 그런가 하고 들여다본다. 이불을 걷어차는가 싶어 이불을 여미려 하는데 이불 한쪽이 촉촉하다. 쉬를 누었나. 바지 앞쪽을 만진다. 안 젖었다. 뭘까. 문득 옆지기가 말한다. “냄새 나지 않아요?” 응? 이불 젖은 자리를 손으로 비빈 다음 코에 댄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옆방 불을 켠다. 아이 몸을 돌려 엉덩이를 본다. 엉덩이 쪽이 흥건하게 젖었다. 아, 자면서 응가를 누었구나. 왼팔로 작은아이를 안고 씻는방으로 간다. 바지를 벗기고 물을 틀어 똥꼬와 다리와 발바닥을 씻긴다. 똥 묻은 아랫도리를 씻기니 작은아이가 으앙 하고 운다. 그러나 작은아이를 왼팔로 품에 안아 다독이니 울음을 그친다. 이내 새근새근 잠든다. 천으로 물기를 닦는다. 한팔로 안은 채 바지를 새로 입힌다. 조금 더 품에 안아 다독이고 나서 천천히 자리에 눕힌다. 깊이 잠들었는지 깨지 않는다. 속이 더부룩해서 자다가 똥을 누었나 보다. 시원하게 다 누었을까. 개운한 얼굴로 잘 자는 아이를 바라본다. 똥바지 빨래는 아침에 하기로 한다. 4346.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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