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잠자리

 


  아이 어머니가 아흐레째 집에 없다. 그러나 앞으로 열하루 더 아이 어머니는 집에 돌아올 수 없다. 아이 어머니는 스무 날 집을 비우면서 아픈 마음과 몸을 달래는 길에 나섰다. 아이들이 차츰차츰 어머니를 그린다. 문득 생각한다. 아버지가 여러 날 집을 비울 때에 우리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너무 마땅하지만, 아버지가 집을 비울 적에도 아이들은 아버지 집에 없다면서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집에 없든 아버지가 집에 없든 똑같은 셈이다. 아이들은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집에 함께 있으면서 밥을 같이 먹고 잠을 같이 자며 놀이도 같이 하기를 바란다.


  작은아이는 졸음이 쏟아져 곯아떨어진다. 작은아이도 틀림없이 어머니가 많이 그리우리라. 그래도 아버지 품에서 달게 잠든다. 큰아이는 울먹인다. 어머니 집을 비운 지 아흐레만에 울먹인다. 큰아이 달래고 어르며 겨우 잠자리에 누인다. 한숨을 길게 길게 다시 길게 내쉬다가, 천천히 나즈막하게 자장노래를 부르다가는, 노랫말을 몽땅 바꾸어 큰아이한테 바치는 노래로 부른다. “사름벼리 예쁜 아이 씩씩한 아이 튼튼한 아이 ……”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어머니 그리는 아이한테 아버지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아이들 더 사랑하고, 아이들 더 아끼며, 아이들 더 보살피며, 살그마니 쓰다듬는 일이 될 테지.

 

  큰아이야, 작은아이야, 네 아버지가 얼마나 예쁜 아버지이니? 예쁜 아버지로 하루를 함께 보냈니? 아버지가 안 예쁘고 미운 아버지로 하루를 함께 보냈니? 같이 잘 노는 아버지로 하루를 즐겼니? 아버지가 같이 안 놀아 주면서 너희는 심심하게 보냈니? 꿈나라에서 아름다운 날갯짓으로 고운 이야기 길어올려 주렴. 꿈누리에서 맑은 눈빛으로 먼 곳 있는 어머니한테 기운 내라고 어깨 토닥여 주렴. 4346.4.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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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03 23:32   좋아요 0 | URL
아유...사름벼리가 울먹이는군요. 그렇지요.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겠지요.
더구나 아직 어린 아기들인데요. 그래도 아버지 따스하고 사랑 가득한 손길 안에서 씩씩하게 어머니 기다리라 믿어요.
예쁜 아버지, 함께살기님! 편안하고 고운밤 되시길 기도 합니다. ^^

숲노래 2013-04-04 00:23   좋아요 0 | URL
네, 이제 저도 손가락이랑 온몸이 다 꼬부라지네요.
자판을 두들기면서도 자꾸 오탈자 나와서 다시 치느라 힘들어요.
이제 참말 두 아이 사이에 드러누워
좋은 밤 아이들 빌면서 저도 좋게 자야지요..,....
 

버스에서는 잔다

 


  두 아이 데리고 군내버스 타며 읍내로 나갔다 온다. 아이들 그림놀이 할 적에 쓸 빛연필을 두 아이가 서로 분지르는 바람에 제대로 쓰기 어렵기에, 종이를 돌돌 벗겨 쓰는 굵은 빛연필 새로 장만하기로 한다. 조각맞추기도 하나 장만하고, 큰아이 글쓰기 공책도 여러 권 더 장만한다. 과일집에서 과일 몇 가지 사고, 두 아이 나누어 먹을 과자 한 가지 산다. 그러고 나서 다시 군내버스를 타려는데, 자리 하나에 큰아이랑 작은아이 나란히 앉히려 했더니 작은아이가 칭얼칭얼한다. 작은아이가 저는 안아 달란다. 그래, 너 안고 가마.


  군내버스에 빈자리 몇 보이지만, 바로 다음 역인 봉황골에서 할매 할배 많이 타실 줄 뻔히 아니, 빈자리에 앉지 않는다. 할매 할배 빈자리 다 채우고 여럿 서서 가신다. 나는 작은아이 안고 동백마을까지 간다. 이동안 작은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긴 채 잔다. 코코 잘 잔다. 그런데, 동백마을 닿아 가방 메고 내리려 할 무렵, 작은아이가 퍼뜩 깬다. 쳇. 어쩜 너는 버스에서만 자고 버스에서 내릴 때에는 깨니. 집에 가서도 한 시간 즈음 더 자면 얼마나 예쁘니. 집으로 와서 먹으라 한 과자를 평상에 내려놓는다. 나는 집안으로 들어가서 등허리를 편다. 아이구 허리야.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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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받이

 


  비오는 어느 날, 뒷밭으로 가서 밥상에 올릴 나물 뜯고 국에 넣을 쑥을 뜯는데, 어느새 큰아이가 조로롱 아버지 곁에 달라붙는다. “아버지 뭐 해요?” “쑥 뜯어.” “비오잖아요.” “괜찮아.” “비 맞으면 안 돼요. 옷 젖어요.” “응, 젖어도 돼. 말리면 되니까.” “안 돼요. 젖으면 안 돼요.” 아이는 어느새 아버지 머리에 우산을 받힌다.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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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조그마한 집안에서도 달리는 아이들은, 조그마한 마당에서도 달린다. 마을 고샅길에서도 달리고, 논둑에 올라서서 달리기도 한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도 달린다. 달리는 아이들 바라보며, 그래 나도 너희처럼 어린 나날 늘 달리며 놀았구나 하고 깨닫는다.


  요 사랑스러운 아이들아, 달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달리면서 웃고 노래하며 노는 하루란 얼마나 기쁘냐. 너희뿐 아니라 너희 또래와 언니와 동생 모두 어디에서라도 한갓지게 달리면서 하루 누릴 수 있기를 빈다. 이 나라 아이들 모두, 학교나 학원에서 시험점수와 영어에 시달리지 말고, 까르르 웃고 떠드는 노랫소리 가득한 달리기 놀이 누릴 수 있기를 빈다. 4346.4.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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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물 줄게

 


  읍내에서 어느 할매가 할미꽃 멧골에서 캐서 팔기에 열 뿌리 장만해서 꽃밭에 옮겨심었다. 그런데 멧골 흙과 우리 집 흙이 달라서인지, 어떤 까닭에서인지, 할미꽃들 모두 영 기운을 내지 못한다. 그늘자리에 옮겨심어야 했을까. 아이들이 할미꽃 자꾸 축축 처진다 말하며 물을 주자 말한다. 큰아이가 바가지 들고 와서 “내가 물 줄게.” 하고 말한다. “그럼 네가 물을 받아서 줘.” 했더니, “아버지가 물 받아 주세요.” 한다. 바가지에 물을 담는다. 큰아이는 살몃살몃 걸어가서 할미꽃한테 물을 준다. 작은아이는 곁에 서서 누나가 하는 양을 지켜본다. 우리 집 풀과 꽃과 나무 들아, 모두모두 기운내어 씩씩하게 자라렴. 우리 아이들 사랑도 고루 받으며 튼튼하게 뿌리내리렴. 4346.3.2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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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9 09:39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할미꽃 축축 처지는 걸 걱정해 물주는 마음이, 뒷모습으로도 잘 모여요. ^^
사름벼리와 산들보라의 표정이 보이는 듯 하네요. 정말 착하고 예뻐요. *^^*

숲노래 2013-03-29 09:42   좋아요 0 | URL
앞으로 무럭무럭 잘 자라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