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만화영화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에 일어난다. 아이들은 늦게까지 개구지게 놀고도 새벽같이 일어난다. 집에서건 밖에서건 아침에 일어나는 때는 비슷하구나. 여관방은 한 칸짜리이면서 텔레비전이 아주 크다. 가장 눈에 잘 뜨이는 곳에 텔레비전이 있으니 텔레비전을 켜서 만화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


  만화를 보여주는 곳을 찾는다. 이 만화 저 만화 곰곰이 본다. 이 만화도 저 만화도 ‘싸움’투성이라 할 만하다. 또는 ‘운동경기’를 한다. 싸우는 줄거리 나오는 만화에는 싸움 빼고는 아무런 보여줄 것이 없다. 예쁘장하거나 멋들어져 보이는 캐릭터가 나와, 이 캐릭터로 된 장난감을 사도록 부추기는 광고가 이어진다. 운동경기 줄거리 나오는 만화에는 ‘시합’이나 ‘시작’ 같은 일본 한자말이 아무렇지 않게 흐른다. 아이들은 집과 학교에서도 제대로 생각을 안 기울이는 어른들 말투에 길드는데, 이렇게 만화영화를 보면서 캐릭터 장난감에다가 얄궂은 말투에 물드는구나.


  숲을 노래하는 이야기 흐르는 만화영화는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다. 풀을 아끼고 꽃을 보듬으며 나무를 사랑하는 이야기 흐르는 만화영화는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다. 고무줄놀이나 소꿉놀이나 술래잡기나 온갖 놀이가 나오는 만화영화는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다. 모두들 손전화 기계를 만지작거리거나 이런저런 기계를 손에 쥔다. 무척 어린 아이들이 만화영화에서 자가용을 모는 모습으로 나오기도 한다.


  스스로 밥을 짓거나 옷을 짓거나 집을 짓는 사람들 모습이 만화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삶을 배거나 사랑을 물려주는 일이란 없는 텔레비전 만화영화로구나 싶다. 기계와 컴퓨터가 모든 심부름을 다하고, 돈과 카드가 있으면 살림살이에 마음 하나 안 써도 되는 흐름으로 나오는 만화영화로구나 싶다.


  어른들은 어떤 마음이 되어 만화영화를 만들어 아이들한테 보여주려 할까. 어른들은 만화영화를 보는 아이들이 어떤 마음이 되기를 바랄까. 그러고 보면, 어른들은 어떤 마음이 되어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나 대학교 같은 데를 보내는가.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나 대학교를 다니며 어떤 마음이 될까. 4346.8.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들과 여관에서 묵으며

 

 

  전남 순천에 있는 헌책방 〈형설서점〉에서 사진잔치를 연다. 책방에 내 책들 갖다 놓아야 하고, 사진을 붙여야 하며, 도록과 엽서와 포스터를 갖다주어야 하기에 짐이 많았는데, 헌책방지기가 순천서 고흥으로 나들이를 와 주셨기에 홀가분하게 순천마실을 한다. 문방구에 들러 이것저것 장만하고 밥집에 들러 아이들 밥을 먹인다. 붙일 사진을 골판색종이에 붙인다. 이러구러하느니 시간이 퍽 늦어 여관에서 묵고 이튿날 더 일을 해서 마무리짓기로 한다.


  작은아이는 바깥에서 오줌을 누거나 똥을 눌는지 모르나 늘 옷을 여러 벌 챙겨 다닌다. 큰아이 갈아입힐 옷은 미처 챙기지 않았다. 저녁에 느즈막하게 시골집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했으니까. 아이들은 한창 신나게 뛰놀 나이인 터라, 갈아입혀야 할 옷이 있어야 한다. 저녁에 깊어 이마트에 들른다. 큰아이 새 치마와 속옷 한 벌 장만한다. 큰아이 새 치마 장만할 적에는 제대로 못 보았는데, 새 치마 천이 좀 두꺼운 듯하다. 더운 여름날 입기에는 이튿날에 좀 땀 많이 쏟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여관에서 빨래한 치마로 갈아입혀야지.


  개구지게 뛰논 아이들은 쉬 곯아떨어진다. 한참 자장노래를 부른다. 아이들 다리를 주무른다. 발가락 하나하나 만지작거리면서 부디 즐거이 잠들고는 이튿날에 새롭게 뛰놀 수 있기를 빈다. 이 조그마한 발로 새삼스레 재미나게 새 놀이를 찾고 이 땅 튼튼하고 야무지게 디딜 수 있기를 빈다. 4346.8.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들 핑계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에 아이들 데리고 가면 여러모로 고단하다.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으레 ‘어른들 생각’만 하지 ‘아이들 생각’은 안 하기 때문이다. 모임을 하는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하다가 술과 담배를 곁들이기를 바랄 뿐, 아이들을 어떻게 놀리거나 함께 놀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바깥밥 먹으러 다니는 자리 가운데 ‘아이들 먹을 만한 반찬’을 마련해서 주는 데도 드물다. 도시라면 제법 있을 테지만, 도시에서라도 ‘어린이 밥상’을 차림판에 따로 올리는 곳은 찾아보기 아주 어렵다.


  꼭 ‘어른들 모임’ 자리뿐 아니다. 어디에서고 아이들을 찬찬히 생각하지 않는구나 싶다. 밥집에서는 ‘어린이 밥상’을 따로 마련하지 않는다면, 찻집에서는 ‘어린이 마실거리’를 따로 마련하지 않는다. 술집이 줄줄이 늘어선 길거리를 생각해 보자. 술집은 어른들만 들어가는 자리라 하는데, 어른들 들어가서 노닥거릴 술집은 그토록 많으면서, 막상 아이들이 들어가서 쉬거나 놀거나 얘기할 ‘쉼터’는 찾아볼 수 없다.


  옷집을 생각해 보라. 어린이 옷을 파는 가게가 따로 있다. 그러나, 옷집을 빼고는 다른 어느 곳도 아이들 삶을 살피지 않는다. 어린이걸상 두는 가게는 얼마나 될까. 아이들은 누구나 으레 뛰고 달리며 소리를 지르고 싶어하는데, 이런 아이들 놀잇짓을 흐뭇하게 바라볼 만한 어른은 얼마나 될까.


  아이들은 온통 갇힌다. 갓난쟁이 적부터 시설(보육원, 어린이집, 유치원)에 갇히다가 학교(초·중·고)에 갇힌다. 학교에 갇히면서 학원에 함께 갇히고, 대학교바라기만 하도록 내몰린다. 대학교에 겨우 들어가면, 이제는 회사원 되라는 닦달을 받는다.


  아이들은 언제 놀아야 할까. 알쏭달쏭하다. 아이들은 아이들일 적에 놀 수 없도록 갇힌 끝에, 대학생이 되고부터 술집에 드나들고 술이랑 담배에 절어 지내는 길밖에는 아무런 놀이가 없는가. 어른들은 술과 담배 빼고는 할 줄 아는 놀이가 없어, 아이들한테 재미난 놀이를 못 물려주는가. 입을 맞추고 살을 섞는 몸짓 하나 빼고는 아이들한테 물려줄 놀이가 없는가.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는 되도록 안 가려 한다. 아이들도 고단하고 나도 옆지기도 고단하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지 못하도록 다스리거나 꾸짖어야 하는 어른들 모임자리는 어떤 뜻이나 보람이 있을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늘 ‘아이들 핑계’를 댄다. 우리 식구는 아버지나 어머니만 따로 움직이는 일이 드물고, 으레 아이들과 함께 온식구 함께 움직이는데, 아이들이 뛰놀 만하지 못한 데라면 갈 생각이 없다.


  집이 가장 좋다. 나는 언제나 아이들 입맛에 맞추어 밥을 짓고, 아이들은 이 집에서 마음껏 뛰고 놀고 소리를 지를 수 있다. 우리 집 둘레로도 아이들이 마음껏 지낼 만한 데가 차츰 넓어질 수 있기를 빈다. 4346.8.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홉 차례

 


  날이 더울 적에 아이를 아홉 차례 씻긴 적 있다고 장모님이 말씀한 적 있다. 그래, 더운 날에는 이렇게 씻길 수 있구나. 참말 더운 날이라면 아홉 차례가 대수로울까. 열 차례 스무 차례도 씻겨야 할 수 있겠지. 손과 낯을 자주 씻기고 옷도 자주 갈아입히면서. 4346.7.3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두렵지 않은 마음

 


  아버지로서 아이들 도맡아서 돌볼 적에 두렵다고 느낀 적은 아직 없어요. 왜냐하면,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데에 무엇이 두려울까 싶어요. 내가 어른으로서 이런저런 바깥일, 그러니까 사회 활동을 못할까 두려울까요? 그러나, 나는 이런 느낌 받은 적 없어요. 강의나 강연을 가더라도 늘 먼저 말해요. “저는 늘 아이 돌보기를 도맡아 하기에, 강의를 하러 갈 적에도 아이를 데려가요.” 하고. 다시 말하자면, 어린 아이들 데리고 갈 수 없는 강의 자리는 아예 가지 않아요. 이러다 보면, 강의 자리는 아주 뜸하고, 돈을 벌 자리도 되게 많이 줄지요.


  그렇지만 내 삶에서는 ‘강의’보다 ‘아이’가 먼저예요. 강의 한 번 할 적에 100만 원을 준다 하더라도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없는 자리라면, 나로서도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없는 자리가 되리라 느껴요.


  아이 둘을 도맡아 돌보니까, 자전거를 타더라도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함께 태워야 해요. 큰아이가 다섯 살이던 해에는 둘 모두 수레에 태웠고, 큰아이가 여섯 살 된 뒤부터는 큰아이는 따로 샛자전거를 붙여서 샛자전거에 태워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나는 자전거를 탈 때면, 자그마치 40킬로그램 가까운 수레와 샛자전거를 붙이고는, 40킬로그램쯤 되는 두 아이를 태우고 다니지요. 그래도 나는 이 아이들 데리고 자전거를 몰면서 두렵다고 느낀 적 없어요. 오르막에서는 되게 무겁네 하고 느끼면서도, 그만큼 더 힘을 내야지 하고 생각해요. 두려움이 아닌 즐거움이라고 할까요, 새로움이라고 할까요.


  적잖은 아버지들은 아이 하나나 둘을 도맡아 하루를 보내야 할 적에 몹시 두렵다고 말해요. 스물네 시간 아이와 함께 지내야 하니, 스물네 시간 이녁 마음대로 못 쓰거든요. 그런데, 참 마땅한 노릇이에요.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고 떠나, 어버이라면, 아이하고 스물네 시간 함께 보내야 맞아요. 어느 어버이가 아이하고 스물네 시간 안 보내면서 살아가겠어요.


  아버지들이 스스로 어떻게 태어나 오늘까지 살아갈 수 있는가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아버지들이 아름다운 삶과 사랑스러운 꿈을 마음에 담고 즐겁게 하루하루 누리는 길을 걸어가기를 빌어요.
  아이들은 말예요, 하루 스물네 시간 아니라, 하루 마흔여덟 시간도 참말 개구지게 놀아요. 노니까 아이들이에요. 그냥 아이들과 놀면 되어요. 아버지들, 이 나라 모든 예쁜 아버지들, 아이들과 활짝 웃으면서 놀아요. 빙긋빙긋, 싱긋싱긋, 곱게 웃으면서 놀아요. 참말 재미있답니다. 두려움 아닌 기쁨만 있어요. 4346.7.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