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지 않은 마음

 


  아버지로서 아이들 도맡아서 돌볼 적에 두렵다고 느낀 적은 아직 없어요. 왜냐하면,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데에 무엇이 두려울까 싶어요. 내가 어른으로서 이런저런 바깥일, 그러니까 사회 활동을 못할까 두려울까요? 그러나, 나는 이런 느낌 받은 적 없어요. 강의나 강연을 가더라도 늘 먼저 말해요. “저는 늘 아이 돌보기를 도맡아 하기에, 강의를 하러 갈 적에도 아이를 데려가요.” 하고. 다시 말하자면, 어린 아이들 데리고 갈 수 없는 강의 자리는 아예 가지 않아요. 이러다 보면, 강의 자리는 아주 뜸하고, 돈을 벌 자리도 되게 많이 줄지요.


  그렇지만 내 삶에서는 ‘강의’보다 ‘아이’가 먼저예요. 강의 한 번 할 적에 100만 원을 준다 하더라도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없는 자리라면, 나로서도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없는 자리가 되리라 느껴요.


  아이 둘을 도맡아 돌보니까, 자전거를 타더라도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함께 태워야 해요. 큰아이가 다섯 살이던 해에는 둘 모두 수레에 태웠고, 큰아이가 여섯 살 된 뒤부터는 큰아이는 따로 샛자전거를 붙여서 샛자전거에 태워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나는 자전거를 탈 때면, 자그마치 40킬로그램 가까운 수레와 샛자전거를 붙이고는, 40킬로그램쯤 되는 두 아이를 태우고 다니지요. 그래도 나는 이 아이들 데리고 자전거를 몰면서 두렵다고 느낀 적 없어요. 오르막에서는 되게 무겁네 하고 느끼면서도, 그만큼 더 힘을 내야지 하고 생각해요. 두려움이 아닌 즐거움이라고 할까요, 새로움이라고 할까요.


  적잖은 아버지들은 아이 하나나 둘을 도맡아 하루를 보내야 할 적에 몹시 두렵다고 말해요. 스물네 시간 아이와 함께 지내야 하니, 스물네 시간 이녁 마음대로 못 쓰거든요. 그런데, 참 마땅한 노릇이에요.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고 떠나, 어버이라면, 아이하고 스물네 시간 함께 보내야 맞아요. 어느 어버이가 아이하고 스물네 시간 안 보내면서 살아가겠어요.


  아버지들이 스스로 어떻게 태어나 오늘까지 살아갈 수 있는가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아버지들이 아름다운 삶과 사랑스러운 꿈을 마음에 담고 즐겁게 하루하루 누리는 길을 걸어가기를 빌어요.
  아이들은 말예요, 하루 스물네 시간 아니라, 하루 마흔여덟 시간도 참말 개구지게 놀아요. 노니까 아이들이에요. 그냥 아이들과 놀면 되어요. 아버지들, 이 나라 모든 예쁜 아버지들, 아이들과 활짝 웃으면서 놀아요. 빙긋빙긋, 싱긋싱긋, 곱게 웃으면서 놀아요. 참말 재미있답니다. 두려움 아닌 기쁨만 있어요. 4346.7.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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