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핑계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에 아이들 데리고 가면 여러모로 고단하다.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으레 ‘어른들 생각’만 하지 ‘아이들 생각’은 안 하기 때문이다. 모임을 하는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하다가 술과 담배를 곁들이기를 바랄 뿐, 아이들을 어떻게 놀리거나 함께 놀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바깥밥 먹으러 다니는 자리 가운데 ‘아이들 먹을 만한 반찬’을 마련해서 주는 데도 드물다. 도시라면 제법 있을 테지만, 도시에서라도 ‘어린이 밥상’을 차림판에 따로 올리는 곳은 찾아보기 아주 어렵다.


  꼭 ‘어른들 모임’ 자리뿐 아니다. 어디에서고 아이들을 찬찬히 생각하지 않는구나 싶다. 밥집에서는 ‘어린이 밥상’을 따로 마련하지 않는다면, 찻집에서는 ‘어린이 마실거리’를 따로 마련하지 않는다. 술집이 줄줄이 늘어선 길거리를 생각해 보자. 술집은 어른들만 들어가는 자리라 하는데, 어른들 들어가서 노닥거릴 술집은 그토록 많으면서, 막상 아이들이 들어가서 쉬거나 놀거나 얘기할 ‘쉼터’는 찾아볼 수 없다.


  옷집을 생각해 보라. 어린이 옷을 파는 가게가 따로 있다. 그러나, 옷집을 빼고는 다른 어느 곳도 아이들 삶을 살피지 않는다. 어린이걸상 두는 가게는 얼마나 될까. 아이들은 누구나 으레 뛰고 달리며 소리를 지르고 싶어하는데, 이런 아이들 놀잇짓을 흐뭇하게 바라볼 만한 어른은 얼마나 될까.


  아이들은 온통 갇힌다. 갓난쟁이 적부터 시설(보육원, 어린이집, 유치원)에 갇히다가 학교(초·중·고)에 갇힌다. 학교에 갇히면서 학원에 함께 갇히고, 대학교바라기만 하도록 내몰린다. 대학교에 겨우 들어가면, 이제는 회사원 되라는 닦달을 받는다.


  아이들은 언제 놀아야 할까. 알쏭달쏭하다. 아이들은 아이들일 적에 놀 수 없도록 갇힌 끝에, 대학생이 되고부터 술집에 드나들고 술이랑 담배에 절어 지내는 길밖에는 아무런 놀이가 없는가. 어른들은 술과 담배 빼고는 할 줄 아는 놀이가 없어, 아이들한테 재미난 놀이를 못 물려주는가. 입을 맞추고 살을 섞는 몸짓 하나 빼고는 아이들한테 물려줄 놀이가 없는가.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는 되도록 안 가려 한다. 아이들도 고단하고 나도 옆지기도 고단하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지 못하도록 다스리거나 꾸짖어야 하는 어른들 모임자리는 어떤 뜻이나 보람이 있을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늘 ‘아이들 핑계’를 댄다. 우리 식구는 아버지나 어머니만 따로 움직이는 일이 드물고, 으레 아이들과 함께 온식구 함께 움직이는데, 아이들이 뛰놀 만하지 못한 데라면 갈 생각이 없다.


  집이 가장 좋다. 나는 언제나 아이들 입맛에 맞추어 밥을 짓고, 아이들은 이 집에서 마음껏 뛰고 놀고 소리를 지를 수 있다. 우리 집 둘레로도 아이들이 마음껏 지낼 만한 데가 차츰 넓어질 수 있기를 빈다. 4346.8.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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